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302)

94. 마지막 전투 (3)

주신이 깨어난다는 음성과 함께 오스리아 대륙의 최북단에서 푸른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모든 것이 얼어 있는 동토의 대지.

과거 니플헤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곳에서 태초의 거인이 깨어났다.

“아…… 태초신이시여…….”

서리 거인의 전사장이 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다.

그의 왕 흐림르를 제외하고 그 누구에도 꿇어 본 적 없는 그의 두 무릎이 꺾였으며, 왕에게조차 허리를 굽히지 않았던 그의 허리가 완전히 굽혀졌다.

그건 다른 서리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태어나게 한 태초신의 위대한 부활을 찬양하며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이건 서리 거인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고대종들 역시 저마다의 방법으로 태초신의 부활을 축복했다.

[태초신 ‘이미르’가 깨어납니다. 이미르가 당도하기 전까지 모든 것을 불태우는 수르트가 대륙을 짓밟지 못하도록 저지하세요.]

-주신이 모든 힘을 갖고 부활합니다.

-주신의 승리로 무스펠의 힘이 대폭 감소합니다.

-무스펠의 신물 ‘레바테인’을 찾지 못하도록 막으십시오(오스리아 사막지대 지하에 잠들어 있음).

-무스펠이 오스리아 대륙을 짓밟는 지역이 많아질수록 이미르의 힘은 약해집니다.

태초의 거신인 이미르가 무스펠을 막기 위해 움직인다.

그가 올 때까지만 버티면 멸망을 막을 수 있다.

그 생각에 지휘관들이 일제히 무스펠을 향해 진형을 갖추고 포격을 시작했다.

“막아! 무조건 막아!”

지휘관들이 악을 쓰면서 오스리아 대륙으로 향하는 무스펠의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춰 보고자 했다.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군.”

“지옥의 불길보다 더 심해.”

무스펠 그 자체인 거인의 불길은 마스터조차 오러를 방어에만 둘러야 겨우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의 발이 닿는 곳은 바다마저 모두 증발되어 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다가간 다음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로 저지하는 것뿐이었다.

마도사들도 힘을 보탰다.

뇌전과 폭풍이 무스펠의 앞을 가로막았고, 동부 사령관은 인어족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얼음의 벽을 세워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격의 차이 때문일까?

동부 사령관과 인어족, 물 계열 마법사 전체가 힘을 합친 거대한 얼음의 벽은 고작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무스펠에 의해 무너졌다.

“쏴라! 조금이라도 더 늦춰!”

“막아라!”

모두가 악을 쓰면서 무스펠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랜드 마스터조차 부담스럽다는 초대형 요새포도, 수만 발의 마도포도, 이세계의 핵이 생각날 정도로 강력한 대마력 폭탄도 거인을 막을 순 없었다.

그저 잠시간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저항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빠른 속도로 오스리아 대륙에 향하던 무스펠의 발걸음이 조금 늦춰졌다.

“절대! 절대 대륙에 발 디딜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레오폴드가 고함치면서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다른 사령관들도 사력을 다해 무스펠을 향해 공격했다.

그 순간, 어느 정도 회복한 두 가주가 힘을 발휘했다.

하늘을 수놓은 엄청난 숫자의 빛덩이가 일제히 무스펠의 전신을 강타했다.

밤하늘의 유성들이 지상에 떨어지는 것처럼 온몸을 강타하며 나오는 충격파들.

뒤이어 거대한 사자가 무스펠의 다리 한쪽을 붙잡고 늘어졌다.

온몸이 불타면서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라이너의 사자.

“좀 더 쉬고 계십시오.”

두 가주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신 역시 움직이려던 아이언을 아리엘이 제지했다.

몸은 회복되었을지언정 정신은 완벽하게 회복된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조금 더 휴식이 필요함을 알고 아리엘이 아이언을 비룡에 앉힌 후, 에이든과 같이 움직였다.

“후…… 보상을 얻자마자 바로 시험해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도 그렇네요.”

에이든이 자신의 뒤에 떠다니는 백색 사자를 검에 융합시켰다.

그러자 아리엘 역시 환하게 뜬 별빛을 검으로 끌어모았다.

두 사람은 두 가주처럼 검으로 그랜드 마스터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이번 보상으로 벽을 넘었다.

비록 방향은 달랐지만 그 위력은 일순간이나마 무스펠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게 힘이 줄어든 거라니…….”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른 북부 사령관 제든 윅스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생채기도 나지 않는 무스펠의 모습은 실로 경이로울 정도로 강력했다.

주신의 승리로 약해진 무스펠의 모습은 조금도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먼 옛날 신화시대를 멸망시켰던 수르트조차 무스펠의 힘을 끌어다 쓴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실로 압도적인 위용.

그랜드 마스터급 존재들이 미친 듯이 공격하고, 제국의 모든 전력이 발걸음을 늦추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스펠의 발은 점점 오스리아 대륙에 가까워져 갔다.

마침내 무스펠이 오스리아 대륙에 거의 도달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정신적으로 휴식을 취하던 아이언이 다시금 융합을 한 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쿠구구구구!

-크오오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존재에 무스펠이 처음으로 분노의 외침을 내뱉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아이언의 힘은 상당히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랜드 마스터가 전력으로 힘을 사용하고, 주변을 쓸어버리는 대마력 폭탄이나 초대형 요새포의 공격에도 잠깐 멈춘 게 전부였던 무스펠이 아이언의 공격에 처음으로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총사령관으로서 명령한다! 목숨 걸고 막아라! 여기서 모든 것을 건다!”

“예!”

아이언의 명령에 모든 제국군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마치 이곳이 최후의 전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무스펠의 발걸음을 멈추기 위해 목숨 걸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서는 건 아이언이었다.

오색빛깔로 빛나는 융합된 힘을 날려 다시금 무스펠을 멈춰 세우고 뒤이어 마스터급 이상의 모든 무인들이 한꺼번에 공격했다.

공격으로 생긴 텀은 제국의 신무기들이 메꾸었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무스펠의 전신을 강타하는 마도포들.

마치 모기가 물은 것처럼 몸을 긁으면서 괴로워하는 무스펠.

처음과 달리 아이언의 공격이 효과가 있는지 조금은 타격을 입은 듯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제국의 모든 전력의 공격에도 잠깐 동안 저지하는 게 전부였다.

결국 무스펠은 전진했다.

그리고 오스리아 대륙을 밟기 발을 들어 올렸다가 천천히 내렸다.

쿠웅!

“크윽!”

무스펠의 거대한 발을 가로막은 아이언.

홀로 무스펠의 거대한 발을 지탱하자 탈진 증세까지 일어난 마스터들도 다시금 일어났다.

자신들의 총사령관이 목숨 걸고 막는데, 자신들이 주저앉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없는 마력까지 쥐어짜 내 공격하는 마법사들, 포신이 터질 때까지 쏘아 대는 함선들.

그런 그들의 노력에도 조금씩 무스펠은 내려왔다.

이대로 무스펠이 오스리아 대륙에 도달하는 것인가 싶은 순간,

쿠우웅!

-나의 아이들아. 고생했느니라.

다정한 음성과 함께 나타난 푸른 빛의 거인.

그 거인은 오스리아 대륙을 닿을 듯 말 듯 한 무스펠의 발을 들어 그대로 밀어냈다.

다시금 바다 쪽으로 밀려난 무스펠을 향해 이미르가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무스펠을 두 팔로 감쌌다.

그러자 무스펠이 괴성을 지르면서 이미르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자신의 품 안에서 반항하는 무스펠을 단단히 감싸면서 거대한 이미르의 눈동자가 아이언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뒤를 부탁하마.

이미르의 말에 아이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사람도 들었는지 확인했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 듯 했다.

그것을 확인한 아이언이 거대한 이미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빙그레 웃은 이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이언의 대답에 만족한 듯, 이미르가 웃으면서 온몸에서 빛을 발산했다.

[주신이 스스로를 희생해 무스펠의 불꽃을 멸망의 저편으로 보냈습니다. 대부분의 힘을 소진한 주신이 다시 잠듭니다.]

-멸망의 마지막 퀘스트가 변경됩니다.

1. 주신이 깨어날 때까지 무스펠의 잔재로부터 버텨 내기.

2. 무스펠의 잔재를 완전히 소멸시키기.

※1번의 경우 멸망의 잔재가 남을 수 있습니다(잔재가 남을 경우 후에 또 다른 멸망이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스펠의 잔재로부터 수르트가 깨어납니다. 그가 레바테인을 쥘 수 없도록 저지하십시오!]

이미르의 희생으로 검은 재가 된 곳에서 붉은 거인이 나타났다.

무스펠보다 작지만 가진 힘은 여전히 그랜드 마스터조차 상대할 엄두가 안 날 정도로 강력한 존재.

그런 존재가 두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다시금 앞으로 걸어오는 수르트를 막기 위해 아이언이 나섰다.

그런 그를 상대하기 위해 수르트가 불의 검을 만들었다.

레바테인이 없는 이상 순수한 불꽃으로 만든 검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쿠웅!

-결국…… 또 실패했는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인간을 보며 수르트가 중얼거렸다.

무스펠은 다시금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원하는 완전한 멸망은 또다시 실패한 것이다.

-너 때문인가?

수르트의 물음에 아이언은 대답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또다시 이 세계를 완전히 멸망시키는 데 실패한 것인가?

“…….”

안타깝다는 듯 말하는 수르트와 그를 막아서는 아이언.

하지만 수르트의 힘에 점차 밀려났다.

숨겨 둔 한 수 따윈 없었다.

이미 지옥왕과 나찰을 죽인 모든 것을 압축한 검으로 수르트의 불꽃 검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불완전한 멸망으로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가?

수르트가 그렇게 말하며 아이언을 분노하듯 말했다.

-태초로 회귀해 영원한 안식에 처해야 할 생명들을 방해한 너의 죄가 실로 크다!

분노한 수르트의 음성과 함께 그의 온몸에 타오르는 불이 불꽃 검에 압축되었다.

그러자 오색 빛깔로 빛나는 검이 조금씩 균열이 일어났다.

바로 그때, 흐레스벨그에게서 음성이 들려왔다.

-때가 됐다.

“……뭐?”

이를 악물며 막던 아이언이 멍청하게 되묻는 순간,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떨어졌다.

-끄아아아!

빛의 기둥은 온몸에 화상을 입던 아이언의 몸을 그 즉시 치유했다.

반대로 수르트는 화상을 입으며 괴로워했다.

불의 몸인 그가 화상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수르트는 실제로 괴로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에게 다시금 온몸을 꿰뚫는 수천 개의 빛의 창이 떨어졌다.

-라……인가?

수르트가 증오스러운 음성으로 자신을 방해한 존재를 바라보았다.

-타 차원의 신마저 불러들이다니……. 치욕이구나, 이미르여…….

수르트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금 온몸을 불태웠다.

모든 것을 건 수르트의 힘은 하늘에서 나타난 빛의 새인 ‘라’의 힘마저 불태웠다.

빛의 창을 불태워 바스라트리고, 다시금 떨어진 빛의 기둥은 주먹을 휘둘러 부숴 버렸다.

-타 차원의 주신이라 해서 이곳에서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수르트가 라를 보며 오만하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처럼 라는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없었고, 그 때문인지 조금씩 수르트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언의 표정은 어두웠다.

“저게…… 뱁새지?”

-그래.

흐레스벨그의 대답에 아이언이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빛을 내뿜으며 수르트를 상대하고 있는 라였지만 조금씩 밀리는 모습을 보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라가 패배하게 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쿨럭!”

라를 돕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을 걸고 무리한 아이언이기에 피를 토했다.

신성력으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내부는 엉망이었다.

“도와야…….”

아이언이 도우려는 것을 보고 마스터들을 비롯한 제국군이 공격을 해 보았지만 수르트가 소환한 화염의 거인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반대로 그들의 공세를 막아야 하는 처지가 된 제국군.

“도와야 하는데…….”

아이언의 말에 갑자기 신수들이 몸에서 나와 가만히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선택의 시간인가?

흐레스벨그의 말에 신수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이언이 자신도 모르게 라를 바라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친 느낌이 들며 라와 아이언의 정신이 동화되었다.

[타 차원의 주신 ‘라’와 정식으로 계약하시겠습니까? (Yes/No)]

※경고※

-주신과의 정식 계약으로 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계약의 대가로 타 차원에서 임무가 주어질지 모릅니다.

-세계를 구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떠나게 될지 모릅니다.

경고성 멘트가 나오면서 라와의 계약이 떴다.

점차 밀려나고 있는 라와 압박하는 수르트.

그 모습을 본 아이언은 망설임 없이 수락을 눌렀다.

그 순간, 하늘을 날던 빛의 새가 한 줄기 빛이 되어 아이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결국 너인가?

수르트가 환한 빛을 내뿜는 아이언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라와 융합한 아이언의 힘은 수르트의 힘을 가볍게 압도했다.

초월의 반열에 이른 아이언의 몸에 흐레스벨그와 환상종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신수들과 주신급인 라의 힘이 융합되면서 폭발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균열이 갔던 검은 어느새 복구되어 환하게 빛나며 수르트의 불꽃 검을 가르고 거대한 가슴팍을 갈라 냈다.

-또…… 또다시 실패인가…….

수르트가 허망한 표정으로 아이언을 보면서 원망하듯 스러져 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아이언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멸망을 막아 내셨습니다!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음으로 본래 세계로 소환됩니다.]

-주신 라와의 계약으로 이곳에 남는다는 선택지는 사라집니다.

-세계를 구한 대가는 본래 세계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멸망을 막아 내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시스템 음성과 함께 아이언의 몸이 점차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총사령관님! 사령관님!”

멀리서 아리엘이 자신을 부르며 다급하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이언은 말없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옆에서 꿋꿋하게 버텨 준 그녀를 위해 아이언이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얼마 후, 빛과 함께 아이언이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아리엘이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