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26)
72. 대수림
신검가주와 아이언이 힘겹게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남부군과 동부군에 알려졌다.
남부 연합군과의 전쟁 이후 자신감에 차 있던 제국군의 사기는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 정도라고?”
“그래. 기동 야전군 측에서 말을 아끼는데, 아주 상거지 꼴로 나타났다고 하더라고.”
남부군에서 속닥거리던 병사들은 장교가 지나가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장교들은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어떻게 퍼진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아이언과 신검가주가 거지 꼴로 나타났다는 소문은 이미 남부군의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동부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세계인들과 모험가들한테도 이 소식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대수림이 굉장히 위험하다지?”
“대륙 최강을 다투는 세 사람 중 둘이 상거지 꼴을 하고 복귀했는데 당연하지.”
다른 이도 아닌 아이언과 신검가주다.
그 두 사람이 고전할 정도면 대수림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군의 사기를 걱정하며 두 사람이 안개 속에서 본 것을 감춰 둘 수만은 없었다.
결국 각 군의 사령관들은 아이언이 보낸 영상구를 제국민들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구만.”
“기습 작전은 어렵겠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안개 속에서 오직 감만으로 모든 것을 베어 내는 테리언.
그리고 그 어둠을 가르는 아이언의 신수들의 힘을 보면서 모두가 감탄했다.
“역시 신검가주시군.”
“영웅의 신수들은 가히 명불허전이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며 전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경이 그 자체였다.
그러다 아이언의 일격에 아주 잠깐 어둠의 안개가 걷히면서 정면에 길이 생겼다.
아주 짧은 시간.
하지만 영상구에는 명확하게 찍혀 있었다.
“저건…….”
“허…….”
“이게 무슨 일이지?”
어둠의 안개가 걷힌 순간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패닉에 빠졌다.
거대한 영상구에 보이는 모습.
대수림을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타락한 신의 정체는 바로 ‘거대한 나무’였다.
“세……계수?”
어떤 사람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단어를 그대로 내뱉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만큼 거대한 나무였으며 보랏빛의 타락한 마나를 무지막지하게 뱉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타락한 신이라고?”
“세계수가 타락하기라도 한 건가?”
세계수라고 보이기엔 너무나 흉악스러운 모습에 모두가 경악에 찬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온갖 시체들이 나무 곳곳에 매달려 있었고, 주변엔 타락한 악령들이 가득했다.
거기다 보기에도 기괴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무들이 걸어 다녔다.
“저건…… 타락한 엔트들인가?”
“악령목으로 진화한 놈들도 있군.”
악령에 완전히 오염된 엔트들.
스스로 타락한 기운을 받아들인 트렌트들과 다르게 악령에 빙의된 불쌍한 엔트들.
자연의 정령과도 같은 엔트의 정신 자체를 오염시키려면 웬만한 악령들로는 어림도 없었는데 그걸 해냈다.
그것도 수천 마리 이상으로 보이는 존재들.
그만큼 강력한 악령들이 거대한 나무 주위로 몰려다니고 있었다.
모두가 경악하면서 거대한 나무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영상구 속 아이언과 신검가주가 사방에 몰려드는 공격을 쳐 내면서 황급히 후퇴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
모두가 침묵했다.
엄청난 숫자가 어둠 속에서 몰려들었고, 그것을 한 줄기 빛에 의지하며 돌파하는 둘의 장면은 실로 경이로웠다.
어째서 신검가주와 아이언이 대륙 최강을 다투는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둘이기에 상거지 꼴을 하고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 다른 마스터라면 진즉 죽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 영상을 본 중앙 관료들 역시 위기감을 느꼈다.
“만장일치로 대수림과 북동부 지원안을 가결하겠소.”
굵직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앙 세력인 말다니 후작가와 바레시 후작가를 제치고 새로이 의장으로 추대된 체베라 의장이 의사봉을 땅땅 두드리면서 지원안을 가결시켰다.
매번 귀족들과 혁명 세력이 서로의 의견 충돌로 싸웠던 의회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만큼 이 사인이 중대하다는 것을 뜻했다.
이미 광장에 공개된 대수림은 물론이고, 북동부에서 보내온 서리 거인들이 담긴 영상 역시 충격적이었다.
거대한 거인들이 마력포에 맞아도 약간의 상처만 입고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은 실로 경악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거인들이 냉기까지 사용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중앙 관료들은 신화시대의 표현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째서 과거 인간들이 거인들과의 싸움에서 수없이 희생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것으로 중앙군은 대수림을 지원하고, 서부군은 국경을 지킬 최소 병력을 제외하고 전부 북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하겠소. 또한 북동부와 대수림 지역으로 제국에서 최대한 물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하겠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과 자금을 상세히 검토하시오.”
체베라가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으로 시급한 안건을 상정했다.
“다음 안건은 남부 연합의 포로들에 대한 안건이오. 현재 제국은 위기 상황에 처한 바, 이들을 전장에 투입시켜 죄를 사면하자는 안건이 올라왔소. 법원에서 판결한 형량에 따라 이들이 군에 복무하는 기간이 결정될 것이오. 이에 동의한다면 손을 드시오.”
체베라 의장의 말에 의회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수림과 북동부를 지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번 사안은 수없이 논의되면서 정쟁을 해 왔던 사안이다.
이 건이 특별한 건 그동안 귀족들과 혁명 세력 간에만 이루어졌던 다툼이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사면하자는 측에선 귀족들과 혁명 세력이라도 뭉쳐서 안건을 상정시키려 했고, 대역 죄인급의 수뇌부를 이대로 풀어 줄 수 없다는 측에선 결사반대를 했다.
중립파는 마스터를 비롯한 고위급 전력들만 이례적으로 사면하자고 주장했지만 그럼 평등성을 해치게 된다는 주장에 묻혀 버렸다.
그렇게 서로의 주장들이 매섭게 각 진영을 공격하면서 지금까지 끌고 오게 된 것이었다.
“후…….”
체베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의회의 풍경을 보면서 의사봉을 두드렸다.
땅! 땅! 땅!
나무망치 소리에 모두가 체베라 남작을 바라보았다.
“현재 제국은 위기 상황이요. 그래서 의장 직권으로 중재안을 상정합니다.”
체베라 남작이 그렇게 말하면서 영상구로 자신이 생각한 중재안을 보여 주었다.
1. 마스터와 이세계 6인을 비롯한 남부 연합의 모든 병력은 사면을 걸고 군에 입대시킨다.
의장의 결정에 찬성파는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반대파도 이런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남부 연합군과의 전쟁이 끝났을 때는 자신들이 우세했으나 대수림의 위협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크다 보니 한 명 한 명의 병력이 아쉬운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장도 나름 중재안이라 말한 것답게 반대파에도 만족할 만한 제안을 했다.
2. 무인이 아닌 남부 연합 측 수뇌부는 이 사면 조치에서 제외된다.
3. 타락한 신을 강림시키는 데 직접 관여한 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한다.
4. 위 2, 3번에 해당하는 자들은 보석금 제도를 사용할 수 없다.
5. 군에 입대한 남부 연합군의 병력은 각 군으로 나눠서 보낸다.
6. 강제 입대자들은 죄를 지었을 시 가중처벌의 대상이 된다.
1번을 제외하고는 죄다 반대파에 손들어 준 상황.
하자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성파는 만족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반대파 역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체베라의 결정에 모두가 동의했다.
“남은 안건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합시다.”
체베라가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 안건들을 말했다.
전부 북부와 남부 쪽에 관한 안건들이었다.
만약 전쟁이 길어질 경우 전략물자들을 중앙에서 옮기기보다 남부와 북부에 기지를 두고 빠르게 생산하여 지원하는 편이 좋았다.
지금 하는 안건들은 전부 그런 것들에 관한 안건들이었다.
그리고 이 역시 빠르게 통과되었다.
제국의 위험 속에서 반대할 이는 이미 예전에 숙청당한 지 오래였다.
아무리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제국의 위협에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움직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이득이라도 취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지만 큰 줄기에 해당하는 안건을 반대하는 짓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대수림과 서리 거인의 위협에 빠르게 중앙의 결정이 떨어지는 순간, 남부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아이언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빠른데?”
아이언의 말에 폴덴을 비롯한 지휘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 안건 같은 경우 의회다 보니 황권이 있던 시절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상세 안건 같은 경우 오히려 더 빠르게 처리되었다.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머리 좋은 중앙 관료들이 대거 영입되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굉장하군.”
아이언이 중앙의 결정이 간략하게 정리된 카를의 보고를 받았다.
가장 먼저 수도에서 막대한 군수물자들이 남부 사령부와 기동 야전군의 사령부로 들어온다.
그리고 곧바로 그 군수품을 가공할 대단위 공장 지대 설립을 위한 지원안도 적혀 있었다.
거기에 서부군을 지원하던 중앙군의 핵심 전력이 남부로 합류한다.
그런 상황에서 남부 연합군이었던 전력들을 찢어서 각 군에 일정 부분 나눠 준다는 내용이 있었다.
동부군 - 김정태
남부군 - 히카르두
기동 야전군 - 마스터 무라딘, 로바노프
중앙군 - 제이미
자신들 쪽으로 마스터가 두 명 배치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남부 연합의 마스터 두 명은 북동부로 보냈다.
서리 거인들과의 전쟁에 마스터가 핵심이 될 거라는 중앙의 전략 분석관의 결정이었다.
이 같은 결정에 아이언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대신 이세계 6인 중 4명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전선을 유지 중인 남부군과 대수림을 가로지는 티티카 강 유역에 모여 있는 동부군의 주력 함대.
거기다 지원하러 오는 중앙군까지.
무려 7개의 제국군 중에 4개의 군이 뭉쳤다.
거기에 신검가를 비롯한 남부의 주력 가문들까지 가세했으니 규모만 따지면 북부 대전쟁보다 한참 앞서는 전력이다.
“이렇게 지원해 주는데 미적거릴 순 없겠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지휘관들을 바라보았다.
“기동 야전군, 전원 집결.”
“예!”
그의 명령에 각지에 흩어져 임무를 수행 중이던 기동 야전군이 모조리 집결했다.
미적거릴수록 상대만 강해지기에 아이언이 먼저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제국에서 가장 강한 공군을 가진 기동 야전군이 하늘을 뒤덮으며 대수림의 안쪽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그러자 뒤이어 남부군 역시 전선을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숲을 전부 불태울 생각으로 움직여!”
아이언이 숲을 바라보면서 냉혹하게 명령했다.
그러자 수백의 비공선에서 일제히 폭격을 시작했다.
화염 마법이 각인된 수천 개의 폭탄들이 떨어지면서 울창한 숲을 불태우자 거대한 숲이 불타는 걸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울창한 숲 안쪽에 숨은 기괴한 생명체들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갔다.
“끼에에에엑!”
“끼아아아!”
악령과 기괴한 생명체들이 온몸을 불태우면서 끔찍한 비명소리를 내뱉었다.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불길 속에서 괴성을 질러 댔으나, 그런 그들에게 아이언은 성역을 선사하며 확실한 죽음을 안겨 주었다.
그러자 이렇게 밀고 들어가면 손쉽게 대수림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생각은 곧 바뀔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이제 시작이야.”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정면에서 까맣게 몰려드는 적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