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200)
63. 멸망의 시작
중앙군에서 보낸 1개 군단이 전멸했다는 소식에 황궁에 있는 대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멸시키는 과정에서 용인들의 군대도 큰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무려 1개 군단이 전멸했다.
그것도 많지도 않은 숫자였다.
야전군 규모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적들은 군단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였다.
즉, 사단급보다 조금 많은 숫자로 중앙군 1개 군단을 격파한 것이다.
“폐하!”
시종장이 다급하게 황제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즉위식을 치러 황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없는 와중에도 차분하게 시종장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시종장이 숨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큰일 났사옵니다! 동부군마저 용인들의 군대에 패하였다고 하옵니다!”
시종장의 보고에도 황제는 침착했다.
이미 수십 차례나 본 미래가 다가온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전으로 가겠다.”
황제가 급히 집무실을 나섰다.
대전으로 향하자 대신들을 비롯한 수도에 있는 고위 귀족들이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머리가 있으니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았다.
최악의 상황에는 수도를 버려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후에 반역자로 몰려서 가문 자체가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귀족들은 몰라도 중앙 정부의 관료들만큼은 수도를 함부로 벗어날 수도 없었다.
중앙 귀족회의 핵심 인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두려움이 가득 찬 눈을 하고 있었지만 황제는 침착했다.
황좌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황자들 중 가장 무능하다고 평가받았음에도 침착한 표정으로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보고는 들었을 것이라 생각하오.”
황제의 말에 대신들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나의 형제들께선 어디 가셨나?”
황제의 물음에 모두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시종장이 조용히 황제에게 귓속말로 행선지를 전해 주었다.
“둘째가 갑자기 서부에 볼일이 생겼다라……. 셋째는 서부인가? 넷째는 아예 타국으로 갔군.”
황제가 피식 웃으면서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에 황급히 도망친 자신의 형제들을 비웃었다.
황태자였지만 가장 무능하고 겁 많았던 알렉사르는 굳건하게 황궁을 지키고 있는데, 황족이란 놈들이 전부 도망쳤다.
황제를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반역죄로 처벌한다고 해도 반대할 대신들이 없을 것이다.
당장에 이곳에 있는 대신들도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지만, 만약 수도가 온전히 용인 군단을 막아 낸다면 자신들은 무조건 죽은 목숨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억지로 수도에 남아 불편한 침묵 속에서 황제만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참다못한 군부대신이 나섰다.
“폐하! 지금 당장 전군을 수도로 집결시켜야 합니다! 지금 전력으로는 제국의 수도를 지키기 어렵사옵니다!”
군부대신이 다급하게 말하자 황제가 황좌의 팔걸이를 탁 치면서 조용히 시켰다.
그러고는 대신들을 바라보며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동부의 주력군은 아틀란티스에 있는 상황이지. 서부 역시 조인족을 상대하기 위해 나가 있지 않나? 하필 중앙군의 주력군도 서부를 도우러 갔군.”
황제의 말처럼 중앙에 가까이 위치한 사령부들은 전부 각자의 위치에서 사력을 다해 막고 있는 중이었다.
서부는 전선이 밀릴 위기에 처해 있어선지 중앙군 사령관이 직접 주력군을 이끌고 도우러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전선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
남부 사령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곳 역시 사령관이 직접 전투에 참여해서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폐…… 폐하…… 하오나! 정말 위험한……!”
“남부는 대수림에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막기도 버겁고, 북부군 역시 북동부를 도우러 주력군을 이동시킨 상황이네.”
군부대신의 말을 끊고 황제가 담담히 말하자 다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어느 곳도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었고, 급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동안 수도라는 안전한 곳에만 머물면서 남 일 대하듯 했던 것이 이렇게 돌아온 것이다.
“제국 전역이 위급한 상황이네. 그런 상황에서 어디서 주력군을 불러올 수 있나?”
황제의 물음에 군부대신이 입을 다물었다.
북부군이라도 불러오고 싶었으나 산맥 너머에서 내려오는 존재들이 서리 거인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2개 군이 모인다 하더라도 부족해 북부 영지 전체가 힘을 합치는 상황.
게다가 레온하르트까지 북동부로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남은 건 남동부군뿐이었으나, 그들 역시 최근 전투를 벌여 사상자가 넘쳐 나고 있었다.
기동 야전군은 수도를 도우러 올 수 있는 주력군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 하오나 수도의 힘만으론 용인들을 막기 버겁사옵니다!”
그나마 여력이 되는 동부군과 중앙군에서 남은 군대를 박박 긁어모았지만 무려 1개 군단이 전멸했다.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을 만큼 압도적인 힘.
그런 상황에서 아직 훈련이 부족한 수도 방위군의 힘으론 막기가 불가능했다.
사면초가.
동대륙에 있는 사자성어가 생각날 정도로 수도는 위기였다.
“수도 사람들을 최대한 중앙 사령부로 피신시키고, 각 사령부에서 지원할 수 있는 병력을 전부 수도로 집결시켜라.”
황제의 명령에 중앙군 사령부에서 보낼 수 있는 모든 병력과 동부군 일부, 그리고 북부군에서 보낼 수 있는 병력이 급히 수도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전부 주력군이 아닌 예비 병력이거나 사령부를 지키기 위해 남은 병력에 불과했다.
“폐하! 그것으로는 부족하옵니다! 적어도 중앙군과 남동부군이라도 주력군을 보내 달라 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돌아가는 판을 읽을 줄 아는 군부대신이 용인들의 군세를 짐작하며 간절하게 청했다.
현재 수도 방위군 수준으로는 각 지역에서 남은 군대가 몰려와 봤자 승산을 점치기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건 마스터급의 부재였다.
게다가 6단계급 이상의 고위 무인들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비록 제국에서 마도포를 비롯한 핵심 무기들이 가장 잘 배치되어 있는 곳이 수도라지만, 그것만 갖고 용인들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용인들의 군대를 이끄는 자가 드래곤이라면 반드시 마스터가 필요합니다! 폐하!”
군부대신의 말에 모든 대신들이 일제히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런 대신의 말에 황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사령부들의 상황을 잘 알 텐데 무슨 수로 데려올 생각인가? 중앙이 예전 같은 줄 아는가?”
황제의 물음에 군부대신이 입을 다물었다.
“폐…… 폐하의 명으로…….”
군부대신이 우물쭈물하면서 말을 못했다.
중앙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도, 황제의 권위가 땅으로 떨어진 것도 잘 알았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도 지금 각 사령부가 처한 현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억지를 부려서라도 마스터 한 명쯤은 수도에 들여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못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스터급 존재와 주력군을 수도로 불러들여야 했다.
그런 군부대신의 마음을 잘 아는 황제였지만 일부러 모른 척하면서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대전 문이 열리면서 한 장교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그러고는 황좌 근방에 있던 시종장에게 귓속말로 방금 들어온 소식을 전했다.
“폐하.”
시종장이 귓속말로 방금 들어온 소식을 전하자 황제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런 황제를 보면서 군부대신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북부 사령관이라도 잠시 불러들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직 서리 거인이 도착하는 데에는 시간이…….”
“안타깝군. 방금 북동부에서 서리 거인들이 산맥 근처에 도달했다고 하네.”
“허…….”
황제의 말에 군부대신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황제가 쐐기를 박았다.
“이미 두 사령관을 비롯한 군단장급 이상들은 전투를 시작했다고 하네.”
“그…… 그럴 수가…….”
“서부 사령부와 중앙 사령부는 조인족들과 전투 중이고, 남부 사령부는 대수림의 진격을 최전선에서 막고 있네. 그나마 동부가 괜찮지만,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황제의 말에 군부대신이 고개를 푹 숙였다.
대륙에서 가장 많은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수도로 올 수 있는 마스터가 한 명도 없었다.
거기다 주력군들도 대부분 전선에 묶여 있었다.
기동 야전군이 전투를 끝냈지만 몬스터들이 남아 있어 주력군이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믿을 건 황제뿐이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수도로 오게끔 강제하는 것.
그런데 황제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후…….”
황제가 긴 숨을 내뱉으며 지금의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았다.
아이언의 도움을 받으며 간신히 신의 보석의 수명을 늘려 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들은 그걸 두고 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예정된 종말을 위해서 제국을 한계까지 몰아붙였고, 수도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그릇된 선택을 한다면 보석의 수명을 조금 더 늘릴 수도 있겠지…….’
황제가 신의 보석을 떠올리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작게 고개를 저었다.
꿈을 꾸고 난 후, 수십 수백 번도 더 다짐한 일이었다.
자신은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끝난 상황이지만 대신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예정된 멸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대신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자신도 한 발자국 물러나야 했다.
“모든 사령관들에게 전하게,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수도로 모이라고.”
황제의 명령에 군부대신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다른 대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이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잠시라도 마스터들을 수도로 불러들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대신들이 그 즉시 모든 사령부로 통신을 보내 황제의 명령을 전했다.
그리고 대전 회의가 파하기 전에 몇몇 사령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용인들이 수도까지 진격한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수도로 오겠다는 확답을 받은 것이다.
“중앙과 남부인가?”
“그렇습니다!”
보고를 하러 온 군부 관료의 말에 황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력군은 힘들고……. 사령관들이 수도에 도움을 주러 온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동부 쪽에서도 시간을 맞춰 보겠다 전했습니다!”
군부 관료의 말에 대신들의 얼굴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주력군은 못 오지만 대신 사령관들이 수도에 오기로 약속한 이상 충분했다.
‘이제 됐다!’
대신들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면서 불안감을 씻어 내렸다.
이 소식이 그 즉시 수도 전체에 알려지면서, 연이은 패배에 따른 불안감이 잦아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수도에 있는 사람들을 중앙 사령부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했고, 제국 각지에서 병력이 수도로 몰려들면서 그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그렇게 수도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에도 용인 군단은 빠르게 수도로 진격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수도에서 이틀 거리까지 도착했다.
“사령관들에게 연락했느냐!”
“예! 하지만 서부 전선 쪽이 워낙 심각해서 중앙 사령관은 바로 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남부 쪽 역시 갑작스레 몬스터들이 몰려들면서 시간이 좀 필요한 듯싶습니다.”
군부대신의 말에 중앙 관료가 다급하게 말했다.
“제길! 하필…….”
“그래도 전투가 시작되면 무조건 온다고 했습니다!”
“알겠다. 돌아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전투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각 사령부에 통신 보내.”
“예!”
운이 없다며 혀를 차던 군부대신이 최대한 빨리 와 달라고 통신을 넣으라는 명령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왔다.
“제발…… 제발…….”
용인 군단이 조금만 더 늦게 공격해 달라고 간절히 소망하면서, 그는 사령관들이 올 때까지 버틸 방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런 군부대신의 소망은 얼마 가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콰아아앙!
“무…… 무슨…….”
하늘을 굳건히 지켜 주던 결계가 무언가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내리자 군부대신이 기겁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엔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이 떠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
군부대신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안 된다고 울부짖는 순간, 드래곤의 아가리가 크게 벌어지면서 황궁을 향해 시뻘건 화염을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