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69)
83. 마지막을 향하는 싸움 (4)
이세계인들의 세인트리아에 들어섰다는 시스템 음성이 들려오는 순간 아이언을 압박하던 투신의 신형이 흔들렸다.
-뭐?
자신도 모르게 멈칫거리는 순간 아이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흐레스벨그!”
아이언의 부름에 응답한 폭풍의 새가 강력한 바람을 만들어 냈다.
그 폭풍에 피닉스의 불꽃과, 천둥새의 번개, 두 개의 달의 검은 마력이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위로 뱁새의 부정한 것을 멸하는 신성이 깃들면서 투신의 혼돈한 기운을 소멸시켜 나갔다.
드높은 존재였던 흐레스벨그의 조율 아래 하나로 뭉친 신수들의 힘은 투신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격에 부족했던 힘을 다른 신수들로부터 끌어와 만든 흐레스벨그의 초월기.
그러는 사이 아이언의 백색검에도 자연의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다.
아직 경지가 부족해서 짧은 순간만 유지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쿠우웅!
백색검에 자연의 기운까지 합쳐져 만든.
「초월기 -삼위일체」
흐레스벨그를 중심으로 모든 신수의 힘이 뭉쳐 만든.
「초월기 -카오스 스톰」
이 두 가지의 기술이 정통으로 투신에게 들어갔다.
이세계인들의 세인트리아 침공으로 만들어진 한순간의 방심이 투신에게 치명적인 일격으로 되돌아왔다.
-…….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 서 있는 투신.
두 개의 초월기를 허용한 시점에서 좀 전에 있던 우위는 전부 사라진 셈.
게다가 시간 역시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양동작전이라…….
투신이 아이언을 바라보면서 살기를 내뿜었다.
해상을 통해 몰려오는 함대까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세계인들까진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세인트리아로 침공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지금 대계의 핵심이 공격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머리를 굴렸군. 지휘관으로서 자질도 있다더니……. 헛소문은 아니란 건가?
투신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칭찬했지만 정작 아이언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자신도 이세계인 출신이지만 이세계에서 몸까지 넘어온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은 이곳에서 살아왔기에 이세계인이 받는 퀘스트까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세계인들이 어떻게 세인트리아까지 갔고, 거기서 무얼 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동부군과 함께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꽉 쥐었다.
시스템은 더 이상 아이언을 이세계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이게 후에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었다.
-짹!
“그래. 집중할게.”
잡생각을 하던 아이언이 고개를 흔들며 전투에 집중했다.
지금 당장 이런 고민을 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걸 끝내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았다.
-그래. 목숨을 건 전투만큼 짜릿한 것도 없는 법이지. 이제부터 투신 티르의 이름으로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하지.
투신 티르가 신의 진명을 내뱉으며 약속한 순간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뒤를 생각지 않는 티르의 기운에 아이언 역시 모든 힘을 쥐어짜 냈다.
객관적인 전력은 티르에 비해 열세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 세인트리아가 공격당하고 있음에도 티르는 자신에게 집중하겠다 다짐했다.
아이언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마스터들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아리엘과 카온은 이단 심문관에 묶여 있었고, 카이든 월과 스카이 랭스는 조인족과 화신체들에게 묶여 있었다.
그나마 요새포가 도움이 되겠으나, 그마저도 공중 요새를 공략하기 바빴다.
쾅! 쾅! 쾅!
“큭!”
신수들의 공격을 받아넘기면서도 아이언을 밀어붙이는 티르.
아이언의 경지로선 티르의 공격을 받아 내기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이언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력을 다해 버틸 때였다.
[세인트리아의 신성한 석상 하나가 무너졌습니다. 신성 연합국에 디버프가 주어집니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시스템 음성과 함께 티르의 기세가 약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인트리아의 성물이 파괴되었습니다. 신성 연합국에 디버프가 주어집니다!]
[세인트리아의 성화가 찢겼습니다. 신성 연합국에 디버프가 주어집니다!]
-이런…….
연이어서 디버프가 주어지면서 티르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시간은……내 편인 건가?”
아이언이 중얼거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티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진이 완성되는 속도보다 디버프가 중첩되는 속도가 더욱 빠르다.
이대로 디버프가 좀 더 중첩되면 티르의 격은 아이언보다 훨씬 낮아질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아이언에게 자신이 패하고, 그 순간 전선은 붕괴된다.
-당혹스럽군.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인데…….
“전쟁이란 게 그렇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게 전쟁이니…….
-그래. 이 또한 이겨 내는 게 영웅이 해야 할 일. 내 격이 떨어지는 게 빠를지 네가 죽는 게 빠를지 보자꾸나!
티르가 그렇게 말하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자 아이언 역시 자세를 바로 하면서 티르의 맹공에 대비했다.
그렇게 두 존재가 서로 혈투를 벌일 무렵, 두 가주 역시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이거…… 큰일 났네?
사냥꾼의 신 스카디가 묘한 음성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격이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 못 버티고 목숨을 잃을 거라 생각했던 라이너는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고, 옆에 선 백색 사자를 휘감은 청년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라이너를 마무리하지 못한 그녀는 어느새 쌓인 디버프로 인해서 격이 깎여 나갔고, 그 결과 전투가 길어졌다.
문제는 시간은 더 이상 그녀의 편이 아니란 점이었다.
그리고 더 웃긴 일은 갑작스레 핏빛 기운을 개화한 존재였다.
“크르르르…….”
정신을 잃은 채 이단 심판관을 학살하고 있는 존재.
온몸에 피어오른 오러로 핏빛 사자 형태를 취하며 무자비한 학살을 벌인 존재는 레온하르트의 둘째 카이덴이었다.
광전사로 변한 그가 목숨을 잃을 위기 속에서 기어코 각성하며 마스터가 되었다.
새로이 마스터가 된 그 때문에 전열이 붕괴되었다.
얼른 라이너와 에이든을 마무리하고 신성 연합군을 돕고 싶었지만 상황의 여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은 테리언 쪽도 마찬가지였다.
데이비드 필드란과 시에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던 테리언에게 갑자기 시구르드 가문의 소가주인 라파엘 시구르드가 각성하면서 상황이 묘해지더니 디버프가 중첩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이언이 있는 곳에 전력을 집중한 만큼, 상대적으로 두 가주 쪽에 배치된 신성 연합국의 전력은 빈약했다.
강림한 신과 화신체들의 힘을 통해 막고 있는 만큼 그들의 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최악이군.
화신체로 대륙에 강림한 신 중 하나가 최악의 상황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다른 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젠 인간들이 진이 완성될 때까지 공격 속도를 늦춰 주기를 바라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인간들의 눈빛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해 보였다.
매의 눈으로 화신체들의 힘을 재면서 단번에 밀고 들어올 각만 보고 있는 인간들의 군대.
그것을 보면서 신들은 이번 전투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직감했다.
제국군을 막는 신성 연합군의 싸움도 쉽지 않았지만 후방도 안전하지 않았다.
“마…… 막아라!”
“해…… 해군이 붕괴되었습니다. 섬에서 응전하는 것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신성 연합군의 해군이 붕괴되었다.
한때 대륙 서부에서 최강의 해군으로 자리 잡던 왕국군을 흡수해 만든 신성 연합군의 해군이 제국 동부군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난 것이다.
비공선, 그리고 거대한 배를 통해 공격해 오는 제국 동부군의 위용은 막강했다.
세인트리아에서 제대로 응전이라도 해 줬으면 좀 더 버텨 줬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들의 격을 떨어뜨리는 주범인 이세계인들에 의해 세인트리아 역시 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제국 동부군이 세인트리아의 항구에 들어섰고, 그때부터 재앙은 시작되었다.
[서브 퀘스트 생성! 세인트리아에 있는 성물들을 파괴하십시오! 성물을 파괴할수록 신성 연합군에 디버프가 쌓입니다!]
동부군이 세인트리아에 들어서자마자 생성되는 서브 퀘스트.
그것을 들은 동부 사령관은 곧바로 모든 지휘관들에게 통신을 열었다.
“지금부터 우리군은 성물을 파괴하는 데 주력한다.”
-예!
“움직여!
동부 사령관의 명령에 모든 지휘관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곧바로 움직였다.
배에서 병력이 내려지는 대로 세인트리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미 이세계인들이 한차례 쓸고 갔는지 세인트리아의 중요 건물들은 파괴되어 있었다.
더 웃긴 것은 이세계인들을 잡기 위해 동부군의 침입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점이다.
“편하군.”
“그러게.”
치열한 접전을 각오했던 동부군의 병사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세인트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뻥 뚫린 세인트리아 곳곳을 탐하며 성물을 찾는 데 혈안이 된 동료들을 보면서 자신들도 질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빨리한 것이다.
성물을 파괴할수록 신성 연합국에 디버프가 쌓이지만 개인적으로 보상도 주어진다는 것을 들은 탓이다.
현재의 제국군은 인맥, 신분 등이 거의 사라지고 오로지 무력, 업적, 공훈에 의해 직위가 올라가는 상황이니 성물을 파괴하면 할수록 승진은 더욱 빨라졌다.
“내 거다!”
“꺼져! 내가 먼저 발견했어!”
동부군의 병사들이 성물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세인트리아를 휘젓기 시작할 때, 먼저 들어온 이세계인들은 다음 목적을 위해 뭉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 세인트리아 곳곳을 누볐던 그들이 하나의 거대한 퀘스트를 깨기 위해 힘을 합칠 준비를 한 것이다.
“이곳으로 넘어온 자들은 죄다 모인 것 같군.”
“마지막이니까.”
해리 윌리엄스의 말에 로바노프가 세인트리아의 중심부를 보면서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이제 이곳에서 그들이 할 일은 끝을 보이고 있었다.
[라스트 퀘스트 : 신의 완전한 강림을 저지하십시오.]
-당신의 임무가 끝이 도래했습니다. 외부 신의 완전한 강림을 저지하세요.
-공적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개인)
-퀘스트 달성도에 따라 본래 세계의 결계에 영향을 줍니다!(공용)
-퀘스트 달성 시 본래 세계로 귀환할 수 있습니다!(공용)
이곳에서의 마지막 퀘스트.
본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퀘스트였기에 대륙 각지에 있던 이세계인들이 전부 모여들었다.
그들이 이곳에 넘어온 이유.
그것은 본래 세계로 넘어온 타락한 괴물들을 막기 위함이었는데, 이곳에서 퀘스트를 수행할수록 결계가 강화되어 타락한 괴물들이 넘어오는 게이트가 약화되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마지막 퀘스트를 통해 결계를 강화하고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이세계인들은 개인의 욕심을 버렸다.
지구에 가족이 있는 자들.
지구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 사람들.
지구를 지키기 위한 대의로 넘어온 자들.
이 모든 자들이 세인트리아에 모여들어 마지막 퀘스트 클리어를 향해 움직였다.
세인트리아 곳곳에 있는 석상들을 부수며 진의 축이 되는 거점들을 파괴했다.
하지만 그건 외부에 있는 것일 뿐, 진짜 축이 되는 석상은 하나도 부수지 못했다.
신화시대의 절대신을 강림시키는 축이 되는 3개의 석상.
마법사의 모습을 한 노인.
창을 든 전사의 모습을 한 노인.
책을 든 현자의 모습을 한 노인.
이 3개의 석상을 파괴해야만 했다.
“저건가?”
“그래.”
“근데 방어가 두텁네.”
“그래도 뚫어야지.”
히카르두의 말에 알아사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수많은 성기사들과 신관들이 지키고 있는 석상.
책을 든 늙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석상 앞에는 수많은 성기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세계인들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김정태와 그 옆에선 제이미가 공략하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저 빌어먹을 것만 없애면 귀환이다 이거지?”
“그래.”
제이미의 말에 김정태가 이를 갈며 거대한 백색 석상이 있는 신전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창을 들고 서 있는 노인.
그 앞에 만들어진 신전에는 거대한 보랏빛 마력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