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12)
67. 고대 신! (3)
아이언이 남부 연합군의 주력을 묶고 있는 동안 부하들이 훌륭하게 군을 이끌고 있었다.
아리엘은 기사들을 농락하는 적을 베었으며, 카드로는 스스로를 희생하며 초월체를 막았다.
모두 부하들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지휘관들 역시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직할대의 기사단과 돌격대는 초월체 위주로 공격했고, 세리덴은 나가서 싸우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방어에 전념했다.
레인저는 후방을 휘저으며 적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숫자는 분명 남부 연합군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기동 야전군이 전투를 치르면서 아군의 병력이 더 많았던 적은 손에 꼽았다.
항상 부족한 병력으로 최선의 결과를 내왔기에 이번 전투 역시 익숙했다.
몬스터들과 싸워 왔기에 인간들과 싸운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그뿐이다.
-컥!
“동쪽의 화신체 하나를 처리했습니다!”
레이븐의 말에 카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북동부의 고스트처럼 전원 5단계 이상의 고위 기사들로 구성하진 못했지만 대신 숫자가 많았다.
전부 향후 5단계를 넘볼 인재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위험한 지역만 돌아다니면서 병력들을 도왔다.
“기세가 넘어왔다.”
“최대한 적들을 섬멸해야 한다.”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이참에 전멸시킨다!”
노련한 기동 야전군은 기세가 넘어온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다.
적당한 승리?
그런 건 없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또다시 적으로 돌변해 자신들을 위협할 것이다.
그럴 바에 위험을 감수하고 적들을 섬멸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아포칼립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금, 남부를 하루빨리 정리하고 다른 위협에 대응해야 했다.
이런 기동 야전군의 판단에 남부 연합군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대로 밀리면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아리엘과 싸웠던 뇌전의 창잡이처럼 모아 놨던 힘을 모두 사용하는 고대 신들이 나타났다.
“큭! 미친…….”
증폭된 힘으로 불의 채찍을 휘두르는 여인과, 거대하게 확장된 거북이가 지상에 있는 병력을 향해 몸을 내리눌렀다.
거대한 코끼리가 나타나 마력이 휘감긴 물을 내뿜었고, 거대한 스톤 골렘 수십 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 모습을 힐금 바라보던 아이언이 이세계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저렇게 안 하냐?”
아이언의 물음에 이세계인 중 최강을 다투는 6인이 말없이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화신체를 만드는 고대 신들을 보면서 묻자 김정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런 건 능력 없는 자들이나 하는 거고.”
김정태의 말에 나머지 이세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신이 화신체를 만들어 직접 활동하는 건, 계약자들의 몸을 빌려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계약자들에게 준 권능은 일종의 씨앗이었다.
그것이 발아해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게 하는 건 계약자들의 몫.
고대 신은 그렇게 해서 강해진 힘을 빌려 화신체로 현실에 강림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계약자들이 필요했고, 그럴수록 고대 신이 이곳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뇌전의 창잡이처럼 모아 놓은 힘을 전부 사용해 일시적으로 힘을 증폭시킨 경우다.
“헉……헉…….”
“쿨럭!”
땀을 뻘뻘 흘리거나 심하면 피까지 토하는 계약자들.
고대 신을 강림시킨 대가를 그들이 나눠 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고대 신들도 웬만하면 무리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기동 야전군한테 쭉 밀릴 기세였기에 어쩔 수 없이 힘을 증폭시킨 것이다.
반면에 이세계 6인같이 소멸 위기에 처한 고대 신의 육체를 스스로의 힘으로 현계에 구현시킨 자들은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자신의 힘에 맞는 고대 신을 스스로 택했고, 스스로 발전시킨 자.
격이 한계까지 깎인 그들의 육체를 이 세상에 구성할 수 있을 만큼의 천재들.
그렇기에 강했다.
아직도 마스터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한없이 마스터에 가까워진 그들이기에 조금의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대륙에 6인의 마스터가 새로 생길 판이었다.
당장에 아리엘만 보더라도,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검술과 힘을 접목해 6단계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언이라는 벽은 거대했다.
“괴물 같은 놈.”
김정태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마스터에 한없이 근접한 6인과 마스터 2인이 몰아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압도하는 괴물.
수많은 칭호 효과로 마스터보다 훨씬 강력한 육체 능력과 마력을 보유했고, 하나하나가 마스터에 준할 정도로 강력한 신수들, 끊임없이 샘솟는 신성력, 마지막으로 스스로 마스터에 오른 검술 실력까지.
그 모든 게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아이언은 여유롭지 않았다.
아무리 아이언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마스터 2인에 마스터에 근접한 6인이 각 잡고 덤비는 상황이다.
신성력이야 끊임없이 보충된다지만 오러나 신수력은 아니었다.
그나마 신수력은 세계수가 준 자연력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지만, 오러는 줄어드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싸우는 내내 여유로운 척했지만 저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버티고만 있는 것은 공격을 감행할 정도의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칼로스 공.”
무라딘의 부름에 칼로스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빛으로 서로의 생각을 읽은 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
“흡!”
갑자기 모든 힘을 끌어 올리는 무라딘과 칼로스.
그런 그 둘의 모습에 이세계 6인방이 놀란 눈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전력을 다해 공격해 들어가는 마스터들의 모습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후퇴를 생각하던 그들이 아이언을 향해 모든 힘을 쏟는 상황.
‘눈채챘나?’
아이언은 씁쓸한 표정으로 마스터 둘을 상대하며 표정을 굳혔다.
오러도 심각하게 부족하지만, 신수력과 신성력 또한 빠르게 소모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성력은 특성상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전투를 치를수록 정신력의 소모도 극심해지고 육체도 끊임없이 손상을 입어서 꾸준히 회복시켜야 하다 보니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콰득!
칼로스의 기습적인 공격.
그것을 빛으로 만들어진 방패가 막아 냈지만 이전처럼 완벽하게 막아 낸 것이 아니었다.
고대 신의 힘인 파동의 힘에 버티지 못하고 균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전기인가?’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패를 복구하려 했다. 그러나 순간 뒤이어 날아온 무라딘의 검에 부서지는 빛의 방패.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수천의 강철검에 오러가 담기면서 유사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내 마구잡이로 아이언을 공격했다.
무라딘과 칼로스가 마지막까지 숨긴 결전기.
오의나 비기로도 불리는 기술.
각 가문이 보유한 검술의 정수가 담긴 기술이 아이언을 향해 날아들었다.
쿠우우웅!
“버틴…… 건가?”
무라딘이 멍하니 중얼거리는 순간 그의 검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두 마스터의 전력을 다한 결전기를 버텨 낸 아이언이 여전히 굳건히 그 자리에 서서 기세를 내뿜었다.
“쿨럭!”
“큭!”
강철의 기세가 두 마스터를 찍어 누르고 그 위를 끊임없이 뿜어내는 신성력이 가중되었다.
그러자 결전기를 사용해 힘이 바닥난 두 마스터가 버티지를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였다.
두 마스터는 이어지는 아이언의 공격을 끝끝내 버텨 냈다.
‘힘이 바닥난 상황에서 버텼다고?’
두 마스터가 아이언의 공격을 버텨 낸 것을 본 순간 이세계 6인들도 알 수 있었다.
‘정상이 아니다!’
아이언의 몸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내상을 입은 듯, 입가에 핏자국이 있었고, 신수들 역시 처음보다 위력이 약한 힘을 발현하고 있었다.
두 마스터의 전력을 다한 결전기에 피해를 입은 이 절호의 상황을 놓칠 이세계인들이 아니었다.
곧바로 자신들도 바닥까지 힘을 박박 긁어모았다.
그들의 공격에 간신히 살아난 무라딘이 김정태를 향해 다가갔다.
“저 괴물을…… 묶어 두기만 하시오.”
무라딘의 말에 김정태가 자존심 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을 이세계 6인에게 맡긴 두 마스터는 뒤로 물러나 통신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설마 했는데…… 결국 마지막 작전까지 사용할 줄은…….”
“괴물이군.”
남부 사령부나 동부 사령부가 온 것도 아니다.
오직 기동 야전군 혼자서 남부의 모든 힘을 끌어모은 군대를 막고 있는 것이다.
아이언도 괴물이지만 휘하의 병력도 하나같이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다.
“사…… 사령관님!”
통신병이 황급히 일어나서 인사하려 하자, 무라딘은 그런 그를 제지하고는 통신구를 뺏어 들었다.
“마지막 작전을 시작한다.”
무라딘의 말에 모든 이들이 잠시 침묵했다.
그가 말한 마지막 작전을 지금 사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부 사령부 혹은 동부 사령부의 도움을 받거나 다수의 사령관들이 왔을 때를 상정한 작전.
그만큼 최후까지 아껴 둬야 할 작전이었다.
그런 작전을 기동 야전군 하나를 이기기 위해 사용해야 했다.
-……바로 실행합니까?
통신구에서 들려온 음성에 무라딘이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알겠습니다.
무라딘의 대답에 모든 지휘관들이 대답을 하고는 곧바로 마지막 작전에 돌입했다.
“착잡하군.”
“우리가 너무 자만했던 건가?”
무라딘의 말에 칼로스가 자조 섞인 말투로 아이언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 전력이면 기동 야전군 정도는 가볍게 이길 줄 알았다.
마스터 2이인에 다수의 이세계인들이 포함된 전력.
이 군대를 고작 야전군 1개 규모로 막아 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괴물 같은 제국군은 그것을 해냈다.
단순히 막는 것을 넘어서 자신들의 군대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세계인들이나 자신들의 군대나 계약자들이 무리해서 고대 신의 화신체에 힘을 불어 넣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황을 압도하기는커녕 백중세.
화신체들이 증폭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기동 야전군이 유리해질 것이다.
그리고 화신체들이 패하는 순간, 남부 연합군은 기동 야전군에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작전을 시작했다.
쿠우웅!
거대한 울림과 함께 전장의 한가운데에 거인이 나타났다.
구름이 보이는 곳까지 솟은 거인의 몸은 거대한 크기의 사령부를 발로 밟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런 거인이 등장한 순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모든 이들이 싸우던 것을 멈추고 멍하니 거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제국인들의 귓가로 알림음이 들려왔다.
[고대 신들이 스스로의 힘을 희생해 거대한 힘의 집합체를 만들었습니다. 저들을 저지하십시오.]
-보상으로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막아 낼 시 기동 야전군에 한해서 특수한 버프가 생성됩니다.
-막아 낼 시 고대 신의 계약자들의 회복력이 대폭 하락됩니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퀘스트.
하지만 그만큼 저 거인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이러한 퀘스트는 남부 사람들 역시 받았다.
[고대 신들이 그들의 격을 희생해 거신을 소환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에 부응해 기동 야전군을 섬멸하십시오!]
-섬멸 시 모든 페널티 삭제 및 소모된 힘 즉시 회복
-제한된 승리 시 일부 페널티 감소
-패배 시 능력의 제한 및 일정 기간 능력 사용 불가(화신체 증폭 사용자의 경우 고유 능력 소멸)
남부 연합군에 들려온 퀘스트 음성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수많은 병사들과 장교들이 능력 제한이 걸릴 것을 감수하고 소환한 거신.
어떤 이는 능력이 소멸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퀘스트는 그 모든 걸 없던 걸로 만들어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이미 벼랑 끝으로 몰려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퀘스트는 모두의 눈이 돌아가 버리게 만들었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다시 검을 들어라!”
“진형을 갖춰라!”
지휘관들의 악을 쓴 외침과 함께 남부 연합군의 진형이 다시 갖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소환한 거신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에 발맞춰 남부 연합군 역시 다시금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