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44)
76. 희생 그리고 승리 (6)
피닉스의 불길이 드래곤의 수장 하나를 막아서자 하늘에서 얼음 폭풍이 생겨났다.
거기다가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거대한 눈의 거인들이 만들어졌다.
그 순간 또 하나의 신수가 나타났다.
번개의 폭풍을 만들어 내며 나타난 천둥새가 주변을 쓸어버리면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존재들을 물러나게끔 했다.
-제대로 한 방 먹었군.
흐림르가 한 방 먹었다는 듯, 아이언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젠 내가 살길을 찾아야 하는가?
그의 말에 아이언이 피식 웃었다.
어느새 뱁새의 도움으로 몸을 전부 회복한 아이언은 쌩쌩한 팔을 휘두르면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피닉스는 그린 드래곤의 수장을 막고 있었고, 천둥새는 스노우 베어와 설인들을 막느라 흐림르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부엉이와 뱁새면 충분해.’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뱁새를 머리에 안착시키고, 두 개의 달과 감각을 공유했다.
“정말 강해졌네.”
두 개의 달과 감각을 공유한 순간 그동안 아이언이 얼마나 신수들의 힘을 제약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힘과 경지가 부족해서 부족한 힘으로 싸워 왔던 신수들.
심지어 두 개의 달의 경우에는 힘을 발휘하는 순간 주변 일대의 마나들이 일제히 두 개의 달의 마력으로 변환되어 버릴 정도로 훨씬 강력해졌다.
한때 북동부에 검은 숲의 지배자로 불리며 몬스터들조차 피해 가게끔 만들었던 그 위용이 더 강력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콰아앙!
전력을 다한 흐림르의 일격.
하지만 그것을 막아 내는 아이언은 좀 전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그건…… 반칙 아닌가?
흐림르가 투덜거리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강력한 일격을 날려서 내상을 입히려 했는데, 뱁새의 치유력이 순식간에 아이언의 몸을 쌩쌩하게 만들었다.
말도 안 되는 유지력에 흐림르가 헛웃음을 지었다.
거기다가 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두 줄기의 빛이 떨어졌다.
무시하고 아이언에게 집중했다간 흐림르의 강력한 투기와 두꺼운 가죽마저 뚫고 치명상을 입힐 것이다.
“후…… 컨트롤 부탁해.”
-짹!
아이언의 말에 머리에 앉은 뱁새가 귀엽게 대답했다.
그 순간 아이언의 백색검이 더욱더 커졌고, 등 뒤로 하얀 날개가 펼쳐졌다.
끊임없이 샘솟는 신성력을 전력으로 운용하기 시작한 아이언.
그 막대한 신성력을 뱁새가 컨트롤 하면서 힘을 더욱 증폭시키자 어느새 주변에는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성역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성역은 흐림르의 냉기를 밀어내면서 압박하기 시작했다.
-크흠!
흐림르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면서 도끼를 휘둘렀다.
한층 더 강력해진 거인왕의 투기는 그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냉기와 함께 투기가 퍼지면서 주변에 강력한 파장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신성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아이언은 그 모든 힘을 신성력으로 밀어냈다.
게다가 두 개의 달의 공격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광속으로 공격해 오는 두 개의 달의 일격과 거대한 두 눈에서 뿜어지는 광선은 천하의 흐림르도 맨몸으로 버텨 내지 못하고 도끼로 방어해야 했다.
-이것이 끝이냐! 그렇다면 짐을 죽일 순 없느니라!
흐림르가 계속해서 밀려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투기를 끌어 올리며 소리쳤다.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관이었던 흐림르답게 밀려 가는 전장을 보면서 도끼로 대지를 내리쳤다.
쿠웅!
순간 강력한 파장이 퍼지면서 밀어붙이던 아이언이 뒤로 밀려났다.
그러자 흐림르가 무리해서 투기를 끌어 올리면서 무너져 가던 거인의 형상을 다시금 복구했다.
그리고 더욱 강력한 냉기의 폭풍을 만들어 내면서 서리 거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짐을 믿어라! 짐이 곧 승리의 화신일지니!
흐림르의 말에 서리 거인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어 올리면서 왕에게 화답했다.
하지만 사기가 오른다고 해결되지 않는 게 있는 법.
아이언의 새하얀 날개에서 깃털이 빠져나오면서 그것이 신성력을 잔뜩 머금은 광창이 되어 흐림르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것을 막아 내는 흐림르를 향해 아이언의 백색검이 몸통을 베어 들어갔다.
쿠웅!
광창을 막아 내던 흐림르가 몇 개의 공격을 허용하면서 백색검을 막았다.
고작 신성력을 증폭하고 컨트롤할 줄 아는 작은 뱁새가 합류한 것만으로 아이언의 공격 패턴은 훨씬 다양해지고 강력해졌다.
날개에서 떨어지는 깃털을 광창으로 변모시켜 공격했고, 성역으로 끊임없이 흐림르를 압박했다.
방어 역시 흐림르가 전력을 다한 공격을 신성력으로 만든 방패가 막아 주었다.
그것이 뚫린다 해도 상관없었다.
잠시 막은 것만으로도 아이언이 대응하기엔 충분했으니 부서졌다 해도 소임을 다한 것이다.
그로 인해 얻은 내상 역시 뱁새에 의해 바로 치유되면서 쌩쌩해져 흐림르를 공격했다.
마치 좀비처럼 달려드는 아이언을 이기기 위해선 보다 압도적인 힘이 필요했다.
-……아쉽군.
흐림르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도끼를 내질렀다.
쿠웅!
이번에도 새하얀 방패에 일차적으로 막힌 자신의 공격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사이 백색검은 또다시 흐림르의 옆구리를 베어 나갔다.
이번에도 간신히 치명상을 피하면서 막아 낸 흐림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울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푸른 피가 사방에 떨어지고, 온몸에 상처를 입은 서리 거인의 왕.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투지로 불타고 있었고, 오랜 세월 거인의 왕으로 군림한 자답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밀리고 있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건 자신이 될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웃었다.
그에게도 회심의 한 방 정도는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큭!
갑자기 도끼로 땅을 찍어 내 강력한 파장을 만들어 낸 흐림르가 아이언이 잠깐 멈칫하는 사이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천둥새를 상대하던 에이션트 스노우 베어가 나타나 거대한 눈의 거인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눈의 거인을 흐림르의 투기가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거기다 뒤이어 설인들이 나타나 흐림르를 향해 주술을 펼쳤다.
과거 악마들과 계약했던 설인들답게 주술과 계약에 능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잠시뿐이지만 과거의 힘의 잔재를 불러오는 주술을 펼쳤다.
그 대가로 설인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제약을 각오해야 했고, 흐림르 본인도 패널티를 각오해야 했음에도 행했다.
여기서 죽는 것보단 나았기 때문이다.
‘저것이 완성되면 안 돼!’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낀 아이언이 황급히 백색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지만, 주술의 완성과 눈의 거인이 희생된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쿠우웅!
-짐이 왔노라!
눈의 거인을 잡아먹고 커진 흐림르.
어느새 투기로 만들어졌던 과거의 흐림르만큼 커진 그는 넘쳐 나는 힘으로 대지를 밟았다.
단순히 한 발자국 걷는 행위에 냉기의 폭풍이 몰아치고 전장 전체에 서리의 기운이 넘실거리게끔 만들었다.
-짐은 미래를 버리고 찰나의 시간을 얻었느니라. 그런 나를 상대로 버틸 수 있겠느냐?
흐림르의 물음에 아이언이 자세를 바로 하고 거대한 흐림르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곁엔 두 개의 달과, 그린 드래곤의 수장을 밀어내고 다가온 피닉스와, 주변에 폭풍을 만들어 내던 천둥새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해 왔던 신수들이 곁으로 돌아온 순간 아이언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랜드 마스터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격이 느껴졌지만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감당해 보거라, 과거의 나를.
흐림르가 그렇게 말하면서 도끼를 휘둘렀다.
전과 같이 단순히 내려찍는 행동이었지만 그것을 막는 아이언의 얼굴에선 전과 같은 여유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쿠우웅!
“크윽!”
뱁새의 도움을 받아 만든 백색 방패가 일격에 찢겨 나가고, 아이언이 미처 피할 새도 없이 흐림르의 일격을 막았다. 고작 일격을 막는 것만으로 내부가 진탕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빠른 치유로 기어코 버텨 냈다.
그렇게 아이언이 흐림르의 공격을 막는 동안 신수들 역시 놀고만 있지 않았다.
주변을 얼려 버릴 것 같은 냉기의 폭풍을 피닉스와 천둥새의 융합기를 통해 만들어 낸 화염의 폭풍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두 개의 달의 마력의 영역을 통해 그 힘을 증폭시키기까지 했다.
-재밌구나!
흐림르가 재밌다는 듯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비록 과거의 힘의 극히 일부분이었지만 위대했던 그 시절의 격은 흉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아이언을 압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건 고작 5분.
그 대가로 자신은 다시금 오랜 세월을 잠들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은 자신의 희생으로 서리 거인이 멸망의 시대를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짐은 왕이니라. 그렇기에 나의 일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끝까지 이 순간을 즐기고 싶지만…… 어서 이 전쟁을 끝내야 하는 바.
흐림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머리에 얼음 왕관이 만들어지고 거대한 푸른 갑주가 생성되었다.
신화시대를 주름잡던 그 모습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순간 서리 폭풍을 밀어내던 화염의 폭풍이 단번에 사라져 버렸다.
-짐이 곧 니플헤임일지니……. 지금 이 순간부터 이곳은 새로운 니플헤임이 될 것이니라.
먼 옛날 존재했던, 절대 녹지 않는 얼음의 대지가 재현되기 시작하면서 아이언의 성역마저 냉기의 대지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의 경지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압도적인 격.
그것으로 만들어진 냉기의 대지에 홀로 선 아이언을 향해 흐림르가 거대한 도끼를 내리쳤다.
바로 그 순간.
-30초. 지금 네 몸으로 버틸 수 있는 내 전력이다. 그 대가로 큰 부상을 각오해야 할 거야.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한 음성.
망령수를 없앨 때 들려왔던 익숙한 음성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쯤이야 수없이 당해 왔던 것이고, 어떤 부상도 목숨보다 귀하진 않았다.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순간 온몸에 자연의 기운이 휘몰아치며 거대한 폭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은 흐림르의 높은 격으로 만든 얼음의 대지를 산산이 부숴 버리며 회오리를 만들고, 흐림르의 전력을 다한 도끼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힘은…….
익숙한 힘의 파장.
그것은 자신과 같은 신의 격을 갖고 있는 자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불완전한 자신의 힘을 모조리 박살 내면서 간신히 구축한 과거의 육체를 모조리 찢어 버렸다.
하지만 폭풍의 힘 역시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나의 패배인가?
흐림르가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금 작아진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그래. 너의 패배다.
회색빛의 날개를 가진 작은 새가 흐림르의 얼굴로 날아들며 말하자 거인 왕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세계의 중심이었던 위그라드실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수호신.
과거 자신과도 몇 번이나 싸웠던 존재가 나타나자 반가움에 미소가 나온 것이다.
-오랜만이군.
-……그래.
-네가 인간의 편을 들 줄은 몰랐군.
흐림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흐레스벨그를 바라보았다.
위그라드실을 제외하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오만함을 갖고 있었기에 신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존재였다.
그런 오만한 녀석이 인간과 계약을 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의 친구가 살아날 희망이 보였거든.
흐레스벨그의 말에 흐림르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잠시 놀란 표정으로 짓던 흐림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간 옛 친우와 대화를 나누던 흐림르는 사라져 버린 흐레스벨그 대신 저 멀리서 한쪽 무릎을 꿇고 지친 표정을 짓고 있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그렇군. 위대한 나무의 부활이라…….
흐림르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아이언을 향해 말했다.
-너의 승리다. 그러니…… 마무리하거라.
거인 왕의 말에 피를 토하면서도 비척거리면서 일어난 아이언이 거대한 백색검을 생성하면서 그대로 거인왕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이미 온 힘을 다 쓴 흐림르는 대항조차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백색검을 받아들였다.
-……재밌는 싸움이었다. 부디 멸망을 이겨 내길 바라마.
흐림르의 말에 아이언이 피를 토해 더러워진 입을 손으로 닦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반드시 살아남겠다.”
그 말에 흐림르가 만족하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