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08)
66. 시작되는 전쟁
제국의 수도가 본격적으로 혁명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의회 설립이 공식적으로 허가되자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것은 제국민들의 대표를 뽑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출된 제국민들의 대표들은 우선 황권과 귀족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도 단번에 귀족들과 황족을 없애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사회체제를 전반적으로 갈아엎어야 하는데, 평화로운 시대가 아닌 이상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천천히 조금씩 바꿔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견 충돌도 잦았지만 적어도 급격한 변혁으로 인해 싸움이 일어난 일은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없겠어.”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며 무너진 황궁이 있던 자리에 건설되고 있는 의회 건물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할 일은 새로운 제국의 기반을 닦을 때까지 보호해 주는 것.
그걸 위해 귀찮더라도 수도로 와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금 하는 걸 보니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왔나?”
“예.”
아이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묻자 폴덴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남부 상황은?”
“위험합니다.”
폴덴은 그렇게 말하며 알아본 정보를 넘겼다.
“레이븐의 정보도 취합한 것입니다.”
아이언은 첩보들을 이용해 세세한 정보까지 정리된 글을 쭉 읽어 내려갔다.
제국이 각성한 이후로 서부와 남부 역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바로 외부 신과 고대 신의 실체를 아는 자들이 생겼다는 것.
문제는 그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국으로 망명 신청하는 자들까지 죄다 잡아들여 노예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아이언도 모른 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반항하는 자들은 잔인하게 살인하고, 본거지에 대해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을 경우 끔찍한 고문을 했다.
그것이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확실히 서부보다 남부가 더 위험하군.”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서부는 그래도 혁명 세력과 연합해서 숨구멍이라도 트였는데 남부는 아니었다.
혁명 세력조차 주신보다 고대 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외부 신들과 달리 고대 신들은 서로 연합이란 걸 할 줄 모르기에 더욱 위험했다.
현신하기 위해 계약자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아이언은 군을 움직인다는 발표와 함께 세리덴을 비롯한 23군단을 움직여 남부를 압박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이제 우리도 움직일 때가 된 것 같다.”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폴덴을 바라보았다.
“모두 불러. 내일까지 수도를 뜬다.”
“예!”
아이언의 명령에 폴덴이 고개를 숙이고는 급히 뛰어갔다.
“…….”
폴덴이 가져온 정보를 다시 한번 본 아이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벌써 화신체를 사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신자들을 굳건히 하는 데 시간을 소모하는 서부와 달리, 남부 같은 경우 계약자를 이용해 완벽히 현신하려는 계획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위험한 건 외부 신이나 몬스터가 아닌 고대 신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새로이 설립된 의회가 일을 잘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잘하고 있네.”
저만치에서 혁명 세력의 핵심 인사인 체베라 남작이 다른 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임시 의회에서 그동안 불합리했던 것들을 죄다 끄집어내서 논의하고 있었다.
현대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게 중요했다.
중앙의 핵심 귀족 가문인 말디니 후작가와 바레시 후작가가 격렬하게 반대하는 중이었지만, 대세는 이미 혁명 세력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도의 상황을 체크한 아이언은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제국의 상공을 활공하던 수십의 비공선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엄호하듯 더 많은 숫자의 비공선들이 활공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카드로가 대표해서 말하자 아이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룡을 타고 대장선에 타자 아리엘을 비롯한 주요 지휘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세리덴은?”
“현재 남부 왕국 연합 국경선에 있습니다. 왕국 연합군과 대치 중입니다.”
폴덴의 보고에 아이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조금 물려.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쓸데없는 전투는 자제하라 해.”
“예!”
폴덴이 다급히 통신장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본 아이언은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남부에 도착하자마자 전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모두 마음 단단히 먹도록.”
아이언의 말에 다들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몬스터와 싸울 때도 단단히 마음먹으라는 말은 정말 위급할 때 말고는 잘하지 않았다.
자이언트 웜 군단이나 만티코어의 연합군과 싸울 때를 제외하곤 들어 본 적 없던 말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남부를 점령할 생각도 해야 한다.”
“……아.”
“남부 쪽 인간들을 전부 죽여야 할 수도 있다.”
아이언의 말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가 될 수도, 노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악마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와 계약을 했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 쓸데없는 동정이 아군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사령관의 말에 흔들리던 부하들의 눈빛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아군’이라는 말에 다들 정신을 차린 것이다.
“다 죽일 각오로 임해라. 그래야 아군이 산다.”
“예!”
아이언의 말에 지휘관들은 독한 눈으로 대답했다.
그런 부하들의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아이언은 추가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남부로 도착하기 전에 그들의 정보, 그리고 고대 신에 대한 것들을 부하들과 상의하며 전력과 전술을 수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동 야전군이 남부로 떠나는 순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귀족들이 다시금 군대를 모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운 지 오래였다.
의회가 설립된 그 순간부터 귀족들에게서 뇌물을 받은, 수도 방위군과 치안대원에 소속된 자들은 전부 감옥으로 직행했다.
혁명 세력이 기동 야전군과 아이언이 수도에 버티고 있는 이 순간에만 그들을 처벌하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그런지 수도는 아이언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평온했다.
반면에 남부는 엉망이었다.
‘남동부를 평정했던 아이언이 온다!’
이 소식에 모든 남부 사람들이 불안에 떨었다.
가장 두려움에 떠는 건 왕족들이었다.
혁명 세력만 해도 골치 아팠는데 아이언이 직접 움직인 것이다.
이미 고대 신은 남부 세력을 묶어 주는 구심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이언은 주신을 믿는 자들을 구하기 위해 남부로 오는 것이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딱 하나였다.
‘너희들이 믿는 고대 신은 인정할 수 없다.'
아이언의 이러한 의지는 남부 세력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고대 신의 힘으로 한데 뭉쳤던 사람들은 서로 눈치 보면서 딴생각을 품었다.
이것은 이세계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로 뭉쳤던 이세계인 연합이 분열될 조짐을 보일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고대 신의 퀘스트보다 주신 쪽 퀘스트가 낫다는데?”
“애초에 이쪽으로 넘어온 건 주신 때문인데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낫지 않나?”
이런 생각을 가진 이세계인들이 많아졌다.
본래 세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을 가족이나 친지들을 생각하면 마냥 고대 신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 갈팡질팡하는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주신을 완전히 버리면 고대 신의 화신체를 소환할 수 있다.”
“고대 신에만 집중해라.”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어!”
오로지 강함만 추구하면서 고대 신으로 완전히 갈아탄 이들.
이세계인들 중 상위권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고대 신으로 완전히 갈아탔다.
멸망의 시대에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차기에 본래 세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남부 사람들과 이세계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혼란에 빠졌다.
이것이 오래가면 연합이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
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은 하나였다.
[남부 왕국 연합은 아이언 카터와 기동 야전군은 침입자로 규정. 지금부터 제국과 전쟁에 돌입한다.]
남부 연합의 이러한 결정에 이세계인 연합도 호응했다.
[모든 길드는 제국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남부의 핵심 세력 두 곳이 아이언을 적으로 규정하고 움직이자 다들 혼란에 빠졌다.
아직 주신과 고대 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들 같은 경우 남부를 떠나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에게 호의적인 자는 첩자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남부의 두 세력이 제국과 싸우기로 마음먹는 순간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레이븐에게서 온 연락입니다.”
국경선에 있던 세리덴은 부관에게 쪽지를 받아 들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미쳤나?”
쪽지에 적힌 글은 심각한 내용이었다.
[제국과의 전쟁을 결심함. 먼저 기습할 것으로 보임.]
“일단 뒤로 물린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세리덴은 전군에 후퇴할 것을 지시했다.
마음 같아서는 적들과 싸우고 싶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는 이세계인들을 막기에도 버거웠다.
그런데 남부 왕국 연합군도 같이 움직였다.
무려 마스터가 포함된 전력.
만티코어한테 중상을 입은 마스터를 제외한 모든 마스터가 제국과의 전쟁에 투입된 것이다.
아무리 각성자들의 시대가 도래했다지만 마스터의 가치는 여전했다.
그들의 절대적인 강함을 알기에 쓸데없는 오기는 부리지 않았다.
“여차하면 사령부까지 후퇴할 준비 해.”
“알겠습니다!”
세리덴의 명령에 23군단이 일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남부 연합군은 기세를 올리면서 일제히 전진했다.
명분은 몬스터에 점령되었던 남동부 땅 일부는 본래 자신들의 것이라는 점.
그걸 제국이 무단 점거하고 있으니 본래 자신들의 것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명분을 제국에 통보하고는 최소한의 명분은 쌓았다는 듯, 그때부터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여기부터 제국의 땅인가?”
남부 왕국 연합의 마스터인 칼로스가 제국의 땅을 바라보았다.
과거에는 감히 함부로 밟아 볼 생각도 못 했던 땅.
그곳에 지금 자신들이 군대를 이끌고 와 밟고 있는 것이다.
“감회가 새롭군.”
또 다른 마스터인 무라딘 역시 감상에 젖은 표정으로 제국의 땅을 바라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전진하지.”
“그래, 어차피 제국과는 싸워야 할 테니까.”
두 마스터의 결정에 이세계인들 역시 호응했다.
그들 역시 아이언과 다시 한번 싸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퀘스트 역시 아이언의 기동 야전군을 상대로 승리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친 듯이 치고 올라왔다.
어느새 그들은 기동 야전군의 사령부가 있는 근방까지 도달했다.
대놓고 전쟁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돌진해 오자 세리덴은 만약을 대비하며 전군에 비상 체제를 선포했다.
그 무렵, 아이언은 다른 사령관들과 연락하고 있었다.
-정녕 괜찮겠나?
“예.”
화면에 나온 동부 사령관의 말에 아이언이 빙그레 웃었다.
또 다른 영상구에서는 남부 사령관이 걱정스레 바라봤다.
-정말…… 남부 연합의 마스터 둘을 혼자 상대하겠단 말인가?
“예. 그러니 남부 사령관께서도 일부러 전선을 비울 필요는 없습니다. 동부 사령관께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오십쇼.”
아이언의 말에 두 사령관이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제국에 비하면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마스터들이지만, 그들 역시 마스터다.
그런 그들을 동시에 상대한다?
무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아이언은 이무기와 만티코어를 동시에 상대한 적이 있었다.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전선이 안정되면 도우러 와주십쇼.”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빛냈다.
“두 분이 오시는 그날이 저희가 진격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