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02)
64. 멸망한 황가
아포칼립스가 시작되었다는 말에 모든 제국민들이 일제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세계인들뿐만 아니라 대륙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들을 수 있는 음성.
[아포칼립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말과 함께 제국민들의 패닉이 시작되었다.
[대륙을 지켜 주던 신의 결계가 해제되기 시작합니다. 현 시점부터 잠들어 있던 모든 고대종들이 완전히 깨어날 것이며, 외부 신들 역시 강림할 조건을 갖추면 대륙에 현신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시스템 음성을 들으면서 절망에 빠졌다.
고대종들부터 외부 신들까지 모두 깨어난다면 대륙에 있는 모든 인류는 멸종당할 것이다.
고대 신이나 외부 신과 계약한 인간들만이 노예처럼 생활하며 살아남을 것이다.
인간의 시대가 저무는 그 소리에 모두가 절망했다.
“아…….”
“멸망의 시작인가?”
“다 죽을 거야! 다 죽는다고!”
제국민들이 그렇게 한탄하거나 울부짖으며 절망할 때였다.
빛의 기둥과 함께 황궁이 무너지면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폐……하?”
빛의 기둥 속에서 떠오른 인영.
그것은 이미 죽은 황제의 시신이었다.
그것을 본 한 대신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폐하! 폐하! 아니 되옵니다! 흑흑…… 폐하! 이리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한쪽에서 살아남은 시종장이 오열하며 주저앉았다.
분명 빛의 기둥 속에서 떠오른 것이기에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아야 할 황제의 모습이 모든 제국민들의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시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닐 텐데, 수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드래곤의 공격에 심장과 왼팔이 날아간 그 처참한 모습을 똑똑히 목도했다.
[힐덴부르크의 황족이 마지막까지 신의 보석을 지키라는 주신과의 약속을 지켜 냈습니다. 마지막 황제의 숭고한 희생으로 대륙에 주신의 힘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고대에 맺어졌던 신과 인간의 계약이 지켜지며 대륙에 주신의 힘이 온전히 발현됩니다.
-대륙에 외부 신을 강림시킬 조건이 제한되며 완전한 강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고대종이 완전히 힘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대륙에 악마와 타락한 종들이 넘어오는 데 제한 조건이 생깁니다.
시스템의 연이은 음성에 모두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황궁을 향해 떨어진 빛의 기둥이 이제는 독특한 파장을 만들어 내며 대륙 전체에 빛의 힘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렇게 되리라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주신의 힘이 대륙 전체를 감싸며 대륙에 넘어온 타락한 종들의 힘을 억압했다.
-뭐 이런…….
용인들 중 하나가 자신의 힘을 억압하는 신의 힘에 표정을 찡그렸다.
분명 아포칼립스가 시작될 때, 주신의 결계가 사라지면서 용혈의 힘이 완전히 개화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고작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금 억압되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것이 줬다 뺏는 것이라 했던가?
순간적으로 자유로운 힘의 운용을 경험했던 용인들과 해츨링들은 패닉에 빠졌다
반면에 제국민들의 눈에는 희망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다음 시스템 음성으로 더욱 증폭되었다.
[아포칼립스의 시작으로 인류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세계를 수호하는 주신이 그런 인류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지금부터 모든 인간들이 각성자가 됩니다.
-기존 각성자들은 추가적인 혜택이 부여됩니다. 단! 고대 신이나 외부의 신과 계약한 자들은 이 혜택에서 제외됩니다.
-모든 각성자들은 지금부터 고대종과 외부 세력을 죽일 때마다 강력한 힘을 얻게 됩니다.
시스템의 음성이 끝나는 순간 수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성자가 되면서 단순히 도망치거나 숨으려고만 했던 제국민들의 눈이 투지로 타올랐다.
그들의 앞에 퀘스트창이 생겼으며, 특별한 능력이 발현되었다.
그러자 성문을 뛰어넘거나 수도 안으로 날아든 용인들을 향해 제국민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용인들을 죽이기 위해 갓 각성한 능력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죽어!”
“감히 제국을!”
“폐하를 죽이다니!”
분노한 제국민들이 그동안 쌓여 있던 분노를 용인들에게 풀기 시작했다.
눈이 벌게져서 달려드는 인간들의 모습에 수도에 잠입한 용인들은 당황했다.
-이…… 이 버러지들이!
벌레보다 못한 것들이 감히 용족의 피를 이은 자신들을 죽이려 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하지만 분노는 분노일 뿐.
전체적인 상황은 용인들에게 좋지 않게 흘러갔다.
그것은 수백의 해츨링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비룡 기사단과 비공선 부대의 공격으로 힘든 상황인데, 심지어 그들이 각성까지 했다.
그렇다 보니 상황은 점점 어려워져 갔다.
-모두 후퇴하라!
어느새 거대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드래곤이 하늘을 날아오르며 모든 용족과 용인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군인들이 아니었다.
특히 다급하게 워프 게이트를 타고 온 두 명의 사령관이 그러했다.
중앙 사령관과 남부 사령관이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도망가려는 고룡을 막아섰다.
“감히 폐하를 시해하고 그냥 갈 줄 알았나!”
“수도를 어지럽힌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중앙 사령관 레오폴드와 데이비드 필드란이 합공하며 고룡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늘에서 거대한 뇌전이 내리꽂히며 도망가려는 고룡을 지상으로 추락시켰으며, 레오폴드의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가 고룡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감히 벌레 같은 것들이!
고대에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하던 인간들이 자신을 농락하는 것을 보자 고룡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머리로는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할지를 맹렬하게 생각했다.
고대에도 마스터급은 까다로운 적수였고, 그들을 완벽하게 이길 수 있는 것은 드래곤 로드뿐이었기 때문이다.
쾅! 쾅!
-크아아아!
빛의 고룡이 분노한 표정으로 사방에 브레스를 날려 보았지만 뇌전의 힘에 소멸되고, 오러 블레이드에 치명상만 입을 뿐이었다.
고룡의 마법 역시 마스터급에 이른 남부 사령관의 마법에 의해 완벽하게 막혀 버렸다.
마도사의 마법은 고룡의 고대 마법조차 파훼할 정도로 강력했다.
수백 년간 인간들의 마법은 쇠퇴를 거쳤다 알려져 있지만, 그건 틀린 말이었다.
인간들은 고대 마법이 실전되면서 인간들만의 체계로 마법을 재정립했고, 현대에 들어서서는 고대 마법과는 궤를 달리는 마법 체계가 되었다.
그리고 그 현대 마법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마도사’들이었다.
또한 검술이나 무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대의 검술이나 신화시대의 강력한 힘은 재앙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렇다고 현 인류가 약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자들은 고대나 현대나 무의 정점을 찍은 자들.
그렇기에 고대는 고대만의 방식으로, 현대는 현대만의 방식으로 벽을 뚫은 것이다.
-힘만 온전했더라면…….
“그래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 같은데…….”
남부 사령관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룡을 바라보았다.
비록 빛의 고룡이 오랜 세월을 살아와 경험이 많다지만 힘 자체는 마도사를 현격히 압도할 정도로 높지 않았다.
마도사 역시 벽을 뚫은 자답게 인간의 정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고룡이 마도사보다 앞서는 건 오랜 세월 살아오며 쌓아 올린 압도적인 마력과 조금 더 많은 경험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마도사에게 신이 새로운 힘을 내려 주었다.
파지직!
손에서 일어나는 스파크에 고룡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도사가 사용한 힘이라기에는 볼품없을 정도로 약한 스파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눈을 가진 고룡에겐 의미가 매우 달랐다.
“마력이 담기지 않은 순수한 뇌전.”
남부 사령관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마도사에 오른 후 오랜 시간 정체되었던 경지.
그랬던 것이, 새로운 힘을 얻으면서 다시금 강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중앙 사령관인 레오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술을 사용할수록 증폭된 레오폴드 가문만의 비전 검술과 특화된 현 사령관의 특성.
거기에 새로 얻은 힘이 추가되었다.
-나를 갖고 논 것인가?
빛의 고룡의 말에 두 마스터급 사령관이 빙그레 웃었다.
그들은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빛의 고룡과 싸워 준 것이다.
본래의 힘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두 사령관을 동시에 감당하기에 고룡의 힘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이만 끝내지.”
레오폴드 사령관의 말에 남부 사령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령관이 고룡을 마무리 짓기로 한 순간, 마스터급에 이른 힘이 전력으로 개방되었다.
지금까지는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하기 위해 적당히 놀아 준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압도적인 힘이 고룡의 주위를 짓눌렀다.
그 힘을 막대한 마력으로 이겨 내면서 다시 날아오르려는 고룡.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 마법을 펼치며 두 사령관에게 브레스를 날렸다.
어차피 1차적인 계획이 마무리되었으니, 이곳에서 살아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용인들도, 해츨링 등도 용왕이 깨어나기 시작한 이상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용왕께 돌아가 도움을…….
하늘 높이 날아올라 이제 살았다 싶었던 고룡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곧바로 추락했다.
방어막을 뚫고 들어온 거대한 뇌전의 창에 두꺼운 살덩이가 꿰여 버렸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악!
“시끄럽군.”
괴성을 질러 대는 고룡을 향해 레오폴드가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고룡의 목에서 머리가 잘려 스르륵 미끄러졌다.
일격.
한계까지 증폭시킨 힘에 레오폴드가 새로 얻은 힘인 강인함을 담은 검이 고룡의 목을 단번에 베어 버린 것이다.
비록 힘을 완전히 회복한 것도, 혼자 죽인 것도 아니었지만 일격에 고룡의 목을 날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말도 안 돼…….
자신들을 이끌던 고룡이 일격에 죽는 것을 본 용인들은용인들과 해츨링들은 패닉에 빠졌다.
모든 용인들과 해츨링들이 그들을 이끌던 수장의 죽음에 혼란스러워할 때, 레오폴드는 담담한 음성으로 수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폐하를 죽인 범죄자들을 죽여라. 저들은 참작의 여지도 없는 죄인들이니 전원 사형이다.”
레오폴드의 명령에 수도 방위군은 물론이고, 각성한 모든 제국민들이 일제히 용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막 힘을 각성해 미숙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힘을 사용해서 그런지, 용인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하나둘 죽어 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각성한 인간들은 더욱 강해졌다.
주신이 부여한 힘은 고대종과 타락한 자들을 죽일 때마다 더욱 강해진다는 걸 이것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러자 용인들을 죽이는 것이 어느새 단순히 제국의 긍지를 바로 세우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고 했던가?
용인들을 죽이고 강해지기 위해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인간들의 눈은 악마와도 같았다.
“죽여라!”
“내 거야!”
“저리 꺼져!”
제국민들이 서로 먼저 죽이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많고 용인들의 숫자는 적어, 힘을 강화할 찬스는 한정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용인들과의 힘의 차이는 생각지 않고 일단 달려들고 보았다.
운 좋게 용인을 죽인 인간 하나가 급격히 강해지는 걸 본 사람들의 눈은 더욱더 욕심으로 번들거렸다.
그 덕분일까?
수도에 있던 용인들을 정리하는 데에는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