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243화 (243/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43)

76. 희생 그리고 승리 (5)

-분위기가 바뀌었군.

흐림르가 멀리서 느껴지는 기세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바뀌기는……. 그래 봤자 미개한 인간들이지.

흐림르의 말에 화이트 드래곤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블루 드래곤 수장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질질 끌었어. 이제 저 미개한 녀석들을 쓸어버릴 때가 됐다.

예상보다 강한 인간들의 저력.

특히 드래곤들이 느낀 충격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냥 공중에서 안전하게 브레스를 날리고 마법만 날리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인간들의 공중 전력이 강했다.

드래곤의 수장이라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막강한 요새포.

비공선에 달린 수많은 마력포.

비룡 기사들의 수준 역시 상당했다. 그들이 가진 기본적인 무기술은 물론이고, 고유 능력들 역시 까다롭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저번 전투까지였다.

오늘 있을 전투부터는 분명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끝낼 때가 됐지. 곰 새끼랑 미개한 설인 놈은 뒤에서 돕기나 해. 괜히 앞으로 나섰다가 처맞지 말고.

그린 드래곤이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자 에이션트 스노우 베어와 설인이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사나운 기세를 뿜어냈다.

-그만. 거기까지 하지. 네놈들도 초반에 인간한테 당해서 질질 짜던 것 잊었나?

-뭐?

흐림르의 말에 화이트 드래곤의 수장이 기세를 드러냈다.

하지만 같은 고대종이라도 격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한때 최상위 신의 반열에 있던 흐림르를 감히 일개 드래곤 수장 따위가 어찌할 수는 없는 법.

드래곤 로드라도 흐림르에게 한 수 접어 줘야 될 판국이었고, 힘의 회복도 흐림르가 훨씬 빨랐다.

쿵!

대지가 떨릴 만큼 강렬한 기세가 화이트 드래곤의 수장에게 집중되자 화이트 드래곤의 거대한 몸뚱이가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기어오르지 말거라. 고대종이라고 봐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느니라.

흐림르가 드높은 격을 일부 드러내면서 드래곤들을 바라보았다.

본래 오만한 존재들이라 넘어가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거인의 왕이 진심으로 분노하자 드래곤들의 수장들이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얌전해진 드래곤들을 본 흐림르는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말처럼 이젠 끝낼 때가 되었다.

흐림르가 그렇게 말하면서 인간의 군대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이야 약해진 힘에 적응하지 못해서 밀렸지만 이젠 아니었다.

고대종의 힘을 충분히 회복했기에 전력 소모를 줄이고 신과의 싸움을 대비해야 할 때였다.

그렇기에 여기서 인간들을 쓸어버리고 하나둘 깨어나는 고대종들을 끌어모아 전쟁 준비를 해야 했다.

흐림르의 명령에 따라 모든 고대종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그에 발맞춰 몬스터들도 군대처럼 한데 모였다.

대규모 군세가 만들어지자 흐림르가 저 멀리 있는 인간, 그 중에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아이언을 생각했다.

-아쉽군.

흐림르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저 인간을 키워서 제대로 된 전사의 결투를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왕이었다.

서리 거인들을 위해서 개인의 욕구쯤은 참아야 했다.

신화시대 이후 오랫동안 피 끓는 전투를 해 본 적이 없는 흐림르였기에 지금의 이 순간들이 무척 아쉬웠지만 이젠 끝내야 했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인간의 군대로 진격하자 또다시 어린 인간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제 끝낼 때가 되었구나.

흐림르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자 아이언이 말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흐림르 역시 말없이 도끼를 꺼내 들었다.

다시금 시작된 거인왕과 아이언의 전투.

그것을 시작으로 인류의 군대와 고대종들의 대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번에 끝내겠다고 마음을 먹은 드래곤들이 이전보다 훨씬 저돌적으로 공격했고, 그에 발맞춰 다른 고대종들 역시 빠르게 인간의 진형을 뚫고자 했다.

-또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인가?

서리 전사가 비웃듯 욜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욜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역시 더 이상 서리 전사를 단독으로 막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을 막아섰다.

아이언의 신수들이 나올 때까지는 버티기 위해, 그리고 마스터에 근접한 다른 자들이 벽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함이었다.

-지겹군. 이만 끝내자.

서리 전사가 욜크를 향해 흥미를 잃었다는 듯, 공격해 들어왔다.

강력한 돌진에 전력을 다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낸 욜크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한계인가?’

지난 전투들로 이미 욜크의 내부는 엉망이었다.

고작 며칠 쉬었다고 회복될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임했다.

-그 몸으로 용케 나왔군.

단 한 번의 격돌로 욜크의 몸 상태를 파악한 서리 전사가 혀를 찼다.

어느새 서리 전사의 뒤에서 거대한 빙룡이 만들어지며 공격해 들어왔다.

땅에선 흙으로 만들어진 거인이 서리 거인의 앞을 막아섰다.

로바노프와 김정태가 욜크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전사의 긍지는 버렸나?

“그런 긍지보다 널 조금이라도 더 묶어 두는 게 내가 할 일이니까.”

욜크의 말에 서리 전사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방에 있는 마스터 칼로스와 무라딘 역시 이세계인들의 도움을 받아 전사들을 막고 있었다.

-저들도 너와 같은 생각인가?

“……그래.”

욜크의 대답에 서리 전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너의 긍지인가?

서리 전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푸른 창을 만들었다.

-그럼 막아 봐라. 너의 긍지를 보여라. 그럼 나 역시 너를 전사의 예우를 다해 죽여 주마.

수없이 많은 전투 속에서 줄어든 서리 전사들.

줄어든 서리 전사들이 본래 힘을 회복하자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큭!”

욜크가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자 어느새 나타난 카온 템페트가 냉기가 가득 담긴 검을 휘둘러 참전했다.

서리 전사들이 줄어들면서 한 명의 서리 전사에 다수의 6단계 무인들이 달라붙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컥!”

“크윽!”

“쿨럭!”

카온 템페트, 김정태, 로바노프가 푸른 창에 맞아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힘이 회복된 서리 전사의 힘은 가히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마저도 본래의 힘에 비하면 미약한 힘.

과거 서리 거인들이 어째서 재앙이라 불리며 신들과 싸울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 일어서는가?

“……그래야 하니까.”

욜크의 말에 서리 전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맺힌 각오는 명예를 아는 서리 전사마저 인정할 정도였기에 서리 전사도 더 이상 무시하지 않고 전력을 다했다.

‘버텨야 한다. 저들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영웅의 신수들이 깨어날 때까지!’

이미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 따윈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명예롭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났을 때 이름이 남을 수 있도록.

그것이 욜크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그런 그의 바람과 인류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순간 검에 맺힌 오러가 보다 선명해졌다.

[대적할 수 없는 자를 만났음에도 용기를 잃지 않는 모습에 보상을 드립니다. 스킬 최후의 용맹이 생성됩니다.]

-최후의 용맹은 일시적으로 힘을 3배 강화시킵니다. 단! 전투 이후 페널티로 심각한 부상이 초래하니, 정말 위험한 순간에만 사용하세요.

[일시적으로 불굴의 의지가 더 강화됩니다.]

욜크의 귓가로 들려오는 알림음.

한층 더 강화된 불굴의 의지로 오러는 선명해지고 육체 능력도 상승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미 각오는 다졌다!’

욜크가 그렇게 생각하며 최후의 용맹을 사용했다.

갑자기 강력해진 욜크의 모습에 서리 전사가 놀란 눈을 했다.

하지만 지고한 경지에 있었던 자답게 욜크의 상태를 단번에 눈치챘다.

-마지막…… 힘인가?

서리 전사의 중얼거림과 함께 욜크의 오러 블레이드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칼로스와 무라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던 무라딘이 갑자기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내더니 주변에 오러가 맺힌 강철검을 수천 개나 소환했다.

서리 거인의 주먹을 맞고 튕겨 나가 피를 토하던 칼로스가 각성이라도 한 듯 강력한 파동을 뿜어내며 괴성을 질러 댔다.

갑작스러운 남부 마스터들의 각성에 서리 전사들을 막지 못하고 날아간 이세계 6인과 카온 템페트, 카이덴 월, 스카이 랭스 같은 6단계 무인들이 숨을 돌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남부 마스터 3인이 힘을 내자 이세계 6인과 도우러 온 6단계 무인들도 좀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마스터들이 서리 전사의 일격을 버텨 내 주니 빈틈을 노리기 쉬웠고, 그러다 보니 도울 방법도 상당히 많아졌다.

강력해진 서리 전사들을 상대로 아슬아슬하지만 백중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된 셈.

거기다 더 고무적인 것은 강력한 서리 전사와 싸우면서 멈춰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들의 경지가 다시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쿨럭!”

-……한계인가?

서리 전사가 피를 토하는 욜크를 바라보면서 창을 겨누었다.

일시적으로 힘을 강화해 서리 전사에게 대적했다지만 부족한 경지가 채워지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깨달음이 동반되지 못해 육체는 무리를 하게 되고 그 여파는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욜크의 말에 서리 전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어린 인간들을 위해 시간을 벌겠다는 그의 각오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기어코 막아서는 욜크.

그리고 그런 그를 도와서 한계를 넘어서는 이세계인들과 6단계 무인들.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리 전사를 막아서기는 무리였다.

-여기까지군.

서리 전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푸른 창을 꽉 쥐었다.

단번에 욜크를 마무리하기 위해 자세를 잡는 순간 욜크의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러자 서리 전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욜크가 웃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침내…….”

욜크가 그렇게 말하면서 거대한 거인왕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거대한 거인왕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한 인간이 초록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록빛을 시작으로 하늘에서 강력한 두 줄기의 빛이 뿜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거대한 어둠이 서리 거인을 감싸기 시작했다.

-……저것을 기다린 것인가?

서리 전사의 물음에 욜크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급한 건 우리인가? 후…… 그대의 명예를 지켜 주지는 못할 것 같군.

서리 전사의 말에 욜크가 상관없다는 듯 검을 쥐었다.

아이언의 신수들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 서리 전사의 반응만으로도 자신이 할 일은 끝난 셈이기 때문이다.

그건 무라딘과 칼로스가 맡고 있는 서리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왕이 위험하시다.

모든 서리 전사들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아이언의 신수들이 뿜어내는 힘을 막강했다.

그리고 그 힘을 상대하는 흐림르는 오랜 시간 잠들었다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위기를 겪었다.

“후…….”

초록빛에 감싸인 아이언이 긴 숨을 토해 내면서 다시금 검을 들었다.

어느새 그의 몸은 흐림르에게 당한 모든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아이언이 회복하는 동안 대신 싸우고 있는 두 개의 달.

뱁새와 함께 나온 거대한 부엉이의 힘은 마녀와 싸웠던 전성기 시절의 힘보다 더욱 막강한 힘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충분히 흐림르를 몰아붙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아이언이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흐림르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신수는 뱁새와 두 개의 달만이 아니었다.

두근!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또 하나의 신수가 나오고자 하는 의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때마침 저 멀리서 그린 드래곤의 수장이 재빠르게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만한 드래곤이라도 여기서 흐림르가 죽으면 자신들의 패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다급하게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아이언이 빙그레 웃었다.

“너한테 맡길게.”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또 하나의 신수가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삐이이이!

거대한 불길이 날개처럼 휘감긴 새.

피닉스가 그린 드래곤의 앞을 막아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