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01)
63. 멸망의 시작 (2)
모든 것을 녹여 버릴 것 같은 화염이 황궁을 향해 날아갔지만, 기적이 일어난 걸까?
황궁의 강력한 결계가 드래곤의 브레스를 한 번은 버텨 주었다.
“막아라! 드래곤을 막아!”
지휘관의 피 토하는 외침에 수도 방위군이 즉각 반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비룡 기사들이었다.
“창기사들부터 돌격해!”
거대한 거창을 들고 비룡을 모는 비룡 기사들.
그 뒤를 소형 마도포를 든 채 뒤따르는 비룡 기사들이 엄호했다.
마력으로 비룡과 기사가 동기화되면서 빛줄기를 그리며 뇌전이 떨어지는 것처럼 드래곤의 등을 가격했다.
쾅! 쾅! 쾅!
창기사들의 돌격에 다시 한번 브레스를 내뿜으려던 드래곤은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뭔가 이상하군.”
비룡 기사를 탄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들의 공격에 추락한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크기도 작고, 무엇보다 황궁을 지격한 브레스의 위력이 너무 약했다.
수도의 결계를 단번에 부숴 버렸다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위력이었다.
“또 온다!”
갑자기 공중에 보이는 드래곤들.
그 숫자가 수백을 넘어갈 정도로 엄청난 숫자였다.
“대체 어떻게…….”
한 비룡 기사의 외침에 비룡 기사단을 이끄는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세계인들에 의해 개념이 정립된 마력 레이더.
제국의 수도에는 그 레이더가 수십 개나 깔려 있었다.
그런데 저 많은 드래곤들이 그것에 걸리지 않고 어떻게 몰려왔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전군, 돌격 준비!”
“예!”
마법 처리된 거창을 든 비룡 기사들이 일제히 돌격 준비를 하며 몰려오는 드래곤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돌격 준비를 하는 비룡 기사들의 뒤를 이어 비공선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대형 비공선에 달린 수십 개의 마도포와 남동부에서 만든 소형 요새포가 빛을 뿜어 대면서 선제적으로 드래곤들의 접근을 막았고, 그사이 마법사들이 사력을 다해 수도의 결계를 조금씩 복구해 나갔다.
한번 깨진 결계가 복구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마법사들이 모든 마력을 쏟아부으며 부서진 마력 결계를 빠르게 복구했다.
그리고 이 사실에 제국민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용인 군단이 군단급을 완전히 박살 냈다는 소식에 모두가 초조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비룡 기사들과 공군들이 드래곤을 몰아내고 있으니, 제국민들의 눈에 희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레이크보다 거대해 보이는 드래곤들을 훌륭하게 막고 있는 수도 방위군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연신 응원했다.
그들이 막아 내야 자신들이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 제국의 군대가 드래곤들을 몰아내고 있사옵니다!”
시종장 역시 흥분해서 황제에게 말했지만 황제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져 있었다.
비룡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
드레이크들보다도 더욱 큰 몸집의 거체들이었으나 저것들은 ‘드래곤’이 아니었다.
“시종장.”
“예! 폐하.”
황제의 부름에 호들갑을 떨던 시종장이 급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수도 방위군에게 만약을 준비하라 이르게.”
“예?”
황제의 명령에 시종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폐……하?”
황제가 말한 만약을 준비하라는 명령.
그것은 드래곤에 의해 신의 보석이 파괴되고 황궁이 공격당할 경우 워프 게이트라도 지키라는 명령이었다.
마스터들이 올 수 있는 워프 게이트를 지키는 것.
그래야만 훗날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미 드래곤들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각 사령부로 수도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쟁을 하고 있는 경우야 사령관이 오기 어렵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수도로 올 수 있는 사령관들이 있었기에 워프 게이트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
“지금 수도 방위군이 드래곤들을 몰아내고 있사옵니다.”
“저것들은 진짜 드래곤이 아니네.”
황제의 말에 시종장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하…… 하오나 마법까지 사용하고 있사옵니다.”
시종장의 말처럼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존재들은 마법까지 사용하면서 비룡 기사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고, 비공선들의 공격 역시 마법으로 막아 내며 수도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을 돕기 위해 하늘을 나는 용인들마저 나타났다.
중앙군을 쓸어버렸던 용인들 중 일부가 드래곤들을 돕기 위해 날아왔다.
그리고 그 용인들을 드래곤들이 지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그들이 진짜 드래곤이 아니라고 했다.
“저들은 해츨링이네.”
“어린 드래곤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시종장도 해츨링이란 단어를 아는지 황제를 보며 물었다.
“고대에는 그리 불렸지. 하지만 저들은 좀 다르네.”
황제가 그렇게 말하면서 꿈속에서 보았던 해츨링들의 뜻을 기억해 냈다.
“불완전한 드래곤. 내가 말한 해츨링의 뜻은 그런 것이네.”
“……그게 무슨……?”
시종장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수도를 감싼 결계가 다시금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황제가 다급히 말했다.
“시종장!”
황제의 말뜻을 짐작한 시종장이 고개를 숙이면서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입술을 깨물며 다급히 달려 나가는 시종장을 보면서 황제는 그제야 차분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왔는가?”
꿈속에서 수차례나 봤던 풍경.
수도를 감싼 결계에 금이 가고, 마치 여흥은 다 즐겼다는 듯 섬광이 내리꽂힌다.
“처음 결계를 깬 것은 저것이었군.”
황제가 그렇게 말한 순간 다시 한번 수도의 결계가 깨져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이틀 거리에 있다던 용인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짜기라도 하듯, 제국의 주력 병력이 수도로 올 수 없도록 여기저기서 고대 존재들이 나타나거나 타락한 존재들이 제국을 공격해 왔다.
그리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용인 군단은 수도가 치명적일 때를 노렸다는 듯, 거침없이 진격해 왔다.
마치 예정된 결과에 따라 움직인다는 듯, 그들에게 망설임 따윈 없었다.
“나타났군.”
섬광으로 결계를 부수자, 저 멀리 구름 뒤에서 나타난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
과거부터 고룡으로 불리던 진짜 드래곤이 황궁을 가만히 응시하며 오만한 자태를 뽐냈다.
그리고 곧이어 황궁의 결계까지 지워 버리겠다는 듯,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섬광을 뿜어냈다.
해츨링의 브레스와는 격이 다른 막강한 힘이 황궁의 결계를 직격하는 순간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깨져 나갔다.
쿠우우웅!
결계가 깨지는 것과 동시에 섬광이 사라졌지만 충격파만으로 황궁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폭음이 들려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황궁의 결계까지 깨는 건 고룡에게도 힘든 일이었는지, 더 이상의 브레스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황궁 일부가 무너지면서 대신들과 중앙 관료들이 패닉에 빠져있었다.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모두가 우왕좌왕할 때였다.
침착한 표정으로 집무실에서 나온 황제가 그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모두 진정하라!”
황제의 고함 소리에 패닉에 빠진 자들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중앙 관료들과 대신들은 지금 즉시 황궁을 빠져나가 본래 할 일을 하라.”
중앙 관료들이 할 일.
그건 혼란에 빠진 제국민들을 다독이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자 한 관료가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폐…… 폐하께오선…….”
“난 나의 할 일을 할 것이다.”
젊은 관료의 물음에 그렇게 답한 황제는 어느새 모여든 근위병들과 근위 기사들을 데리고 신의 보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생각한 황제로서 마지막으로 할 일.
그것은 초대 황제 때부터 내려온 황가의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폐하…….”
관료들이 울먹이면서 일제히 절을 올렸다.
그들도 고룡이 등장하는 순간 즉감했다.
이곳에서 살아 나가기는 글렀다는 것을.
죽음이 다가와서 그런 것인가?
두려움에 떨기만 했던 중앙 관료들의 눈에 강한 의지가 깃들기 시작했다.
황제가 중심을 잡고 마지막까지 제국의 긍지를 지키고자 하는데 자신들이 도망만 치자고 주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드시 폐하의 명을 완수하겠사옵니다.”
“그리하라.”
황제의 짤막한 명령에 관료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제가 오래전부터 내려온 초대 황제의 유훈을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신의 보석을 지켜라!”
초대 황제의 유언.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신의 보석만큼은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설령 황가의 멸망이 될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이었다.
이건 단순한 유언을 넘어 황족에게 내려진 저주와도 같은 것.
그렇기에 지켜야만 했다.
근위병과 근위 기사를 모조리 끌어모아 신의 보석이 보관된 궁으로 향했다.
“모두 마지막까지 이곳을 사수하라.”
“예! 폐하.”
황제의 명령에 근위병들과 근위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 명령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침착한 표정으로 신의 보석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근위병들과 근위 기사들의 얼굴에도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미 사전에 죽음을 각오한 자들만 추려서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제국의 마지막을 함께할 자들만 모았기에 모두 용맹함을 갖추고 있었다.
실력보다는 용맹과 충성심을 위주로 모은 자들이기에 제국의 마지막을 같이하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자들이었다.
웅! 웅!
“너도 마지막 때가 왔음을 아는 것인가?”
황제가 평소와 달리 격렬하게 울고 있는 신의 보석을 바라보았다.
긴 시간 제국과 함께해 왔던 신의 보석이 마지막 때가 왔음을 알았는지 격렬하게 진동했다.
마지막이 다가와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따라 신의 보석의 떨림 속에서 어떤 의지가 들려왔다.
슬픔, 안타까움 등의 감정이 솟구쳐 오르자 황제가 자신도 모르게 신의 보석을 향해 다가가 손을 얹었다.
“아…….”
알 수 없는 감정이 황제의 온몸을 휘감으면서 독특한 마력의 파장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대륙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고대종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외부 신들이 이 대륙을 집어삼키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더 흉악한 무언가가 신의 결계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이 세계를 지켜 왔던 신의 보석.
“고생했다.”
황제의 말에 신의 보석이 울음을 터뜨렸다.
우우웅!
신의 보석과의 짧은 교감.
하지만 그 교감은 금방 끝낼 수밖에 없었다.
황제와 신의 보석만이 있어야 할 이 공간에 불청객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도망치지 않았군.
인간의 형상임에도 두개의 큰 뿔과 피부에 듬성듬성 비늘이 자라나 있는 괴상한 모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얼굴을 갖고 있었다.
“드래곤인가? 백색 계열이군.”
황제의 말에 드래곤이라 불린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랍다는 듯 바라보았다.
-우리에 대해 좀 아는가 보군?
“적어도 그대가 해츨링 같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황제의 말에 드래곤이 피식 웃었다.
-그것까지 알고 있나?
드래곤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먼 옛날 드래곤들은 종족이 멸종 위기에 처하자 고육직책으로 드레이크, 와이번들과 교배해서 드래곤이란 종을 유지시켰었다.
하지만 열등한 종과의 교배를 통해 유지된 개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완전히 드래곤 종족으로 진화한 개체는 손에 꼽을 정도.
나머지는 불완전한 개체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 로드는 그 불완전한 개체들을 어린 드래곤을 뜻하는 해츨링으로 명명했었다.
“그대가 여기 있다는 건 밖에 있는 자들은 전부 죽었다는 뜻이겠군.”
-뭐…… 그렇지. 그대를 닮아 상당히 끈질기더군.
드래곤이 그렇게 말하면서 감탄하듯 말을 이었다.
-분명 현재의 황족들은 쓰레기들이라 들었건만…… 소문이 잘못되었어.
드래곤이 황제를 바라보았다.
고대 시절에도 거의 없었던 예지안을 가진 것도 모자라 굳은 의지까지 느껴졌다.
황제의 눈은 제국과 함께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내뿜고 있었다.
-쯧, 곤란하게 되었군.
그때 드래곤이 움찔하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멀리서 막강한 마나의 파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벌써 온 것인가?
자신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막강한 힘.
마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그대 덕분에 곤란하게 되었어. 이 수도를 기반으로 제국을 흔들어 보려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겠군.
드래곤이 그렇게 말하면서 한 손을 뻗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첫 번째 목표는 완수해야겠지.
드래곤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강력한 마력이 손바닥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제국을 지키는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지.
드래곤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강대한 빛이 신의 보석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황제는 신의 보석 앞을 막아서면서 마지막을 함께했다.
인간형 모습으로 발사된 브레스에 균열이 간 신의 보석이 버티지 못하고 그 즉시 산산조각 났다.
콰아아앙!
-드디어…… 멸망의 시작인가? 왕의 부활이 얼마 남지 않았군.
드래곤이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심장과 왼쪽 팔이 사라진 채 쓰러졌던 황제의 시신이 떠오르며 신의 보석의 파편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이런…… 설마!
드래곤이 이 현상이 어떤 것인지 눈치챘는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다급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위급 마법을 발현하려 했다.
하지만 신의 보석이었던 파편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면서 그의 그런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황궁에 거대한 빛의 기둥이 떨어지며 대륙 전체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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