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242화 (242/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42)

76. 희생 그리고 승리 (4)

서리 거인, 드래곤들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또 다른 고대종이 깨어났다.

-크아아앙!

저 멀리서 들려오는 거대한 울음소리.

그 순간 하늘에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한 마리의 곰이 보였다.

“에이션트 스노우 베어인가?”

제든 윅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역시 명색이 북부 사령관답게 고대 종족에 관한 것은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최전선의 북동부가 뚫리면 산맥 너머의 존재를 자신들이 막아야 했기에 고대에 산맥 너머로 사라진 종족들에 관해서 꿰고 있는 것이다.

“후…… 미치겠군.”

제든 윅스가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더 이상 지휘에 전념할 때가 아니었다.

눈을 다스리는 곰 일족.

수인족의 고대 조상 계열 중 하나로 고대 드루이드들 중 하나로 불렸던 종족이 깨어났다.

이러한 종족들이 더 깨어난다면 인류는 희망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추가로 합류하는 드래곤들 역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힘이 약하다는 점이다.

‘성장할 시간은 충분하다.’

제든 윅스가 그렇게 생각하며 지휘를 하는 대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건 다른 마스터들이나 사령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리 거인과 고대종들과의 격렬한 전투 속에서 병사들과 재능 있는 자들의 성장 속도가 가속화되었다.

그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이…….

-서리 거인을 처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누군가가 운 좋게 서리 거인 하나를 마무리했는데, 그것이 곧바로 보상으로 이어졌다.

“냉기?”

마력이 서린 창에 곧바로 냉기가 서리면서 주변에 푸른 파장을 만들어 냈다.

그러자 병사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무기를 바라보았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강력해진 힘.

그것을 본 다른 병사들이 부럽다는 눈빛을 보내다가 다음 먹잇감을 찾아 나섰다.

고대종을 죽이기만 해도 보상을 받는다.

물론 매번 이런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보상을 받으면 다음 보상을 받기 위한 난이도가 대폭 상승한다.

그렇기에 마스터급이나 그에 준하는 자들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기 사자가주로 확실시되는 에이든이 기사단과 함께 서리 전사를 죽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저 녀석이…… 서리 전사를 죽이고 마스터가 되었다고?”

벽에 막힌 무인들이 다들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마스터라고 보기엔 미숙해 보이는 점들이 보이긴 했다.

일반적으로 벽을 뚫고 마스터가 된 이들은 자연스레 습득하는 오러 블레이드의 운용과 일정 영역에서의 압도적 우위에서 미숙한 점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마스터가 되었기에 시간이 지난다면 고쳐질 단점들이었고, 무엇보다 마스터가 되었기에 홀로 전사 하나를 상대할 정도의 무력을 보유했다는 게 중요했다.

‘더 성장할 수 있다!’

‘벽을 깰 수 있다!’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고대종들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이들은 멸망을 부르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에 불과했다.

-사기가…… 올랐군.

아이언과 전투 중이던 흐림르가 침음성을 흘리면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드래곤들이 나타나고, 에이션트 스노우 베어가 나타나면서 잠시 사기가 저하되었던 인간들이 다시금 맹렬히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사기는 중요하다.

특히 이런 백중세의 전쟁에서는 사기로 인해 상대편 진영이 단번에 밀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흐림르는 지금의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너희들만의 무기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흐림르를 바라보았다.

크림슨의 죽음 이후 제국군은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더 악착같이 고대종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상까지 주어진다?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그렇다는 건 이들의 각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력한 무기를 쥐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확실히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겠군. 하지만…… 그건 병사들의 이야기일 뿐.

흐림르가 그렇게 말하면서 도끼를 들어 올렸다.

전보다 훨씬 강력한 기세가 주변을 잠식해 들어갔다.

거대한 크기의 푸른 거인의 몸에서 투기가 흘러나왔고, 그것이 냉기와 결합되면서 강력한 파장을 만들어 냈다.

-분명 내 전사들을 상대할 자들은 늘어날 것이고, 저 오만한 드래곤의 수장들을 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도 생기겠지.

흐림르가 그렇게 말하면서 마스터가 될 싹수가 보이는 인간들과 드래곤의 수장을 상대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두 가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네가 과연 날 상대할 수 있을까?

흐림르의 물음에 아이언은 입을 다물었다.

분명 자신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막혀 있던 벽이 무너지면서 거침없이 ‘성장’이라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흐림르를 상대하는 게 벅차다.

아무리 빠르게 성장한다고 한들 본래 있던 힘을 회복하는 것에 비하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힘을 회복할수록 흐림르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본래 지고의 경지에 있던 자답게 전투 상황에서 아이언보다 넓은 시야를 갖고 있다 보니 중요한 순간에서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쿠우웅!

“큭!”

-정말 날 막을 수 있겠느냐?

흐림르의 물음에 아이언은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버틴다.’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검을 들어 올렸다.

점점 버거워지지만 딱 한 번!

흐림르를 이길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은 올 것이다.

‘신수들만 온다면 승부를 걸어 볼 만해.’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세를 잡았다.

-버텨 볼 생각인가? 아니면…… 뭔가 노리는 것이 있는 것인가?

흐림르의 중얼거림에 아이언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이미 몇 번이나 보인 적 있는 강철의 길이 펼쳐졌다.

기본을 극한까지 연마하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그것을 보여 주는 아이언의 검술.

극히 단조롭지만 완벽한 자세에서 나오는 힘은 천하의 흐림르조차 밀리게끔 만들었다.

기초적인 자세이기에 빈틈이 없고, 단조롭기에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극한의 효율과 안정을 추구하는 아이언의 검술에 ‘전진’이라는 힘이 가미되면서 다시금 흐림르를 밀어붙인다.

하지만 전과 달리 형편없이 밀리지 않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흐림르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흐림르가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마치 다음번엔 더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그리고 그가 경고했던 것처럼 다음 싸움에서는 아이언이 강철의 길을 사용해도 더 이상 흐림르가 밀려나지 않았다.

-밀리는 것은 오늘까지일 것이다.

흐림르가 그렇게 말하면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거의 백중세의 모습을 보인 흐림르였지만, 오늘도 두 발자국 정도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다음 싸움에서는 밀려나는 대신 아이언을 몰아붙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그의 생각처럼 다음 싸움이 시작되자 아이언이 점차 밀려났다.

-이제 내가 우위인가?

흐림르의 말에 아이언이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흐림르의 힘의 회복 속도가 아이언의 성장 속도를 앞질렀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는 힘든 싸움이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에이션트 스노우 베어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조금씩 밀어내던 인류의 군대는 다시금 밀려나고 있었다.

조금씩 밀어내서 만들어 낸 거점들을 하나둘 뺏기기 시작했으며, 고대종에겐 유리한, 하지만 인간에겐 가혹한 환경이 조성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존재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인간들의 성장세였다.

그 와중에도 무서운 속도로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또다시 성장하는 인류의 군대가 고대종들을 몰아내고 승리를 차지했다.

“……우리가 시간을 벌어 줘야 하오.”

제든 윅스의 말에 사령관들을 비롯한 남부의 마스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종과 싸우면서 이세계인들은 마스터를 넘보기 시작했고, 제국에 존재했던 천재들 역시 마스터라는 벽에 다다르고 있었다.

상대가 강해진다면 이쪽 역시 강해지면 될 일이다.

그것을 가장 잘 증명하는 것이 바로 아리엘과 에이든이었다.

마스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미친 듯이 성장하고 있는 두 천재들.

그런 두 천재들의 뒤를 다른 천재들 역시 따르고 있었다.

이들을 위해서 기존의 마스터들이 시간을 벌어 주어야 했다.

“힘들겠지만 버텨 주시오. 한때 대륙을 주름잡던 분들답게 적어도…… 저 아이들이 성장할 시간은 버텨 주어야 하지 않겠소?”

제든 윅스의 말에 모든 마스터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사령관들과 남부의 마스터들이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진 후 회의는 파했다.

“점점…… 힘들어지고 있소.”

남부의 마스터 중 하나인 욜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것은 칼로스와 무라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사령관들은 전투를 치를수록 강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남부의 마스터들은 아니었다.

한 번 배신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대 신의 잔재 때문일까?

타락한 힘의 흔적이 남았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시스템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

다른 이들보다 보상도 작았다.

그것은 곧 성장의 차이를 만들었다.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인가?”

칼로스의 말에 무라딘과 욜크가 쓴웃음을 지었다.

주신은 결코 잊지 않았다.

속죄를 청하며 전쟁에 참전했지만 주신 입장에서 보기엔 살아남기 위해 줄을 갈아탄 것에 불과할 것이다.

어쩌면 이 전투까지 마치면 주신도 용서해 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과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남부의 세 마스터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가뜩이나 제국의 마스터보다 처지는 실력인데, 성장의 차이까지 겹친다?

그렇다는 건 실력 차이가 더 벌어진다는 뜻이고, 제국의 마스터들조차 점점 강해지는 서리 전사들과 드래곤을 겨우 상대하는 판국에 자신들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마지막만큼 명예로웠으면 싶은데…… 욕심일까?”

“그것보단 과거의 속죄는 우리로 끝냈으면 좋겠군.”

“저들이 성장할 시간을 벌어 준다면 그리될지도…….”

칼로스와 무라딘, 욜크가 차례대로 말하면서 자신들의 마지막을 상상했다.

북동부의 사령관인 크림슨만큼은 아닐지라도, 자신들 역시 명예롭게 마지막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는 남부 마스터들의 다짐이 무색하게 강해지는 서리 전사들과 몇몇 드래곤들은 더 이상 그들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결국 몇몇 강해진 이세계인들과 기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라도 악착같이 버텨 내며 전투를 지속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몇 번의 전투를 더 치르며 버텨 낸 제국군에 또 하나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또 다른 고대종 설인이 깨어났습니다. 과거 악마와 계약한 변이종인 설인들이 깨어나며 악마가 북부에 개입할 여지가 있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알림음에 제국의 수뇌부가 전부 모였다.

“……더 이상 이렇게 버티기만 하는 건 힘드오.”

남부 마스터 욜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적은 점점 강해지고, 다른 고대종들마저 깨어나고 있다.

아무리 인류의 군대가 성장을 하고 있다지만 적들이 강해지는 것이 월등히 빨랐다.

게다가 아이언 역시 점점 흐림르를 상대하는 것이 버거웠다.

다들 그것을 알고 있는지 아이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아이언이 감고 있던 눈을 뜨면서 수뇌부를 바라보았다.

“두 번. 두 번만 더 버텨 주십시오.”

아이언의 말에 사령관들과 마스터들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혹시……?”

라이너가 눈치를 챈 듯 아이언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예. 녀석들이 깨어날 조짐이 보입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언이 심장 쪽에 왼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파동 속에서 신수들의 묘한 파장이 뿜어졌다.

마치 곧 깨어날 테니 조금만 더 버텨 달라는 외침과도 같은 파장들.

“정해졌군.”

아이언의 말에 제든 윅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가 승부를 볼 시기는 두 번의 전투 이후. 그때까진…… 어떻게든 버텨야겠지.”

제든 윅스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현 인류 최강의 사내가 부탁을 한다.

두 번의 전투만 더 버텨 달라고.

그리하면 흐림르를 꺾고 승리를 안겨다 줄 거라고.

그런 그의 부탁에 모든 마스터들이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은 기대를 배반하는 법이 없었고, 몸이 짓뭉개지고 온몸이 상처로 뒤덮여도 지켜 낸 크림슨의 기대마저 충족해 주었다.

그렇기에 믿었다.

모두의 믿음 속에서 기어코 두 번의 전투를 더 버텨 낸 인류의 군대.

그리고 마침내 인류의 군대가 승부를 볼 시점이 다가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