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50)
81. 서부를 점령해라! (3)
그렇게 아이언과 기사들이 신성 연합국 내부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서부군과 신성 연합국 본대 역시 다시 전쟁을 벌이기 위해 빠르게 진군했다.
처음 무작정 돌파하려 했던 것과 달리 신성 연합국 측은 서부 전선의 가장 약한 곳을 찾으려 혈안이 되었다.
“화, 화신체다!”
“제길! 하필 여기로!”
“복구가 덜 된 곳으로 오다니!”
서부군이 전선 중 가장 취약한 곳으로 몰려오는 적들을 보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게다가 외부 신의 화신체까지 나왔다.
완벽한 강림이 아닌 화신체를 통한 반쪽짜리 강림이라면 제약이 훨씬 더 줄어든다.
거기다 공중 요새의 지원까지 더해지면 제약은 더 약해진다.
그런 화신체 여럿이 거대한 몸을 만들어 서부 전선을 압박한다면?
마스터급도, 전체적인 병력 숫자도 적은 서부 전선은 버티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사, 사령관님! 적들의 총공세입니다.”
“아이언 사령관이 없는 이상 서부 전선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장교들의 보고에 게르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번 전투에서 서부 전선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아이언과 신들과의 전투로 인해 만들어진 사상력의 파장.
그로 인해 신성 연합국이 패닉에 빠지며 간신히 승리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못 버틴다.’
게르만 스스로도 버틸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이대로 후퇴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만든 요새들을 버린다?
게다가 그 요새들이 적들의 적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북동부에서 주 병력들이 온다고 하더라도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게르만에게 직통으로 걸리는 통신구가 빛을 발했다.
-사령관님.
“자네…….”
-급하니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주십시오.
아이언의 말에 게르만의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가 없는 상황에서 전선을 유지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한다는 건…… 자네에게 뭔가 방안이 있다는 거겠지?
-예!
아이언이 확신에 찬 대답에 게르만이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버텨 보지.”
-감사합니다.
게르만의 대답에 아이언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통신구의 빛이 꺼졌다.
“다들 들었겠지. 우린 전선을 지킨다.”
“예!”
게르만의 명령에 모든 장교들의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서부 전선의 모든 병력들에게 전선을 지키라는 명령이 하달되자 요새를 지키는 병사들의 눈빛에 두려움이 차올랐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 제국을 위해 죽겠다는 비장함이 서리며 이내 눈빛에 단호함이 깃들었다.
그동안 서부를 지켜온 명장의 판단에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
자신의 죽음으로 제국에 있을 가족들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창을 굳건히 잡았다.
쾅! 쾅!
“화신체를 최대한 저지해라!”
“포격은 일반 보병에게! 마도포는 회신체를 저지해!”
“조인족들이 몰려온다! 대공 전력은 전투 준비해!”
서부 전선의 요새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성 연합군은 첫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은 뒤 복구가 덜 되어 취약한 곳을 공격했다.
서부군은 이에 맞서 싸웠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화신체들이 거체를 들이밀면서 요새에서 발사한 대부분의 화력을 감당하는 통에 신성 연합군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요새포를 발사하면 몇몇 화신체들이 큰 타격을 입긴 하지만, 워낙 숫자의 차이가 많아서 의미가 없었다.
“오, 온다!”
“목숨 걸고 막아!”
거대한 화신체들 그리고 신성 연합국의 주력 전력들이 밀고 들어오자 각오를 다진 병사들이 두려움을 삼키면서 무기를 들어 올렸다.
바로 그 순간, 신성 연합군의 후방에 있던 화신체들과 주력 병력 일부가 황급히 전열을 이탈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한 광경은 밀고 들어오는 신성 연합군 곳곳에서 보였다.
마치 후방에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황급히 자리에서 이탈하는 주력 병력.
그것을 요새 위에서 본 서부 전선의 병력들의 눈의 희망이 깃들었다.
“저것들만 버티면 된다! 버텨!”
“할 수 있다!”
신성 연합군의 주력병력 상당수가 전열을 이탈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가진 서부군이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전력 차이는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화신체들은 일반적은 병력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요새 후방에 위치한 워프 게이트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한 요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서부 전선의 주요 요새 곳곳에서 빛이 나며 기사들이 나타났다.
“화신체들은 저희 북부기사단이 막겠습니다.”
기적처럼 나타난 북부기사단.
그들이 일시적으로 화신체 하나를 묶어 두자 곧바로 밀릴 것 같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곳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동부에 있던 제국의 주요 병력이 워프 게이트를 타고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단번에 뚫릴 듯 위태로웠던 서부 전선 전체에 희망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죽음을 각오했던 서부 전선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어 나갈 때, 가장 취약한 부분인 게르만이 지원 나갔던 지역에서 희망이 생겨났다.
콰아앙!
화신체 여럿을 홀로 상대하는 게르만.
현재 서부 전선을 지키는 유일한 마스터였기에 다소 무리하더라도 전선 앞으로 나아가 화신체들의 움직임을 묶었다.
하지만 아무리 경험 많은 마스터라도 혼자서 화신체 여럿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렇게 점점 지쳐 갈 때, 갑자기 화신체 하나에 엄청난 숫자의 빛 줄기가 날아들었다.
“이건…….”
게르만이 익숙한 형태의 기술에 뒤를 돌아보자 미모의 여인이 사뿐히 대지에 착지하면서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기동 야전군 부사령관 아리엘, 서부 전선이 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기동 야전군 기사단을 이끌고 지원 왔습니다.”
“허허…….”
게르만이 허탈한 표정으로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이번 전투에서 죽음을 각오했던 것이 무색하게 각 요새로 워프해 온 제국군의 정예 병력으로 인해서 다시금 서부 전선은 버텨 낼 힘을 얻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네. 딱 맞게 왔어. 너무 시간을 잘 지켜 줘서 내가 다 황송하군.”
게르만이 너스레를 떨면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일단 저 녀석들부터 막지.”
“예.”
게르만의 말에 아리엘이 오러를 끌어 올렸다.
처음 북동부에 나타날 때만 해도 미숙했던 그녀가, 이제는 능숙하게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내는 경지에 올랐다.
무엇보다 과거 테리언이 마스터였던 시절이 떠오를 정도로 빠른 검속.
거기에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수백의 은빛 참격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이게 마스터 초입에 이른 자의 힘인가?’
아리엘의 모습을 보면서 게르만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힘은 이미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검술 자체만 보면 아직 미숙한 부분이 보이지만 그것을 압도적인 힘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어느새 합류한 제국의 또 다른 신성 에이든과 새로이 마스터가 된 카온 템페트에 의해 화신체들의 공격이 완전히 막혔다.
그런 상황에서 하늘에서 수천 개의 빛이 일제히 떨어졌다.
“……괴물이군.”
콰과과과광!
신성 연합군을 박살 내는 수천 개의 빛 줄기.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신관이 만든 결계를 박살 내면서 엄청난 피해를 양산해 냈다.
화신체들이 나서서 방어해 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마스터들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몇몇 강한 화신체들마저 빛 줄기를 몇 개 막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그 순간 거대한 사자 형태의 오러가 일직선으로 신성 연합군을 갈라 버리면서 신성 연합군의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괴물들이 되어 버렸군.”
두 가주의 합류.
그것은 신성 연합군에 재앙이 되었다.
신을 강림시켰다는 말에 아이언의 부재가 걱정되어 온 두 가주.
하지만 신성 연합군은 두 가주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강림시키지 않았다.
“이상하군.”
게르만의 말에 아리엘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랜드 마스터를 상대하려면 신성 연합군 측에선 외부 신을 강림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외부 신을 강림시키는 대신, 화신체들을 이용해 막아 낼 뿐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자랑하는 공중 요새 하나도 후방에 빠져 있는 상황.
“아이언 사령관이 뭔가 하고 있군.”
“그러고 보니…… 사령관은 어디 있습니까?”
아리엘의 물음에 게르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알고 싶군.”
게르만이 그렇게 말하면서 신성 연합군 너머에 있을 아이언을 생각했다.
아리엘과 게르만이 궁금해하는 아이언의 행방.
그 행방은 바로 대륙 서부의 어느 숲이었다.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떨어지는 빛 기둥.
처음 서부 전선을 공격할 때 만들어진 빛의 기둥에서 강림한 외부 신이 등장했다.
“강림 한번 요란하게 하네.”
아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쿠웅!
신성력이 한껏 들어가 융합된 백색 검이 강림한 외부 신을 곧바로 후려쳤다.
-감히…….
자신을 파리 잡듯 후려치는 아이언을 보면서 외부 신이 분노했다.
-오만하구나! 감히 여기로 홀로 오다니……. 실로 오만하고 또 오만하도다!
“너희들은 개소리가 특기냐? 할 만하니까 온 거고, 이런 건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해야 하는 거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오러를 더욱 끌어 올렸다.
어느새 신성력과 자연스레 융합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아이언은 더욱 거대하게 변한 백색 검을 휘두르며 외부 신을 몰아붙였다.
아무리 제약이 약해졌다 한들 불안정한 신의 힘으로 아이언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에 가깝다.
-주신의 사도를 여기서 잡을 수 있다면 진의 한 축 정도를 내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새로이 소환된 외부 신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아이언이 무너뜨리려 했던 건물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혼돈의 힘이 하늘로 솟구쳤다.
“……뭐지?”
아이언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막으려고 온 외부 신이 스스로 진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면서 의아해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늘로 솟구친 혼돈의 힘이 상공에서 한데 뭉치더니 외부 신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검은 방패와 검은 창이라…….”
혼돈의 힘으로 만들어진 무구를 쥔 외부 신.
그 순간 미약했던 외부 신의 사상력이 폭증하면서 주변에 강력한 투기를 만들어 냈다.
아이언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수 킬로미터를 투기로 가득 채운 신.
-주신의 사도여……. 넌 오늘 오만함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나 투신의 이름으로 반드시 그리하겠느니라.
스스로를 투신이라 밝힌 외부 신의 확언.
하지만 그런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여전히 제약은 있었지만 혼돈의 힘으로 만들어진 무구의 힘이 제약으로 감소한 힘을 상당 부분 보충해 주었다.
아무리 타락했더라도 신은 신.
현재의 아이언보다 아득히 높은 경지에 있던 투신인지라 부족한 힘이라도 아이언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쿵! 쿵! 쿵!
투신이 공격을 시작하는 순간 곧바로 수세에 몰리는 아이언.
-이것이 바로 오만함의 대가이니라!
투신이 오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투신의 창을 간신히 반응하며 쳐 낸 아이언.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 투신은 방패로 밀어붙이면서 아이언의 방어를 무너뜨렸다.
정석에 가까운 움직임.
조디악이 본능과 숱한 전투 경험으로 만들어진 기술이라면, 투신의 싸움은 정석 그 자체였다.
아이언 역시 정석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지만 투신의 전투 기술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투신의 몸놀림은 아름다웠다.
이대로라면 아이언의 목숨마저 위험한 상황.
-도망이라도 치려는 것인가! 긍지마저 없다니…… 최악이구나!
투신이 자신의 압도적인 힘에 도망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아이언을 향해 조롱 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언은 투신의 공격을 끊임없이 막아 내면서 후퇴할 틈새만을 보고 있었다.
더 웃긴 것은 아이언의 입가에 걸린 미소였다.
-어찌하여?
불리한 상황에서 어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투신이 이런 생각을 할 때였다.
흠칫!
투신이 몸을 떨며 분노에 찬 눈빛으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그런 투신의 눈빛에 아이언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눈치챘어?”
아이언이 이제는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웃으면서 투신을 향해 말했다.
“네가 나와 열심히 싸우는 동안 내 친구들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몰랐나 보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투신을 향해 신관 하나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지…… 진의 축이 있는 곳이 습격받았습니다! 현재 세 곳이 무너졌다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