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233화 (233/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33)

74. 새로운 신수

악마가 돌아가고, 망령수가 무너지는 동안 아이언은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했다.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기에 정신없이 이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오염된 대수림부터 저 멀리 옛 남부 연합이 있는 지역까지 바라보던 아이언은 어느 순간 자신의 정신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 다 됐다. 그만 놀고 돌아와.

묵직한 음성으로 돌아오라는 말이 끝나는 순간 아이언이 다시금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다.

자유로웠던 감각이 사라지고, 인간의 몸에 갇힌 답답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스터에 이른 감각이었지만 자연에 가까웠던 무한한 느낌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

아이언이 침묵한 채 가만히 자신의 감각에 적응했다.

심각한 내상으로 망가진 몸이었지만 더 심각한 건 외상이었다.

여기저기 치명상을 입은 외상은 악마의 기운 때문인지 외상마저 신성력에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걸리겠어.’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들여다볼 때였다.

푸른 빛을 뿜어내는 새 하나가 빤히 아이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뱁새만큼 작은 새였지만 그 안에 든 격은 악마보다 결코 작지 않은 힘을 갖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넌 누구지?”

아이언의 물음에 푸른 새는 말없이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던 새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 이런 녀석과 계약을 해야 한다니……. 내 신세도 처량하군.

푸른 새의 말에 아이언의 표정이 구겨졌다.

마치 예전에 두 개의 달이 자신을 무시했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팍 상했다.

하지만 납득이 갈 만한 것이, 아이언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푸른 새의 드높은 격은 과거에 그가 어떤 경지에 있었는지 엿보게 해 주었다.

-야.

푸른 새의 부름에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아이언이 고개를 들어 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푸른 새가 부리가 있는 구조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삐뚜름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계약해 줄 테니까 내가 회복될 때까지 네 신수력 좀 가져간다?

“뭐?”

아이언이 푸른 새에게 되묻는 순간 알림창이 떴다.

-?????가 계약 조건으로 힘이 회복할 때까지 당신의 신수력을 독점하고자 합니다. 계약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알림창을 본 순간 아이언의 표정이 구겨졌다.

다른 신수들 역시 기분이 안 좋아 보였지만 격의 차이가 큰지 감히 개기지는 못하고 아이언만 바라보고 있었다.

-짹!

보다 못한 뱁새가 한마디 했지만 푸른 새는 또다시 재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앞으로 싸우려면 내 도움이 필요할 텐데? 그 몸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

푸른 새의 말에 뱁새가 표정을 구기면서도 반박하지 못했다.

-빨리 계약 받아들여. 시간 없다.

푸른 새가 협박하듯 말하자 아이언이 표정을 구기면서 말했다.

“안 해. 꺼져.”

-뭐, 인마? 누군 좋아서 하는 줄 알아? 최소 조건만 겨우 맞춘 녀석이랑 계약하는 나도 × 같아! 근데 해 주겠다잖아!

“안 한다고. 내 신수력이 네 거냐? 어? 네가 뭔데 내 신수력을 독점하냐?”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푸른 새를 노려보았다.

분명 드높은 격을 지닌 푸른 새와 계약하면 자신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사선을 넘나들며 싸워 온 신수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계약을 하고 싶진 않았다.

-하…… 지금 이게 나만 좋자고 하는 일이냐? 네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그러는데…….

“뭐가 되든 상관없으니까 너한테 신수력을 독점시킬 생각은 없다고.”

-미치겠네.

푸른 새가 미치겠다는 듯 날개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모습을 보면 푸른 새도 아이언의 신수력을 굳이 독점하고 싶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아이언의 물음에 푸른 새가 머리를 벅벅 긁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부리는 굳게 다물려 있었다.

말하고 싶은 눈치지만 뭔가 제약이 걸린 듯했다.

뱁새도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애써 아이언의 눈을 피하며 지저귀는 소리만 냈다.

다른 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휴…….”

아이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한숨만 푹푹 내쉴 때, 갑자기 그의 귓가로 알림음이 들려왔다.

[아포칼립스의 첫 번째 스토리를 끝내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보상을 산정합니다.]

-유예된 보상이 존재합니다.

-현재 가장 필요한 보상이 무엇인지 계산합니다.

알림음이 끝나고 한참이 지났다.

반투명한 알림창에는 ‘계산 중…….’이라는 창만 떠 있었다.

[보상이 산정되었습니다. 압도적인 기여도로 인해 주신의 축복 대신 옛 세계수의 정수 일부를 드립니다.]

[첫 번째 스토리를 끝내는 데 너무 큰 업적을 세운 관계로 추가 보상을 드립니다. 보상으로 자연지체와 강철육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미뤄졌던 보상과 망령수를 해치우고 얻은 보상까지 함께 받는 순간 아이언의 몸에 온갖 자연의 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연지체가 MAX가 됩니다.

-강철 육체가 2단계가 됩니다.

-옛 세계수의 정수 일부가 몸에 깃듭니다. 효과는 알 수 없습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자연의 힘.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힘을, 신기하게도 몸이 모두 받아들이고 있었다.

심장 부근에 자리한 세계수의 정수가 그걸 감당하고 있었고, 한계까지 성장한 자연지체 역시 그것을 도왔다.

거기다가 또 한 단계 성장한 강철 육체 역시 그걸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몰려드는 자연의 기운이 많아지면서 점차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푸른 새가 아이언에게 다가왔다.

-정신없는 거 아는데…… 계약 조건을 바꾸겠다.

푸른 새가 한참 자연의 기운에 파묻혀 헤롱거리던 아이언에게 말을 걸었다.

“……뭐지?”

그의 물음에 푸른 새가 아이언의 심장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요거.

푸른 새가 부리로 심장 쪽을 콕 찍으면서 말했다.

-이걸 걸고 계약하자.

푸른 새의 말에 아이언이 가만히 고개를 내려 심장 쪽을 내려다보았다.

막대한 자연의 기운을 끌어들이고 있는 세계수의 정수.

극히 일부분인 것 같은 세계수의 정수 일부분은 아이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걸 지금 푸른 새가 원하고 있었다.

처음엔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푸른 새의 눈을 보자 그 생각이 바뀌었다.

세계수의 정수가 있는 곳을 보는 푸른 새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지금 네 수준으로 이거 감당 못해. 그러니까 넘겨.

푸른 새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더 많은 자연의 기운이 몰려들었다.

이미 뱁새와 신수들이 도와주고 있었음에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솔직히 욕심이 났다.

아주 잠시 ‘이 세계수의 정수 일부분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드는 순간 그랜드 마스터가 우스울 정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수준에선 그건 과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푸른 새가 고개를 끄덕였다.

-1할은 남겨 주마.

푸른 새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의 심장 쪽을 부리로 ‘콕’ 하고 찍었다.

그 순간 작은 부리에 초록빛을 내뿜는 빛 덩이가 딸려 나왔다.

푸른 새는 그것을 작은 날개로 빛 덩이를 톡 하고 떼서 아이언의 몸에 다시금 넣어 주었다.

“윽!”

고작 1할.

하지만 그것이 다시 몸에 들어오는 순간 엄청난 자연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푸른 새가 세계수의 정수를 1할만 넘겨준 건 지금 아이언의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가 딱 이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이언에게서 세계수의 정수를 가져간 푸른 새는 그것을 자신이 먹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무너진 망령수 쪽으로 날아갔다.

-나의 오랜 친구…….

푸른 새가 오염되어 무너진 망령수를 바라보았다.

한때 누구보다 드높은 위치에 있던 자신의 친구의 시체 일부가 타락한 자들에게 농락되어 있는 모습은 참담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시스템이 그의 오랜 친구의 흔적을 갖고 있었고, 극히 일부분이지만 그것이 인간에게 보상으로 내려왔다는 점이다.

-언젠가 다시 그때의 모습을 회복히기를…….

푸른 새가 그렇게 말하면서 무너진 망령수 안쪽으로 초록빛을 내뿜는 빛 덩이를 가져갔다.

그 순간 타락했던 망령수에서 빛이 내뿜어지면서 조금씩 정화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푸른 새가 마침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으으…….”

고작 1할의 기운조차 갈무리 못하고 버벅대는 인간을 보면서 파랑새가 한숨을 폭 쉬었다.

이런 인간과 계약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저어졌지만, 자신의 오랜 친구가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고 새로 시작할 기반을 마련해 준 고마운 인간이기도 했다.

-정신 차려라.

“……볼일은?”

-끝났다. 이제 계약하자.

푸른 새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의 이마에 부리를 ‘콕’ 하고 대었다.

그 순간 아이언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마치 뱁새와 처음 계약했을 때와 같은 느낌.

그것이 느껴진 것이다.

[최초의 나무 위그라드실의 친구이자 폭풍의 신 흐레스벨그와 계약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는 탓에 흐레스벨그에겐 힘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힘이 회복될 때까지 잠듭니다.

-드높은 격을 가진 신수와의 계약으로 신수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신수들이 본래의 힘을 회복하는 것 이상으로 성장합니다. 성장이 완료될 때까지 모든 신수들이 잠듭니다.

※계약할 수 있는 모든 신수와 계약했습니다. 더 이상 신수와 계약할 수 없습니다.

“흐레스벨그…….”

아이언이 멍하니 새로 계약한 신수의 이름을 중얼거린 순간 모든 신수들이 작게 변하며 아공간으로 사라졌다.

이번 보상으로 신수들은 본래 힘을 회복한 것을 넘어 더 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신수들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드높은 격을 가진 흐레스벨그와 계약하면서 자신 역시도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막혀 있던 것이 뻥 뚫리면서 저 멀리서 빛을 비춰 주는 느낌이었다.

비록 벽은 뚫렸다지만 빛이 있는 곳까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법.

그렇기에 아이언이 완전히 성장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것을 알기에 아이언이 눈을 감고 환하게 비춰 주는 빛을 향해 걸어가기 위해 수련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옛 세계수의 잔해에 그 정수 일부분이 안착했습니다. 대수림에 위대한 나무의 씨앗이 생성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북부의 숲을 지키는 세계수처럼 드높은 자연의 왕이 탄생할지 모릅니다. 이 위대한 기적을 만든 당신에게 자연이 선물하고자 합니다.

-완벽한 자연지체를 이룬 몸 대신 무기에 자연의 축복이 각인됩니다.

알림음이 들려오는 순간 아이언의 검에 자연의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숱한 전투로 인해서 여기저기 망가진 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과 함께해 준 검에 자연의 기운이 몰려들면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너도 성장하는 거냐?”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오랜 친구인 ‘철벽’을 보면서 만족스레 미소를 지은 아이언이 자신도 성장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앞으로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성장의 시간을 가진 아이언이 눈을 뜬 순간 거대한 빛이 요동치면서 대수림 지역을 훑고 지나갔다.

“사…… 사령관님?”

가장 먼저 달려온 카를을 본 아이언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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