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36)
75. 북부에 드리우는 암운 (3)
숫자 자체는 많지 않았다.
신화시대 때 너무 많은 개체가 죽어서인지 고작해야 수천의 거인들만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개체 하나하나가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제국의 거의 모든 군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로 선천적으로 거대한 몸을 갖고 있고, 그 몸에 걸맞은 질긴 피부를 가졌다.
그것뿐이라면 서리 거인이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거대한 단단한 몸이라면 최근 들어 발단된 온갖 무기들로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번째였다.
서리 거인들은 전원이 냉기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서리 거인조차 웬만한 빙결계 마법사들이 우스울 정도의 냉기 활용 능력을 보였다.
여기까지가 선천적인 능력.
세 번째부터는 마스터급조차 두려울 정도였다.
거인들 중 일부는 전사 계급을 갖고 있었는데, 그들은 본인의 강함에 안주하지 않고 무투술을 익힌 자들이다.
그들은 선천적인 능력에 투술까지 사용하는 자들이었고, 이들은 마스터라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거대한 몸으로 투술을 사용한다?
그건 재앙이었다.
“저들의 왕이라…….”
크림슨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선두에 서서 서리 거인들을 이끄는 서리 전사들.
그들을 휘하에 둔 왕이란 존재는 얼마나 강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늙은 자신은 옛적에 포기한 그랜드 마스터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할까?
“신화시대 때는 정말로 인간이 대적하기 힘들었겠습니다.”
옆에 있던 제든 윅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서리 거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몰려오는 서리 거인의 능력만 해도 인간들에게는 재앙이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은 완벽한 게 아니다.
아이언과 모두의 노력으로 완전한 아포칼립스 강림을 저지했기에 서리 거인들의 능력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신화시대였다면 저들의 힘은 더 강력했을 것이다.
전사라 불리는 자들은 그랜드 마스터에 근접했을 것이고, 일반 서리 거인들조차 마스터급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인류를 멸망시킬 만큼의 재앙.
‘저들의 왕은 말 그대로 신이었겠군.’
서리 거인의 왕은 신화시대 최상위 신에 버금갈 만한 존재라는 기록이 딱 맞았을 것이다.
“……막을 수 있겠소?”
크림슨이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현시점에서 서리 거인의 왕을 막을 만한 존재는 두 사람뿐이었다.
오래전부터 제국 최강을 다투었던 두 가주.
사자가주와 신검가주가 확신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항상 자신감에 차 있는 두 사람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로 멀리서 느껴지는 서리 거인의 왕이 뿜어내는 존재감은 막강했다.
쾅! 쾅!
마침내 서리 거인들의 본대가 선봉군단이 자랑하는 북부산맥의 방어선을 공격했다.
이미 동쪽이 뚫렸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두 분은 일단 움직이지 마시오.”
크림슨의 말에 두 가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 두어도 부족하기에 벌써부터 힘을 뺄 순 없었다.
서리 거인을 막기 위해 제국의 모든 전력이 뭉쳤다.
1. 서부와 기동 야전군을 제외한 모든 사령관.
2. 남부 연합의 마스터 전원.
3. 이세계인과 최상위 모험가 전원.
이 모든 전력이 오직 서리 거인을 막기 위해 모인 것이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크림슨이었다.
경험 많은 노장답게 선두에 서서 서리 거인들을 지휘하는 서리 전사를 향해 폭풍의 검을 만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다른 마스터들도 저마다 전사들을 하나씩 붙잡고 싸웠다.
남은 전사들은 기사단과 마법사들이 사력을 다해 발을 묶었다.
“제국의 거의 모든 전력이 모여도 열세인가?”
사자가주 라이너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황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선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전사들을 도륙 내고 싶었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서리 전사를 적어도 셋 이상은 묶어 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내오는 서리 거인의 왕이 보내는 힘은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끔 강제하고 있었다.
그건 신검가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이 표정을 구긴 채 조금씩 밀리는 전황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치지직! 동쪽 전선. 복구 완료.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통신음에 두 가주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기동 야전군의 합류로 전선 복구 완료했고, 현재 임시로 성벽 복구 중.
동쪽 성벽을 뚫고 들어온 서리 거인들을 처치하면서 기어코 전선을 복구한 기동 야전군을 보면서 근방에 있던 장교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는데?”
“남쪽에서 미친 활약을 벌이더니 여기서도 활약해 줄 모양이네.”
과거에 기동 야전군과 친분을 맺은 북동부의 장교들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점차 밀려 가는 전황 속에서 들려오는 승전보는 꺾여 가는 사기를 회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밀리는 전선이 회복될 리가 없었다.
“서리 전사들이 문제군.”
“마스터급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두 가주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일 강해 보이는 서리 전사를 크림슨이 묶고 있었고, 북부 사령관이나 동부 사령관은 서리 전사를 둘이나 상대했다.
남부 사령관은 특유의 광역기를 사용해 의도적으로 서리 전사와 싸우면서 다수의 서리 거인들을 막고 있었다.
문제는 남부 연합의 마스터들이다.
제국의 마스터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그들은 서리 전사 하나를 묶기도 버거웠다.
그러다 보니 서리 거인을 막기도 버거운 부대들이 일부 전사까지 상대해야 했고, 그러니 전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성벽이 뚫릴 것이고, 그럼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 진영에게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아이스 와이번들이다!
“적어도 수천은 되어 보이는데?”
“하필 이런 상황에서!”
장교들이 탄식했다.
먼 상공에서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비공선 덕분에 그나마 서리 거인들의 전진을 조금이나마 늦추고 있었다.
공중을 타격할 방법이 냉기를 이용한 공격밖에 없기에 최소한의 피해로 공격하는 비공선들.
그런 대규모 폭격이 와이번들에 의해 제한받게 생긴 것이다.
거기다 북동부의 와이번들은 일반적인 와이번들이 아니었다.
특히 산맥 너머에 살고 있는 아이스 와이번들은 태생이 냉기를 사용할 줄 아는 놈들이었고, 극한의 험지에서 살아남은 종답게 특히 강했다.
신화시대에 맹위를 떨쳤던 화이트 드래곤의 별명인 빙룡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개체들이 아이스 와이번들이다.
그런 놈들이 수천이나 몰려오자 제국군 측의 사기가 더더욱 떨어졌다.
“물러서지 마!”
“막아라!”
장교들이 악을 쓰면서 독려해 봤지만 절대적인 전력 차를 극복하기는 힘들었다.
수천의 아이스 와이번들이 본격적으로 제국군의 공중 함대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폭격에서 자유로워진 서리 거인들이 좀 더 저돌적으로 성벽을 공격했다.
쿵! 쿵!
“북부 연합군 측이 위…… 위험합니다!”
“안개군단 측 역시 위험합니다!”
“중앙군 쪽은 뚫리기 직전입니다!”
사방에서 위태위태하다고 보고가 들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 측의 절망적인 상황에 쐐기를 박는 존재들이 등장했다.
“콜드 윙이다!”
거대한 눈과 날개, 두 개의 다리만 가진 괴상한 몬스터.
하지만 가히 재앙에 가까운 존재인 콜드 윙이 십여 마리나 나타났다.
요새포에 비견될 만큼 강력한 냉기를 쏘아 내는 콜드 윙이 십여 마리나 나타나자 제국군의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전선이 거의 무너지려는 순간.
갑자기 아이스 와이번들의 진형 일부가 무너지면서 죽은 와이번들이 무더기로 지상에 떨어졌다.
“어? 저건 서부군?”
한 병사가 서부군의 마크를 보고선 소리를 질렀다.
“서부군이 왔다!”
“서부군이 지원 왔어!”
한때 제국 최강의 공중 함대를 갖고 있다 평가받던 서부군.
그들이 북동부를 지키기 위해 지원 온 것이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가 무너지기 직전의 성벽 위로 떨어지면서 서리 전사 하나를 밀어냈다.
쿠웅!
“지원 왔소.”
서부 사령관 게르만 룬트 슈타트의 등장에 하는 수 없이 나서려던 두 가주가 움직임을 멈췄다.
마스터 한 명과 공중 함대의 등장에 계속해서 밀려나던 인간 군대가 반격을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서리 거인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똑똑한 놈이군.”
크림슨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러가는 서리 거인들을 바라보았다.
전황이 인간들 쪽으로 기울려는 순간 귀신같이 서리 거인들을 후퇴시켰다.
자신들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분위기를 차단한 것이다.
이건 경험 많은 지휘관이 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제든 윅스가 주변을 바라보았다.
서리 거인들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한번 겪어 봤으니 인간들 입장에선 나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서부군이 합류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제든 윅스도 북부 사령관에 오른 자답게 전쟁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그가 보기에 지금의 상황은 인간 측에게 불리한 게 아니었다.
“재정비하면 아까보단 훨씬 잘 싸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북부 사령관 제든 윅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크림슨이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제국 최강의 공중 함대였던 서부군을 제치고 최강의 공군을 가진 기동 야전군을 바라보았다.
“22군단이군요.”
“21군단과 23군단도 오고 있다고 하니 지금보다 여유가 있겠지.”
크림슨이 그렇게 말하면서 늘어날 전력을 생각했다.
게다가 아직 오지 않은 강력한 전력도 있었다.
제든 윅스와 크림슨이 서로 얼굴을 보면서 제국 최강의 전력에 대해 생각할 때였다.
“남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통신장교의 말에 크림슨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기동 야전군 사령관인가?”
“예. 곧 찾아 뵙겠다 전하라 했습니다.”
통신장교의 말에 크림슨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아이언이 어째서 남부 대수림에 남아 있는지는 사전에 보고를 받았다.
“새로운 마스터인가?”
크림슨의 말에 제든 윅스도 빙그레 웃었다.
제국 최강의 전력이라 평가받은 기동 야전군이 ‘완전히’ 합류하게 된다면 이 전쟁도 승산은 있었다.
문제는 저 멀리서 마스터도 엄두를 못 낼 정도의 강력한 힘을 내뿜는 존재였지만, 그조차 아이언이 온다면 어떻게든 해결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부군의 합류로 인한 잠시의 여유.
그동안 인간 측은 무너진 성벽을 빠르게 복구하고 전선을 재정비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제국 측의 방어는 더욱 견고해질 터.
그것을 기대하며 서리 거인들의 공격이 늦어지길 기대했으나, 그건 인간 측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서리 거인은 고작 하루 만에 공격을 재개했다.
거인들의 총공격에 산맥 너머에서 눈치를 보던 몬스터들도 남쪽으로 가기 위해 산맥을 넘으려 했다.
“실버 울프들이다!”
“제길! 아이스 트롤들까지 나타났어!”
“이 기회에 산맥을 넘으려는 거야!”
몬스터들의 대규모 등장에 제국군 측은 당혹스러워졌다.
서리 거인만 해도 버거울 정도인데 몬스터들까지 공격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서부군의 합류로 잠시 희망이 보였는데 다시금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게다가 처음과 달리 서리 거인들은 단번에 인간의 전선을 붕괴시키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회복력을 이용해서 천천히 인간들의 전선을 붕괴시키려 한 것이다.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을 빠르게 수복할 수 있는 서리 거인들과 다르게 인간들은 시간이 걸린다.
그 점을 이용해 거인들은 영악하게 전투를 했다.
보름에 걸친 공격에 제국군 측의 진이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몇몇 성벽이 뚫리며 서리 거인들이 산맥 안쪽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드디어…… 움직이나?”
때가 되었기 때문일까?
마침내 그토록 경계하던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리자 사기가 오른 서리 거인들은 단숨에 제국군의 전선을 붕괴시키려 했다.
바로 그때, 그토록 기다리던 지원군이 등장했다.
콰아아아!
뚫린 성벽으로 넘어오던 서리 거인 몇을 날려 버린 거대한 요새포.
기동 야전군이 자랑하는 초거대 공중 요새포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