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70)
83. 마지막을 향하는 싸움 (5)
3개의 석상을 중심으로 결계가 쳐진 세인트리아의 중심부.
그리고 그 중심부에는 하나의 샘이 만들어져 있었다.
과거 주신의 석상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작은 샘.
“미미르의 반응은 아직 멀었나?”
“예. 진이 완성되어야 반응할 것 같습니다.”
늙은 노인의 말에 중년의 남자가 대답했다.
과거 교황이라 불렸던 노인은 이제 쫓겨난 절대 신의 신자가 되어 있었고, 옆에 있는 중년의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추기경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던 중년 남자 역시 외부 신을 섬기는 신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그들이 미미르라 명명한 작은 샘을 바라보았다.
“신이시여…… 어서 강림해 주소서.”
잘못된 선택을 한 순간 이들에게 남은 건 절대 신이라 불리는 존재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강림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을 벌기 위해 성군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그들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들의 간절한 염원 때문일까?
미미르의 샘이 약간이나마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검게 물든 샘이 마치 석유처럼 끈적하게 변하면서 꿀렁거리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교황과 추기경의 표정이 환해졌다.
“드디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교황과 추기경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콰앙!
밖에서 들려오는 폭음 소리에 교황이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뭐…… 뭣들 하느냐! 절대 오지 못하게 막아!”
“성상을 지켜라! 절대 파괴되어선 안 된다!”
교황과 추기경이 미미르의 샘과 그곳을 중심으로 배치된 3개의 성상을 지키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다그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파죽지세로 모여든 이세계인들을 막기 위해선 숨겨 둔 한 수가 필요했다.
“그들을 준비시키게.”
“하오나…… 그들은 만약을 대비한…….”
“여기서 뚫리면 모든 게 끝이네.”
추기경을 바라보면서 교황이 단호히 말하자 추기경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모든 것은 신을 위하여…….”
“신을 위하여…….”
추기경이 나가고 난 뒤 교황은 가만히 미미르의 샘물을 바라보았다.
척 보기에도 역겨울 정도로 타락한 기운이 샘솟는 샘은 아무리 외부 신을 믿는 교황이라지만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어…….”
교황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샘물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주신을 배신한 순간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주신은 자신들이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오랜 시간 주신을 믿었기에 수많은 기록들을 갖고 있는 신전이었고, 그렇기에 주신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배신에 관해선 어떤 신보다도 칼같이 심판하는 게 주신이었다.
그렇기에 남부 왕국 연합의 주요 인물들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전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고대종을 막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마스터들까지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기에 신성 연합국은 더 외부 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제발…….”
교황이 덜덜 떨리는 팔을 움켜잡으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외부 신이 이긴다고 한들 자신들의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죽으면 끝이니까.
“신이시여…… 부디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주소서.”
최고신이자 스스로가 전신이었던 그의 신에게 다시금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에 응답하듯 미미르의 샘물은 더욱 요동쳤고, 교황의 몸에서도 미세하지만 회색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때 순수한 빛을 휘감았던 교황의 몸에서는 어느새 타락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쾅! 쾅!
“교황께 보내서는 아니 된다!”
“막아라!”
성기사들이 밀고 들어오는 이세계인들을 막아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남부와 고대종을 처치하면서 강해진 이세계인들의 수준은 일반적인 성기사들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3개의 성스러운 석상을 막기 위해서 주요전력이 빠진 틈을 타서 미미르의 샘이 있는 중앙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세계인의 작전은 주요했다.
이 상태라면 이세계인들이 신전으로 진입할 수도 있는 상황.
바로 그때 강력한 힘의 파장이 퍼지면서 결계가 만들어졌다.
“이건…….”
이세계인 중 하나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결계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다 왔는데 막혔다.
“이 정도로 강력한 결계가 어떻게…….”
“석상은 아니야. 뭐로 유지되는 거지?”
“뭐야!”
이세계인들이 생각보다 강력한 결계를 보면서 대체 뭐로 유지되는 것인지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볼 때였다.
“저런 미친…….”
이세계인 중 하나가 욕설을 내뱉으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한 여인이 몸에서 힘이 빠져나오며 점점 죽어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런 미친놈들이!”
“사람 생명력으로 유지하는 거라고?”
“저길 봐! 어린아이까지 이용하고 있어!”
“개 같은 놈들!”
이세계인들이 어린아이의 생명까지 이용하는 신성 연합국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아무리 이쪽 세계가 본래 세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같이 싸워 오면서 정이 많이 든 상태였다.
거기다가 같은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해 볼 때, 아이의 생명까지 이용하는 신성 연합국의 행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세계인들이 생명력이 빨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직접 죽여 고통을 덜어 주자 서서히 옅어져 가는 결계.
이 상태라면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결계를 깨뜨리는 것도 가능할 듯싶었다.
바로 그때, 세인트리아가 준비한 또 하나의 힘이 내려졌다.
[절대 신 오딘의 축복이 세인트리아에 있는 모든 신도들에게 내려집니다!]
-무리한 축복의 사용으로 강림 시 본인 힘의 75%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강제 연결을 통해 강림 시기가 앞당겨집니다.
-오딘에 의해 불완전한 결계가 강화됩니다.
신성 연합국이 위기라는 걸 지켜보고 있던 오딘이 본인의 격을 희생해서 강림을 앞당기고자 했다.
자신이 강림할 때까지 신도들이 버텨 주어야 했기에 축복까지 사용했다.
그러자 거침없이 밀고 들어가던 이세계인들이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신성 연합군에 막히고 말았다.
“방어가 견고해.”
“다 왔는데…….”
이세계인들이 미미르의 샘이 있는 중앙 신전 앞에서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만 더 빨랐어도 안으로 진입할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막혀 버리고 말았다.
“이것 봐!”
파삭!
한 이세계인이 성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부쉈다.
그 순간 오딘에 의해 강화된 결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순간 이세계인들이 멍하니 있던 것을 멈추고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동부군에 의해서 세인트리아에 있는 성물로 추정되는 것은 빠르게 박살 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세계인들까지 가세해서 건물 곳곳에 숨겨져 있는 온갖 성물들을 전부 부숴 나갔다.
[세인트리아의 성물이 파괴됩니다. 신성 연합국의 디버프가 좀 더 강해집니다.]
[세인트리아의 성물이 파괴됩니다. 신성 연합국의 디버프가 좀 더 강해집니다.]
(후략)
세인트리아 곳곳에 있는 성물이 박살 나면서 제국군을 막는 신성 연합국의 디버프는 계속해서만 늘어났다.
그리고 그건 곧 그랜드 마스터들을 상대하는 신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헉……헉…….”
-짹!
“버틸 만해.”
아이언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투신의 공세를 버텨 냈다.
뱁새가 치유의 힘을 계속해서 불어 넣어 주고 있었고, 활력의 힘으로 쓰러질 것 같은 아이언의 몸을 지탱했다.
그러는 동안 신수들이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시간을 벌어 주었다.
덕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타이밍이 왔다.
-헉……헉…….
쉬지 않고 맹공을 퍼붓던 티르가 마침내 지쳐 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축적된 디버프를 생각지 않고 몰아붙인 탓에 결국 지쳐 버린 것이다.
디버프가 쌓일수록 마음이 다급해졌고, 그럴수록 무리하게 힘을 쓴 대가의 반작용이 오는 순간 아이언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두 가주 쪽은 아직도 신들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지의 차이도 있었고, 신수와 신성력이라는 막강한 힘이 없기에 순수한 무력으로만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가주는 끝끝내 버텨 냈고 마침내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현자 오딘의 성상이 파괴되었습니다. 신성 연합국에 대규모 디버프가 주어집니다.]
현자를 상징하는 오딘의 성상이 파괴되면서 강림한 신들에게 대규모 디버프가 주어졌다.
아직은 부족한 경지인 두 가주조차 신들을 압박할 수준이니, 아이언을 말할 것도 없었다.
-……끝났군.
투신 티르가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또 한 번의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대마도사 오딘의 성상이 파괴되었습니다. 신성 연합국에 대규모 디버프가 주어집니다.]
마법의 시초라고 불린 대마도사 오딘의 성상.
그것마저 부서지자 신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붕괴시켜라. 시간이라도 벌어야 한다.
마침내 내린 티르의 결단.
“하…… 하지만 그리되면…….”
-포기하거라. 절대 신이라도 강림해야 너희들에게도 희망이 보일 터.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하늘에 떠 있는 티르를 보던 신관이 고개를 숙이며 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동쪽 중심축의 과부하와 모아 놓은 모든 힘을 티르에게 퍼붓는 것.
그것은 정식 강림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티르를 추종하는 세력들에겐 절망적인 말과 다름없었으나, 정작 강림의 대상자인 티르는 홀가분했다.
-그래도 허망하게 가지는 않겠어.
티르가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모든 외부 신들의 완벽한 강림을 위한 작전은 실패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만약을 위해 준비한 절대 신의 완전 강림뿐.
그를 위해서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오딘이 강림해 인류를 멸망시킨다면 먼 훗날에 자신이 다시 부활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소멸을 각오해야 하는가?
자신이 중심축 쪽으로 도망치는 동안 초월기를 준비하는 주신의 사도.
그것을 보면서 소멸을 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르가 괜히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군.
전신인 토르가 스스로 소멸을 각오하고 싸우는 선택을 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때, 또다시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전신 오딘의 성상이 파괴되었습니다. 신성 연합국에 대규모 디버프가 주어집니다.]
[오딘의 신전을 지키는 결계의 축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신전을 지키는 결계가 매우 약해집니다.]
[모든 성상의 파괴로 오딘의 축복이 약해집니다.]
연이어서 들려오는 시스템 음성.
그것을 들은 티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절대 신의 강림도 쉽지 않겠군.
티르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무구를 들어 올렸다.
방패와 창, 도끼, 검 등 여러 개의 무기들이 완벽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나는 나의 할 일을 할 뿐.
티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중식축이 붕괴되면서 그 안에 잠든 막대한 힘이 티르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남아돌아서 화신체들에게까지 힘들이 뻗어 나갔다.
그러자 부족한 힘으로 열심히 적들을 저지하던 화신체들이 티르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에게 티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리되는가?
-부디 우리의 신은 강림을 완성하기를…….
-함께하지는 못하겠군.
화신체로 강림한 수많은 신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한탄하며 절대 신의 강림이라도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러자 라이너와 싸우던 스카디도 한숨을 쉬면서 자신이 담당하는 축을 붕괴시켰다.
프레이야 역시 자신들의 계획이 어그러졌음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면서 축을 파괴하고 일시적으로 힘을 증폭시켰다.
-디버프가 강하긴 하군.
자신의 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힘을 증폭시켰음에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에 티르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매번 만족할 만한 싸움을 할 수는 없는 법.
티르가 자신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우기 위해 힘을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