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84)
87. 꼬시는 악마들과 발전하는 인류 (3)
불바다로 변해 버린 사막에 내려선 아이언이 가만히 지옥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킨 후 입을 열었다.
-우린 인간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아이언의 물음에 지옥귀가 썩은 이빨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동대륙입니다. 그러니 깔끔하게 오스리아 대륙은 포기하겠습니다.
지옥귀의 말에 아이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우리가 동대륙가 껄끄럽다는 걸 알고 있는 거군.’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표정을 구기자 지옥귀가 드러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었다.
귀까지 찢어지는 입은 괴이할 정도였다.
-만약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우린 인간들과 동맹을 맺을 생각도 있어요.
“동맹?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이득이 있지?
-멸망에 관한 정보. 그것을 드리겠습니다.
지옥귀의 말에 아이언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재 멸망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어떤 자들이 나오는지,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 오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가장 큰 건 멸망 그 자체라 불리는 자인데…….’
한 세계를 홀로 멸할 수 있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다.
외부 신들이나 차원상점주를 통해 약간씩 얻는 정보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언 입장에서도 지옥귀의 제안은 혹할만 했다.
아이언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지옥귀가 할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의 고향.
지옥귀의 말에 아이언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표정에도 지옥귀는 웃었다.
단번에 죽음을 맞이할 위기 상황 속에서도 지옥귀는 더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에게 동대륙을 넘겨준다면 지구 측에도 우리가 동맹 제안을 하겠습니다. 또한 할 수 있는 한 돕겠습니다.
지옥귀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그러자 아이언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옥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당신이 있으니까요.
지옥귀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이언 한 사람으로 인해서 예정된 멸망의 결과가 바뀌고 있었다.
진즉 인류는 멸망되거나 신이나 고대종에게 사육당하는 처지가 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신들과 고대종, 타락한 존재들이 뒤섞여 멸망을 향해 걸어가야 했었다.
갓 게임이라는 이름답게 신의 반열에 이른 존재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는 전쟁터가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한 사람으로 인해서 틀어졌다.
-사실 이런 제안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의 사도인 당신 때문이에요.
지옥귀가 솔직하게 말했다.
-당신이 있는 한 이곳의 멸망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다면 우린 이곳에 거점을 삼을 만한 곳이 필요합니다. 우리 입장에선 당신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좋습니다.
지옥귀의 말에 아이언이 사막을 바라보았다.
만약 차원상점이 아니었다면 직접 방문하지는 않았을 만한 지역.
악마와 달리 지옥귀는 사막 지역에서도 정말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굳이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을 만한 지역.
그만큼 아이언을 두려워한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사막 지역을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굳이 동대륙에 갈 필요는 없겠지만 저희 입장에선 선택지가 없네요.
지옥귀가 실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옥 입장에선 귀찮아진 셈이지만 당신이 없는 곳이 나으니…….
지옥귀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아이언은 그런 그의 푸념을 듣는 대신 생각을 정리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던 아이언이 입을 열었다.
“거절한다.”
-……예? 뭐라고요?
한참 푸념을 하던 지옥귀가 아이언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마치 못 들었다는 듯 되묻는 지옥귀.
하지만 그가 못 들었을 리는 없다.
아이언만큼 아니지만 웬만한 기사는 가볍게 제압할 실력을 가진 지옥귀가 못 들을 리가.
그저 믿고 싶지 않았기에 다시 물은 것뿐.
“거절한다고.”
아이언이 확답을 주듯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해 주자 지옥귀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일을…… 어렵게 만드시네요?
흉악한 표정으로 아이언을 바라보는 지옥귀.
그의 몸에서 나오는 기세는 지옥에 사는 자들 특유의 기운과 섞여 무시무시한 힘으로 변했으나 아이언은 코웃음 쳤다. 이미 전생에 헬 카우를 통해 수없이 본 장면이었다.
불완전한 5단계였던 그때와 달리 아이언은 그랜드 마스터였다.
쾅!
-크으…….
“살았네?”
코웃음 치면서 검을 내려찍은 아이언을 보면서 지옥귀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인류 홀로 멸망을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나?
“글세…… 한 가지 확실한 건 너희랑 지금 손잡으면 멸망이 끝나고 나서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네.”
아이언의 말에 지옥귀의 표정이 악마보다 더 흉측하게 변했다.
“이곳과 지구 두 곳 다 동맹을 맺어 준다고 했지?”
아이언의 물음에 지옥귀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아이언의 얼굴을 보았다.
“생각을 해 봤어. 너희의 도움으로 멸망을 어찌어찌 막아 냈다고 치자고. 그럼 다음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어쩌면 너희와 세계를 건 승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 내가 나이 들어 죽거나 지구로 넘어간 다음을 노릴 테지?”
그렇게 말한 아이언이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지옥 입장에선 수백 년을 기다리는 것쯤은 별거 아니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난 후 이곳을 접수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인류와 동맹을 맺는 순간 너흰 시스템 제약이 사라지거나 약화되겠지. 아마 지구도 마찬가지겠지? 아! 어쩌면 계약 문항에 장난을 칠 수도 있겠군.”
계약조항에 장난을 쳐서 멸망의 마지막 순간 적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지옥에 넘긴 땅으로부터 수도 없이 몰려드는 지옥귀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지옥은 아이언이 없을 때를 노릴 것이 분명한데, 과연 그때의 인류는 지옥을 막을 만한 전력을 구축해 놓은 상태일까?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옥이 괜히 이런 제안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악한 녀석들이 손해 볼 짓을 할 리가 없지.’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신성력을 내뿜었다.
지옥은 아이언이 파악한 것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을 숨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지옥과의 동맹으로 주신의 장악력이 떨어지거나, 결계가 약화될지도 몰랐다.
최악은 시스템이 더 이상 인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지 않을지도 몰랐다.
아이언 입장에서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지옥에 전해. 인류는 네놈들과 협력할 생각 따윈 없다고.”
그 말을 끝으로 검을 내리찍자 지옥귀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소멸해 버렸다.
그 순간, 지옥귀가 억눌러 놓았던 지옥의 문이 열렸다.
일부러 지옥문이 아닌 것처럼 숨겨 놓았는데 지옥귀가 죽으면서 열려 버린 것이다.
“결계인가?”
아이언이 지옥문 앞에 생긴 둥근 막을 바라보았다.
-키에에엑!
-캬아아악!
흉측하게 생긴 괴물들이 지옥문을 비집고 나오려고 했으나, 둥근 막에 의해 모조리 막혔다.
몇몇 강한 존재들이 둥근 막을 강제로 통과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막을 통과하는 순간 형편없이 약해져 버려 아이언이 근방에 뿌린 백염에 소멸되어 버렸다.
“어쩌면 저 녀석도 강했을지 모르겠네.”
자신에 의해 소멸된 지옥귀를 바라보았다.
막을 통과하는 자들만 해도 상당히 강한 존재로 보였는데 엄청난 제약을 받고도 이곳에서 어느 정도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지옥에서 꽤나 강자였을 것이라 추측했다.
쿵!
나오는 족족 아이언의 신성력에 소멸되어 감에도 지옥귀는 끊임없이 튀어나오려 했다.
어떻게든 지옥의 문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언은 그런 그들의 바람을 산산이 부숴 주었다.
거대한 백색검을 만들어 그대로 종으로 그어 버렸다.
불어넣을 수 있는 최대치의 신성력이 담긴 백색검은 단번에 지옥문을 소멸시켜 버렸다.
[오스리아 대륙에서 타락한 존재들을 완전히 몰아내 주신이 완전히 대륙을 장악했습니다.]
-인류와 고대종에게 주신의 축복이 부여됩니다.
-주신의 힘에 의해 오스리아 대륙에 결계가 강화됩니다. 대륙으로 넘어오는 타락한 존재들의 힘은 더욱 약화될 것입니다.
-이제 대륙 전체에 게이트 예정지가 표시됩니다.
지옥문을 부수자마자 예정된 보상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이언이 가장 기다리는 보상은 아직 들려오지 않았다.
“뭐지? 왜 안 줘?”
아이언이 살짝 서운한 표정으로 중얼거릴 때였다.
-대륙의 영웅이 되셨습니다. 업적 보상이…… 보류됩니다.
“보류? 장난하나?”
아이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열 받은 아이언이 하늘로 손을 들어 올려 중지를 치켜세우려 할 때였다.
-플레이어 이정후 님의 개인 보상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시스템 음성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계?”
아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능력들을 생각해 보았다.
강철육체 – max.
자연지체 – max.
거인의 강신.
융합.
세계수의 심장.
현 시점에서 아이언은 뭔가를 더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당장에 세계수의 심장을 업그레이드 하면 막대한 힘에 몸이 터져 죽을 것이고 융합은 시스템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의 보상이었다.
그럼 다른 걸로 보상을 주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시스템이 보기엔 다른 잡다한 걸로는 더 이상 아이언이 강해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당신의 힘은 필멸자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시스템상 만렙에 도달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시스템이 팡파르를 터뜨리면서 아이언을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아이언은 표정만 찡그릴 뿐, 가만히 하늘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다시금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시스템의 힘은 초월자를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이 앞은 당신이 직접 걸어가야 할 영역입니다.
초월자의 영역.
그것은 스스로가 얻어 내야 할 경지였다.
웬만한 신조차 내려다볼 수 있는 지고의 영역.
오딘이나 흐림르 같은 최고신의 반열에 든 자들이나 넘볼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초월의 경지였기에 시스템은 더 이상 아이언에게 보상을 내리는 게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더 이상 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거야?”
아이언의 물음에 시스템이 잠시 침묵했다.
-대륙을 온전히 장악하는 게 큰 활약을 한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뭐지?”
아이언의 물음에 시스템이 특별한 제안을 했다.
-당신의 신수 하나를 완전히 각성시켜 드리겠습니다. 단! 멸망의 마지막 때가 오기 전까지 해당 신수를 봉인하겠습니다.
“……뭐?”
아이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갑자기 뱁새가 아이언 머리를 콕 찍었다.
-짹!
“너…….”
뱁새가 동의하라고 말하자 아이언이 멍하니 작은 새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재촉하는 뱁새를 보면서 해당 신수가 뱁새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언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업적 보상으로는…… 부족한 건가?
-대륙의 영웅으로는 ‘그’를 깨우는 것은 부족합니다. 때문에 페널티가 필요합니다.
“대체…… 넌…….”
아이언이 얼굴 앞으로 날아오른 뱁새를 바라보았다.
어서 허락하라고 재촉하는 녀석을 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현생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녀석을 떠나보내야 한다.
가장 어려운 시기를 뱁새 없이 헤쳐 나가야 했다.
그 때문인지 아이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다.
-짹! 짹짹!
다그치는 뱁새의 말에 결국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뱁새의 선택은 틀린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현 시간부로 해당 신수는 멸망의 마지막 때까지 잠들 것입니다.
시스템 음성이 끝나는 순간, 뱁새의 몸이 흐릿하게 변해 가면서 작은 몸에 가득 담고 있던 신성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뱁새가 완전히 사라진 순간 시스템 창이 생겼다.
[해당 신수에 지구에 흩어진 태양의 조각들이 스며듭니다. 신수가 과거 드높았던 ?의 격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