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85)
88. 멸망을 대비하는 오스리아와 혼란에 빠진 동대륙
뱁새가 잠들었다.
그 사실은 아이언으로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미 한차례 각성을 위해서 모든 신수들이 잠든 적 있었던 과거가 있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멸망의 마지막 때라…….”
아이언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상념에 젖었다.
멸망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과연 마지막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버티지 못하고 죽을지도 몰랐다.
“후…….”
-상심할 거 없다. 마지막 때까지 버티면 그만 아니냐?
“그렇긴 한데…….”
뱁새 없이 멸망을 버텨 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언을 자꾸만 위축되게 만들었다.
처음엔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을 계속해 오면서 어느새 뱁새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특히 그랜드 마스터에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더욱 그 의존이 심해졌다.
백색검도, 신성력도 전부 뱁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게 사실이었다.
“이젠 혼자 해야겠네.”
신성력의 컨트롤을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에 아이언이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타락한 기운을 정화하는 것도 효율이 매우 떨어지리라.
뱁새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강하게 주장했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더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에 아이언에게 선택을 종용한 것이었다.
-뱁새의 선택은 옳았다.
“넌 뱁새의 정체가 뭔지 알고 있어?”
-짐작만 하고 있지.
흐레스벨그도 뱁새의 정확한 정체는 몰랐다.
그저 자신과 버금가는,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르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뱁새가 사라지는 순간 언뜻 느꼈던 태양의 기운 때문에 뱁새가 품고 있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email protected]%^!
“응?”
-쯧! 나중에 직접 봐.
흐레스벨그가 시스템에 의해 말이 막혀 버린 것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보면서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 가지는 확실하네.’
뱁새의 진짜 정체는 시스템이 제약을 걸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뱁새의 진정한 힘이 필요할 정도로 ‘멸망’이라는 존재가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후…… 그래, 해 보자.”
뱁새가 멸망을 막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면, 자신도 그 결정이 후회되지 않도록 해 주어야 했다.
“일단 뱁새의 빈자리를 메꾸는 게 급선무겠네.”
아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1. 뱁새가 컨트롤하던 신성력을 혼자서 할 수 있을 만큼 연마할 것.
2. 융합 능력을 더 끌어올릴 것.
3. 신수들의 능력을 더 키울 것.
현재 아이언이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이 세 가지였다.
그걸 위해서 아이언은 신성력을 컨트롤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신성력을 뿜어내 퍼뜨리는 것.
뱁새의 정화 능력을 커버하려면 더 많은 신성력이 필요했고, 그것을 넓게 퍼뜨리는 게 중요했다.
오스리아 대륙이 완전히 주신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아이언도 더 이상 사막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돌아가는 길에 오염된 사막 지역을 정화하면서 제국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천둥새의 등에 올라타 그의 능력인 폭풍으로 사방에 신성력을 퍼뜨렸다.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는 빛 가루들.
전부 아이언이 압축시켜 만든 유형화된 신성력 입자들이었다.
거기에 더해 두 개의 달의 범위 능력을 빌려 주변 지역에 농도 짙은 신성력 필드를 만들었고, 피닉스의 힘을 빌려 정화되지 않은 힘을 백색의 불꽃으로 태워 타락한 힘을 소멸시켰다.
“넌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언이 흐레스벨그를 보며 물었다.
신수들은 자신과 함께 힘을 운용하면서 빠른 성장 폭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흐레스벨그였다.
신의 반열에 올랐던 그였기에 아이언과 함께 성장하는 건 불가능했다.
“힘을 회복할 방법이 있어?”
그의 물음에 흐레스벨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지금도 꾸준히 흐레스벨그의 힘은 회복되고 있었다.
아직 과거의 지고했던 경지에 이르렀던 힘까진 멀었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유의미할 정도의 힘을 회복할 수 있을 터.
본래라면 이 정도로 힘이 빠르게 회복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이언의 신수 계약자로서의 재능과 몸 안에 쌓인 압축된 자연의 기운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응? 그러고 보니…….
흐레스벨그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이언을 향해 말했다.
-남쪽의 세계수…… 얼마나 컸을까?
그의 물음에 아이언도 모르겠다는 고개를 저었다.
“왜? 세계수가 힘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아이언의 물음에 흐레스벨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옛날 흐레스벨그가 세계수의 친구였던 이유이자, 항상 세계수 옆에만 머물렀던 이유.
그건 바로 그의 힘의 원천이 세계수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수의 막대한 힘은 그가 신의 반열에 오르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끝에서 끝까지 바람을 날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다룰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그런 그조차 세계수가 품고 있는 수많은 자연의 힘 중 고작 ‘바람’ 하나만을 품을 수 있게 할 정도로 막대한 힘이었다.
그 힘의 일부만이라도 흐레스벨그가 품을 수 있게 된다면 멸망 때 과거의 경지를 재현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남부 대수림에 다녀와야겠어.
“세계수 때문이라면 북쪽이 낫지 않겠어?”
아이언의 물음에 흐레스벨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같은 세계수 아니야?”
-그는…… 나의 친우인 위그드라실이 아니다.
흐레스벨그의 말에 아이언이 표정이 찡그려졌다.
“그게 무슨……?”
-물론 그 역시 세계수인 건 맞다. 하지만 그는 위그드라실이 아니야.
흐레스벨그가 단호하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의 친우의 육신이 불타고 남은 재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몇 번의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면서 재 속에 남아 있던 친우의 흔적마저 사라졌다. 그는…… 더 이상 위그라드실의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흐레스벨그의 말에 아이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종과 전투할 당시 잠시 세계수를 보러 갔다 온 흐레스벨그가 실망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말처럼 북쪽의 세계수는 엘프들의 보호하에 있음에도 몇 번의 위기를 맞이했었는데, 그때마다 씨앗을 내려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삶과 죽음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위그라드실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했다.
“……남쪽의 세계수 곁에 있으면 강해지는 건 확실해?”
그의 물음에 흐레스벨그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도움은 될 거다. 나의 본류는 친우의 것이니까.
“알겠어.”
아이언의 허락에 고맙다는 듯 흐레스벨그가 고개를 숙였다.
-멸망 때까진 돌아오마.
흐레스벨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바람이 불면의 작은 새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만에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두 개의 달과 피닉스 역시 아이언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가고 싶어?”
아이언의 물음에 두 신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신수가 원하는 곳은 전부 달랐다.
두 개의 달의 목적지는 북동부에 있던 자신의 보금자리였고, 피닉스의 목적지는 오스리아 대륙의 화산 지대였다.
-부부!
-삐이이!
두 신수 역시 멸망을 앞둔 지금 한 단계 더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천둥이 너는?”
-끼룩!
“넌 바다니?”
천둥새 역시 원하는 곳이 있었다.
그를 발견했던 유령섬.
그곳의 근방에는 유난히 번개가 몰아치는 곳이 있었다.
천둥새는 그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일단…… 이곳에서의 일부터 마치자.”
그의 말에 세 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아이언과 함께 하는 작업을 통해 조금씩이지만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사막 지역에 있는 오염된 지역을 정화하고는 마침내 기동 야전군의 사령부로 돌아왔다.
“충성! 업적을 이루신 걸 경하드립니다!”
“응?”
자신을 본 장교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라보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업적?”
아이언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지을 때, 황급히 몰려온 지휘관들이 일제히 말했다.
“대륙의 영웅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그걸…… 어떻게?”
아이언의 물음에 아리엘이 환하게 웃으면서 영상구를 보여 주었다.
제국 수도의 풍경이 담긴 그 영상구 안에 보이는 수도 상공에 대륙의 영웅의 업적을 세운 아이언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적힌 시스템 창이 큼지막하게 떠 있었다.
“이런 미친…….”
아이언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는 한숨을 쉬었다.
부끄러워하는 아이언과 반대로 기동 야전군의 모든 지휘관들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그만 봐. 부담스러워.”
“수도에 가면 더 심할 겁니다.”
아이언의 말에 아리엘이 웃으면서 말했다.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대륙의 영웅.
그 뜻은 시스템조차 인정한 존재라는 뜻이었다.
“후…… 그보다 빨리 워프 게이트나 열어 줘.”
“머무시다 가시지 않고…… 바로 말입니까?”
아리엘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서운한 표정을 짓자 아이언은 작게 한숨을 쉬면서 사막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아무래도 동대륙이 심상치 않아.”
“음…… 말씀하신대로라면 적어도 오스리아 대륙은 완전히 안전해진 것이 맞군요.”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의 말대로 오스리아 대륙은 완전히 주신의 영역이 되었고, 그로 인해 주신의 축복까지 받았다.
즉 적어도 이 대륙만큼은 멸망 때까진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동대륙이다.
“지옥귀나 악마 놈들은 동대륙을 노릴 거야.”
“해군이 바빠지겠습니다.”
“그러겠지.”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있을 싸움 혹은 멸망 이후의 싸움을 대비하려면 동부군에 힘을 더 실어 줘야 했다.
“차라리 기동 야전군을 동부로 이동시키는 것은…….”
“아니. 사막 지역도 관리해야지.”
아이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막 지역에 있는 두 집단을 처리하고 난 후, 제국 수도에 사막 지역을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게이트가 표시되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게이트 예정 지역 말고 악마나 지옥귀에 의해 세뇌된 생존자들이 있는 곳 역시 표시되었다.
“그러고 보니…… 생존자를 구출하라는 퀘스트가 오긴 했습니다.”
아리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화된 인간을 구하라는 것이었나?”
“지옥에 빠진 영혼을 구출하는 것도 있었어.”
카드로와 세리덴의 말에 아이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차원상점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그 안쪽은 특수 방위군이 맡고 그 너머는 너희들이 맡아야 할 거야. 사막 지역을 완전히 안정시켜.”
아이언의 말에 아리엘이 부관을 시켜서 명령을 적게 했다.
“중앙에 돌아가면 정식 명령서를 내려 줄게. 보고는 따로 할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처리해.”
“……자체적으로 말입니까?”
“어. 아무래도 나 역시 개인적인 수련이 필요할 것 같아.”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리엘이 항상 함께 움직이는 신수들이 보이지 않은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아이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녀석들이 강해진다고 떠났어. 멸망 전까진 안 돌아올 거야.”
“아…….”
기동 야전군 사령부에 도착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 신수들이 야속했으나 강해지겠다고 떠나는 걸 붙잡을 순 없었다.
“덕분에 나도 수련이 좀 필요하게 되었네.”
뱁새가 사라졌을 땐 신성력만 컨트롤하면 되었지만 신수들 전원이 타 지역으로 가 버리면서 자연의 힘을 컨트롤하는 것도 아이언 혼자 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도 수련이 끝나면…… 지금보다는 더 강해져 있겠지.”
“지금보다 더 강해지신다?”
아리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건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랜드 마스터인 두 가주조차 엄두도 못 낼 정도의 경지에 있는 아이언이 더 강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수련을 멈추지 마. 멸망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된다.”
“예!”
아이언의 말에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런 그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 준 아이언은 곧바로 중앙으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