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97)
92. 악마왕의 게이트 (3)
붉은 산 전체가 무너지면서 폭풍을 뚫고 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폭풍과 푸른 폭풍이 소멸하고 모습을 드러낸 악마왕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태초의 악마들을 바라보았다.
-……아쉽군.
마왕이라 불리는 태초의 악마들 중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앉은 자.
악마왕이라는 이명을 갖고 있는 바알이 자신을 방해한 흐레스벨그를 바라보았다.
지고한 경지에 있던 폭풍의 신답게 바알을 방해하기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이리 급하게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주신이 선택할 만하군.
바알이 무지막지한 힘을 품고 있는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거기다 아이언의 가장 중심부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거대한 힘의 흔적까지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저게 깨어나면 ‘멸망’마저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강력했다.
-저걸 믿는 것인가?
악마왕이 흐레스벨그에게 물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렬한 폭풍의 기운은 흔들림 없이 바알을 향하고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히 답이 되었다.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태초의 악마들 전원을 죽일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기에 바알이 피식 웃었다.
-자신감인가? 그렇다면 그걸 깨뜨려 주는 게 악마의 예의겠지.
악마왕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것만으로 검은 폭풍이 솟구치면서 주변을 휩쓸었다.
아이언과 계약해 겨우 힘을 회복해 가는 단계인 흐레스벨그의 폭풍은 오랫동안 지고한 경지를 유지해 온 악마왕의 힘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결국 검은 폭풍이 게이트 전부를 휩쓸기 시작하며 아이언이 구축한 성역마저 부수고 들어왔다.
그러자 아이언의 곁으로 복귀한 흐레스벨그과 천둥새와 힘을 합해 신성력을 머금은 바람으로 방어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안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게 악마왕인가?”
-그래. 저게 고작 3할도 안 되는 힘일 텐데. 강하네.
흐레스벨그의 말에 아이언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게 3할도 안 되는 힘이라고?”
아이언이 인상을 찌푸리며 흐레스벨그를 바라보며 묻자 흐레스벨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 세월 신과 같은 경지를 유지해 온 악마왕이야. 강한 게 당연하지 않겠냐?
그의 말에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아마 내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3할의 힘을 갖고 넘어왔겠지.
흐레스벨그의 말에 아이언의 표정이 굳어졌다.
-쫄 거 없다. 지금 네 수준이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흐레스벨그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에게는 숨겨 둔 패가 하나 정도는 더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3할이 조금 넘는 힘.
힘의 절반은 시스템에 의해, 남은 힘 역시 주신의 결계 때문에 제약된 상황이었기에 악마왕의 힘은 약하다.
그런데 시간이 다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넘어왔기에 또 다시 시스템의 제약을 받았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그 강대한 힘에 3할도 못 쓰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흐레스벨그가 보기에 이 정도 수준의 악마왕 정도는 충분히 이기고도 남았다.
문제는 이 이후였다.
‘동대륙은 지옥이 먹는다고 가정하면…… 그 녀석이 넘어오려나? 그럼 지금 수준으론 좀 힘들겠어.’
흐레스벨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단 악마왕에 집중할 때였다.
멸망은 차치하고 동대륙을 점령할 가능성이 높은 존재조차 지금의 아이언에겐 버거운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흐레스벨그는 믿었다.
이번 악마왕과 태초의 악마들과의 전투로 아이언은 한 차원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증명하듯, 아이언은 태초의 악마들과 한계를 넘나드는 전투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완벽한 줄 알았던 신성력 운용은 더 정교해져 뱁새가 있었던 시절보다 더 완벽하게 신성력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러 역시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했다.
순수한 오러 블레이드만으로도 태초의 악마들 몇은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명확했다.
어느 것 하나 ‘초월’했다고 보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번 싸움으로 녀석이 좀 더 나아갔으면 좋겠는데…….’
융합의 힘으로 초월하는 게 아닌 아이언의 개인 능력마저 초월의 경지에 이른다면 ‘멸망’과의 싸움에서도 희망이 보였다.
완벽한 초월자가 된 아이언이라면 자신도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고, 뱁새가 돌아온다면 천하의 멸망이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헉……헉…… 회복은 멀었어?”
아이언이 미친 듯이 싸우면서 자신의 머리에 앉은 흐레스벨그에게 물었다.
-아직.
붉은 산을 완전히 날려 버릴 기세로 전력을 다해 폭풍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다 흐레스벨그가 의도적으로 힘을 아낀 것도 있었다.
아이언을 좀 더 몰아붙여 한계를 돌파하게끔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뱁새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신수들의 수준 역시 지금보다는 더 높아져야 멸망에 대비할 수 있었다.
-애먹을 만하군.
자신이 직접 움직였음에도 버티고 있는 아이언을 보면서 바알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초의 악마들은 1할도 안 되는 힘을, 자신은 3할이 못 되는 힘을 사용하고 있지만 숫자와 신의 반열에 오른 자라는 데서 차이점이 있었다.
그런데 한낱 인간 혼자서 악마들의 파상 공세를 버텨 내고 있었다.
-더 성장하게 두면 위험할 것 같군.
-……알겠습니다.
마르바스가 바알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준비한 모든 것을 사용했다.
게이트 전체에 걸린 흑마법을 통해 아이언에게 저주를 걸었고, 죽은 악마들의 혼과 육체를 제물로 바쳐서 공격했다. 마르바스가 준비한 마지막 함정까지 죄다 끌어와 아이언을 향해 퍼부었고, 그사이 태초의 악마들 역시 최후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이대로는 위험해.’
악마들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아이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저들을 막기엔 무리가 있었다.
흐레스벨그는 아직도 힘이 덜 회복되었는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시간을 더 벌어야 했다.
문제는 자신은 그럭저럭 버틸 만한데 신수들이 문제였다.
‘애들아!’
아이언의 부름에 열심히 전투를 치르던 신수들이 모여들었다.
그 순간 아이언은 신수들과의 감각 공유를 더욱 확장했다.
자칫 잘못하면 인격이 마모될 수 있을 정도까지 공유를 확장시킨 아이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신수들과 동화된 아이언이 선택한 건 신수들에게 자신의 융합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힘을 뭉쳐 사용할 수 있는 융합기를, 막대한 자연의 기운을 이용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엄청난 수준의 동화 능력 덕분이었다.
아이언을 중계기로 활용해 세 신수들이 서로의 능력을 공유하여 막대한 자연의 기운을 재료 삼아 힘들이지 않고 융합기를 발현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수들이 융합 능력을 사용하는 대신 아이언은 사용할 수 없었다.
“후…….”
아이언이 백색검에서 칠흑의 오러 블레이드로 돌아온 검을 바라보았다.
‘많이 부족하네.’
노력했지만 백색검이 아닌 순수한 오러 블레이드는 많은 부분이 부족해 보였다.
검뿐만이 아니었다. 백색으로 물들었던 육체 역시 검은 오러가 넘실거리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융합의 힘이 사라지면서 아이언의 수준이 한 단계 내려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부분이 부족했다.
하지만 약해지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백색검에 몰아넣던 막대한 신성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더욱 강력한 빛을 뿜어냈다.
그걸 증명하듯, 정교한 백색의 방패가 사방에서 몰려드는 흑마법들을 모조리 막아 냈고,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엄청난 숫자의 빛의 창이 퍼져 나가 악마 군단을 쓸어버렸다.
끝도 없이 뿜어지는 신성력은 악마 군단만으로는 도저히 아이언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라면…….’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할 때, 태초의 악마 중 하나가 나섰다.
콰앙!
-날 상대로 버틸 수 있겠느냐?
“크윽!”
서열 2위의 아가레스가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면서 묻자 충격에 뒤로 날아가는 아이언이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본인의 격을 희생해 일시적으로 1할 이상의 힘을 사용하는 아가레스.
그런 아가레스의 공격을 오러만으로 버텨 내야만 하는 아이언이었지만 용케 버텨 냈다.
그러자 다른 태초의 악마들도 참전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신수들이 서로의 힘을 융합해 사용하며 저지했고, 아이언 역시 아가레스의 공격을 버텨 내면서 막대한 신성력을 이용해 태초의 악마들을 견제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크윽!”
단번에 아이언이 만든 빛의 방패를 박살 내는 검은 회오리.
바알이 직접 나서서 아이언을 몰아붙이기 시작하자 간신히 유지되는 균형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눈을 감고 있던 흐레스벨그가 폭풍을 만들어 내며 참전했다.
-겨우 그 힘으로 짐의 힘을 상쇄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불가능하지.
바알의 물음에 흐레스벨그가 인정한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바알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숨겨 둔 한 수가 있었군.
바알의 말에 답하지 않은 묵묵히 흐레스벨그는 폭풍을 부릴 뿐이었다.
-무엇일지 심히 궁금하군.
바알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더 강력하게 검은 폭풍을 만들어 냈지만 아이언과 신수들은 묵묵히 버텨 냈다.
-크헉!
-이런 병신 같은…….
태초의 악마 중 하나가 피닉스의 불길을 버티지 못하고 소멸되어 가자 옆에 있던 태초의 악마가 이를 갈았다.
신수들의 융합된 힘은 강력했다.
의도적으로 융합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발현시키는 힘은 천하의 태초의 악마들조차 1할의 힘으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흐레스벨그 역시 두 개의 달과 피닉스, 천둥새의 힘을 빌려 융합된 힘을 사용하자 바알의 검은 폭풍에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해졌다.
아이언이 서열 2위 아가레스를 홀로 버텨 내며 동시에 신성력으로 다수의 태초의 악마들을 견제하고, 흐레스벨그가 바알을 묶어 두자 세 신수가 태초의 악마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
-쯧! 이쪽이 먼저 내보이게 되었군.
바알이 혀를 차며 말하는 순간, 게이트 내에 있는 수많은 악마들의 사체들이 가루가 되어 바알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칠십여 명의 태초의 악마들 역시 하나둘 바알에게 날아갔다.
태초의 악마들을 흡수할수록 검은 폭풍은 더욱 강력해졌고, 끝내는 아이언과 신수들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그러는 사이 모든 태초의 악마들을 흡수한 바알이 마지막으로 아이언을 견제하던 서열 2위의 아가레스까지 흡수했다.
-꼭 이기십쇼.
-그러지.
아가레스의 마지막 말에 바알이 웃으며 답했다.
모든 태초의 악마들을 흡수한 바알은 시스템의 제약을 이겨 내고 본래 힘의 4할이 넘는 힘을 손에 넣었다.
본래 힘에 절반에 가까운 힘을 확보한 악마왕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어서 숨겨 둔 것을 꺼내 보이거라.
바알이 아이언을 재촉하면서 게이트 전체에 있던 검은 폭풍을 한데 뭉쳐 아이언이 날아간 방향으로 날렸다.
바로 그 순간, 새하얀 빛이 뿜어지면서 바알이 날린 검은 폭풍을 찢어발겼다.
-호오…… 그것인가? 그 힘에 오딘이 진 것이군.
다섯 쌍의 날개를 단 아이언이 공중에 떠서 가만히 바알을 노려보았다.
-아직은 미숙한가? 그래도…… 훌륭하다!
악마왕이 진심으로 말하며 폭풍으로 만든 거대한 창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아이언 역시 자연의 기운과 신성력이 뒤섞인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악마왕에 달려들었다.
콰아앙!
첫 충돌에 게이트에 균열이 일어나고, 이어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게이트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둘의 전투의 여파는 막강했다.
-대단하군.
바알이 순수하게 감탄하며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100년도 못 산 인간이 이 정도 경지를 개척한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만약 태초의 악마들과 악마들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바알의 필패였을 것이다.
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힘을 손에 넣은 바알에겐 아니었다.
오딘을 이긴 힘이었고, 그때보다 한층 더 발전한 아이언이지만 절반에 가까운 악마왕의 힘은 그런 아이언조차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이게 전부인가? 아쉽구나.
바알이 실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순간.
-……어?
자신의 폭풍을 뚫고 가슴을 찌른 검.
-어떻게?
바알이 아이언을 보면서 묻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큭큭큭~ 이건 예상 못 했군.
아이언이 보상으로 받았던 태초신의 육체.
그동안 그저 막대한 자연의 기운과 신성력을 버틸 수 있게끔 해 주는 용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태초신의 육체에 잠든 힘을 일깨웠다.
일시적으로 태초신의 드높은 격의 일부를 빌려 오는 데 성공한 아이언.
대신 조건이 있었다.
신수들과 융합하는 그 순간, 그마저도 고작 몇 초만 빌려 올 수 있는 능력.
하지만 회심의 한 수가 되기엔 충분했고, 방심했던 바알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는 데 성공했다.
-……깔끔하게 졌군.
바알이 인정한다는 듯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게이트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포털이 아이언과 바알을 집어삼켰다.
환한 빛과 함께 나타난 곳은 고운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