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27)
72. 대수림 (2)
대수림에 숨어 있던 악령이 깃든 몬스터들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끔찍한 괴성이 숲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식물들 역시 악령이 깃들면서 괴상하게 변해 있었다.
최악인 것은 공허의 기운에 오염되면서 육체 자체도 심하게 뒤틀려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악령만 깃든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하들에게 가까이 붙지 말라고 해.”
아이언은 지휘관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공중에서 폭격을 하고 장거리에서 포격을 통한 공격만 했다.
단계적으로 대수림의 영역을 줄여 나가려는 것이다.
“폭격만 해! 비룡 기사단은 숲 가까이 붙지 마!”
“비룡 기사단은 비공선 호위만 전담한다!”
“숲에 붙지 마!”
비룡 기사단은 비공선 호위를 위해 공중의 높은 곳에 떠서 간간이 몰려오는 공중형 몬스터들을 처리했다.
비공선 역시 공중에서 화염 마법이 장착된 폭탄만 떨구었다.
“모든 포탄은 화염탄으로!”
“화염탄만 날려!”
“숲을 불태우는 데 집중해!”
포격을 담당하는 포병 부대 역시 숲에서 최대한 먼 거리부터 포격을 이어 나갔다.
남부군 역시 전선에 배치된 포병 부대를 통해 조금씩 대수림을 불태워 나갔다.
바다에 떠 있는 동부군 역시 화염탄으로 대수림을 불태웠다.
대륙에서 가장 넒은 숲을 가진 대수림 전체가 오염된 듯,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서마저 불타는 숲속의 오염된 기운이 줄기차게 뿜어져 나왔다.
“그냥 들어갔다면 끔찍하군.”
동부 사령관이 변이된 개체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마도사가 느끼기에도 오염된 힘이 껄끄러울 정도이니 밑에 있는 부하들 같은 경우 더 힘들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숲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전투를 벌였다면 필패였을 것이다.
“후…… 그래도 숲이라 다행인가?”
동부 사령관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불타는 숲을 바라보았다.
포격과 화염 마법으로 대수림을 태워 나가면서 적들의 영역을 줄여 나가는 작업은 나름 순조로웠다.
며칠에 걸쳐서 숲 곳곳을 불태우니 그때부터는 거대한 숲이 절로 타들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규모의 숲을 대륙에서 지워 버리는 작업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허의 기운에 강화된 몸은 쉽사리 불타지 않은 데다, 그마저도 악령이 깃들면서 의지가 생긴 식물들이 스스로 걸어서 안쪽으로 몸을 피했기 때문이다.
“남부군은?”
“전선을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아이언은 대장선에서 상황을 지휘하면서 대수림의 전경을 확인했다.
숲 전체를 불태울 각오로 포격을 하고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다르게 빠르게 타오르지 않자 아이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마저도 최근엔 한계에 도달했다.
더 이상 화공이 힘들어지는 시점에 도달한 듯, 숲 전역을 불태우며 전진하는 화마는 최근 들어 거의 전진하지 못했다.
“여기까지인가?”
아이언은 검은 안개가 자욱한 곳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숲 전체를 불태우며 중앙으로 들어간 화마는 검은 안개에 가로막혀 조금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아이언이 성역을 전개한 곳에는 검은 안개가 밀려나며 조금씩 전진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화공을 통한 대수림의 영역을 줄이는 작전은 이것이 한계인 듯싶었다.
“사령관님!”
“응?”
갑작스럽게 부르는 장교를 바라본 아이언이 그가 가리키는 영상구를 바라보았다.
대장선에 장착된 영상구를 확대시키자 그곳에 영수로 보이는 녀석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악령에 먹히지 않은 녀석들이 인간들을 바라보고만 있자 비공선들도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언이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내려가야겠다.”
아이언의 말에 카를이 눈치 빠르게 정령사들을 대동시켰다.
-삐…….
신수를 타고 내려가자 상처 입은 영수들이 아이언을 보면서 힘겹게 울었다.
본래 자연의 기운이 뭉친 최하위 정령이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동물에 빙의된 개체들.
타락한 기운을 본능적으로 피하기 위해 빙의한 그들은 악령을 피해 대수림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가 악령들이 물러나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영성을 가진 녀석들이지만 신수만큼 강하지 않기에 깊숙한 곳에 숨었어도 타락한 기운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버티지 못하고 큰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짹!
어느새 나타난 뱁새가 상처 입은 영수들을 치유하자 다른 신수들 역시 나타나 신수력을 한껏 뿜어내 영수들의 힘을 보충해 주었다.
그러자 정령사들도 정령을 소환해 주변을 자연의 기운으로 채워 주었다.
그들의 노력 덕분일까?
많은 영수들이 어느 정도 힘을 되찾으며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삐! 삐삐삐!
귀여운 토끼가 아이언의 앞에 깡충 다가오더니 뭐라고 말했다.
신기하게 아이언은 녀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귓가에 쏙쏙 박히는 녀석의 소리를 시작으로 다른 영수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같이 싸우고 싶다고?”
아이언의 말에 알아들은 듯 많은 영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숲을 타락하게 만든 존재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평화롭게 살던 자신들을 고통받게 한 자들을 대수림에서 몰아내고 싶었다.
대신 불탄 대수림의 영역이 다시금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또한 숲에 숨어 있을 다른 영수들도 구해 달라고 했다.
그들의 요구에 아이언이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영수들은 신수가 아니었다.
자연에 가까운 최하위 정령들만이 동물에 깃들 수 있었기에 가진바 힘은 대부분 미약했다.
오랫동안 영수로 살다 보면 신수가 될 수 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영수들의 힘은 크지 않았다.
전력으로 보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눈을 바라보던 아이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없는 것보단 나았다.
게다가 대수림에는 수많은 영수들이 있었다.
그들을 전부 구한다면 아무리 미약한 영수들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
어차피 타락한 숲을 없애야 하니 그 과정에서 좀 더 수고를 들여 영수를 구하기만 한다면 자신들과 함께 싸워 줄 소중한 전력이 될 것이었다.
-삐!
아이언이 결정을 내리자 가장 먼저 토끼가 근처에 있는 정령사를 향해 폴짝 뛰어갔다.
“어? 어어?”
한 정령사가 멍하니 토끼를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몸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영수들과 정령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마음에 든 정령사들에게 다가간 영수들이 하나둘 그들과 접촉을 했다.
“계약?”
아이언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수많은 영수들 중에 아이언과 계약하고자 하는 자들은 없었다.
아이언의 의아하게 생각하자 머리에 안착한 뱁새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짹!
작은 날개로 팔짱을 끼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작게 변한 부엉이와 피닉스, 천둥새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히 자신들이 있는데 계약을 시도할 간 큰 영수들은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아이언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너희들 참 잘났다!”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트린 아이언은 새로운 작전을 명령했다.
“작전명 ‘영수 구출 작전’, 시작한다.”
-예!
아이언의 명령에 지휘관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각지로 움직였다.
남부군과 동부군에도 이 소식을 전하며 도움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군들도 흔쾌히 허락했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장교들까지 눈을 빛내며 관심을 보였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영수와 계약해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처음에 정령사들에게만 관심을 보이던 영수들은 이내 다른 인간들과도 계약을 시도했다.
정령사의 숫자는 극히 소수인 반면 영수들은 많았기에 전부 계약할 수가 없는 탓이었다.
자존심이 남아 있는지 차마 연이어서 계약하고자 하는 영수들은 없었고, 결국 다른 인간들과 일대일로 계약을 시도했다.
그러다 보니 기동 야전군의 많은 이들이 영수와 계약하게 되었고, 이 소식은 곧 남부로 온 모든 이들의 귀에 흘러들어 갔다.
당연히 이세계인들과 모험가들의 귀에도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그들 역시 영수와 하나둘 계약하게 되었고, 그 이후 남부에 대한 관심에 제국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 이유는 딱 하나였다.
[영수와 계약하셨습니다. 특전으로 ‘동료와 함께 성장’ 스킬을 얻게 됩니다.]
“됐다! 나도 됐다고!”
한 이세계인이 그렇게 말하면서 거대한 곰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계약하는 순간 반투명하게 변하면서 정령화되어 가는 영수를 바라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조금도 없었던 정령 친화력까지 생겨 버렸다.
이 소식이 제국을 강타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남부로 몰려들었다.
“역시 아이언 사령관을 따라다니면 기회가 생긴다니까?”
“북부와 남부 연합은 놓쳤지만 이번엔 놓칠 수 없지.”
“크! 가즈아!”
이세계과 모험가가 서로 어깨를 두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대수림 앞에 만들어진 급조된 요새는 더욱 크기를 불려 나갔다.
사람이 몰려들수록 수많은 상인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몰려왔으며, 그럴수록 대륙 남부 전역이 활기차게 변해 갔다.
그런 상황에 정부의 지원 물자를 갖고 온 중앙군까지 합류하면서 오염된 대수림 근처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모두가 영수와 계약하거나 새로운 퀘스트를 얻기 위해 온 용병들과 모험가, 그리고 그런 그들과 거래하러 온 상인들이었다.
이들 때문에 남부로 모여든 군의 작전 역시 변경되었다.
워낙 많은 용병들과 모험가들이 모여들어서 그런지 더 이상 군이 대수림 지역에 모든 전선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저강도 위험지역 - 용병&모험가
고강도 위험지역 - 중앙군
최전선 - 남부군
어둠 안개 안쪽 지역 탐색 - 기동 야전군.
대수림 해안가 및 티티카 강 유역 - 동부군
이렇게 작전지역이 확립되면서 본격적으로 대수림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아이언이 성역으로 어둠 안개 지역 일부를 공략하면 뒤이어 남부군과 중앙군의 도움으로 정화 지역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별다른 피해 없이 안전하게 어둠 안개 지역까지는 공략할 수 있을 거라 추측했다.
하지만 그건 인간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아포칼립스 첫 번째 스토리의 마지막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수림의 지옥화를 막으십시오!]
-망령수의 완성이 다가왔습니다. 망령수가 완성될 시 지옥에 있는 악마의 완전한 소환이 가능해집니다! 반드시 망령수가 완성을 저지하십시오!
-승리 시 : 대수림 지옥화 저지
-패배 시 : 아포칼립스 두 번째 스토리가 두 군데서 시작됩니다. (1. 북동부 2. 대수림)
[완성까지 - 90%]
아이언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귓가에 들려오는 음성.
그것을 들은 모든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세계수와 비슷해 보였던 거대한 나무.
그것의 존재는 지옥에서 망령들을 소환시키는 망령수였다.
“후…… 그래. 이렇게 쉽게 흘러갈 리가 없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전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어둠 안개 지역을 본격적으로 공략한다. 모두 단단히 각오하도록.”
아이언의 말에 모두가 긴장한 표정을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군은 모르겠지만 기동 야전군은 안전하게 공략하고만 있던 게 아니었다.
아이언의 명령에 따라 어둠 안개 지역에 있는 몬스터와 악령의 특성들을 파악하면서 병력이 그들에게 익숙해지도록 ‘훈련’을 한 것이다.
“드디어 움직이는 것인가?”
“예. 망령수까지 단번에 돌입할 겁니다.”
신검가주의 말에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대륙에 그랜드 마스터가 전무한 이상 타락한 신이나 악마가 강림하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망령수가 완성되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그것을 위해선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문도 집결시키지.”
테리언이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얼마 후, 기동 야전군이 망령수까지 단번에 돌진할 준비를 마치고 아이언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러자 남부군과 중앙군 역시 부랴부랴 준비하기 시작했다.
동부군 역시 강을 타고 망령수가 있는 근방까지 들어갈 준비를 했다.
“돌입을 시작한다.”
아이언의 명령과 함께 어둠 안개 지역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기동 야전군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