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300)
94. 마지막 전투
아이언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제국군이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했고, 아이언은 그들의 바람대로 회복에 전념했다.
하지만 감각만큼은 예민하게 만들어 두었다.
그렇기에 지옥왕이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반응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지옥왕이 나타나자마자 경고한 흐레스벨그 말대로 아이언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악마왕 때처럼 마지막 일격을 위해 간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강하다.’
시스템 제약, 주신의 제약, 거기다가 불완전한 부활까지!
3종 세트로 약화된 악마왕과 달리 지옥왕은 오로지 시스템 제약만을 받은 상태였다.
급하게 나와 힘이 불완전해 보이는 것 같지만 그걸 감안해도 모든 악마들을 흡수한 상태의 악마왕보다 강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후…….”
-긴장되는 거냐?
“조금?”
흐레스벨그의 물음에 아이언이 솔직하게 답했다.
모든 신수들과 융합해 의식을 공유할 수 있기에 흐레스벨그는 아이언이 지금 얼마나 떨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는 혼자 힘으로 이겨 내야 한다.
흐레스벨그의 말에 아이언이 움찔했다.
긴장해서 그런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뱁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 이겨 내야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들었다.
그것을 전투를 시작하자는 신호로 본 것인지 붉은 화염을 휘감은 지옥왕이 움직였다.
쿠웅!
“큭!”
지옥왕이 움직이는 것만 간신히 봤는데, 어느새 아이언의 코앞까지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다.
다행히 검을 휘둘러 튕겨 내긴 했지만 식은땀이 절로 나올 정도의 일격이었다.
‘의식은 반응하지 못했어.’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며 감각을 더 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로 감각을 확장하며 지옥왕의 다음 일격을 기다렸다.
쾅!
이번에도 간신히 막아 낸 아이언이 이를 악물었다.
여전히 의식은 지옥왕의 일격을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육체가 반사적으로 그것을 막아 내 주고 있었다.
태초신의 육체가 아이언의 현재 수준을 뛰어넘어 반응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신수들과의 융합으로 한층 더 증폭된 힘에 태초신의 육체의 잠재 능력을 끌어 올려 지옥왕의 공격을 받아 냈다.
쾅! 쾅! 쾅!
마스터급은 물론이고 그랜드 마스터인 두 가주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전투를 이어 나가는 두 존재.
문제는 그들로 인해서 주변이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근방에 있는 암초지대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고, 충격파로 인해 폭풍이 몰아치고 거대한 해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이곳이 바다라서 다행이지, 육지였다면 완전히 박살났을 것이다.
산 하나쯤은 우습게 날려 버릴 것 같은 일격들이 교환되면서 화염과 오색빛의 힘이 충돌했다.
쿠웅!
-제법이구나. 악마왕이 죽을 만하군.
지옥왕이 자신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는 아이언을 칭찬했다.
방심 따윈 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답게 지옥왕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공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언은 전부 받아 냈다.
그것이 스스로의 힘보다는 육체에 의한 반응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는 주체가 아이언이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군?
지옥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악마왕이라면 이 정도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악마들이 희생했다면 절반에 가까운 힘은 사용할 수 있을 텐데……. 그 양반이 그냥 죽어 줬을 리도 없을 테고…….
지옥왕이 흉악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자 아이언이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티 내지 않고 오히려 자세를 잡았다.
‘지금 내 수준으론 섣부르게 공격하면 당한다.’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며 지옥왕이 다시 공격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흉악한 얼굴로 귀여운 척하며 갸웃거리던 것을 멈추고 다시금 공격해 들어갔다.
-상관없지. 뭐가 되었든 밟아 버리면 그만이니!
아이언이 뭔가를 숨기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상관없다는 듯 다시금 전력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지옥왕이 주먹을 뻗었다.
동시에 지옥의 불길이 주먹을 통해 정면으로 뻗어 나갔다.
‘크으…….’
강력한 육체는 통한 공격만으로도 버거운데 투기에 섞여 뻗어 나오는 지옥의 불길마저 위협적이었다.
융합된 능력이 아니었으면 벌써 재가 되어 버릴 정도였다.
미친 듯이 몰아붙이는 지옥왕.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버텨 내는 아이언.
지옥왕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 망가진 신체는 신성력으로 복구하고, 지옥의 불길은 자연의 힘으로 밀어냈다.
신수들의 융합된 힘은 지옥왕의 순수한 투력을 막아 냈다.
-점점 반응하는군.
지옥왕이 흥미롭다는 듯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반사 신경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던 인간이 이제는 간간이 반격할 틈을 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지옥왕이 먼저 반응해서 반격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눈앞의 인간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수라! 혼자 노니까 재밌냐!
-그래! 나도 같이 놀자!
-끼에에엑!
화염기둥 속에서 기어 나오는 또 다른 지옥귀.
그들은 지옥왕만큼 아니지만 능히 지옥의 일부를 다스릴 만큼 강한 자들이었다.
수라도를 평정한 야차왕.
황소 뿔과 개의 입, 맹수의 발톱을 가진 짐승의 왕.
아귀지옥을 평정한 괴물. 아귀왕.
모두 지옥에서 한가락 하는 이들이었고, 그들이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힘의 제약을 감수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저 미친놈들…….
자신 대신 지옥을 다스리라고 말한 놈들이 죄다 몰려들어 왔다.
매일같이 전투에 빠져 살거나 고통을 즐기는 놈들이 새로운 자극을 위해 모두 위험을 감수하고 넘어온 것이다.
-쯧!
이리될 줄 알고 있었던 지옥왕은 부하 놈들에게 신경을 끄고 다시금 전투에 집중했다.
-천천히 이겨 줬으면 좋겠는데…….
부하들 때문에 자신과 눈앞의 인간이 벌이는 전투가 일찍 끝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부하들에게 신경 쓰는 지옥왕.
그러자 방어만 하고 있던 아이언이 반격에 나섰다.
비록 지옥왕에 비하면 약간 처지는 실력이지만, 그 역시 어디 가서 무시당할 짬밥이 아니었다.
기습적으로 날린 검에 방심하던 지옥왕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으음…….
자신의 볼이 쭉 찢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방어만 하고 있던 아이언의 첫 반격에 지옥왕이 기쁘다는 듯 웃었다.
그것을 본 지옥의 절대자들이 부럽다는 듯, 지옥왕을 향해 달려왔다.
-내가 상대할래!
-내가 먼저다!
짐승의 왕과 야차왕이 서로 달려들려 하는 순간, 두 존재의 앞을 두 명의 남자가 가로막았다.
-너희들은 너무 약해.
-꺼져라.
지옥의 두 왕이 말했지만 앞에선 두 가주는 물러서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자들에 비해 자신들의 경지가 부족한 걸 알기에 철저하게 주신의 영역 안에서 가로막았다.
그것을 본 짐승의 왕이 더 참지 못하고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그러자 라이너가 사자를 만들어 그의 공격을 받아 냈다.
맹수와 황소의 싸움이 시작되자 테리언 역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광속과도 같은 그 속도에 야차왕이 활짝 웃었다.
-제법? 조금은 놀아 줄 가치가 있을지도?
야차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테리언을 향해 양쪽에 든 거대한 도를 휘둘렀다.
그러는 사이 배고픔을 못 참고 타락한 존재들을 먹고 있던 아귀왕이 마침내 인간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신들을 맡아 주십시오. 제가 막겠습니다.”
“혼자서는 무립니다.”
아리엘의 말에 에이든이 황급히 나섰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에이든이 이를 악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객관적으로 그들의 실력은 아귀왕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렇기에 아리엘이 생각한 건 아귀왕의 시선을 끌어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키륵?
아귀왕이 자신의 몸에 박힌 그녀의 검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꽤나 먹음직한 아리엘을 보고선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그런 그의 공격을 피해 빠르게 움직였다.
일부러 타락한 존재들이 있는 곳으로 유도하면서 시간을 벌자 인간의 군대는 황급히 주신의 영역으로 후퇴했다.
주신의 영역 안에서만 싸운다면 승산이 있었기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그것을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타락한 영역이 확대될수록 주신의 힘이 줄어듭니다.]
시스템 음성과 함께 주신의 영역이 미세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제국의 군인들이 싸우는 전선이 뒤로 밀려나자 주신의 영역 역시 줄어든 것이다.
그 광경을 보던 동부 사령관이 혀를 찼다.
“미친!”
시스템은 친절하게 주신의 영역인 인간들의 진영을 푸르게 표시까지 해 주었다.
물러서서 싸우지 말라는 시스템의 의도였다.
주신이 부여한 축복이 줄어드는 위험을 감수하고 후퇴해서 싸울 것인지, 위험을 감수하고 전선을 밀고 올라갈 것인지 선택하라는 시스템.
하지만 인간들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엄청난 숫자의 지옥귀들이 몰려드는 통에 도저히 전선을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신의 영역 안에서 싸우기 위해선 조금씩이나마 주신의 영역이 줄어드는 걸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주신의 축복은 조금씩이나마 힘이 약해져 갔다.
-아쉽군. 금방 끝나겠어.
지옥왕이 실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런 지옥왕을 보면서 아이언이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처음으로 입을 열은 아이언을 보면서 지옥왕이 빙그레 웃었다.
-벙어리가 아니었군. 그보다 숨겨 둔 한 수는 언제쯤 꺼낼 거지?
그러나 지옥왕의 물음에도 아이언은 대답 대신 자세를 잡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지옥왕이 질렸다는 듯, 지옥의 불길을 더욱 강하게 내뿜었다.
-부디 죽기 전에 꺼내 줬으면 좋겠군.
지옥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금 달려들었다.
전투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매섭게 공격해 들어오는 지옥왕.
마치 이제야 몸이 풀렸다는 듯, 처음보다 더 강력한 공격을 하는 지옥왕을 상대로 아이언은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버텨 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
돌연 지옥왕이 갸웃거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이언이 지옥왕을 밀어내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엔 지옥왕도 순순히 밀려났다.
표정을 보아하니 지옥왕 본인도 당황한 듯했다.
-치지직! 총사령관님.
그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언이 뒤를 돌아보자 대장선 쪽에서 아이언을 향해 통신 음성을 증폭시켜 들려주었다.
-동대륙의 비밀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비……밀 작전?”
아이언이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는 통신구 너머에서 얘기하는 폴덴에게는 닿지 않았다.
대신 폴덴은 아이언이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금 얘기했다.
-동대륙의 반군 세력이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다고 전해왔습니다. 제 판단에는 그것이 지옥의 게이트와 무슨 연관이 있을 거라 추정했습니다.
폴덴의 말에 아이언이 다시금 지옥왕을 바라보았다.
“설마…….”
아이언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현재 그 수상한 물체는 파괴된 상태지만 지옥의 힘에 복구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직접 동대륙으로 정보부를 데리고 들어가 작전 중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이 정도일 듯합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폴덴의 음성이 끝나자 대장선에 무거운 음성이 들려왔다.
-녹음된 음성은 이것이 끝입니다. 현재…… 폴덴 참모장의 생사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젊은 장교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언은 말없이 검을 꽉 쥐었다.
척 보기에도 약해진 지옥왕의 모습.
-지금이 기회일 듯싶다.
흐레스벨그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의 힘으로 수상한 물체가 복구되기 전에, 지옥왕과 결판을 내야만 했다.
-드디어 꺼내는 것이냐?
위기의 순간임에도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지옥왕.
그리고 그런 지옥왕을 향해 악마왕을 죽였던 비장의 한 수를 꺼내든 아이언.
둘이 허공에서 전력을 다해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