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34)
75. 북부에 드리우는 암운
드디어 기다렸던 아이언이 돌아왔다.
그 소식에 기동 야전군 전체가 망령수가 있던 곳으로 몰려들었다.
임무를 나가 있는 자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아이언을 위해 온 것이다.
“다들 격하게 환영하는데?”
아이언의 물음에 카를이 그럴만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매번 제일 고생하는 지휘관을 돕기 위해 수없이 전쟁경험을 쌓고 수련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언이 또 희생하고 말았다.
그 때문인지 지휘관들뿐만 아니라 모든 병력이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적어도 아이언이 돌아왔을 때나, 혹은 다음 전투 때는 이번처럼 아이언이 희생하게 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 때문에 맘고생을 한 것 같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당장 옆에 있는 카를만 해도 얼굴에 수척한 게 보일 정도였다.
황급히 달려온 아리엘이나 카드로, 세리덴을 비롯한 다른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생했다.”
아이언이 달려온 지휘관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한 명씩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다 아리엘을 보고선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너…….”
아리엘의 몸 상태는 거의 만신창이와 다를 바 없었다.
매일같이 강도 높은 수련과 대련, 그리고 스스로 한계까지 몰아붙여 바닥난 정신력까지, 몸이 회복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언이 놀란 건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분명 몸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아리엘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기감은 아이언조차 놀라게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경계인가?’
이미 대수림에 오기 전부터 벽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던 아리엘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엄청난 전투 경험을 쌓고 보상까지 받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벽을 허물고 경계에 들어서게 된 듯싶었다.
하지만 아이언이 보기에 아리엘은 스스로 경계에 들어섰다는 자각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하…… 그렇다고 내 입으로 알려 줄 수도 없고…….’
괜히 아이언이 ‘너 지금 마스터의 경계에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힘겹게 부순 벽이 다시금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혼자 끙끙대면서 애써 모르는 척하고는 다른 지휘관들을 격려했다.
기동 야전군의 복귀 환영을 축하하는 환호 속에서 임시로 만들어진 지휘부로 향했다.
“내가 없는 동안 다들 노력한 게 보이네.”
지휘부로 오면서 쓱 둘러본 아이언은 기동 야전군의 전체적인 수준은 단번에 파악했다.
아포칼립스의 첫 번째 스토리를 깨고 얻은 보상 덕분에 수준 자체가 올라간 것도 있지만 그 보상을 체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게 보였다.
매일같이 고된 훈련을 했는지 여기저기 훈련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병사들 역시 여기저기 뒹군 흔적들이 보였다.
“그런데…… 폴덴은 어디 있는 거냐?”
“여기 있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지휘부 안으로 들어온 폴덴이 산더미 같은 서류 더미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건?”
“너희들이 수련한다고 미룬 서류들.”
카드로의 물음에 폴덴이 이를 갈면서 지휘관들을 바라보았다.
특히 정찰 임무를 담당하는 레인저 대장 닉스 콜과 공군을 담당하는 카드로는 식은땀을 흘리며 폴덴의 눈을 피했다.
“정말 빌어먹게도 시간 맞춰서 오셨습니다?”
폴덴이 그렇게 말하면서 두툼한 서류 더미를 아이언에게 안겨 주었다.
“현재 북부 현황입니다.”
“심각해?”
“많이 심각합니다.”
아이언의 물음에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폴덴.
그것을 들은 아이언이 황급히 폴덴이 정리한 정보지를 훑어보았다.
“전쟁이 시작된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 북동부 현황이 담긴 정보를 단번에 읽어 내려간 아이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자세한데?”
“레이븐 전원을 북부에 파견했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폴덴이 지친 표정으로 답했다.
“서부는?”
“서부 사령부에서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북부가 심각해 서부까지 저희 정보부를 파견할 여력이 없습니다.”
“흠…… 지금 북부 상황을 보면 기동 야전군의 정보부 요원은 전부 북쪽에 가 있다고 봐도 되겠네?”
“예. 그걸로도 부족해서 레이븐의 힘을 빌렸습니다. 레이븐 수장에게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폴덴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카온은?”
아이언의 물음에 옆에 있던 카드로가 대신 답했다.
“현재 수련 중입니다.”
“혼자?”
“그렇습니다. 수련 방식 때문에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어 이곳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카드로의 대답에 아이언이 턱을 문지르며 고민에 잠겼다.
카온의 수련 방식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기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온은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능력에 비해 컨트롤이 미숙하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카드로의 보고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각 지휘관들에게 추가적인 보고를 받았다.
핵심은 폴덴과 카를이었다.
이미 북부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 북부로 물자를 옮길 준비를 하고 있는 카를과, 막대한 정보를 추려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폴덴으로 인해 기동 야전군은 언제든 움직일 준비가 끝나 있는 상태였다.
길어야 하루 이틀 정도 회복 시간만 있다면 북부를 지원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었다.
“신검가주께선 벌써 북부로 이동했군.”
“……예. 아무래도 서리 거인의 왕이 깨어날 조짐을 보인다니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가신 것 같습니다.”
폴덴의 대답에 아이언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수련이 끝난 카온이 지휘부로 찾아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카온에게 아이언이 손을 내젓고는 레이븐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받았다.
그동안 수련에 전념해서 그런 것일까?
레이븐의 작전 현황에 대해서는 폴덴이 더 알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폴덴.”
“예.”
“네가 레이븐을 지휘한 지 얼마나 됐지?”
“대수림 작전을 끝내고 난 후부터입니다.”
폴덴의 대답에 아이언이 생각에 잠겼다.
“후…… 이거 아무래도 재편을 해야겠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지휘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움찔거렸다.
갑작스러운 재편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아이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레이븐은 폴덴의 휘하로 들어가는 게 맞는 거 같다.”
아이언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카온은 표정 변화 없이 받아들였다.
현재 기동 야전군에서 아이언을 제외하고 무력 순위 1, 2위를 다투는 카온이 대체 어디로 들어갈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카온.”
“예.”
“네가 21군단을 맡아라.”
아이언의 말에 다들 눈을 크게 떴다.
“21군단은 정예화 군단으로 간다. 남은 인원은 23군단에 몰아넣고. 22군단은 딱히 변화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카온이 레이븐을 키워 왔던 방식을 봐 왔던 아이언이기에 그에 맞는 군단 운용 방식을 만들어 주었다.
정예화되는 21군단, 공군과 정찰 특화의 22군단, 방어에 특화된 것에 더해 가장 많은 병력을 운용시키는 23군단.
이렇게 각각의 특성이 명확하게 되자 직할대에도 방향을 명확하게 잡아 주었다.
가장 먼저 기사단과 돌격대의 특성을 명확하게 했다.
“기사단은 방어를 중심으로, 돌격대는 토벌을 중심으로 해. 그리고 레인저는 정찰 임무에만 특화시킨다. 전투는 돌격대에게 맡겨.”
“예!”
아이언의 명령에 직할대의 대장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마법 부대와 정령 부대는 딱히 명령할 게 없었다.
있다면 대수림에 있는 영수들과 정령들과 계약한 자들이 많기에 정령 부대를 대폭 늘리는 것뿐.
군수는 카를이 잘하고 있기에 건들 게 없었고, 정보는 레이븐을 휘하로 두었기에 폴덴의 지위가 대폭 늘어났지만 어차피 지금도 레이븐을 운용하는 것은 폴덴이기에 지위만 명확하게 해 준 것뿐이었다.
“그럼 아리엘 군단장은…….”
카드로가 아리엘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그건 다른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붕 뜬 상황이었음에도 아리엘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아이언의 명령만을 기다렸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이언이 말했다.
“아리엘은 한동안 나와 같이 움직인다. 직위는 보류. 향후 부사령관으로 임명해 내가 부재 시 전군을 이끌게 할 생각이다.”
아이언의 발언에 아리엘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잠깐 본 아이언은 카드로를 보았다.
“카드로.”
“예!”
“북부로 먼저 움직일 준비를 해라.”
“예.”
망설임 없는 카드로의 대답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인 후, 다른 지휘관들에게 말했다.
“카온과 세리덴은 개편이 끝나는 대로 움직여.”
“예!”
“예!”
카온과 세리덴마저 명령을 내리자 아이언이 남은 직할대 대장들을 바라보았다.
“기사단을 제외한 모든 직할대는 곧장 북동부 사령부로 움직여. 사령부에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그곳을 임시 진지로 사용한다.”
“북동부에 연락 넣어 두겠습니다.”
폴덴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를에게 말했다.
“카를, 넌 남부 지역에 남아서 물자 관리를 좀 부탁해.”
“네.”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 너도 넘어와.”
그렇게 모든 명령을 내린 아이언은 아리엘을 데리고 지휘부를 나섰다.
그동안 마스터라는 벽을 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는지 다른 이들보다 배는 수척해진 얼굴을 하고 있는 아리엘을 보면서 아이언은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벽에 막혀 좌절한 게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한계 이상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아리엘의 지금 상태도 썩 좋지 않았다.
‘도와줘야겠지.’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림의 한적한 공간으로 나왔다.
공터에 도착한 아이언이 가만히 그녀를 보며 물었다.
“아리엘.”
“예.”
“스스로 마스터에 얼마나 다가섰다고 생각해?”
아이언의 물음에 그녀가 가만히 입을 다물면서 고민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리엘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벽에는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그 벽을 부술 만한 깨달음이 부족합니다.”
아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스터라는 벽은 견고했다.
망령수를 쓰러뜨리고 보상을 받았을 땐, 마스터까지 금방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후…….”
아리엘의 모습을 본 아이언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재 아리엘이 가진 문제는 딱 하나였다.
마스터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경계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자각하지 못하게끔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다 이번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아이언에 대한 부채감까지 겹치니 벽을 뚫었음에도 심마가 찾아와 또 다른 벽을 마주하게 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아이언이 단호하게 말했다.
“난 북부로 갈 때까지 널 부사령관으로 만들 거다.”
아이언의 말에 아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버텨. 그리고 뚫어 봐. 그럼 넌 마스터가 되어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한 아이언이 주변에 강력한 기세를 뿜어냈다.
하지만 단순히 기세만 뿜어내는 게 아니었다.
자연의 기운을 휘몰아치면서 아리엘에게 막대한 힘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큭!”
“대수림에서의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자책했나? 그래서 마스터가 되려고 몸을 혹사시키면서 수련한 거야?”
아이언의 물음에도 아리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지도 못할 만큼 아이언이 몰아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면 이걸 뚫어 내. 뚫지 못한다면 마스터에 오르는데 몇 년 이상을 헤맬 거다. 그러니…… 반드시 뚫어.”
그렇게 말한 아이언이 아리엘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마음에 있는 죄책감, 잡생각 모두 버리고 이 기세를 뚫는 데 집중해. 지금 이 순간부터 넌 어떤 생각도 하지 말고 검에만 집중해. 그런다 해도 이걸 뚫는 건 힘들 테니까.”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의 기운을 더 많이 끌어모았다.
어느새 대수림의 주변에 거대한 폭풍이 생겨나면서 아리엘과 아이언만의 수련장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