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301)
94. 마지막 전투 (2)
전력을 다한 둘의 충돌.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탔다.
시종일관 밀어붙이던 지옥왕이 밀려났다.
-그래! 이거다!
전력을 다한 공격에도 상대가 타격을 입기는커녕 지옥왕의 주먹이 갈라졌다.
이전과는 다른 일격에 지옥왕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격이 올라갔군!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강해졌어!
지옥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지옥의 불길을 더욱 뿜어냈다.
몸의 감각이 이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괜히 몸의 감각을 믿고 싸우기보단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공격 패턴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태초신의 격을 빌려 온 아이언의 힘은 전과 같지 않아도, 지옥왕의 순수한 힘도 이전보다 약해진 상태였다.
싸우면 싸울수록 지옥왕의 육체에 무리가 갔다.
-크하하하! 좋구나! 방어만 하는 것보다 서로 공격적인 게 더 재밌는 법!
지옥왕이 호쾌하게 웃으면서 지옥의 불길이 휘감은 팔과 다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아이언도 지지 않겠다는 듯, 융합된 힘을 압축해 검을 휘둘렀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지옥왕이 위험하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전투를 즐기던 야차왕과 짐승의 왕이 지옥왕을 위해 움직이려 했다.
-비켜! 좀 있다가 더 놀아 줄 테니까 꺼지라고!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테리언을 향해 도를 휘두르는 야차왕.
짐승의 왕 쪽도 마찬가지였다.
황소 형상의 몸을 물고 늘어지는 사자를 쳐 내는 짐승의 왕.
-야차왕! 왕이 죽으면 안 된다! 빨리 도와!
-지옥왕 뭐 해! 다시 지옥 갈 거야? 재밌게 놀아야 할 거 아니야!
짐승의 왕의 말에 야차왕이 밀리고 있는 지옥왕을 나무랐다.
그들이 지옥왕을 도우려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지옥왕이 죽는 순간 자신들은 패배할텐데, 그렇게 되면 다시금 지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스템에 의해서 소멸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런 자극적인 싸움을 더 이어 갈 수 없게 된다.
-지옥 재미없어! 좀 더 놀자!
야차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지옥왕에게 좀 더 버텨 보라고 했지만 이미 상처를 너무 많이 입은 지옥왕이기에 점점 더 밀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아이언을 향해 상공에서고 거대한 얼음의 창이 떨어졌다.
쿠우웅!
“헉……헉…….”
얼음의 창을 쳐 낸 아이언이 뒤로 밀려났다.
“누구지?”
단순한 마법 따위가 아니었다.
지옥왕에 비견될 만큼 강력한 격이 느껴졌다.
힘은 지옥왕보다 밀릴지언정 그 안에 담긴 격은 굉장히 높았다.
쾅! 쾅!
사방에서 몰아치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부수던 아이언의 앞에 거대한 얼음의 벽들이 나타났다.
마치 이곳이 자신의 세상이라도 되듯,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이리저리 변화하면서 아이언을 몰아붙였다.
그러자 아이언이 이를 악물면서 얼음덩어리를 부수고 지옥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왔나?
-멍청한 놈! 동대륙으로 돌아오라고 했잖아! 왜 씹는 거냐!
-……나찰.
염열지옥과 반대로 극한의 한기를 경험하게 하는 한빙지옥을 점령한 지옥의 대법관 나찰.
그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지옥왕을 바라보았다.
-제길…….
나찰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지옥왕과 야차왕, 짐승의 왕을 바라보았다.
아귀왕은 멍청하니 기대도 안 했다.
하지만 다른 왕들 중 하나라도 자신의 말을 들을 줄 알았다.
지옥의 구가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한 명쯤은 구를 지키러 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옥왕을 비롯해 야차 왕과 짐승의 왕들 중 하나도 나찰의 말을 듣지 않았다.
-네가 왔다는 건…….
-그래. 지옥의 구는 깨졌다.
두 개의 지옥의 구를 이용해 동대륙을 ‘지옥화’시키는 신물.
지옥이 타락한 존재들과 계약하면서 시스템에게 받은 물건으로 동대륙을 지옥으로 만들려 했던 계약이 끝났다.
그 덕에 빠르게 강림했던 패널티를 상쇄시켰던 것도 전부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더욱더 제약된 힘으로 눈앞의 인간을 상대해야 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자연 복구되지 않나?
-그 전에 네가 뒈지면?
지옥왕의 말에 나찰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누더기가 된 지옥왕.
나찰이 보기에 자신이 조금만 더 늦었어도 지옥왕은 소멸했을 것이다.
그러면 지옥은 끝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금 이곳, 이 순간에 결판을 봐야 한다.
-좋군.
-좋긴 개뿔……. 상처 회복하고 있어.
나찰의 말에 지옥왕이 고개를 저었다.
-네 힘으로는 무리다.
-버텨 볼 테니까 회복하고 도우라고.
-나보고 같이 싸우라는 거냐?
지옥왕의 말에 나찰이 매서운 눈초리로 말했다.
-그럼? 소멸이라도 할까?
-…….
침묵하는 지옥왕에게 나찰이 다시 말했다.
-정신 차려라. 넌 아수라고 지옥의 왕이다. 지옥을 소멸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그깟 자존심 따위 버려.
나찰의 말에 지옥왕이 침묵하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항상 맞는 말만 하는 나찰.
지옥의 대법관답게 그는 언제나 이성적이었다.
하지만 지옥에 있을 땐 언제나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지옥의 멸망이 자신에게 달려서?
아니면 이제 와서 왕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걸 생각했다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걱정하는 건 더 이상 이 짜릿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자존심을 굽히고 나찰과 싸우며 저 강대한 인간을 상대하기로 했다.
콰아앙!
마침내 부서진 거대한 얼음의 벽.
그리고 그 안에서 찔러 들어오는 아이언의 검을, 나찰이 거대한 얼음의 창을 휘두르며 맞섰다.
-큭!
단 한 번의 교환에 나찰이 침음성을 삼켰다.
본래 나찰은 주술과 마법에 특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밀리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숱한 경험을 통해 그의 창술은 웬만한 야차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지고 온 힘이 너무 부족했다.
펑! 펑! 펑!
그가 만든 얼음의 방패는 아이언의 공격에 손쉽게 격파되었고, 그가 만든 얼음의 창은 몇 번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나갔다.
-쿨럭!
보랏빛 피를 뿜어내면서도 기어코 앞을 가로막는 나찰.
두 손으로 붙잡은 그
-지옥을…… 지켜야 한다. 이리…… 왕한테 보낼 수는 없다.
나찰의 말에 아이언이 더욱더 힘을 주면서 검을 내리누르려 한 순간, 갑자기 상공에서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날아들었다.
쿠우웅!
-지옥의 대법관 꼬라지가 말이 아니군.
-……누구 때문인데.
지옥왕 아수라와 대법관 나찰이 서로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어쩌면…… 이곳이 우리의 마지막일지도 모르겠어.
아수라의 말에 나찰이 말없이 얼음의 창을 생성했다.
그러자 아수라 역시 두 주먹에 화염을 생성했다.
한빙지옥의 냉기와 염열지옥의 화염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그 중심을 가르고 아이언의 융합된 힘이 오색빛을 내뿜으면서 날아들었다.
‘시간이 없다. 빠르게 결판을…….’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모든 힘을 끌어냈다.
뒤를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생애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다.
그런 아이언의 의지를 느낀 것인지 아수라와 나찰 역시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이것이 마지막이군. 실로 아쉽구나.
-개소리 말고 모든 걸 쏟아부어!
아수라의 말에 나찰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냈다.
만의 문양이 생겨나면서 그 안에 한빙지옥의 냉기가 압축되었다.
그러자 아수라 역시 육체에 있는 모든 투기를 긁어모았다.
수백 년간 쌓은 투기가 염열지옥의 불길에 섞여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과거 지옥을 멸망으로부터 지켜 냈던 위대한 아수라.
여섯 개의 팔에 맺힌 화염 덩어리가 일제히 아이언을 향해 움직였다.
-뚫을 수 있겠냐?
흐레스벨그의 물음에 아이언이 검을 꽉 쥐었다.
그러자 막혀 있던 검이 다시금 지옥의 힘을 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뚫어야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모든 힘을 쏟아 냈다.
모든 것을 검의 끝에 집중시키자 오색빛이 검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각각의 색들로 빛나던 날개들이 가루가 되어 검으로 모여들었고, 태초신의 육체를 통해 넘쳐 나는 기운들 힘들 역시 모조리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육체를 보호할 최소한의 힘마저 검에 집중시키자 막대한 힘이 뭉쳐졌고, 그것은 모든 것을 분쇄했다.
-……굉장하군.
아수라가 자신들의 힘을 뚫고 들어오는 하나의 검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지금의 이 일격은 본신의 힘을 전부 갖고 있었더라도 막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힘이었다.
나찰 역시 그에 공감하는 듯, 멍하니 자신의 ‘만’ 자 형상을 찢어발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멍청한 놈. 한발 물러섰으면 이겼을 것을…….
나찰의 타박에 아수라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재미없잖나.
-네놈은 항상 그러했지.
아수라의 말에 나찰이 한숨을 쉬면서 오색빛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그렇지?
나찰의 말에 아수라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수라가 만든 여섯 개의 팔을 가진 거인의 형상마저 찢겨지면서 두 존재를 집어삼켰다.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향할 기세로 날아가는 오색의 빛줄기.
그것이 사라진 건 몇 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왕이 진 건가?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린 왕과 나찰을 보면서 짐승의 왕이 중얼거렸다.
어느새 그의 몸은 조금씩 가루가 되어 가고 있었다.
-졌네. 아쉽다……. 좀 더 놀고 싶었는데…….
어린아이같이 칭얼거리는 야차왕.
-키르…….
자신의 몸이 사라져 가는 것도 모르고 타락한 존재들을 집어삼키면서 아리엘을 쫓던 아귀왕 역시 죽음을 감지했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지옥왕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괴상망측하게 생긴 아귀왕이 아수라가 있던 자리를 보며 한 줄기 눈물을 떨구었다.
생각 없이 먹는 것만을 살아오던 아귀왕을 유일하게 친구로 받아 준 그의 죽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짐승의 왕을 시작으로 야수왕이 소멸되고 마지막으로 거대한 몸뚱어리를 가진 아귀왕까지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때, 마침내 인간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대륙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주신을 위해 싸운 모든 종족이 축복을 받습니다.]
-대량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상처 입은 모든 자들이 완벽하게 회복됩니다.
-대륙 전쟁 내에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합니다.
-타락했던 동대륙이 주신의 영역이 되어 정화되기 시작합니다.
“우와아아아아!”
기다렸던 시스템 음성에 모두가 환호했다.
절망적일 정도로 강력했던 존재들을 쓰러뜨리고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살아남았다!”
한 남자가 살아남은 것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환호할 때, 마침내 보상이 내려오며 살아남은 인간들이 빛에 휩싸였다.
죽었던 자들은 부활하며 소정의 보상을 받았지만 살아남은 인간들만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다.
죽었던 자신이 살아난 것 자체가 기적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멸망을 이겨 낸 것이 기뻐할 때였다.
[마지막 퀘스트. ‘진정한 멸망을 막아라!’가 곧 시작됩니다. 모두 전투준비를 해 주십시오!]
시스템 음성에 환호하던 인간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
“끝난 게 아니야?”
“또…… 있다고?”
승리에 환호하던 인간들이 절망에 빠졌다.
지금도 간신히 이겼는데, 이보다 더 강력한 적이 온다는 것에 절망한 것이다.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저…… 정비하라!”
“빨리 재정비해!”
정신을 차린 지휘관들이 황급히 병력을 닦달하며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모두 회복된 상태이니 다시 전투를 치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시스템의 회복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망가진 무기들 역시 회복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망가져서 침몰한 배와 비공선들까지 다시금 복구시켰고, 그 안에 있던 병력들까지 전부 부활시켜 주었다.
그 덕분에 군은 빠르게 재정비를 할 수 있었다.
“마지막이다! 이것만 버티면 된다!”
동부 사령관이 그렇게 말하며 병력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런 그조차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화……산?”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화산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더욱 신기한 것은 그곳에서 거대한 거인이 걸어 나왔다는 것이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크기의 불의 거인.
[멸망의 불 무스펠의 주인이 깨어났습니다.]
너무 압도적인 크기에 대항할 의지조차 잃어버린 이들.
[주신의 축복이 거두어집니다.]
[주신의 영역이 해제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신의 힘마저 거둬들여지면서 인간들의 눈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그런 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생겨났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주신이 깨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