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22)
70. 타락한 신 (1)
사도가 나오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차원 게이트는 보기만 해도 두려울 정도로 끔찍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고작 몇 분도 되지 않아서 주변을 새까맣게 오염시킬 정도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도가 나오는 차원 게이트가 작아 보일 정도로 넓혀진 구멍에서 대체 어떤 존재가 나올 것인지였다.
고대 신들이 스스로를 희생해서 만들어진 차원 게이트.
“신인가?”
차원 게이트 너머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기운에 아이언이 눈쌀을 찌푸렸다.
게이트라는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대한 힘에 절로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의 존재감이라면 신급 존재밖에 없었다.
그런 존재가 게이트에서 나오기 위해 게이트에 힘을 불어 넣고 있었다.
-불……가능인가?
두꺼비의 몸속에 들어간 고대 신이 자조 섞인 말투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대 신들이 희생했음에도 차원 게이트를 넓히는 것으로 끝이었다.
높은 격의 신을 불러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1할도 안 되는 힘을 강림시키는 것도 힘들 정도로 깎여 나갔던가?
한때 신의 반열에 올랐던 고대 신들이 스스로를 희생했음에도 진짜 ‘신’의 힘 일부를 강림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무리 타락했더라도 신의 격은 높은 법.
그런 신을 진짜로 강림시키는 건 웬만한 희생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실감했다.
“다행이군.”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가는 두꺼비를 보며 말했다.
고대 신들이 스스로를 희생해서 차원 게이트를 열 때, 걱정했던 것이 바로 서부에 있는 외부 신을 모시는 세력이었다.
그들의 정체가 차원 게이트 너머에 보이는 존재와 같은 자들인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이 무수한 희생을 하며 저들을 불러낸다면 대륙은 끝이라는 점이다.
“고대 신.”
-……말해라.
아이언의 부름에 소멸 직전에 있는 고대 신이 아이언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차피 소멸될 텐데 어째서 타락한 신에게 붙은 거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소멸될 처지라면 자신들이 활동했던 대륙을 위하는 편이 맞았다.
지금이라도 주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이 백번 옳았으나 고대 신들은 스스로를 희생해 타락한 신을 불러들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름…….”
“뭐?”
-이름을 남기고자 이러는 것이다.
이제는 몸 대부분이 사라져 간 두꺼비를 보며 아이언이 이를 악물었다.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저것을 불러들인다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타락한 신을 느끼며 두꺼비의 남은 몸 일부를 밟아 버렸다.
그러나 두꺼비는 아픔조차 느끼지 않는 듯 웃기만 했다.
-멸망은 막을 수 없다. 고대 신? 외부 신? 지금 일어나는 건 그저 장난일 뿐이다. 진짜 멸망이 시작되었을 때 이곳에 이름 하나 남길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지.
두꺼비가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소멸했다.
그것을 본 순간 아이언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저들은 멸망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포기했다.
그 결과가 저것이었다.
더 강한 자에게 붙어서 이름이라도 남기려는 것.
남부 사람들이 고대 신을 추종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email protected]
멀리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음성.
기괴하고 끔찍한 음성이 아이언의 귓가에 들려왔지만 신기하게도 그 음성을 들은 순간 뜻을 전부 알 수 있었다.
-저항을 포기하고 짐에게 자비를 구하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줄 것이다.
실로 오만한 말이었지만, 차원 게이트 너머의 존재가 말한 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그만큼 강대한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신의 반열에 올랐던 고대 신들이 택한 자라면 웬만한 잡신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대단한 신이라면 어째서 주신의 힘을 뚫고 이곳에 강림하지 못하는 것일까?
“개소리 말고 꺼져.”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며 모든 힘을 신성력에 집중했다.
“기동 야전군!”
아이언의 외침에 멀리 있던 기동 야전군이 전투를 하다말고 아이언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도시 전체에 퍼지는 아이언의 음성에 기동 야전군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전투를 멈췄다.
그러자 검은 기둥 사이로 거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부터 나를 지켜라!”
그의 명령에 도시를 점령하는 데 집중하던 기동 야전군이 그 즉시 중앙으로 몰려들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는 상관없었다.
자신들의 영웅이 명령을 내렸으니 그저 따르면 되었다.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증명한 그의 능력은 기동 야전군에 신의 명령과 같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사령관님을 지켜라!”
가장 먼저 세리덴이 고함을 쳤다.
그의 외침에 23군단이 주변의 병력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돌격대과 중앙을 돌파했다.
돌파한 자리를 뒤이어 직할대의 기사단이 움직이며 아이언의 주변에 방진을 형성했다.
어느새 22군단을 비롯한 기동 야전군의 모든 공군이 주변을 둘러싸며 아이언이 있는 곳에 조금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한 진형을 형성했다.
비공선은 물론이고, 비룡 기사단까지 모조리 아이언을 방어하기 위해 진형을 갖추자, 순식간에 요새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전쟁의 향방이 반대가 되어 버렸다.
“뚫어라!”
무라딘이 명령과 함께 중앙으로 향하려 했지만 그 앞을 아리엘과 카온이 막아섰다.
“그 몸으로 막으려는가?”
온몸에 자상을 입고, 내상까지 입은 아리엘과 카온이었지만 절대 물러서려는 눈빛이 아니었다.
“쯧! 젊은이들을 여기서 죽이는 것이 내키지는 않네만…….”
무라딘이 그 말과 함께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려 했다.
그 순간 그 몸이 멈칫거리는 것과 동시에 상공에서 거대한 뇌창이 떨어져 내렸다.
파직! 파지직!
“마스터는 역시 괴물이야.”
피터 마르비오가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뇌전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그런 그에게 무라딘이 곧바로 검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갑자기 그의 몸을 묶는 무형의 기운과 함께 주변에 폭풍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묶는 거 힘드니까 빨리 공격해!”
알란 리쇼어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피터가 다시금 뇌창을 만들어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숨을 돌인 아리엘과 카온 역시 검을 들어 올렸다.
기동 야전군을 책임지는 네 명의 지휘관이 무라딘을 막기 위해 힘을 합치자, 마스터에 이른 그의 힘으로도 단번에 뚫기가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터는 마스터.
아무리 고유 능력과 천재적인 센스를 갖고 있다고 한들 마스터를 막기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절대 보낼 수 없다!”
아리엘이 한쪽 눈에서 피눈물을 흐르고 있음에도 굳건하게 서서 무라딘을 막아섰다.
그러자 그 뒤에 알란과 피터 마르비오가 강력한 힘을 발현하며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했다.
카온 역시 온 힘을 개방하며 무라딘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그들의 의지에 무라딘 역시 이를 악물었다.
이세계 6인방 중 한 명이라도 자신을 돕는다면 당장이라도 뚫고 지나갈 수 있을 테지만 그들은 어디 갔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제이미와 해리 윌리엄스는 남부군을 돕기 바빴고, 알아사드는 기동 야전군의 닉스 콜과 레인저들을 저지하느라 바빴다.
히카르두와 로바노프가 남부 연합군과 함께 중앙을 공격하고 있지만 기동 야전군의 돌격대와 기사단에 막혀 있었다.
순식간에 전장을 파악한 무라딘이 한숨을 쉬었다.
“후…… 이거 어렵게 되었군.”
무라딘이 그렇게 말하며 동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수룡을 만든 김정태.
그라도 이쪽으로 합류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그의 앞을 막는 자가 존재했다.
6인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김정태 역시 동부군의 천재라 불리는 다니엘 세바요르와 싸우느라 도움을 주기 어려워 보였다.
“크윽! 제발 꺼져!”
김정태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수룡을 이용해 공격했지만 앞을 가로막은 다니엘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어느새 5단계 초입에 이른 다니엘의 검술은 물의 정령을 깃들게 해서 강력한 검술을 뽐냈다.
거기다 고유 능력 때문인지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강력한 물회오리가 만들어지며 수룡을 사방에서 공격했다.
“깔짝대지 말고 제대로 덤벼!”
김정태가 그렇게 말하며 주변에 있는 바다의 물을 모조리 끌어와 다니엘을 공격했다.
물에 관한 압도적인 재능.
분명 다니엘은 김정태에 비하면 재능이 부족했다.
지금도 압도적인 힘으로 다니엘을 공격했으나, 그는 상처를 최소한으로 입는 한도 내에서 공격을 쳐 내며 이리저리 도망쳤다.
“제대로 안 싸울 거면 그냥 꺼지라고!”
김정태가 짜증 난 표정으로 다니엘에게 말해 보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그의 임무는 김정태를 자신이 묶어 두는 것.
김정태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능력이지만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했다.
물에 있어서는 압도적인 재능을 보유한 김정태를 보면 절망적일 정도였다.
하지만 제국의 영웅이 된 아이언은 물론이고, 지금은 인어족과 함께 떠난 마테오조차도 김정태만큼 대단했다.
'마테오와 비교하면 할 만해.'
얼마 전 멸망에 저항하는 자신들을 돕기 위해 나타난 인어족.
인어족과 인간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마테오를 만났던 일이 생각났다.
인어의 힘을 본격적으로 배우며 엄청나게 강해진 마테오를 통해 물의 친화력과 통제력을 배웠던 다니엘.
그때 느꼈던 감정이 바로 좌절감이다.
압도적인 천재를 바라볼 때 느꼈던 좌절감은 이미 충분히 느꼈다.
그렇기에 김정태와 자신과의 차이를 인정하며 그를 묶어 두기 위해 온갖 치욕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길!”
김정태가 이를 갈며 자신을 가로막는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보다 한참 약한 사내에게 가로막혀 있는 동안 중앙에 위치한 아이언은 거대한 검은 기둥 속에서 조금씩 빛의 힘을 발현하고 있었다.
거대한 빛의 힘이 지하에서 뿜어지는 검은 마력을 뚫고 소환진을 조금씩 부숴 나가기 시작했다.
“뭐 해! 막아! 벌레 새끼들이 사령관님 노리도록 내버려 둘 거냐!”
세리덴이 고함을 질러 대며 지근거리에 접근한 암살자들을 베어 냈다.
“어딜!”
어둠을 틈타 공격해 들어오는 알아사드의 앞을 가로막은 세리덴.
그런 그가 화염사자를 만들어 내며 주변의 어둠을 걷어 냈다.
그러자 알아사드가 세리덴의 감각을 속이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어딜 가? 나랑 놀아 보자고?”
세리덴이 어둠을 베어 내며 알아사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굉음과 함께 튕겨 나간 알아사드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세리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히려 그것을 원했다는 듯, 세리덴이 미소를 지었다.
“형님은 지금 바쁘니까 나랑 놀자고?”
세리덴이 그렇게 말하며 혓바닥으로 검을 훑었다.
그런 그를 보며 미간을 찌푸린 알아사드가 그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세리덴 역시 전력으로 그와 검을 부딪쳤다.
기동 야전군의 방진을 뚫고 진입한 알아사드까지 세리덴이 막아 내자 아이언이 잠시 힘을 풀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금 신성력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전력을 다한 신성력 때문에 차원 게이트를 소환한 진이 점점 부서져 나갔고, 차원 게이트를 막는 뱁새 역시 더욱 강력하게 신성을 뿜어냈다.
-건방지구나, 주신의 사도.
그 말과 함께 거대한 게이트를 기괴하게 생긴 눈이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