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49)
78. 움직이기 시작하는 신성연합국 (3)
피에르 웰치와 헤어지자마자 곧바로 다가온 그는 아이언에게 제발 한 번만 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간청에 할 수 없이 아이언이 다시금 작은 찻집으로 들어갔다.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밖에 만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무슨 일 때문인지…….”
아이언의 물음에 데니스 펠트로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심히 말했다.
“저희 공방에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에 관해서 공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데니스의 말에 아이언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무…… 물론 그냥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 보상을…….”
“보상보다, 어떤 부분을 도와 달라는 것입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가 주력으로 밀고 있는 사업은 골렘입니다.”
“흠…….”
“전쟁 골렘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업에 필요한 골렘까지 개발 중입니다. 다만 저희가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급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데니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신성 연합국이 움직였다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아이언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저희도 바보는 아닙니다. 신성 연합국과의 싸움이 시작되면 저희 역시 전쟁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하는 작업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예. 전부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 테지요. 하지만 대부분이 폐기되거나 먼 훗날로 미뤄지게 될 겁니다.”
데니스의 말에 아이언은 침묵한 채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골렘과 그걸 응용해 만든 대형 마동차는 혁명이 될 겁니다. 상인 연합이 원하는 물류의 혁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장에도 도움이 될 테지요. 그러니…… 신성 연합국과의 전쟁 전에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그게 제 도움으로 가능하다는 겁니까?”
“예. 정부가 저희 공방 연합을 밀어준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데니스가 확신하듯 말했다.
“철갑 골렘 및 새로운 형태의 마동차를 만들기 위해선 많은 자원과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으음…….”
“이건 앞으로 있을 전쟁에 꼭 필요한 형태가 될 겁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결코 나쁜 상황은 아닐 겁니다. 여기 저희의 제안서를 보신다면 이득은 최소한으로 잡아 놓았습니다. 개발비와 공방의 투자자들이 납득 가능한 선에서 이뤄지는 최소한의 이득만 볼 생각입니다.”
데니스의 설명에 아이언이 잠시 고민하더니 그를 바라보며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예?”
“이득도 별로 보지 않으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이언의 말에 데니스가 빙그레 웃었다.
“새로운 혁명의 중심이 되는 것. 그것이 저희 공방 연합이 원하는 겁니다.”
“혁명의…… 중심?”
“예. 멸망의 시대에 접어든 이후, 우린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 이 변화가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데니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빛냈다.
“지금 당장의 이득?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멸망 이후에 누가 중심이 되느냐입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혁명의 중심이 되는 것. 그것에 비하면 당장의 이익은 하찮은 것이죠. 또 이익이야 그때 가서 얻어도 충분하니까요.”
데니스 펠트로의 말에 아이언이 생각에 잠겼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당장의 이익을 생각지 않는 것.
그게 말이 쉽지, 당장 결단을 내리는 건 쉽지 않았다.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휘하 많은 직원들을 납득시키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에 보였다.
그럼에도 그걸 감행한다는 건 그만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상인 연합에서 온 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언의 말에 데니스가 눈을 빛냈다.
“제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예! 아이언 공만 도와주신다면 반드시 저희가 승리할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데니스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제국의 영웅이시니까요.”
데니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진중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멸망의 시대 이후 군부는 강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고대종과의 전투에 집중되면서 티가 안 나는 것뿐이지요. 그런 군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신 분이 아이언 공이죠. 거기다…… 제국민들이 보기에 이 제국의 일인자는 아이언 공으로 생각합니다.”
“그건…….”
“현 총리도 나름대로 조율을 잘하고 있다지만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없지요. 그걸 아이언 공께선 가지고 계십니다.”
데니스의 말처럼 아이언이 제국에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했으면 총리는 아이언이 차지했을 것이다.
그만큼 제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전장을 돌아다녔기에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환경이 제공되지 못했을 뿐이다.
“부탁드립니다! 저희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환하게 웃는 데니스.
그의 간절한 눈빛을 받으며 헤어진 아이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복잡하게 돌아가네.”
방금의 대화로 상인 연합과 공방 연합이 정말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이 복잡한 일의 중심에 서 버렸다는 것이다.
아이언이 한숨을 쉬면서 자신에게 배정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앞으로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할 때, 누군가가 자신의 방으로 찾아왔다.
“누구시죠?”
아이언이 문을 열자 그곳엔 노인 두 명이 서 있었다.
“아이언 사령관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반갑소. 본인은 말디니 가주올시다…….”
“부족하지만 바레시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오.”
두 사람이 정체를 밝히자 아이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귀족 연합의 핵심 가문의 가주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아이언의 말에 두 가주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들이 의자에 앉자 아이언이 차를 준비하고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두 가주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더니 그중 말디니 가주가 입을 열었다.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왔소이다.”
말디니 가주의 말에 아이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귀족 연합이 자신에게 청탁을 하려고 생각되자 절로 표정이 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탁이 아니오!”
아이언의 표정을 본 바레시 가주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면 뭡니까?”
“제국이 붕괴되지 않게 도와주시오.”
말디니 가주의 말에 아이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뭔 개소리냐는 표정에 바레시 가주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후…… 우리가 그동안 잘못해 왔기에 믿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제국을 위한 것이오.”
바레시 가주의 말에 아이언이 더 해 보라는 듯 말했다.
“선황의 사후 사실상 신분제가 폐지되었소. 그 후 수도는 극도의 혼란 속에 빠져 있소이다.”
“……그래서요? 다시 신분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아니오. 이미 그러기엔 너무 와 버렸지. 우리도 신분제 따윈 이제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소이다.”
톡 쏘는 아이언의 말에 바레시 가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안정이요.”
“안정?”
아이언의 말에 말디니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신분제가 없어도 우리 같은 고위 귀족 출신들은 별 타격이 없소. 압도적인 재력과 그동안 구축한 인프라가 있기 때문이오.”
“타격을 입은 건 기존 하위 귀족들이거나 능력 없는 쓰레기들이지.”
두 가주의 말에 아이언이 더 말해 보라는 듯 둘을 바라보았다.
“분명 귀족들이 그동안 잘못한 건 맞소. 하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귀족들까지 죄인 취급하는 건…….”
“이건 분명 문제가 있소. 현재 정부는 능력으로 고위직에 올라간 귀족들마저 무시한 채 혁명 세력 위주로 운영되고 있소. 그러다 보니 귀족들과 다툼이 일어나고 쓸데없는 인력 낭비가 이어지고 있지.”
두 가주의 말에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엄청난 발전을 이뤄 내고 있지만 급격한 변화에 따른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언이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 두 가주는 좀 더 상세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귀족과 혁명 세력 간의 문제는 단순히 정부 관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카데미의 교수들부터 중앙과 다른 지역의 군부, 치안대까지 둘의 대립이 이어졌다.
이 둘의 말에 어느 정도 신뢰가 가는 이유는 귀족들 역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설명하기 때문이다.
“두 세력 간의 반발이 심한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말디니 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과거의 업보 때문임을…….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둘의 반발을 잠재워야 하지 않겠소?”
말디니 가주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고대종들과의 싸움도 힘든데 서부에서 신성 연합국이 제국을 침공하려 한다.
그렇기에 적어도 멸망의 시대가 끝날 때까진 이 문제를 겉으로나마 봉합해야 한다.
하지만 멸망의 시대가 언제 끝날 줄 알고?
과연 제국민들이 그걸 기다려 줄까?
거기다 섣부르게 자신이 나섰다가 일이 잘못되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이러한 아이언의 고민을 아는지 두 가주도 침묵한 채 아이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일단…… 고민 좀 해 보겠습니다.”
“……알겠소.”
아이언의 대답에 말디니 가주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두 가주가 나가고 고심을 거듭한 아이언은 결국 북동부에 연락을 취했다.
“폴덴.”
-예?
“정보부 요원들 좀 데리고 중앙으로 좀 내려와라.”
아이언의 명령에 폴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폴덴의 물음에 아이언이 중앙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심각하군요.
“그러니까 네가 필요해.”
-후…… 지금도 죽을 만큼 바쁩니다만…….
“도와줘.”
아이언의 말에 폴덴이 죽을상을 지으며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다음 날, 정보부의 사람들과 함께 수도에 도착한 폴덴은 아이언의 명령에 따라 곧바로 정보 수집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인 연합과 공방 연합의 말이 사실인지, 두 가주가 말한 것처럼 귀족과 혁명 세력 간의 다툼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아보았다.
그렇게 폴덴의 도움과 함께 알아본 사실은 혁명 세력과 귀족들의 알력다툼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과 두 연합의 말에 거짓은 없다는 점이었다.
“이게…… 사실이야?”
“예. 공방 연합이 정부에 제출한 내용은 사실이었고, 상인 연합 측도 철도망을 구축하는 것치고는 요금을 저렴하게 받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럼 둘 다 멸망의 시대 이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건데…….”
아이언의 말에 폴덴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남았다.
“리암 말디니는 어째서 나한테 그렇게 얘기한 거지?”
아이언의 중얼거림에 폴덴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보고서를 하나 더 건넸다.
“자유 연합?”
“예. 리암 말디니는 자유 연합 소속입니다.”
“총리 직속 아니었어?”
아이언의 물음에 폴덴이 그것도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 연합 측에서 비밀리에 총리 측근으로 꽂아 넣은 인물입니다.”
폴덴의 말에 아이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자유 연합에 관한 자료가 담긴 보고서를 건넸다.
그런 폴덴을 보면서 아이언이 피식 웃으면서 믿음직스럽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됐으니 한동안 정보부에 휴식 좀 주십시오. 애들이 죽기 직전입니다.”
“그래. 수고했어.”
아이언의 확답을 듣자 그제야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 폴덴은 곧바로 소파에 쓰러지듯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