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57)
80. 시작되는 전쟁 (3)
신성 연합국의 공중 요새는 단순히 공중 전력을 강화하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강림한 신이 일정 공간 내에서 시스템 제약을 약화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
갑작스럽게 강해진 두 외부 신을 보면서 아이언이 검에 오러를 더욱 강하게 불어 넣었다.
제약이 약해지면서 외부 신들의 격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상정 범위 내에 있었다.
쿵!
거대한 공중 요새의 도움으로 제약이 약화된 두 신이 아이언을 향해 달려들면서 순간적으로 거대한 파장이 만들어졌다.
두 신의 심상과 아이언의 심상이 충돌하면서 주변에 사상력이 퍼져 나갔다.
마스터끼리 싸우면서 오러의 파장이 뿜어져 둘만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어느새 아이언와 외부 신들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스터는 일정 영역에만 영향을 끼쳤고, 마력 결계 등의 충격파에 대한 방어 수단이 있는 것과 달리 사상력은 그럴 수 없다는 점이다.
‘지독하군.’
멀리서 지켜보던 서부 사령관이 인상을 찡그렸다.
일부러 신성 연합국의 본진에서 전투를 하는 아이언 덕분에 서부군은 큰 피해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향을 받는지 구역질을 하고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마저도 게르만이 오러를 이용해 최대한 막아 줬기에 그 정도였다.
반면에 신성 연합군 측은 미칠 노릇이었다.
그랜드 마스터급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사상력의 파장에 모두가 정신착란 증상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텨라! 버텨!’
‘꿰뚫어라!’
‘베어 내! 찔러! 막아! 어떤 무기를 사용하든 반드시 승리하라!’
세 존재의 사상력이 뒤엉키면서 근방에 있던 사람들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정신 계열 마법이라도 사용하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마법과 다르게 마력 결계를 펼쳐도 사상력을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구토를 하면서도 살기 위해 아이언과 두 신의 전장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는 것이었다.
‘다르다!’
아이언이 두 신관 흐림르를 비교해 보면서 확신했다.
지금 두 신이 싸우는 방식과 흐림르가 싸우는 방식은 달랐다.
과거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의 두 신이 싸우는 방식은 철저하게 신으로서 싸우고 있었다.
자신의 심상을 얼마나 잘 구현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격을 얼마나 잘 이용하는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반면에 흐림르는 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순수하게 전투 그 자체에 집중했다.
심상 구현? 격의 힘? 그딴 건 전투를 이기는 데 사용한 무기 중 하나일 뿐이었다.
흐림르와 자신의 싸움이 힘의 싸움이었다면 이번 싸움은 심상의 싸움.
‘이딴 건 생사를 건 결투가 아니야.’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싸움은 누가 더 심상 구현을 잘하나의 싸움일 뿐이었다.
이런 건 어렸을 적에 대련에서나 보여 주었던 누가 더 검술을 잘 사용하나에 불과했다.
목숨을 건 진짜 전투가 아닌 그저 놀이에 불과했다.
-큭! 이런 미친…….
갑작스럽게 일격을 맞은 외부 신이 욕설을 내뱉었다.
뒤늦게 나타나 아이언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던 외부 신 아이언의 변칙적인 공격에 당황한 것이다.
심상 싸움을 하던 것을 멈추고 변칙적으로 움직이면서 일격을 먹인 아이언의 공격은 처음 한 번만 변칙성으로 공격했을 거라는 신의 생각과 달리 전투 내내 계속되었다.
아이언은 이들과 지루하게 심상 싸움을 할 생각이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적들의 공격을 일부 받아 내며 신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강림한 신의 육체는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큰 상처를 내기 어렵다지만 아이언의 심상이 담긴 검에 베일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쿨럭!
빠른 속도와 절대로 자신을 잡을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무리하게 공격하던 외부 신이 아이언의 검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언의 빈틈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오는 창잡이 외부 신.
하지만 그마저도 아이언이 막아 내면서 치명상을 입은 외부 신을 공격했다.
-쯧. 자만했군.
창을 든 외부 신이 치명상을 입은 채 존재감이 옅어져 가는 외부 신을 바라보았다.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과거를 저버린 자들의 한계이겠지.
창을 든 외부 신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힘을 끌어 올렸다.
어느새 주변의 마력이 창에 휘몰아치면서 독특한 오러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아이언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놀라지? 나도 한때는 자네같이 단계를 밟아 본 적이 있거늘…….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미소를 짓는 남자.
신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멸자였던 시절의 경험을 잊지 않는 자.
그가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다르군.’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은 외부 신과는 다르게 창을 든 신은 달랐다.
신의 반열에 오르면서 과거 필멸자의 시절에 있었던 경험 대부분을 버린 자들.
오만함이 극에 다다르면서 오로지 더 높은 격을 쌓는 데만 치중했던 신들.
그런 일반적인 신과 다르게 눈앞의 신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이라도 사용했다.
자신이 쌓은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존재.
카가가가강!
아이언의 정석에 가까운 움직임을 막아 내면서도 가끔씩 변칙적으로 들어온 공격마저 흘려 냈다.
필멸자였던 시절에 쌓아 둔 경험을 잊지 않은 것이다.
과거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승리하고 살아남아 끝내는 신의 경지에 오른 자.
-크하하하! 바로 이거야! 이걸 원했다고!
마치 서리 거인의 전사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누구보다 피 끓는 전투를 원하는 자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죽더라도 웃으면서 만족하는 자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이걸 위해 긴 시간 동안 버텨 온 것이다!
외부 신이 미친 듯이 웃으면서 아이언의 공격을 받아 냈다.
창이 부러지면 방패를 만들어 막아 내고, 도끼로 반격을 가했다.
신성한 힘으로 구현한 온갖 무기들이 아이언을 향해 날아들었다.
수십 가지가 넘는 무기들이 사용되면서 정석에 가까운 아이언의 공격을 흘려 내고 막아 내며 반격했다.
“오만한 모습은…… 가면이었던가?”
-아…… 그렇지. 그래도 명색이 신인데 근엄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외부 신이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이언과 외부 신이 싸우면서 수백 수천의 충격파가 퍼졌고, 그럴 때마다 신성 연합군은 엄청난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단순히 피해만 입는 것을 넘어 점차 신의 사상력에 오염되는 정신이 문제였다.
이미 모두가 미쳐 있는 지금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어진 외부 신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 둔 광기를 끄집어내었다.
“공격해라! 서부 전선을 뚫어!”
그때 사상력에 정신을 못 차리던 신성 연합군이 일제히 돌격을 시작했다.
세 개의 사상력이 뒤섞여 있을 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한 신이 나가떨어지고 두 존재가 전력으로 부딪치자 의외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버텨라! 버텨!’
‘싸우자! 싸워!’
단순한 두 개의 사상력이 마음을 파고들어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전투 의지를 끌어냈다.
그건 서부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들을 상대로 서부 전선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자연스레 아이언의 버텨야 한다는 사상력에 감응하면서 사기를 끌어 올렸다.
“이것 때문인가?”
과거 전설적인 경지를 이룩한 영웅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군대를 일으켜 세우고 마지막까지 싸우게 만든 힘.
그들이 쌓아 올린 업과 심상에 영향을 받은 군대가 영웅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영웅이라 불린 그랜드 마스터에 다다른 자들이 가진 힘이었다.
“막아라! 적들을 막아! 목숨을 다해 막아라! 너의 죽음으로 제국을 지켜라!”
“뚫어라! 동료의 시신을 밟고 전진해라! 그리고 뚫어라! 그것이 너희들의 임무다!”
서로 상반되는 입장에 처한 두 개의 대군이 충돌했다.
사상력으로 끓어오른 두 집단이 악을 쓰면서 싸웠다.
창에 찔리고, 팔이 잘려도 악착같이 뚫어 내려는 신성 연합군.
마찬가지로 온몸이 상처 입어도 발악하며 전선을 지켜 내는 제국군.
두 집단의 광기 어린 모습에 게르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앞으로는 계속 이러한 싸움이 이어지는 것인가?”
게르만이 전쟁이 미친 인간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전장이든 광기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절대적인 존재들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만들어진 광기.
아이언이 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제국군 전체에 광기를 전염시켰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두 존재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크하하하! 그래! 이거다!
창을 든 외부 신이 서부 전선을 향해 미친 듯이 돌격하는 신성 연합군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아이언은 그걸 보면서 눈을 찌푸렸다.
신성 연합군이야 광신도의 모습으로 변했다 치면 되지만 제국군은 아니었다.
‘나…… 때문인가?’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째서 서리 거인과 싸울 때는 이러지 않았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순수한 전사의 긍지, 그리고 반드시 막겠다는 인류의 의지.’
그것이 자신의 심상과 흐림르의 심상이 비슷했기에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신이란 존재는 오랜 시간 심상을 구현하고 사상력을 조종해 왔기에 이런 장난질을 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이런 부분에서 부족했던 아이언은 전투에만 집중했고, 눈앞의 신은 아이언과 전투를 치르면서도 이런 장난질을 친 것이다.
-실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가?
“미친놈.”
-크하하! 맞는 말이다. 난 미친놈이지. 그런데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경지를 이룩할 수 있는가?
창을 든 신의 말에 아이언의 표정이 굳어졌다.
-과거 광전사라 불렸으며 모든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웨폰 마스터 불렸던 내가 이 경지를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투에 미쳤기 때문이다. 한데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
그의 말이 맞았다.
자신 역시 아포칼립스를 막는다는 목표 하나만을 가지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 과정에 사소한 요소들은 전부 뒤로 미뤄 둔 채 오로지 재앙을 막겠다는 일념하에 전진해 온 것이다.
전투에 미쳤다는 눈앞의 신이나 자신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목표를 향한 광적인 집착.
그것이 있어야만 다음 경지를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나태한 자라면, 일정 수준에 만족하는 자라면 결코 이룩할 수 없는 경지.
오로지 한 가지에 미쳐야만 비로소 자신만의 심상이 완성되는 법.
“더욱더 단단하게 만든다, 더 완벽하게 막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버틴다.”
아이언의 심상 속에 있던 강철 같은 의지가 입 밖으로 흘러나오자 눈앞에 있는 외부 신이 빙그레 웃으면서 창을 들어 올렸다.
-더 재밌는 결투, 더 재밌는 전투, 더 광기 어린 전쟁. 이걸 위해 쌓아올린 내 업을 이곳에 모두 담겠다. 이것이 과거 광전사의 신이라 불린 나 조디악 심상이니라.
조디악이 광기 어린 표정과 함께 미친 듯이 아이언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처 입는 것은 상관없다는 듯 무작정 돌진하는 모습은 광전사의 모습과 똑같았다.
-하하하하!
팔이 잘려 나가고 온몸에서 피가 흐르며 존재감이 옅어져 감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광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언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온갖 방법으로 시스템의 제약을 약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심상의 불완전함이 발목을 잡으며 아이언의 검에 심장이 꿰뚫렸다.
-쿨럭! 크크크…….
패배했음에도, 피를 토하면서도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조디악.
그런 그를 향해 아이언이 물었다.
“재밌었나?”
-아…… 재밌었다.
아이언의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조디악.
그런 그가 아이언을 보며 말했다.
-이것이 시작이다. 나의 죽음으로 본격적으로 새로운 멸망의 이야기가 쓰일 것이다.
“……죽을 줄 알았나?”
아이언의 물음에 조디악이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다.
“죽을 줄 알면서…… 어째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이지?”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뭐?”
-신화시대 이후로 사라진 이름을 이 대륙에 다시 새기기 위함이다.
조디악이 그렇게 말하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소멸이 두려워 도망쳤던 그때와 달리 비록 적이지만 이 땅에 나 조디악이라는 이름이 남을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긴 시간의 지루함을 견디고 끔찍한 기운이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을 인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 조디악의 이름이 이 대륙에 남았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조디악이 그 말을 끝으로 아이언을 보면서 미소와 함께 서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니…… 부디 멸망 속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이 새겨지길 바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