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52)
79. 전쟁 준비 (2)
‘생존’
총독이 준비한 자료가 나오는 영상구에는 ‘생존’이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다.
자료들을 열거하던 총리가 마지막에 준비한 건 한 단어였다.
그리고 그건 총독의 연설을 들은 의원들에게 가슴 깊이 박혔다.
모두가 침묵하며 영상구에 나오는 생존이란 단어를 바라볼 때, 총리가 끝맺음을 위해 입을 열었다.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집니다. 나머진 의원님들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겠죠.”
총독이 그렇게 말하면서 단상에서 내려가 의회를 빠져나갔다.
항상 시끄러웠던 의회가 침묵 속에서 각 자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의회의 입구에 미리 나와 있던 아이언이 총독을 바라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명연설이셨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총독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언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이언이 생각하기에 충분히 좋은 연설이었다.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을 모두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연설.
이제 이 연설을 들은 의원들의 머릿속에는 생존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자신들이 미는 프로젝트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겠네요.”
“……예. 부디 잘되기를 바라야죠.”
총독의 말에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잘될 겁니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의회를 바라보았다.
이미 총리랑 얘기하며 마음을 굳힌 지 오래였기에 아이언이 갈 길은 하나뿐이었다.
설령 독재자가 되더라도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그걸 위해서 상처 입은 내상을 치료하는 데에 온종일 매달리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가 오면 자신이 직접 나설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언의 각오를 잘 아는 총리는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더 열심히 뛰었다.
총독부의 인원들을 굴리며 자료를 모으고, 주요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오늘! 의회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가 시작된다!]
[생존이냐! 미래냐!]
[기득권이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수도에서는 오랜만에 새벽부터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광장에 설치된 거대한 영상구를 보기 위함이었다.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영상구에는 의회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장에는 소년들이 신문을 들고 사람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었다.
모자를 쓴 소년에게서 신문을 하나 산 노인이 오늘 자 1면을 바라보았다.
[의회! 총독과 아이언과 대립할 것인가?]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아이언의 연설과 총독의 연설이 짧게 실려 있었고, 둘이 내민 근거들이 요약되어 있었다.
거기다 서부에서 움직이는 신성 연합국에 대한 내용도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삶에 지쳐 있던 정치에 관심 없던 자들도 오늘만큼은 광장에 모여들었다.
출근을 하기 전인 새벽.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할 때, 광장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사안인 만큼 의회도 일부러 새벽에 회의를 잡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렇기에 새벽부터 진행되는 회의에 수도에 있는 사람들이 대형 영상구가 설치된 곳으로 모여든 것이다.
“후…….”
아이언이 긴 한숨과 함께 창밖에 비치는 의회를 바라보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아이언의 모습에 소파에 앉아 있던 폴덴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하러 걱정하십니까?”
“뭐?”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는 거 아닙니까?”
폴덴의 말에 아이언이 인상을 찌푸렸다.
만약 총독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군부를 움직여야 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착잡한 마음을 하고 있었는데, 폴덴은 여유로워 보였다.
“총독의 중재안은 제법 훌륭했습니다. 게다가 명분도 이쪽으로 기운 상태죠. 그런 상황에서 의원들이 반대한다? 과연 그들이 제국민들의 분노를 견뎌 낼 수 있을까요?”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대륙 유일의 그랜드 마스터가 눈에 쌍심지 켜고 지켜보는데? 뒈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절대 반대 못 합니다.”
폴덴이 그렇게 말하면서 재미없다는 듯, 서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들을 살폈다.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서 결과를 기다리기 지루하다는 폴덴과 달리 아이언은 만약을 생각하며 가라앉은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한편 총독 역시 총독부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이번 의회의 결과가 어그러진다면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의회에서 부결된다면…… 전 그 즉시 군부를 움직일 생각입니다.”
얼마 전 아이언이 총독에게 했던 말이었다.
총독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이 보기에 다음 전쟁은 인류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정도로 최악의 전쟁이 예상되었고, 총독 역시 그의 말을 들으면서 공감했다.
그렇기에 지금은 다른 걸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설령 내가 독재자라 손가락질받더라도…….’
총독 역시 아이언처럼 본인이 쌓아 올린 명예를 내던질 준비를 했다.
긴장감으로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초조하게 발표만을 기다릴 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비서가 들어왔다.
“결과는?”
“중재안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진짜?”
총독의 말에 비서관이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체베라 총독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귀족 연합은 이미 만족했다고 개인적으로 알려 와 걱정이 없었고, 상인 연합과 공방 연합은 찬성할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들 입장에서 아쉽긴 하겠지만 그들이 주력으로 미는 프로젝트가 일단 시작은 하는 셈이니 받아들일 만했다.
문제는 자유 연합이었다.
가장 많은 의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그들이 계속 반대한다면 어그러지거나 시간이 끌릴 수 있었다.
신성 연합국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당장이라도 움직여야 하는데, 시간이 끌린다면 아이언이 참지 못하고 움직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번 결과가 중요했는데 자유 연합이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자유 연합이…… 받아들였다고?”
“그렇습니다.”
비서의 말에 총독이 환하게 웃었다.
그런 그에게 비서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유 연합 의장이 총독님을 뵙고자 합니다.”
“나를?”
“예. 아이언 사령관과도 함께 만났으면 한다고 전했습니다.”
비서의 말에 총독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자정이 되자 곧바로 아이언에게 연통을 넣어서 광장의 한 펍에서 보자고 했다.
검은 후드를 쓰고 펍에 도착한 아이언이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는 총독이 반갑게 인사했다.
총독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을 때, 자유 연합 의장인 레닌이 한쪽 문에서 조용히 나타났다.
“음…….”
아이언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주위에 있던 자들은 전부 사라지고 펍에는 아이언과 총독, 자유 연합 의장만이 남은 상태였다.
‘자유 연합의 비밀 거점인가?’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할 때, 레닌 키모시아가 바텐데 자리에 서서 아이언과 체베라 총독에게 직접 수제 맥주를 따라 주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아이언과 총독이 살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그가 맥주를 먹어 보라는 손짓에 한 모금 마셨다.
“오!”
“음…….”
둘 다 놀란 표정으로 레닌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맛있는 맥주 맛에 놀라워할 때, 레닌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맥주 제조 경력 15년이오. 지금이야 비밀 거점이지만 한때 이곳은 내 가게이기도 했소.”
그렇게 말하면서 레닌이 간단한 안줏거리를 내준 후, 총독과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맛있는 맥주에 홀짝이면서 즐기던 두 사람이 레닌을 바라보았다.
“이번 중재안…… 솔직히 통과시키고 싶지 않았소.”
레닌의 말에 아이언과 총독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황족이 몰락하고 귀족들이 대거 숙청되었어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취약 계층에게 잔인하오. 일반 제국민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며 여가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하오. 아이는 보살핌을 받는 대신 일찍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소.”
레닌의 말에 아이언과 총독은 침묵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의 제국은 일반 사람들에게 잔인하리만큼 고된 노동을 강요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부족해 아이들까지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었다.
고작 열 살짜리 아이들이 공장에 차출되어 있는 지금의 모습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러더군. 일단 사는 게 먼저라고.”
레닌의 말에 총독이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늙은 노인이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와 전쟁을 대비하자 말하고, 어린아이가 자기는 조금 힘든 거 괜찮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소. 홀몸으로 아이를 키우는 아낙네가 자신은 버틸 수 있다며 중재안을 받아들이라 말했소.”
레닌이 울먹이면서 둘에게 말했다.
모두가 고달픈 노동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레닌에게 찾아와 전쟁을 대비하자고 말했다.
그들 스스로가 하층민에 있으면서도 아이언에게 힘을 실어 주자고 주장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레닌을 비롯한 자유 연합 역시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총독의 말이 맞소. 생존…… 그것이 가장 중요하오. 지금 시점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일 테지.”
레닌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오. 그러면…….”
레닌이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다 앞에 있는 둘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과거와 다를 게 하나 없지 않겠소?”
“…….”
“…….”
레닌의 말에 아이언과 총독이 침묵했다.
그의 말처럼 황족과 귀족이 몰락했음에도 새로운 부유한 계층이 제국민들을 쥐어짜기 시작하면 새로운 계급제가 될 뿐이었다.
혁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새 시대가 연 것처럼 포장하지만 제국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시오.”
“말씀하십시오.”
레닌의 말에 총독이 힘겹게 대답했다.
“전쟁이 끝난다면…… 반드시! 반드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겠다고.”
그의 말에 총독이 레닌을 바라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때도 내가 총독의 자리에 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리하겠소.”
체베라 총독의 말에 레닌은 이번에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사령관께서도 도와주시겠소?”
“그리하겠습니다. 멸망의 시대가 끝난다면…… 반드시!”
아이언의 말에 레닌이 그제야 만족한 듯 웃었다.
적어도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은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 왔었다.
제국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해온 체베라 총독과 전쟁에서 선봉에서 승리를 약속해 왔던 아이언이기에 믿을 수 있었다.
“두 분의 약속을 믿겠소.”
레닌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펍에 자유 연합의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앞으로 자유 연합은 두 사람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겠습니다.”
레닌이 자유 연합을 대표해서 말하자 그곳에 모인 자유 연합 의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면서 두 사람에게 예를 표했다.
그렇게 제국에서 가장 큰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약속과 함께 세 사람의 만남이 끝나고, 다음 날이 되었다.
레닌과 자유 연합의 약속은 바로 다음 날이 되자 곧바로 이루어졌다.
“자유 연합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독의 모든 계획에 지지를 표한다.”
레닌의 이러한 선언에 의회를 비롯한 제국민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지지에 하나가 더 얹혔다.
“우리 귀족 연합은 제국을 지키려는 숭고한 의지에 함께하겠다.”
귀족 연합의 이러한 발언에 이번엔 경악했다.
물론 그들이 총독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 반목했던 것과 대척점에 있는 체베라 총독이었기에 그를 지지할 수는 없었다.
대신 제국의 영웅이었고, 명문가의 장자인 아이언을 지지했다.
귀족 출신이라는 명분과 멸망의 시대를 막겠다는 대의까지 함께하니 귀족 연합이 한데 뭉치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거대한 두 세력이 총독과 아이언의 계획을 지지하자 남은 두 세력 역시 눈치 보다가 지지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