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95)
61. 불안한 조짐 (5)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멸망의 조짐에 모두가 경악했지만, 제국 수도만큼은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있었다.
바로 한 가지 소문 때문이었다.
[기동 야전군의 수장 아이언 카터가 또 해냈다!]
이런 제목의 기사가 새벽부터 광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이제는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보석이라고 소문난 신의 보석을 고쳤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균열까지 말끔하게 고쳐 내진 못했지만,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보석이 더 이상 부서지지 않게끔 조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멸망의 때를 밀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제국민들의 아이언에 대한 믿음은 한층 더 높아졌다.
“어허! 이 사람. 폐하께 건의해서 왔다니까.”
“안 되니까 돌아가십쇼.”
“이래도 안 되나?”
한 귀족이 황궁 근위병에게 몰래 돈을 찔러주려 했으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돈을 받고 들여보냈다간 자신은 무조건 참수형이었다.
황제의 지엄한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돌아갈 때까지 어떤 귀족도 황궁으로 들이지 말라.”
황제의 이런 명령이 떨어진 상황이니 예전처럼 뒷돈 받고 넣어 줬다간 큰일이 벌어진다.
게다가 그 아이언 카터였다.
현재 제국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존재가 바로 아이언 카터였기 때문에 괜히 그에게 밉보일 짓은 하지 말아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황궁 앞에는 아이언을 보기 위해 귀족들이 바글거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황궁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하…… 서부 사령관에게 이미 줄을 댔는데.’
‘그래도 아이언 카터가 제일이야!’
‘쯧! 남은 재산을 긁어모아야겠어.’
황궁 앞에 모인 귀족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이언에게 줄을 댈 방법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싸맸다.
그들은 이미 살길을 찾기 위해 사령관들에게 줄을 댄 상황이었다.
망가진 군을 복구하라고 기부금 형식으로 투척하면서 은근슬쩍 그곳에 자식들을 보낸 것이다.
제국의 모든 지역이 위험에 처할 예정이라면 마스터 옆이 가장 안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중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 중앙 사령부였다.
모든 사령부가 위협받고 있는 이때에 중앙 사령부만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일 인기가 없는 곳은 남동부 사령부였다.
왜 똑같이 위험한데 남동부만 인기가 없을까?
그 이유의 중심에는 아이언이 있었다.
“중앙 귀족들의 출입을 엄금함.”
이 단순한 명령에 의해 수도의 귀족들은 아이언에게 어떤 줄도 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긴박한 전투 상황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것.
실제로 남동부는 매일같이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를 벌였기에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아이언이 직접 황궁으로 찾아온 것이다.
거기다가 볼일만 보고 갔던 지난 나날들과 달리 황제와 저녁도 먹고 신의 보석도 고쳐 주고 있다?
이건 그들에게 더 이상 폐쇄적으로 대하지 않고 남동부를 개방하겠다는 정치적인 메시지로 들렸다.
그렇기에 아침부터 황궁에 몰려들어 들어가고자 난리인 것이다.
“곧 대전 회의인데 이리 막아 두면 어떡하나!”
“죄송하지만 태자 전하께서 대전 회의는 오후로 미뤄 두라 명하셨습니다.”
대전 회의를 핑계로 들어가려 한 고위 귀족조차 막히자 다른 귀족들도 하나둘 포기했다.
그래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 법.
어떻게든 아이언과 만나 줄을 대 보려는 자들로 아침 내내 황궁 앞은 북적거렸다.
반면에 황족들은 미칠 노릇이었다.
“하필…….”
4황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 지금 시기에 아이언이 황궁에 왔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황태자의 권한을 완전히 빼앗고 고립시키기 직전에 온 것이다.
거기다 자신과 그리 좋지 않은 관계를 가진 아이언이다.
그도 머리가 있기에 황족들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언이 황태자를 밀어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가 중앙 정치에 관심을 갖고 킹메이커가 된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은 그대로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령관들에게 줄을 대 보려고 했지만 귀족들에게 기부금을 받는 것과 다르게 황족과는 누구도 만나 주지 않았다.
괜히 세력 다툼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사령관들의 명확한 의지였다.
그렇다 보니 아이언이 황태자를 밀어준다면 사령관들 중 유일하게 황족 중 하나를 지지하는 자가 나오게 되는 셈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멸망의 때가 다가오는데 그깟 황제 자리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런 시기일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는 법이었다.
높은 자리에 앉을수록 생존 확률은 더 높아진다.
그리고 멸망의 때가 도래한다 해도 제국이 멸망한다는 법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계획이 어그러지겠군.”
자신이 형제들 중 우위에 서게 된 순간 황태자를 황제로 옹립하고 빠른 시일 내에 폐위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황권이 무너지고 황족이란 지위는 빠르게 가치가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나마 귀족들에게 인정받는 자리가 ‘황제’였다.
멸망의 날이 와도 무시받지 않을 자리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자리. 그렇기에 반드시 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이 무산되게 생겼다.
이런 걱정은 다른 황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기 황제.
그것을 꿈꿨던 이들의 계획이 무너지게 생겼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아이언이 황태자를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면 결국 귀족들은 동요할 것이고, 누군가는 황태자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자고 정식으로 건의할 것이다.
제국민들의 지지까지 받고 있는 황태자를 막을 힘은 없었다.
그렇게 황자들이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할 때, 모든 걸 끝마친 아이언이 황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황태자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한창 아이언과 이야기를 나누던 황태자에게 시종장이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황태자의 물음에 시종장이 귓속말로 보고했다.
“귀족들 사이에서 황제 자리를 더 이상 비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며칠 내로 대전에 안건으로 상정할 것 같습니다.”
시종장은 황태자만이 들리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말했으나, 마스터급인 아이언은 그걸 전부 들었다.
‘드디어 비어 있는 황좌가 채워지나?’
아이언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모른 척 차를 마시자 황태자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내가 되는군.”
황태자의 말에 아이언이 찻잔을 내려놓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경하드립니다.”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 않소?”
황태자의 씁쓸한 미소에 아이언이 입을 다물었다.
제국의 멸망을 예견되었음을 아는 황태자에게 황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반면에 황자들은 여전히 황좌에 미련이 많아 보였다.
차기 황제에 대한 꿈을 아직 완전히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황태자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빠르게 폐위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귀족들 중에 모르는 자가 없었다.
실권을 버린 황태자는 더 이상 권력의 핵심이 아니었기에 생긴 일이다.
그래서 황자들이 자신을 보기 위해 안달이 났다는 것을, 아이언도 잘 알고 있었다.
‘미래를 아는 것이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나?’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며 담담한 표정으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마치 모든 욕심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은 황태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자신에게 전부 말해 주지는 않았음을 깨달았다.
“예지몽으로 황제가 되시는 것도 보신 겁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황태자는 말없이 미소만 그렸다.
침묵은 곧 긍정이라 그랬던가?
황태자는 침묵을 통해 미래의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있었음을 말해 주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제국의 멸망을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초탈한 모습을 보인다고?’
지금 상태가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황제 자리에 올랐음에도 제국의 멸망을 받아들인다.
어차피 멸망의 시기에는 황좌란 게 의미가 없다고 해도, 그가 황제인 이상 제국을 조금이라도 유지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황태자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예정된 미래인 것처럼 아이언에게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제국민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아이언이 머릿속을 스쳐 가는 어떤 생각에 눈을 크게 뜨면서 황태자에게 물으려 할 때였다.
“…….”
고개를 가로젓는 황태자를 보며 아이언은 말없이 침묵했다.
식사 자리에 고요한 침묵이 감돌면서 불편한 공기가 짓눌렀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 속에 있던 황태자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바쁠 텐데 이만 가야 하지 않겠소?”
그의 물음에 아이언은 말없이 황태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예.”
마지못해 대답한 아이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태자에게 말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날을 기다리겠소.”
황태자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언을 직접 배웅했다.
황궁에 설치된 워프 게이트까지 직접 아이언과 함께 걸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대체로 신의 보석과 멸망의 때와 관련된 이야기였기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둘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것을 본 다른 시녀들과 시종들은 둘이 더욱 친밀해졌다고 오해했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언은 황태자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황태자 역시 아이언을 제국에서 가장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디 남동부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오.”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이언이 황태자와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고 워프 게이트에 올랐다.
그리고 곧 빛무리와 함께 그가 있어야 할 곳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까지 확인한 황태자는 마침내 등을 돌렸다.
“……전하.”
시종장의 부름에 황태자가 말없이 그를 돌아봤다.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시종장의 말에 황태자는 입가에 미소만 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래는…… 바꿀 수 있사옵니다.”
“알고 있네.”
개인의 노력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예언가들 사이에 흔히 퍼진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주신이 직접 보여 준 미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자신은 이미 수십 차례나 제국의 멸망을 겪었다.
그리고 그 미래들 속에서 아이언에게 부탁하거나 살기 위해 발악하는 미래들도 있었다.
그 결과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수십 차례의 미래 중 제국이 멸망하지 않은 미래는 없었네. 그리고 나의 미래 역시 과정만 다를 뿐 결과는 항상 같았지.”
황태자의 말에 시종장은 참담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수십 차례나 본 미래 중 가장 좋은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황태자의 물음에 시종장이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보면서 황태자가 빙그레 웃었다.
“제국의 멸망과 함께하는 것.”
황태자의 담담한 목소리에 시종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 멍청하고 오만했던 황태자가 제국의 멸망과 함께하고자 한다.
그의 과거를 아는 자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할지 모른다.
그들의 그런 생각은 틀린 게 아니었다.
지금도 제국의 멸망을 막고 황제로서 천수를 누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본 어떤 미래에서도 그런 결과는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건 수십 차례의 미래 속에서 오직 단 하나의 미래에서만이 희망이 보였다.
수십 개 중 단 하나만이 겨우 멸망의 날 속에서 인류가 생존할 가능성이 보였고, 그 미래에선 자신과 제국이 함께 사라져 줘야만 했다.
그렇기에 황태자는 택했다.
과거 선황들의 대의라는 명목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올바른 선택을 하자고.
잠에서 깰 때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을 흘렸지만 그럼에도 그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못했던 자신이 최후의 순간만큼은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기에…….
그런 황태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듯, 시종장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