소설리스트

강철을 먹는 플레이어-4화 (4/221)

4. 남산, 영내 게이트 발생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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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30분, 누군가 이현욱의 침대 앞으로 다가왔다.

“······이현욱 상병님, 일어나셔야 합니다.”

불침번이었다.

“어, 일어났다.”

“예.”

이현욱은 야간 근무 3번 초였고, 약 10분 전부터 일어나 있었다.

매일 같이 잠들기 전에 금속을 삼키고 흡수가 끝날 때쯤 다시 일어나 또 하나를 삼킨다.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대한 빨리 성장하기 위해서 잠까지 통제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이때쯤 저절로 눈이 떠진다.’

- 금속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반 금속)

*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가 상승했습니다. : 61g

- 현재 조종 가능한 ‘금속’ 무게 : 1,358g

자기 전에 먹은 금속-자물쇠를 완전히 흡수하여 61g이 늘어났다.

‘창이나 장검 같은 걸 들어 올리려면 적어도 3kg은 되어야 한다.’

다수의 단검을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며 적을 사방에서 공격하는 것도 꽤 쓸모 있겠지만, 오크 정도의 덩치 큰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선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그건 단검만으로는 힘들었으며 대검이나 장창 따위를 조종하여 급소에 박아 넣는 게 최선이었고, 전장에서 한몫하기 위해선 최대한 빠르게 그 정도 수준까지 도달해야만 했다.

그는 서랍을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역시나 고장 난 자물쇠였고, 그걸 삼켰다.

꿀-꺽-

‘······음, 이제 6개 남았군.’

회귀 첫날, 중대 분리수거장에서 파손된 자물쇠나 금속 경첩 등 흡수할만한 금속 조각을 최대한 긁어모아 두었는데, 이제 거의 다 떨어졌다.

역시 군대 안에서는 양질의 금속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능력 상승 방법을 공개하여 공식적으로 ‘보급’을 받는 건 그다지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직은 세상에 알릴 때가 아니야.’

F급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몇 년 뒤에나 밝혀진다.

그 시기를 굳이 앞당길 필요는 전혀 없었으며, 까딱하다간 예상 밖의 문제들이 발생할 게 뻔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놈도 더욱 빠르게 성장할 거야.’

최대한 늦게 성장했으면 하는, 최악의 빌런이 하나 있었다.

부산이 낳은 최고의 플레이어 ‘인페르노’와 그 동료들을 살해하고 요새화되었던 부산을 단 3시간 만에 함락한 재앙과 같은 놈······ 어쩌면 이현욱 이상의 잠재력을 가진 존재······.

죽음의 군단장, 네크로맨서(Necromancer)

가능하다면, 놈이 성장하기 전에 제거하는 게 최선이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을 위해서 정보 공개는 최대한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섣불리 공개한 정보는 적에게는 공략 힌트가 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오늘 밤, 그 사건이 터지니까······ 한 3일 뒤에 휴가를 나가야겠어.’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전투복과 흔히 장구류라고 불리는 전투 장비를 착용했다.

이현욱이 속한 부대, 제3항마여단 2대대의 전투복은 검은색이었다. 위수 지역이 서울 일대인 만큼 시가전을 주로 치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위장 색은 당연히 검은색이었다.

“저······ 이현욱 상병님, 준비 끝나셨습니까?”

어둠 속, 생활관 귀퉁이에서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오늘 초소 근무의 부사수, 박준모의 목소리였다. 녀석은 막내답게 재빠르게 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이현욱은 말없이 일어나서 문 쪽으로 걸어갔고 박준모는 그 뒤를 따라나섰다.

곧장 행정반으로 들어가자 당직 부관, 곽진철이 노골적으로 노려보았다.

‘어이구, 표정 봐라.’

참으로 가관이었다.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는지, 심술에 가득 차 있었다.

평소였다면 여기서 한 마디라도 툭 던졌을 놈인데 당직 사관, 서은하 중위의 눈치가 보여서 차마 그럴 수 없는 듯했다.

하긴, 저 고결한 성기사가 얼마나 신경 쓰이면 새벽 4시가 다 되어 가는데 졸지도 않고 있을까? 평소에는 꾸벅꾸벅 졸던 놈이······.

“······큼, 당직 사관님, 근무자 왔습니다.”

곽진철의 보고에 책을 읽고 있던 서은하가 고개를 들었다. 흔히 말하는 FM인 그녀였건만, 그녀도 새벽의 졸음을 쉽사리 이겨내기 힘든 건지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그래, 이번이 3번 초지?”

“예, 그렇습니다.”

당직 사관과 당직 부관이 각각 차고 있던 열쇠를 사용하여 ‘아(亞) 공간 무기함’을 열었다.

우-웅-

작은 금고 형태의 무기함, 그런데 그 내부는 다른 세계와 연결된 것처럼 신비로운 빛을 방출했다. 모든 AMT 무장은 이렇듯, 실물 보관이 아니라 아 공간상에 보관되고 있었다.

“자, 각자 병기 출고해.”

이현욱은 아(亞) 공간 무기함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자 눈앞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육군 무기고>의 인가(認可) 자격 확인되었습니다.

* K2C1 소총 (289007-B)

* M9 대검 (인첸트)

AMT는 일반적인 군부대와 달리 ‘개인 병기’ 사용이 허가된다. 병사들이 각자 다른 특성이 있는 만큼, 그 특성에 맞는 무기를 구비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현욱의 경우는 고작해야 ‘인첸트(Enchant)’된 단검 하나가 전부였다. F급이라는 건 차치하고서도, 특정 무기를 다룰 만한 명확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음, 상병, 넌 그게 다야?”

서은하 중위 역시 의아한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렇습니다.”

“······그래.”

웬만한 AMT 장면은 대검이나 창 같은 ‘아이템’으로 무장한다. 당장 옆에 있는 박준모도 마법사로서 작은 나무 ‘완드(Wand)’를 하나 쥐고 있거늘······ 이현욱은 초라해 보기만 했다.

이렇게 화력이 약한 경우 제식 병기인 K2C1 소총을 주 병기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통상 병기로는 몬스터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는 없었다만, 그래도 ‘고블린’이나 ‘코볼트’ 따위의 소형 몬스터에게는 어느 정도 유효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은하 중위를 인솔을 받아, 막사 입구의 ‘탄약소’에서 탄약을 배급받았다.

“우상탄 30발, 이상 무.”

“우상탄 30발, 이상 무.”

두 초병은 탄창을 확인하고 결합했다. 총 30발, 실탄이다.

“그래, 조종간 안전과 총구 방향 항상 유의하고, 인근 지역은 물론이고 영내에도 언제든지 게이트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전우들 생명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절대 한눈팔지 말도록 해.”

서은하의 너무 진지한 대사······ 그 모습에 이현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기억하는 먼 훗날의 서은하와 사뭇 달랐기 때문인데, 그녀는 훗날 이런 딱딱한 군의 시스템을 혐오하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응? 상병, 뭐가 웃기지?”

서은하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근무 서.”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막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빳빳하게 날을 세운 베레모를 쓰고 뻣뻣하게 걷는 모습에 이현욱은 다시금 웃었다.

176cm의 큰 키를 가진 그녀였기에 굉장히 위풍당당해 보이는 게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다른 이들이 볼 때는 진짜 제대로 된 군인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때쯤의 서은하는 한창 신실할 때였구나.’

서은하가 이리도 따분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웃겼다.

뭐, 임관한 지 얼마 안 된 장교들이 으레 그렇겠지만······.

‘잘 알던 사람의 흑역사를 생생하게 보는 게 재밌긴 하네.’

물론 이때는 서로 잘 모르던 사이였다.

생각해 보면 상병과 중위, F급과 B급······ 애초에 친해질 수 없는 계급 격차다.

그런데 몇 년 뒤, 이현욱이 능력 성장 방법을 깨닫고 성장하여 한 길드의 ‘게이트 공략 팀’의 팀장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서은하가 팀의 신입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그간 무슨 일을 겪은 건지, 그땐 다소 신경질적인 성격이었으며 전역 직후 길드에 갓 들어와서 그런진 몰라도 사회초년생처럼 어딘가 어수룩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회식 때 술에 취해서는,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 질질 짜던 모습이란······.

‘야, 이현욱! 잘 들어! 누나가······ 흑! 누나가! 너한테 그렇게 욕먹고 살아야겠어? 내가 중위 달았을 때! 응? 넌 고작 일병이었어! 아, 알아? 너, 나한테 그러면 안 돼! 흐아아앙······.’

전투를 치를 때마다 너무 공격적인 포지션을 잡아서 수차례 뭐라고 했었는데, 그게 쌓였던 모양이었는지, 결국 한 번 터지고 만 것이었다.

‘뭐, 그 날을 계기로 더 친해졌지만.’

그런데 이현욱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모습, 서은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또 다른 기억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이현욱은 그 기억을 떨쳐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젠장.’

폐허로 변한 서울 동대문구였다.

그녀는 그때도 울고 있었다.

‘이, 이현욱······ 꼭, 사, 살아서······ 지켜······.’

다만······ 술이 아니라, 자신의 피에 절은 채 울고 있었다.

“······.”

이현욱은 순간 입맛에 씁쓸함이 감도는 걸 느꼈다.

그녀도 빌런들에게 죽었다.

그것도 메인 탱커로서, 메인 딜러 역할이었던 이현욱을 지키다가 죽었다.

***

이현욱이 속한 부대, 제3항마여단 2대대의 주둔지는 남산 중턱이었다.

‘게이트’라는 미지의 현상은 언제 어디서 열릴지 모른다. 그렇기에 AMT부대는 이처럼 도심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게이트가 열리는 즉시 초동 조치를 위해 출동한다.

‘그런데 오늘은 근처 도심이 아니라 바로 이곳, 남산 안에 게이트가 열린다.’

군 주둔지 내에 게이트가 열리는 건 간간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차라리 그게 나았다.

민간 피해가 거의 없이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게이트의 부산물을 민간 길드와 나눌 필요 없이 오롯하게 군에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초소에 도착하여 전번 근무자와 근무 교대 후, 이현욱은 시계를 확인했다.

- am 04:05

‘게이트가 열리는 게 앞으로 약 10분 뒤였던가?’

이현욱은 허리춤으로 손을 뻗어, 대검(帶劍)의 덮개를 열어두었다.

“저······ 이현욱 상병님?”

그때, 박준모가 말을 걸어왔다.

이현욱이 박준모를 바라보자, 그는 머뭇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우물쭈물했다.

“제가, 저, 우연히 듣게 된 게 하나 있어서 말입니다.”

언뜻 봐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진지한 이야기를 할 여유가 없었다.

“잠깐만, 쉿.”

“······.”

곧 그 사건이 터진다.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예?”

박준모는 고개를 돌려, 철책 쪽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 간간이 주황 불빛만이 떠올라 있었다.

“어, 저는 잘······.”

당연했다. 아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현욱은 정말 뭔가 있는 것처럼, 산등성이로 랜턴을 비추기 시작했다.

“아니, 철책 쪽이 아니야. 뒤쪽, 영내의 산등성이에서 들렸어.”

“그렇다면 아마도······ 고라니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현욱은 고개를 저으며 기어코 어깨에 고정해 둔 워키토키를 짚었다.

삐-빅-

“지휘통제실, 여기는 5번 초소. 수상한 소리를 감지했다. 근처 CCTV 확인 바란다.”

이 워키토키는 영내 모든 초소 및 지휘통제실과 주파수를 공유하고 있었다.

잠시 후······.

삐-빅-

- 치-직- 여기는 지휘통제실, CCTV 확인 결과 문제없으나······ 만일을 대비하여 모든 초소에 전파한다. 경계 근무 간 한눈팔지 말고 사주경계 확실히 할 것.

삐-빅-

- 칙- 어, 그래도 또 한 번의 이상 식별 시 ‘이상 파동 관측기’ 사용할 예정이니······ 어, 문제 원인이 정확히 식별될 때까지 예의주시하며 초소에서 벗어나지 말 것.

여기 말하는 ‘이상 파동 관측기’는 마법 공학으로 제작된 ‘플레이어 제작 아이템’으로 가동할 시, 일정 지역 내의 마나 파동을 관측할 수 있었다.

즉, 게이트 발생 여부를 포착해내는 기계였다. 물론, 한 번 사용할 때 적지 않은 ‘마나 스톤’을 필요로 했기에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이현욱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다시 번 무전을 했다.

“여기는 5번 초소. 6번 초소 방향에서 계속해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다수의 인기척이다. CCTV 재확인을 요청한다. 일반적인 야생동물의 움직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노리쇠를 당겼다.

철컥-

장전, 약실이 총알을 삼키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어······.”

그에 따라 박준모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리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이현욱 상병님?”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는 그 누구보다도 군인이 가장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이현욱은 심지어 견착까지 했다.

‘슬슬 시작될 타이밍이다.’

사실은 이현욱 역시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다만, 지금까지 지휘통제실에 한 일련의 보고는 전부 한 발자국 빠르게 움직이기 위한 일종의 ‘밑밥’이었다.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고 소동이 벌어진 직후, 해당 지역으로 이동하면 늦기 때문이다.

이현욱은 초소의 계단을 내려가며 박준모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현욱 상병님? 저희 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박준모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하는 수 없이 이현욱의 뒤를 따랐다.

바로 그때······.

삐-빅-

- 칙- 아! 여기는 6번 초소! 문제가 발생했다! 다수의 미확인 생명체가 접근한다!

기다렸다는 듯 다급한 무전이 들이닥쳤다.

“어! 이현욱 상병님! 6번 초소라면······.”

방금, 이현욱이 이상을 식별했다고 말 한 곳이었다. 그리고 5번 초소와 불과 800m가량 떨어진 곳이기도 했다.

박준모는 이현욱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았다는 게 진짜였단 말인가?

이현욱은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작됐다.’

저 멀리, 어둠 속, 보라색 일렁거림이 보였다.

6번 초소 바로 앞이었다.

“헉! 게, 게이트!”

박준모도 그것을 포착했는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이제 곧 저 게이트에서 쏟아져나온 고블린 무리가 6번 초소를 점령한다. 초병들이 대응하지만, 끝내 초소가 점령당하고 그들은 중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고 만다.

‘천만 다행히도 바로 그때, 서은하가 도착했고, 초병들이 목숨을 부지했지.’

그 사건으로 서은하는 발 빠른 대처를 인정받아 대대장 표창을 받게 된다.

‘미안하지만, 그 공로······ 이번에는 내가 가져간다.’

이현욱은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허리춤에서는 대검 한 자루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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