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54)
79. 전쟁 준비 (4)
서부 사령관이 공군 재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병사들의 훈련과 관리를 맡기로 한 아이언은 가장 먼저 북동부에서 카를을 데려왔다.
동시에 기동야전군의 사령부를 운영할 최소한의 지휘관들만 남기도 모조리 서부로 옮겼다.
그리고 최소한의 병력만 남은 기동야전군 사령부에는 카를을 남겼다.
그곳을 지휘할 높은 지휘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서부 사령관이 말한 것처럼 동부군이 남부 해역을 점령하는 데에도 카를의 도움이 필요했다.
-사령관님, 사령부에 있는 7할의 병력 전원 서부로 이동 완료했습니다.
“잘했어.”
카를의 보고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기서 동부군이 전진기지를 설치하는 것 좀 도와줘. 상인들과 함께 물자 지원만 좀 해 주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카를이 아이언의 명령에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했는지 카를이 아이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기동야전군은 서부에 언제 불러들일 겁니까?
카를의 물음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대종과 싸움이 한창인데 어떻게 불러?”
-어…… 모르셨습니까?
“뭘?”
아이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으면서 폴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폴덴이 황급히 품속에서 보고서를 꺼내 보여 주었다.
“이 중요한 보고서를 이제야 보여 주냐?”
“서부 지원군 훈련안이 완성되면 드리려 했습니다.”
폴덴의 말에 아이언이 한쪽에 쌓여 있는 훈련 방안 관련 서류 더미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서류가 쌓여 있었다. 아이언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폴덴이 건네준 보고서를 훑어본 아이언은 어째서 보고서 제출 시기를 뒤로 미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일진일퇴가 반복되다 어느 기점으로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면서 전선을 조금씩 올리고 있었다.
“벌써…… 거의 도달했군.”
아이언이 놀란 표정으로 폴덴을 바라보았다.
“그보다 마스터라…….”
“예상되는 후보는 두 명입니다만 추가적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대종과의 전쟁이 끝나 보상을 받는다면 몇몇 후보들이 더 마스터에 오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폴덴의 보고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이 더 마스터에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사전에 보고받았는데 그들까지 마스터가 된다면 신성 연합국과의 싸움도 해볼 만했다.
고대종과의 전쟁으로 잃은 마스터가 넷이었기에 그것을 보충하는 것을 넘어서 더 많은 숫자의 마스터를 보유해야 했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네.”
아이언이 보고서를 보다가 두 가주에 관련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가주가 묶어 두었던 드래곤들의 수장을 상대로 승리하는 과정에서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급격한 성장이 가능한 것이 고대종을 상대하면서 얻는 보상 때문이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둘이 더 생긴다라…….”
왠지 어깨가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에 아이언은 빙그레 미소를 짓고 보고서를 마저 다 읽었다.
시스템이 미치기라도 했는지 고대종을 잡을 때마다 보상을 퍼 주고 있다는 내용과 병력의 질적 수준이 아이언이 떠났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된다고 되어 있었다.
“이 상태라면 종전까진 얼마 안 남았군.”
“그렇습니다.”
아이언이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서 말하자 폴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난하게 흘러가는 전쟁이라 그런지 변수가 별로 없었다.
대규모 전쟁치고는 소소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전체적으로 전선을 조금씩 밀고 들어가는 형세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인류군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서둘러야겠네.”
“그럴 것 같습니다.”
폴덴의 대답에 아이언이 고개를 돌려 통신구를 바라보았다.
보고서의 내용을 신뢰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 전까지 북동부에 머물렀던 자의 생각도 필요했다.
“카를.”
-예.
“네가 보기에도 그래? 전쟁이 끝나 가는 것 같아?”
아이언이 카를에게 묻자 잠시 고민하던 카를이 작게 대답했다.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럴 것 같습니다. 이미 고대종들의 군대 대부분을 물리쳤고, 새로이 깨어난 고대종들 역시 무리 없이 막아 내고 있습니다.
“동부군이 빠져도 문제없겠나?”
-예.
카를의 확신에 찬 말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동부가 잘 해결된다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이젠 정말 신성 연합국을 상대하는 것만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언이 마음속에 남아 있던 한 줄기 불안을 걷어 낼 때였다.
-동부군뿐만이 아닙니다.
“응?”
카를의 말에 아이언은 의문에 찬 표정으로 통신구를 바라보았다.
-동부군 주력은 이미 철군했고, 남은 부대들 역시 철군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뒤를 이어서 다른 부대들 역시 철군 준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다른 부대들도?”
-예.
카를의 보고에 아이언이 생각에 잠겼다.
일단 카를에겐 야전군 사령부를 잘 부탁한다고 명을 내리고는 보고서를 들여다보았다.
서리 거인이 물러난 시점에서 전쟁 자체는 인류군이 우위에 있는 상황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전력 차는 더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 정도로 여유가 있다면 이건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공략하는 걸 일부러 늦추고 있다고 봐야 했다.
‘두 가주를 기다리는 것인가?’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폴덴을 불렀다.
“폴덴.”
“예.”
“제든 윅스 사령관께 연락해.”
아이언의 명령에 폴덴이 그 즉시 통신장교를 사령관실로 소환했다.
얼마 후 통신장교가 들어오면서 북동부에 직통으로 연결하는 통신을 연결했다.
-여! 오랜만이군.
제든 윅스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아이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바쁜 양반이 뭔 일로 나한테 연락까지 다 하셨나?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제든 윅스가 장난기를 지우며 말했다.
-어떤 것을?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말해 보게.
“거대 얼음덩어리…… 지금 바로 공략 가능한 겁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제든 윅스가 잠시 동안 침묵했다.
-무리한다면?
“혹 두 가주를 기다리고 계시는 겁니까?”
아이언이 조심스레 묻자 제든 윅스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러네. 이왕이면 두 가주가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공략할 생각이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들 걸리는군.
제든 윅스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아이언이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시간을 끌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혹시…… 다음 아포칼립스 때문인가?
“예, 아직 서부군의 준비가 미흡합니다. 최대한 시간을 끈 후 준비가 다 되면…….”
-안타깝게도…… 그건 힘들 듯싶네.
제든 윅스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아무래도 이 시스템이란 것이 우리가 꼼수를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 듯싶네.
제든 윅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말에 의문에 찬 표정을 짓던 아이언.
그런 그를 위해 제든 윅스가 북동부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 두 가주가 폐관 수련에 들어간 이후, 시스템은 고대종을 잡을수록 막대한 보상을 주면서 인류군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제든 윅스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하자 갑자기 모든 군인들에게 알림음이 들려왔다.
[앞으로 한 달 안에 고대종이 지키는 흐림르의 잔재를 공략하세요! 시간이 초과될 때마다 보상은 줄어들고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알림음을 받았다는 말에 아이언의 표정이 구겨졌다.
-자네가 총독에게 한 말은 나도 들었네. 4차 아포칼립스를 미루기 위함이지?
“……예.”
-아쉽게도…… 어렵게 되었네.
제든 윅스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쉽게 갈 수 있게끔 내버려 두질 않았다.
“……얼마나 남은 겁니까?”
-길어야 3주. 웬만하면 그 이전에는 안전하게 끝내는 게 좋을 듯싶네. 아마…… 두 가주가 빨리 수련을 마친다면 좀 더 빨라질 수도 있겠지.
어떤 변수가 있는지 모르니 적어도 한 주가 남았을 때 총공세를 펼쳐서 끝내야만 했다.
사령관 입장에선 최대한 변수를 제거한 안전한 작전을 추구하는 게 올바른 자세였기에 아이언 역시 이해했다.
서부군의 준비가 부족한 건 이쪽 사정일 뿐, 북동부가 이쪽 일까지 신경 써 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야겠군요.”
-서부 쪽 일은 들었네. 전쟁이 시작되면 이쪽 일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합류하겠네.
“감사합니다.”
아이언이 제든 윅스와의 통신을 끝내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폴덴을 바라보았다.
“우리 군 오는 대로 훈련에 투입시켜.”
“예.”
아무래도 상황이 꽤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신성 연합군의 이 움직임은…… 이걸 예상한 건가?’
북동부에서 고대종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곧바로 전쟁을 치를 것처럼 제국 주위에 병력을 깔아 두고 있었다.
마치 한 번에 덮치기라도 할 것 같은 움직임.
그렇다면 이쪽도 그에 대비한 움직임을 보여 주어야 했다.
현재 제국의 정예들은 죄다 북동부에 있는 상황이니 적어도 그들이 올 때까진 이 서부 전선이 버텨 줘야 했다.
그래서 아이언은 단순히 훈련하는 것을 넘어서 좀 더 주도적인 작전을 실행했다.
“이쪽은 훈련이 끝나는 대로 전선 너머로 정찰시켜.”
“예.”
“북동부에서 우리 군 레인저가 할 일이 없다는데 불러와. 요 녀석들을 데리고 전진기지를 건설해.”
“알겠습니다.”
“이번에 드래곤들 죄다 죽였다지? 그럼 공군도 필요 없겠네. 22군단 데려와. 서부군이랑 같이 전선 앞쪽으로 전진 배치시켜.”
“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기 위해 앞쪽에 정찰 병력을 배치하고 저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리고 온갖 함정들부터 야전을 위한 준비들까지 착실하게 수행했다.
정부에서 지원은 빵빵하게 들어오고 있었으니 물자가 부족한 일은 없었다.
병력도 각 지역에서 모여들고 있으니 충분한 편.
부족한 건 오로지 미숙한 경험뿐이었다.
그걸 커버하기 위해 단기간 강도 높은 훈련을 했고, 또 정찰을 통해 소소하게 적 정찰병과 소규모 전투를 벌이게 만들면서 전투 경험을 쌓게 했다.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전면전이 시작되기 전에 최소한의 전투 경험이라도 쌓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일부러 적들의 진영에 인접한 곳에서 훈련하면서 도발하고, 흥분해 공격해 오는 적들과 싸우면서 후퇴시켰다.
서부 전선 곳곳에서 적들과 소규모 전투가 수없이 일어나면서 전쟁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북동부의 전선은 계속해서 올라갔고, 마침내 흐림르의 잔재인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보이는 코앞까지 도착했다.
“이제 곧인가?”
아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달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달력에는 3주라는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급박하게 준비한 것치고는 서부전은 어느 정도 굴러가고 있었고, 서부군 역시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난 상황.
“보고드립니다. 두 가주가 폐관 수련을 끝마치고 전장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통신장교의 보고에 아이언이 올 것이 왔다는 듯 두 눈을 감았다.
두 가주가 복귀한 이상 사실상 북동부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벽을 넘으셨나?”
“그것까진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다만…… 북부 사령관께서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하셨다 합니다.”
“오르셨군.”
북부 사령관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벽을 넘었다 봐야 했다.
아이언이 두 가주의 소식을 들으며 빙그레 웃을 때였다.
“보…… 보고드립니다! 서리 거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갑작스러운 통신장교의 보고에 아이언과 폴덴이 다급히 들어온 통신장교를 바라보았다.
“그게 끝인가?”
“아…… 아닙니다. 이상하게 서리 거인들이 고대종의 전선에 합류하지는 않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몰려온 서리 거인들 역시 그 숫자가 수십에 불과합니다.”
통신장교의 보고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어째서 이제야 나타난 것인지, 또 왜 수십밖에 안 되는 숫자만 온 것인지에 의문이 들었다.
‘왕의 잔재를 찾기 위함인가? 그렇다면 왜 수십밖에 안 온 거지?’
이런 생각을 했으나 지금 당장 자신이 북동부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벽을 넘은 두 가주가 있는 이상 승리는 인류의 것이 분명한 상태.
서리 거인이 합류한다 해서 이 흐림이 바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믿으며 아이언은 신성 연합군과의 전쟁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사령관님! 북동부에서 전쟁에 승리했다는 급보입니다!”
통신장교의 보고와 함께 아이언에게 알림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