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232화 (232/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32)

73. 망령수 (3)

악마의 몸이 가루가 되어 지옥으로 사라지는 순간, 남은 힘의 잔재마저 대지에서 올라온 핏덩이가 모조리 집어삼켰다.

지옥의 잔재를 이 땅에 남기는 걸 조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모든 지옥의 힘이 핏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입에 삼켜졌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었던 악마가 사라지는 순간 주변을 환하게 비추던 빛 역시 사라져 버렸다.

“모두 물러나라! 망령수가 무너진다.”

악마와 계약이 끝나는 순간 간신히 유지되던 망령수 역시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나무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모든 이들이 당황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사령관님!”

“사령관님을 구해야 합니다!”

기동 야전군의 장교들이 멀리 있는 아이언을 보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동부 사령관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들이 가는 게 더 위험하네.”

동부 사령관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빛의 날개가 아이언의 몸을 서서히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가 봤자 방해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그였지만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높은 격이 느껴졌다.

“지금 자네들이 할 일은 안전하게 후퇴해서 아이언 사령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네.”

동부 사령관의 말에 모두들 뒤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아이언을 제외한 명실상부 기동 야전군 최강인 아리엘이 가만히 동부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러난다.”

“하…… 하지만!”

아리엘이 가만히 고개를 젓자 뭐라 말하려던 장교들이 애써 입을 다물고는 얌전히 물러났다.

그녀의 결정에 모든 기동 야전군 병력이 뒤로 빠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망령수가 무너져 내려졌다.

악령으로 이루어졌던 수많은 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타락한 기운으로 가득했던 가지들도 뚝뚝 끊어지며 떨어져 내렸다.

-끄아아아아아!

망령수가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자 거대한 눈과 입에서 쉴 새 없이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동안 수많은 생명체들을 흡수하며 얻은 모든 힘들을 토해 내면서 주변에 사악한 기운을 뿜어냈다.

마치 죽기 전에 마지막 발악을 하듯, 온갖 힘을 뿜어내는 망령수 속에서 한 줄기 빛이 희마하게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망령수가 오염시키는 기운을 아주 조금씩 정화해 나갔다.

“저 빛이…….”

“사령관님이겠지.”

아리엘의 말에 뒤에서 나타난 카드로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영원히 오염된 지역으로 남을 것 같은 망령수 속에서 미약하지만 조금씩 정화시키고 있는 유일한 빛.

그것을 보면서 아리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마스터급조차 악마 하나를 감당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리엘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건 옆에 있던 카드로를 비롯한 다른 기동 야전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성장해야 한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아이언이 돌아오기 전까지 적어도 한 단계 이상 성장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무너지는 망령수를 바라봤다.

그렇게 오염된 대수림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나무, 망령수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

[축하드립니다! 아포칼립스 첫 번째 스토리는 인간 측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남부 지역은 주신의 영역으로 인정되며, 악마를 비롯한 모든 외부 존재는 차단됩니다.]

-망령수를 막은 활약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대수림을 정화하는 데 큰 활약을 한 인간들에게 앞으로 정령, 영수와 계약할 기회가 늘어납니다.

-앞으로 대수림 지역에 새로운 ‘세계수’가 생길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아포칼립스 첫 번째 스토리를 인간이 승리로 이끌었기에 악마들과 고대 신 및 고대종에게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 타락한 신의 개입이 확인됨에 따라 타 차원 존재들에게도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그들의 승리를 확정 짓는 알림음에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기동 야전군과 아이언에게 마음의 빚이 있는 이들이었다.

동부 사령관, 남부 사령관, 그리고 깨어난 테리언조차도 안 좋은 표정으로 멍하니 무너진 망령수가 있는 지역을 바라보았다.

자욱한 검은 안개와 무너진 망령수의 잔해 속에 비치는 희미한 빛.

그것을 보면서 언젠가 깨어날 아이언을 생각했다.

“기다리는 건 저들의 몫이니 우린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지.”

테리언의 말에 사령관들이 가만히 기동 야전군을 바라보았다.

다른 군보다 월등한 충성도를 자랑하는 이들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사령관들은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테리언 역시 신검가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이번 전투에서 입은 내상이 워낙 심해서 한동안 정양해야 할 정도였다.

이왕 쉬는 거, 이번 전투에서 얻은 것을 바탕으로 다음 경지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쉴 순 없겠지.’

내상을 다스리는 대로 북동부로 올라가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서리 거인이라…….”

고대에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이들은 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피식 웃었다.

악마에게 처발린 주제에 또다시 강자를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성정이기에 이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후…… 먼저 가 있어야겠지.”

테리언이 다시 한번 망령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기절한 후, 마스터들의 합공마저도 어찌할 수 없던 것을 아이언이 해결했다고 들었다.

그것이 일시적인 힘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아이언이 깨어난다면 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벌써 추월당할 수는 없지.”

테리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신검가의 기사들에게 도움을 받아 가문으로 복귀를 서둘렀다.

그렇게 신검가를 시작으로 제국군의 주력부대들이 하나둘 대수림에서 후퇴해 본래의 지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용병들과 모험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망령수가 쓰러지고 난 후 막대한 보상을 받은 이상 대수림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다음 이벤트를 준비해야 할 때였다.

물론 그중에도 남기로 결심한 자들이 있었다.

바로 아직 영수와 계약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대수림에서 정령, 영수와 계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말에 기대감을 품고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시스템의 말을 증명하듯, 대수림은 망령수의 잔해 속에서 지치는 빛무리를 중심으로 조금씩 정화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빛이 비치는 지역은 타락한 기운이 들끓는데도 불구하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났다.

이런 모습에 많은 학자들과 상인들이 대수림행을 결정하면서 이곳이 돈벌이가 된다는 걸 깨달은 이들이 추가적으로 남기로 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각자의 선택에 따라 대수림을 떠나거나 남는 결정을 내릴 때, 기동 야전군은 어느 때보다 혹독하게 훈련했다.

“일어나라. 사령관님이 깨어나실 때 이런 모습을 보일 거냐? 적어도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 할 거 아냐.”

“예!”

지쳐 쓰러진 병사를 향해 싸늘하게 말하는 간부.

하지만 그 간부의 말에 병사들 중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

아이언이 깨어났을 때 적어도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그것이 기동 야전군 전체가 가진 목표였고, 그렇기에 오염된 대수림에서 혹독하게 훈련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임무를 저버린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대수림에 남았다고 하더라도, 일부는 꾸준히 남동부 사령부를 오가면서 자신들의 할 일을 했다.

거기다 병사들이 혹독한 훈련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간부들 때문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혹독하게 훈련하기 때문에 병사들이 불만을 가질 수가 없는 구조였다.

특히 기동 야전군 내에서 최강을 다투는 세 군단장과 직할대장급들은 더욱 그러했다.

“괴물이냐?”

카드로의 물음에 세리덴과 레온하르트 쌍둥이들이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얻은 보상 때문에 더욱 강력해진 냉기를 제어하기 위해 혼자 수련하는 카온 템페트와 달리 아리엘은 다른 직할대 수장들, 군단장들과 함께 수련했다.

그 방법은 바로 그들 전원과 대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리덴과 레온하르트 쌍둥이들은 아무리 마스터에 가까운 아리엘이라지만 아직 벽을 넘지 못한 이상 자신들 전원과 싸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봤다.

“헉……헉…….”

지친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리엘.

처음 카드로와 세리덴, 레온하르트의 쌍둥이를 동시에 상대했을 땐 고작 20분도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러나 수련이 거듭될수록 버티는 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리고 지금은 쌍둥이들이 지쳐 쓰러지고, 자신들조차 위험할 뻔해졌다.

“더 강해져야 해.”

아리엘이 광기 어린 눈으로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카드로와 세리덴은 닭살 돋는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에 받은 막대한 보상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수련, 수많은 실전 경험으로 마스터라는 견고한 벽은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천재라 불리는 그녀조차 20대 초반의 나이에 마스터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다시 해.”

“후…… 우리도 좀 쉬어야지.”

“그래. 무리해 봤자 좋을 거 없어.”

카드로와 세리덴이 아리엘을 만류하면서 휴식을 청했다.

벌써 몇 시간째 대련을 해 온 그녀이기에 푹 쉴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만류에도 아리엘은 자꾸만 수련을 하려 했다.

그런 그녀를 말리기 위해 눈치 보던 로뎀이 카를을 데려왔다.

“이런다고 마스터가 되는 건 아니야.”

“……알아.”

“그리고 사령관님은 안 돌아가셨어.”

카를이 그렇게 말하면서 멀리 보이는 빛을 바라보았다.

아이언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신성력으로 가득한 빛.

어쩌면 망령수와 싸웠을 때보다 훨씬 강해져서 돌아올 수도 있기에 모든 기동 야전군은 슬픔보다 기대감을 품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강해지는 것. 사령관님은 우리가 강해질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지금 네 꼴이 뭐야?”

카를의 말에 아리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너만 절망한 거 아니야.”

카를이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감았다.

“매번 뒤에서 사령관님이 무리하는 걸 보는 내 마음은 어떨 거 같냐? 너희는 같이 싸우기라도 하지. 나는?”

카를의 말에 아리엘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매번 나도 같이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어. 사령관님이 나를 임명한 이유가 있으니까.”

기동 야전군에서 누구보다 병참에 전문적인 그이기에 맡긴 직책.

군수참모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기에 항상 뒤에서 최선을 다했던 카를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지휘관들이 항상 그를 존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마음 추슬러. 사령관님 오시면 기쁘게 맞이하자.”

카를의 말에 아리엘이 긴 숨을 내뱉으면서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조금이라도 빨리 마스터에 올라 아이언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기에 조급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방금 카를의 도움으로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씩.”

카를의 말에 아리엘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전진하는 것.”

자신들의 사령관의 모습을 보며 정한 기동 야전군의 수련 방식.

조급해하지 말고, 기물에 힘에 기대지 말고 올바르게 조금씩 전진하는 것.

그것을 생각한 아리엘의 눈이 마침내 완전히 맑아졌다.

그렇게 강해지는 데 미쳐 있던 아리엘이 제정신을 찾자, 다른 이들도 하나둘 다시금 올바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카온 템페트 역시 무리하게 홀로 수련하지 않고 몸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자 훈련에 미쳐 있던 기동 야전군도 서서히 템포를 조절했다.

아리엘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무리한 수련을 멈추고 천천히, 하지만 올바르게 이끌어 가기 시작하자 기동 야전군 전체의 분위기 역시 밝아졌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각자 이번 보상으로 얻은 힘을 수련하거나 휴식을 취하며 새로 얻은 힘을 연구하는 등 각자만의 방식으로 더 강해지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자 무리하게 훈련할 때보다 기동 야전군의 수준이 더 올라갔다.

“이제 사령관님만 오시면 되는 건가?”

올바른 길로 성장해 나가는 기동 야전군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카를이 작게 중얼거렸다.

“언제 오실 겁니까?”

카를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망령수의 잔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환하게 빛나는 빛 덩이.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아이언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간절하게 염원하고 있음에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언을 야속하게 생각하며 멍하니 빛 덩이를 바라볼 때였다.

“어?”

갑자기 흔들리는 빛 덩이에 카를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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