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96)
61. 불안한 조짐 (6)
황태자와 만남을 뒤로하고 훌쩍 떠나 버린 아이언.
그가 정치적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귀족들의 기대와 달리 오직 ‘황태자’만을 보고선 수도를 떠나 버리자 귀족들은 더 애가 탔다.
특히 뭉그적거리면서 관망하던 귀족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만약 남동부가 안정된다면 중앙 사령부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안전지대 후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특히 아이언의 행보를 생각하면 중앙 사령부보다 더 안전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누가 뭐래도 현재 제국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곳은 기동 야전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언과 일대일로 만남을 가진 황태자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바닥까지 내려갔던 황태자였기에 그의 가치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특히 매수된 시종들과 시녀들의 입을 통해 나온 소문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카터 대장이 황궁에 있는 내내 태자 전하와 붙어 다녔다.”
“둘이 은밀히 대화하는 게 상당히 잦았다.”
“대화하는 내내 아이언 카터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런 소문들이 황궁의 대문을 넘어 수도로 퍼져 나가자 아이언이 황태자를 밀어준다는 게 기정사실처럼 변해 버렸다.
그러자 황자들에게 줄을 대고 있던 귀족들은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뭉그적거리던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까지 황태자의 소속으로 남은 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귀족들이 깊은 한숨을 쉴 때, 소수지만 웃고 있는 귀족들도 있었다.
아이언이 황태자와 만나자마자 눈치 빠르게 미뤄진 황제 대관식을 진행해야 한다는 청원을 올린 자들이다.
귀족 회의는 물론이고, 대전 회의에서 정식 안건으로 상정시킨 자들은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남동부를 안정시키면 다음은 이곳 중앙이다!’
‘중앙군과 기동 야전군이 중앙을 지켜 준다면 어떤 곳보다 안전해질 것이다!’
‘다시 중앙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가즈아!’
중앙 지역의 떡상을 바라는 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황급히 이곳을 떠났던 자들을 비웃었다.
수도를 버리고 떠난 멍청한 귀족들과 시민들.
사람 일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처럼 중앙은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찾을 생각에 신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황태자가 있었고, 그 뒤를 받쳐 주는 아이언이 있었다.
그렇게 중앙 지역의 제국민들이 들떠 있을 때, 다른 곳은 죽을 맛이었다.
여기저기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확장을 멈췄다고?”
“그렇습니다. 소용돌이가 더 이상의 확장을 멈추고 조금씩 규모를 좁히고 있습니다.”
동부 사령관이 해군 장교의 보고에 미간을 찌푸렸다.
붕괴된 아틀란티스 잔해를 먹어 치우기 시작하던 소용돌이가 확장을 멈췄다.
그리고 때마침 통신장교에 의해 붕괴되어 가던 신의 보석이 어느 정도 복구되었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허…….”
동부 사령관이 통신장교의 보고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던 것이 신의 보석이 조금 복구되었다고 진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이때까지 뭐 했나 싶은 표정으로 가만히 보고서를 들여다보는 동부 사령관.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동부뿐만이 아니었다.
지진으로 대지가 요동치며 튀어나오던 정체불명의 무리도, 암석들이 무너지며 일어나던 산악 거인들도, 용암으로 넘실대던 곳에서 깨어나던 거인들도, 일부를 제외하고 다시 잠들기 시작했다.
대륙 곳곳에서 일어났던 재앙의 조짐들이 하나둘 사그라들기 시작하자 대륙의 모든 사람들의 신의 보석에 집중했다.
[신의 보석을 살려라!]
대륙 모든 곳에 이 문구가 걸렸다.
신의 보석이 중요하다는 것은 대륙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걸 관리하는 건 제국의 일이고, 자신들과는 크게 상관없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 코앞에 닥친 위기를 헤쳐 나가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그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신의 보석이 붕괴되기 시작하고 재앙의 조짐들이 대륙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자 모두들 제 살길을 찾을 준비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극적으로 보석이 일부 복구되며 재앙이 ‘유예’되었다.
그러자 대륙의 모든 학자들이 제국의 수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신의 보석을 좀 더 유지시켜 재앙이 다가올 시간을 벌고자 한 것이다.
물론 모든 대륙인들이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그럴 시간에 고대 신께 더 기대는 편이 나아.”
“고대 신의 퀘스트를 깨기도 바쁘다고.”
“멸망의 날을 좀 더 유예시킨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대륙 남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고대 신의 퀘스트에 집중했다.
특히 이세계인들 같은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어차피 자신들의 세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서부의 성국 연합 측도 다르지 않았다.
“태양신을 믿어라. 그분이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
“아니! 우리 자유의 신을 믿어라!”
“이곳에 계신 모든 신을 믿어라. 그분들만이 다가올 마지막 때에 유일한 살길이다.”
“그분들을 의심치 말라!”
성국 연합의 신관들은 신을 더 믿으라고 강요하며 내부를 결속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세력과 달리 중립적인 자들은 제국을 지원하기 위해 움직였다.
신의 보석을 복구시키기 위한 재료들을 조달하거나, 신관들을 찾아서 수도로 보내 주기도 했다.
그렇게 고고학자들부터 고대 역사학자, 마탑의 마법사들, 옛 신관들까지 신의 보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일단 수도로 향했다.
신의 보석을 복구하는 데 출신 성분 따윈 상관없었다.
제국 역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자들이라면 일단 무조건 받아들였다.
그러는 사이 제국은 새로운 황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신의 보석으로 좋든 싫든 모든 이들이 제국을 주시하고 있을 때, 그동안 비어 있던 황좌를 채우기 위해 모든 귀족들이 만장일치로 황태자를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는 것에 찬성했다.
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어느 때보다 간소하게, 그리고 사령관들을 비롯한 각 지역의 주요 군부들은 참석하지 않는 선에서 대관식을 치르기로 했다.
황태자의 이런 결정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으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멸망의 조짐이 가라앉으면서 사령관들의 참석을 은근히 밝히는 귀족들도 있었으나, 얼마 후 남동부에서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무려 마스터급에 이른 두 몬스터들이 기동 야전군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소식이 빠른 속도로 제국 전역을 강타했다.
[속보! 기동 야전군 전쟁 돌입]
이런 기사가 나돌자 제국민들의 눈이 남동부로 향했다.
이 전쟁의 향방으로 향후 중앙의 안정이 더욱 굳건해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초조하게 남동부의 승리를 기다릴 때, 정작 남동부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거대한 한 방 싸움, 혹은 곳곳에서 터지는 수많은 전투를 생각하는 사람들과 달리 제대로 된 전투보다는 기동 야전군이 몬스터들을 쫓아다니는 단순한 전투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하…… 이것들이!”
아이언은 두 개의 달을 타고 가면서 분노에 찬 음성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입에 담기도 힘든 욕이 튀어나왔지만 지금 아이언의 상황을 보면 누구라도 이해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남동부에 와서부터 매일같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기동 야전군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고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아이언을 고를 만큼 바쁘게 움직였다.
그가 이렇게 된 건 전부 두 세력의 수장들 때문이다.
기동 야전군의 세력이 강해지자 연합한 두 세력은 점점 더 강력해지는 인간들을 막기 위해 완전히 동맹을 맺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규모가 아니었다.
본래부터 영악했던 만티코어는 물론이고, 최근 들어 부쩍 똑똑해진 이무기도 아이언을 곤란하게 했다.
“치사한 녀석들!”
아이언은 멀리서 자신을 보고 내빼는 이무기를 보며 투덜거렸다.
녀석들은 아이언과 맞붙기보다는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기동 야전군을 공격하려 드는 것이다.
아이언이 기동 야전군을 공격하는 놈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면, 그사이를 틈타 다른 쪽에서 다른 놈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 아이언은 그쪽으로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매일같이 신수를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처지가 되었다.
일대일로는 불리하다.
이 대 일로 붙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럼 양동작전으로!
이런 생각으로 철저하게 자신을 피해 다니는 놈들을 보며 아이언의 혈압은 끝도 없이 치솟았다.
이젠 그냥 한판 제대로 붙어 볼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사실 이런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면 사령부로 모든 병력을 불러들이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방어할 때의 이야기였다.
기동 야전군은 몬스터 섬멸을 위해 움직여야 할 때였고, 야전은 인간들에게 불리한 면이 많았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 녀석들이 동료들을 희생시키면서 낚시한다는 점이다.
몇 개의 부대가 기동 야전군의 근처에 나타나고, 전쟁이 시작되면 야전군이 승리하며 도망치는 녀석들까지 섬멸하기 위해 깊숙이 들어간다.
그러면 어김없이 만티코어나 이무기가 등장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인간들도 머리가 있기에 한번 당한 걸 그대로 또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이 녀석들은 다른 곳에서 낚싯줄을 던진다.
“영악한 새끼…….”
아이언은 이를 갈면서 황급히 도망치는 이무기를 바라보았다.
분명 전술적 승리를 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기동 야전군 측이다.
게다가 낚싯줄을 던져서 기동 야전군이 걸려든다고 해도 전투가 벌어지면 당하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방도 똑같이 피해를 입는다.
앞에서 낚시를 위해 희생시킨 몬스터들까지 포함한다면 몬스터 측의 피해가 훨씬 컸다.
반복되는 전투에서 사상자를 종합해 보면 몬스터들이 몇 배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문제는 충원되는 군사들의 숫자였다.
어디서 나오는지 몰라도 녀석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전투마다 사상자가 적은 기동 야전군이라도 피해가 누적되면서 전체적인 군의 규모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식의 전쟁은 좋지 않았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몬스터군이 전략적인 승리를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후……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두 개의 달에 탄 아이언은 어느새 땅속으로 기어들어 간 이무기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언제까지 이렇게 끌려다닐 수는 없는 법.
저들이 피해를 감수하고 전략적 승리를 노린다면 자신 역시 위험을 감수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늘에서 고심하던 아이언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승리를 위해 피해를 입을 각오를 하기로.
아이언이 이를 갈면서 전군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고, 여기저기 퍼져 있던 기동 야전군은 한 곳에 뭉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투 양상을 만들겠다는 아이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렇게 남동부의 전투가 또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려 할 때,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검은 로브를 걸친 자들이 도마뱀처럼 길쭉한 눈을 드러내면서 전투 양상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들과 직접적 전투는 지양해야겠군.”
아주 먼 거리였음에도 살이 떨릴 정도로 위험한 기운을 느끼자 로브를 쓴 남자가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래. 인간, 특히 지휘관 놈은 위험하군. 차라리 동쪽을 타고 올라가는 게 낫겠어.”
“위쪽은 텅 비었던데. 차라리 그쪽을 노려야겠군.”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더니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남은 한 남자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은 주인님의 완벽한 부활을 위하여…….”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는 다시 한번 거대한 신수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더니 다른 이들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