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19)
69. 남부 대전쟁 (2)
하늘을 뒤덮은 기동 야전군의 등장에 단번에 전선을 밀어 버리려던 거신 군단은 진격을 멈췄다.
대신 그들의 포병 전력과 마법탄을 장착한 다연장 마법 폭탄들이 자리를 잡았다.
부족한 공중 전력을 지상 전력으로 메꾸려는 것이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륙 최강을 자랑하는 동부군을 해군 전력으로 맞서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지상 전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섬 곳곳에 포병들을 배치하고, 함정을 설치했다.
그래서 그런지 단번에 밀고 들어가던 동부군도 일단 포위만 한 상태로 진군을 멈췄다.
“오랜만이야?”
동부 사령관이 아이언이 있는 대장선에 찾아와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이언 역시 환하게 웃으면서 동부 사령관을 환대했다.
“편하게 해. 이제 같은 사령관이잖아.”
여전히 자신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아이언을 보면서 동부 사령관이 어깨를 두드렸다.
기동 야전군의 대장선에서 아이언과 동부 사령관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남부 사령관도 대장선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시설이 좋군.”
대장선의 풍경을 보면서 남부 사령관이 감탄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딱딱 붙어 있는 기존의 비공선과 다르게 기동 야전군의 비공선은 나름 시설이 괜찮았다.
여전히 불편한 곳투성이지만 적어도 시설 하나만큼은 잘 설계하여 불편한 생활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아이언의 인사에 남부 사령관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부군과는 비교도 안 되는군.”
남부 사령관 역시 사령관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서부군을 비롯한 다른 군을 많이 찾아갔었다.
한때 최강의 공군을 자랑했던 서부군 시절의 비공선도 타 봤는데 기동 야전군의 비공선에 비하면 굉장히 초라할 정도였다.
규모에서도 앞서는데, 비공선 자체의 시스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다 모였으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동부 사령관의 말에 남부 사령관과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쟁의 핵심인 기동 야전군의 사령관인 아이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해군은 어떻습니까? 항구를 점령하실 수 있겠습니까?”
“흠…… 쉽진 않아. 하필 섬이나 암초가 많아 가지고, 항구로 접근하기도 쉽지 않고 기뢰도 많아. 가장 큰 문제는 섬마다 저들이 포병을 배치해 놨다는 거야.”
동부 사령관의 말에 남부 사령관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보면 알겠지만 지상군으로 밀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아. 먼저 들어가는 쪽이 무조건 큰 피해를 감수해야 돼.”
지상도 해상도 완벽에 가깝게 방어진을 형성해 놨다.
단순히 포병이나 함정뿐이라면 피해를 감수하고 밀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곳곳에 철갑 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단순히 크기만 한 것인지 아니면 기동 야전군과 싸우던 거신처럼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서 섣부른 전면전은 위험했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어.”
“자신감이 있을 만해.”
두 사령관은 남부 연합의 준비 태세를 보면서 감탄했다.
제국의 3군을 상대로도 충분히 승산을 점칠 수 있는 상황.
게다가 뭔가를 더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기동 야전군과의 전쟁 때 보여 주었던 거신 같은 녀석이 더 있을 걸 가정하고 움직여야 했다.
“일단 시작은 저희 기동 야전군이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피해가 클 텐데.”
“그래도 해야지요. 공중이라 선제공격 시 가장 피해가 작을 겁니다.”
아이언의 말에 두 사령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 높이에서 공격을 시작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민간인을 공격할 확률이 높다.
정밀한 폭격이 아닐 경우 필히 민간인이 희생당할 확률이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군인 입장일 뿐이다.
인권론자나 아이언을 공격하기 위한 귀족들 같은 경우 이걸로 공격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아이언은 그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었다.
“이미 각오를 다진 것 같군.”
“그럼 우리도 호응해 줘야지.”
가장 어린 사령관이 희생하겠다는데, 발맞춰 걸어 주지도 못한다면 제국의 사령관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그렇기에 동부 사령관은 즉시 해군을 움직일 준비를 했다.
남부 사령관 역시 전군에 명령을 내려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그러자 남부 연합 역시 바쁘게 움직였다.
상대가 공격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하니 자신들 역시 전력으로 방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적들이 온다.”
“후…… 많기도 하군.”
기동 야전군과 전쟁을 치렀던 두 마스터 무라딘과 칼로스는 새까맣게 몰려드는 제국군을 보며 긴장을 했다.
지상은 남부군이, 공중은 기동 야전군이, 바다는 동부군이 남부 연합군을 포위했다.
숫자만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 무려 제국군이다.
전부 정예로 이루어진 제국군이 남부 연합군을 박살 내기 위해 전진할 준비를 했다.
“먼저 움직이는 건 기동 야전군인가?”
“그런 것 같군.”
칼로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멀리서 기동 야전군의 비공선들이 서서히 기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남부 연합의 지상 공격을 피하기 위해 최대 상승 고도까지 올라간 비공선들을 보면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욜크가 동부 사령관을 막을 수 있겠나?”
“모른다. 하지만 강철 거인이 있으니 버틸 수는 있겠지. 어차피 승부의 향방은 우리가 아니니까.”
무라딘의 물음에 칼로스가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마스터인 자신들이 전장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했으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신들이 나타나고 고대종이 나타난 지금 마스터란 존재는 전략 병기급 존재가 아니다.
순간 인간의 몸으로 거신을 막아 낸 아이언이 생각났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조차 결국 자신들의 비장의 무기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자네가 남부 사령관을 맡을 건가?”
“그래야겠지, 마법사를 상대로는 쾌검이 상성상 우위에 있으니.”
칼로스의 답을 들은 무라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인정하는 바였다.
“후…… 나만 편한 것 같아 미안하군.”
“미안하면 빌어먹을 기동 야전군 놈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게.”
“그리하지.”
칼로스의 말에 무라딘이 반드시 그리하겠단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라딘의 의지를 느낀 칼로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국의 남부군을 상대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남부 연합의 지상군을 총지휘할 사람은 칼로스였고, 무라딘은 공중에서 강하할 기동 야전군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군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무겁군.”
무라딘이 오늘따라 자신의 어깨가 유독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자신만 죽는 게 아니었다.
부하들과 부하들의 가족까지 전부 죽을 수도 있었다.
잘못된 선택.
단 한 번의 실수로 자신들은 여기까지 내몰렸다.
멸망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 도리어 자신들을 멸망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모두 검을 들어라! 오늘 우리는 여기서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이다.”
무라딘의 외침에 모든 병사들과 기사들이 검을 들어 올렸다.
압도적인 제국군의 위용을 보면서 가라앉은 사기를 억지로 끌어 올린 무라딘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동 야전군을 상대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적군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어느새 준비를 마친 기동 야전군이 최대 상승 고도에서 폭탄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결계를 두드리는 폭격 소리에 병사들이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남부 연합 측 역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듯 비룡 기사들이 날아올랐고, 포탄들이 기동 야전군의 비공선을 때렸다.
최대 상승 고도였음에도 마도포의 빛줄기가 일부 비공선을 때렸다.
쾅! 쾅! 쾅!
폭탄들이 뚫린 결계 사이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남부 연합군은 반격을 멈추지 않았다.
“예상보다 반격이 매섭군.”
“최대 상승 고도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이언이 매서운 반격을 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장교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기동 야전군이 내부를 휘저어 주어야 남부군도 작전을 하기 편할 텐데, 예상과 다르게 공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언이 홀로 떨어져 휘젓기도 쉽지 않았다.
무라딘이 있기도 했고, 저들이 준비한 숨겨 둔 한 수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번에 전면전으로 이어질 것 같은 전쟁은 의외로 서로 전력을 파악하는 선에서 끝났다.
공중전도, 지상전도, 해상전도 서로의 전력만 알아보는 선에서 멈췄다.
서로가 숨겨 둔 한 수는 공개하지 않은 선에서 전투가 끝났지만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고조되었다.
“생각보다 거세군.”
남부 사령관이 철갑 거인이 나서지 않았음에도 막혀 버린 자신들의 공격을 생각하며 아이언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의 주력군이 없음에도 남부군의 공세가 막혔다.
이쪽도 전력을 다한 건 아니지만, 저들의 반격이 매섭기에 이번 전쟁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단기전으로 끝내겠다는 생각은 이번 전투로 바로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동부 사령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쪽에 바다를 아는 놈이 있다!’
그렇게 생각한 동부 사령관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해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길을 아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상대편에 그 물길을 제대로 아는 놈이 있었다.
자신들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일지, 어떤 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지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수적 우위만 갖고 덤벼들었다간 필패였다.
지상군도 해군도 섣부르게 남부 연합을 들이박지 못하고 신중하게 접근하기 시작하자 전투 양상은 길어졌다.
첫 전초전은 전면전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결국 서로의 전력을 확인하는 선에서 끝났고, 그건 두 번째, 세 번째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전략가들의 예상과 다르게 장기전으로 흘러갈 조짐이 보이자 남부 연합 측의 사기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반면에 제국 측의 사기는 조금씩 떨어졌다.
다름 아닌 제국 측에 합류한 이세계인들 때문이었다.
압도적으로 짓밟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장기전으로 흘러가고 남부 연합군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날수록 이 전쟁에 괜히 참여했나 싶어진 것이다.
그냥 보상이나 받아 볼 생각으로 참여했던 것과 다르게 진짜 위험한 전투가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날이 갈수록 표정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제국군은 달랐다.
합류한 이들의 영향을 받아 사기는 조금 떨어졌을지언정 그들의 전투에 대한 의지 자체는 여전히 굳건했다.
제국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이 전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보상만 노리고 모여든 용병이나 이세계인과는 품고 있는 의지나 용맹함이 달랐다.
지루한 대치와 간간이 이뤄지는 소규모 전투가 이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지루하기만 한 대치 상황이었지만 수뇌부는 어느 때보다 바빴다.
서로 간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숨겨 둔 한 수를 파악하기 위해 첨자들과 정찰대를 대규모로 적진에 침투시켰고, 갖고 온 정보들을 취합하고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신병은 몰라도 작은 놈은 단순 기계 거인이 맞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복잡한 기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골렘과 비슷합니다.”
확신에 찬 마법사의 말에 아이언이 눈을 빛냈다.
저들의 주력 병기 중 하나가 단순히 거대하기만 하다면 최악은 피한 것이다.
아이언은 곧장 이 사실을 남부 사령부에 알렸고, 남부 사령관은 곧장 야밤을 틈타 전면전을 하자고 주장했다.
오랜 시간에 걸친 대치로 모두가 지쳐 있는 상황에서 기습적인 공격.
“우리가 먼저 패를 드러내는 게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남부 사령관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번 공격으로 적들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힐 수만 있다면 굳이 패를 아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자정이 지나 새벽이 되자 제국의 남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들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기동 야전군은 일부러 느리게 움직였고, 덕분에 적들은 늘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방심은 치명적인 결과를 냈다.
쾅! 쾅!
폭음 소리와 함께 근접 거리에서 폭발음이 들려왔고 임시로 만들어진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남부 연합군의 장교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분면 적들의 포병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걸 정찰병이 파악했다.
‘그런데 어째서?’라는 생각을 할 때였다.
거대한 철갑을 두른 포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저게 무엇이냐!”
장교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으나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남부 연합군 중 누구도 처음 보는 기물에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그때, 이세계인들에게서 정체가 밝혀졌다.
“탱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