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79)
86. 유적지
수많은 벽화들을 살피던 아이언은 한쪽 벽화를 훑어보던 중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똑같아.’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쪽 벽에 쭉 나열된 벽화들은 일련의 사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근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낯익었다.
‘……내가 겪은 거랑 비슷한데?’
처음엔 그냥 비슷하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 영웅이 흑마법사들로 보이는 자들을 처치했다.
그 후에 망가진 나라를 복구하는 듯한 벽화가 그려졌다.
용을 죽이는 그림, 악마를 베는 그림, 거인들을 베는 그림 등을 지나 마침내 위대한 신과 대적하는 그림이 있었다.
벽화는 그게 끝이었다.
자신이 겪은 아포칼립스 사태와 비슷한 벽화들이 나열되어 있는 모습에 아이언의 표정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총사령관님 오셨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아리엘이 경례를 하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벽화를 보고 계셨군요.”
“봤나?”
“예.”
아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번 벽화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사령관님의 행적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어 고고학자들을 불러서 조사해 봤습니다.”
아리엘이 그렇게 말하자 근처에 있던 지휘관들도 그렇게 생각한 듯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고학자의 말로는 고대시대의 영웅의 행적이라고 합니다. 저곳에 저 벽화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대에도 아포칼립스가 있었다는 건가?”
“그것까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안으로 들어가야 파악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아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입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부에 진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구 쪽으로 다가가기만 하면 엄청난 숫자의 가디언들이 몰려왔다.
무리하면 돌파는 할 수 있겠지만, 두 번째 장애물이 있었다.
“가디언들이야 뚫어 볼 만하지만…… 문제는 저 결계입니다.”
입구 쪽에 위치한 결계는 마스터들이 전력을 다해 뚫어 보려 해도 완벽하게 뚫리지 않았다.
일순간 뚫리긴 했지만 도저히 군대가 진입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결계를 뚫어도 그쪽으로 몰려드는 가디언들 때문에 도저히 병력을 진입시킬 각이 보이지 않았다.
“결계를 힘으로 뚫을 순 있습니다만 일정 범위 이상은 절대 뚫리지 않습니다. 뚫린 부분으로 일정 숫자 이상을 안으로 진입시키려 하면 결계가 빠르게 복구되어 버립니다.”
“흠…….”
아리엘의 보고에 아이언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확실히…… 범상치 않긴 하네.”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결계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결계 안에 있는 가디언들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이언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반응하려고 하는 가디언들.
“확실히 뚫기는 어려웠겠어.”
아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결계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가디언들이 아이언을 향해 몰려왔다.
콰아앙!
어느새 손에 잡힌 검이 휘둘리면서 일격에 다수의 가디언들을 베어 냈다.
하지만 강력한 일격에도 결계는 일부만 뚫렸을 뿐,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복구? 유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심상이 담겨 있다는 거네.’
강력한 심상에 의해 유지되는 힘.
마스터들의 전력을 다한 공격에 일순간 뚫릴 순 있지만 결계를 완전히 부숴 버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이언은 뚫려 버린 결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걸 완전히 부수려면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머리 좋게도 이 결계의 축은 유적지 자체였다.
유적지 전체에서 느껴지는 결계의 힘은 전부 파괴하지 않는 이상 복구하도록 되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유적지를 파괴할지 소수만 들어올지 선택하라는 건가?’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금방이라도 아이언을 공격하려 하던 가디언들이 양옆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서 기이한 힘이 느껴졌다.
“……뭐지?”
아이언이 미간을 찌푸리며 안쪽을 바라본 순간, 그의 정신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황급히 오러를 끌어 올려 그에 대항했다.
‘정신 마법? 아니…… 좀 더 고차원적이었다.’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안쪽에서 검은 로브를 쓴 인영이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언에게 뚫린 결계 역시 조금씩 복구되다가 딱 아이언이 들어올 만큼만 남겨 놨다.
“혼자 들어오라는 거냐?”
아이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를 갈았다.
뻔한 수작이었다.
“총사령관님! 위험합니다.”
어느새 뒤쫓아 온 아리엘이 걱정스레 말했다.
은근히 무모한 구석이 있는 아이언이기에 또다시 혼자 들어갈 생각이었다.
“적어도 마스터들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아리엘의 말에 뒤따라온 지휘관들이 그에 동조했다.
“맞습니다.”
“홀로 움직이는 건…….”
카온 템페트와 스카이 랭스 역시 아리엘과 같이 아이언의 단독 행동을 반대했다.
그러자 아이언이 결계 안쪽으로 걸어갔다.
“총사령관님!”
아리엘이 아이언을 부르며 다가오려는 순간…….
“밀려……났어?”
아리엘이 자신도 모르게 밀려난 것에 급히 기세를 뿜어내며 저항했다.
그러면서 결계 안쪽으로 가려는 순간, 결계의 힘이 아리엘에게 집중되었다.
가만있던 가디언들 역시 아리엘을 향해 기세를 드러냈다.
“저쪽에서 날 보고 싶어 하는 것 같군.”
아이언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대놓고 막아서는 결계와 가디언.
반면에 아이언에겐 어떤 기세도 뿜지 않고 있었다.
“다녀올게.”
아이언의 말에 아리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 걱정되면 신호 보내면 구하러 와.”
“신호 말입니까?”
아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유적지를 부숴 버릴 거야.”
“……알겠습니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두 가주도 오고 있으니 여차하면 결계를 뚫고 들어가겠습니다.”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안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갓게임의 비밀 상점을 찾아내셨습니다.]
-상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1. 영웅의 조건을 충족할 것.
2. 갓게임 참여자일 것.
3. 아포칼립스에서 공적치를 갖고 있을 것.
4. 결계를 뚫고 스스로 진입할 수 있는 무력을 갖출 것.
※위 조건 중 적어도 두 개 이상을 충족할 것(충족된 조건이 많을수록 보상이 좋아집니다).
-상점을 이용하기 위해 상점주의 퀘스트를 클리어하십시오.
※ 퀘스트는 그때마다 달라집니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시스템 음성에 당황했던 아이언이 이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비밀 상점?”
고대의 유적지인 줄 알았는데 그딴 게 아니었다.
“당신이 상점주인가?”
아이언의 물음에 로브를 쓴 인영이 고개를 저었다.
-상점주께선 안에 계십니다. 당신이 상점을 이용하기 위해선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 그분께 도달해야 합니다.
“요정……인가?”
로브 안에 언뜻 보인 길쭉한 귀, 하지만 엘프와 달리 정령력으로 가득 찬 몸은 생명체 보기 힘들었다.
신기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페어리 계열이나 요정족은 작을 텐데…….”
-상점주께서 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요정이 그렇게 말한 후 입을 닫았다.
더 이상 쓸데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는 표현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만 더 묻지. 내가 이 퀘스트를 해야 할 이유가 있나?”
-……강제성은 없습니다.
요정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빤히 바라보았다.
푸른색으로 가득 들어찬 눈은 괴이했지만 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았다.
그 눈으로 아이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말하는 걸 보면 상점주한테 가는 길이 험난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가라고?”
-위험을 감수할 만하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이건 제 의견일 뿐……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요정의 말에 아이언이 말없이 고개를 돌려 유적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대의 도전에 경의를 표합니다. 부디 성공하시길…….
요정의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아이언의 몸이 유적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블랙홀처럼 아이언의 몸을 빨아들인 유적지에서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영웅이 어떤 계열인지 판단합니다.]
-무력 계열 7 / 전략가 계열 3
[무력 계열 퀘스트로 진행합니다]
1. 적들을 뚫고 전진하기.
2. 미궁 돌파.
3. 험지 돌파.
4. 용의 뿔 얻기.
(후략)
[첫 번째 퀘스트입니다. 적들을 뚫고 전진하세요. 기회는 10회입니다.]
시스템 음성이 끝나는 순간 오크, 트롤, 오우거 등 온갖 몬스터들이 아이언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아이언이 코웃음을 쳤다.
“장난하네.”
아이언이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결계를 뚫은 시점에서 자신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다 알 텐데 고작 이 정도의 몬스터가 몰려오는 것에 기분이 나빠졌다.
마스터급도 홀로 뚫을 수 있을 정도의 몬스터 숫자.
“깔보는 건가?”
아이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그 순간 아이언의 신형이 몬스터들을 뚫고 지나갔다.
그의 검이 휘둘리면서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이 모조리 베여 나가면서 첫 번째 퀘스트가 순식간에 클리어되었다.
[두 번째 퀘스트입니다. 미궁을 돌파…….]
[세 번째 퀘스트입니다. 독으로 가득 찬 험지를…….]
[네 번째…….]
열받은 아이언이 순식간에 퀘스트를 돌파해 나갔다.
네 번째 퀘스트인 용은 좀 까다로웠지만 그래 봤자 아이언의 상대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뿔을 얻고, 사이클롭스나 거대 여왕개미 처치, 호수의 용 처치 등 온갖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공중 몬스터도 문제없었다.
어느새 소환된 신수들이 가볍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쿵!
거대한 도끼를 내리치는 거대한 거인.
열기를 내뿜는 거대한 거인이 강렬한 기세를 내뿜으며 아이언을 압박했다.
“강하긴 하네. 그래 봤자…….”
흐림르와 외부 신들을 상대해 왔던 아이언에게 눈앞의 거인 역시 별거 아니었다.
그랜드 마스터급에 이른 듯, 도끼를 휘두르는 거인에게서 상대를 찢어발긴다는 강렬한 심상이 느껴졌지만 그뿐이었다.
진짜 신도, 진짜 거인도 아닌 그가 온전한 심상을 발휘하긴 어려웠고, 그렇다는 건 아이언의 상대가 되지 않다는 것을 뜻했다.
쿠웅!
어느새 목이 잘려 쓰러진 거인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마지막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모든 퀘스트를 단번에 클리어하신 관계로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시스템 음성이 끝나는 순간, 아이언의 앞에 문이 생겼다.
건물도 없이 문만 떡하니 생겼으나 아이언은 망설임 없이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아이언은 다시금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여긴…….”
자신이 들어왔던 유적지 안의 풍경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른 불길이 유적지 안에 설치된 수많은 횃불을 통해 타오르고 있었고, 그로인해 유적지 안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원형의 구조물의 벽에는 수많은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고, 그것들 하나하나가 영웅을 상징하는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겠느냐?
유적지의 중앙에 있는 긴 계단. 그 끝에 존재하는 작은 신전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아이언이 고개를 들었다.
신전 앞에서는 은빛 머리칼의 여인이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이언이 말했다.
“금방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