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93)
61. 불안한 조짐 (3)
아이언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들 들었다시피 신의 보석이 한계에 직면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지키려고 애를 썼던 신의 보석은 이미 망가진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륙에 각종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중앙 정부에서 말한 것처럼 종말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 관계로…… 지지부진한 이 싸움을 이제 끝낼 때가 온 것 같다.”
이무기와 만티코어가 이끄는 몬스터 연합을 박살 낼 때가 다가온 것이다.
적어도 남동부를 완벽히 장악해야만 다가올 종말에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종말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할 일이 태산같이 남은 만큼 쉴 시간이 없었다.
“일시는 언제입니까?”
아리엘의 물음에 다들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완성되는 날.”
“시험비행도 하지 않는 겁니까?”
아이언의 말에 카드로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최소한의 시험비행만 할 거야.”
그의 말에 다들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이언의 표정에 여유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다급함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사실 만티코어와 이무기를 몰아낸 그날부터 기동 야전군의 성장 속도는 폭발적이었다.
반면에 몬스터들 측은 성장하는 자들만큼이나 죽은 자들이 많아 전체적인 수준이 크게 올라가지 않은 상태.
그냥 가만히 시간이 지나면 몬스터들의 빠른 번식과 성장으로 위험할 테지만 지속적으로 전투를 걸어 숫자를 줄여 놓아서인지, 기동 야전군과 다른 세력들 간의 차이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만티코어와 이무기의 성장이 변수가 되지만, 적절한 시점만 찾으면 완벽에 가까운 승리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언은 그때까지 끌고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항상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려고 안달 난 아이언이 이렇게까지 다급하다?
그건 그만큼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아리엘의 물음에 아이언이 갖고 있던 쪽지를 지휘관들을 향해 던져 주었다.
그러자 가장 가까이 있던 아리엘이 그것을 낚아채서 일었다.
“드……래곤?”
“뭐?”
아리엘의 말에 다들 놀란 눈으로 쪽지를 읽어 보았다.
“회색 산에서 드래곤이 나타났다.”
아이언의 첨언에 다들 경악했다.
남동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남부 연합의 영역이었지만 남동부가 안정된다면 기동 야전군도 안심할 수 없는 거리였다.
“드래곤이 깨어났다는 건 다른 것들도 얼마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소리다.”
“음…….”
“앞으로 나올 것들은 몬스터 연합이나 자이언트 웜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남동부의 위협을 없애고 차분히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언이 다급한 이유.
그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앞으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차분하게 전력을 강화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도 전투를 치르면서 병사들이 강해지고 있지만, 막대한 물자를 소모시키고 사상자가 계속 나오는 이상 군 전체가 성장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인적, 물적 손실 없이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이 필요했다.
벌써부터 드래곤이 나타나고, 북쪽에는 서리 거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많은 고대종들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남동부를 정리하고 야전군의 규모를 확대한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 종말은 예정된 수순이야. 그러니 우린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해.”
아이언의 말에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사령부로 모두 복귀해.”
“그렇게 되면 우리가 그들을 칠 준비를 한다는 걸 몬스터들도 알게 될 겁니다. 그럴 바에 기습하면서 적의 세력을 꺾는 게 낫지 않습니까?”
세리덴의 물음에 아이언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잠시 갔다 올 때가 있다.”
아이언의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시기에 다른 곳을?’이라는 의문에 찬 눈동자였다.
이무기와 만티코어가 있는 이상 아무리 성장한 기동 야전군이라도 사령관 없이는 매우 위험했다.
그들의 눈동자에 불안이 깃들기 시작하자, 그들을 위해 아이언은 행선지를 말해 주었다.
“황궁에 한번 갔다 와야 할 것 같다. 시간은 길지 않을 거야. 만약을 위해 사령부로 모든 병력을 모은 것뿐이야.”
“황궁에…… 말입니까?”
아리엘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중앙 정부에서 수차례 초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거절했던 것이 아이언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황궁을 간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 전하를 한번 뵙고 와야 할 것 같다.”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이언이 황태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태자뿐만이 아니었다.
황족들과 중앙 귀족들이라면 혐오스러워할 정도로 싫어하는 게 아이언이었다.
그런 그가 직접 황태자를 만나러 간다는 게 이상했다.
“지금이 아니면 만날 시간이 딱히 없을 것 같아서……. 한 번쯤 만나 봐야 할 것 같다.”
아이언의 말에 다들 고개를 숙였다.
기동 야전군에서 아이언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가 간다는데 말릴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사령관이 이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지휘관들은 말없이 사령관실을 나가 복귀하기 위해 움직일 준비를 했다.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 바빠질 것이다.
남동부를 안정화시킨다고 해도 회색 산을 견제하고, 야전군을 더 빠르게 키우기 위해서 정신없이 움직일 것이다.
그러기 전에!
지금 황태자를 만나서 물어봐야 했다.
그가 물어볼 것은 두 가지였다.
1. 신의 보석이 언제쯤 깨질 것인지.
2. 황실이 숨긴 비밀.
신의 보석을 매일같이 직접 확인하고 있는 황실이라면 대략적으로나마 신의 보석이 언제 깨질 것인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말의 때가 다가온 시점에서 황태자가 말할 가능성도 있으니 물어보려는 것뿐이다.
사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만 확실히 들어도 성공이었다.
언제쯤 깨질지 대략적인 시간만 유추할 수 있어도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황태자가 진짜로 바뀐 것인지도 알아봐야겠지.’
오만하지만 능력이 받쳐 주지 못한 황태자.
그런 주제에 무언가에 도전할 용기도 없어서 평생 황족이라는 가면만 쓰고 자신의 못난 모습을 숨기는 데 급급했던 놈이었다.
그 황태자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사실 신의 보석도, 황의 비밀도 궁금했지만 그것보다 황태자란 인간의 변화된 모습이 가장 궁금했다.
심지어 황태자는 전생부터 온갖 똥을 싸지르기까지 했었다.
그랬기에 그런 황태자가 다른 황족들과 달리 올바른 결정을 내린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통신장교를 통해 황궁으로 연락하자 내관이 떨리는 음성으로 아이언에게 물었다.
-아이언 카터 사령관이 맞습니까?
“예, 전하를 뵙고자 합니다. 언제쯤 가능하겠습니까?”
내관에게 정중히 묻자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재빨리 대답했다.
-전하께오서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하십니다.
“그렇다면 1시간 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 그렇게 빨리……. 알겠습니다.
1시간 뒤에 출발한다고 하자 당황하는 내관이었지만 떨리는 음성으로 통신을 끊었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아이언이 중앙으로 간다는 소식에 수도 워프 게이트에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태자가 직접 명령하여 황궁 전용 게이트를 열었다.
빛무리와 함께 오랜만에 워프 게이트를 탄 아이언이 눈을 감았다 뜨자 곧바로 황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파되었던 황궁은 많이 복구되었는지 나름 관리된 정원과 세련된 건물들이 보였다.
“전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오.”
자신을 직접 기다리고 있는 황태자를 보면서 재빨리 예를 갖춰 인사하자 그런 인사치레는 필요 없다는 듯, 직접 다가와 아이언을 끌고 자신의 궁으로 향했다.
‘변했군.’
황태자의 행동에서 가식적인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많이 변한 황태자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그의 궁으로 가자 곧 마실 것과 간단한 디저트가 나왔다.
“전하, 재무 대신이 급히 보기를 청하옵니다.”
“지금 중요한 인사를 보아야 하니 나중에 다시 오라 이르게.”
“북부 지원 물자 문제이옵니다.”
“이런…….”
황태자가 깜빡했다는 표정으로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기다려 줄 수 있겠소? 금방 처리하고 오겠소.”
“몇 시간이라도 기다릴 수 있으니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내 금방 다녀오겠소.”
그 말과 함께 쌩 하고 사라진 황태자.
아이언이 그가 사라진 자리를 흥미롭게 바라보자 옆에 있던 늙은 시종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많이 바뀌셨지요?”
“……예. 어떻게 저리 바뀌신 겁니까?”
아이언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묻자 시종장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황실의 일을 밖의 사람에게 알리는 건 금지된 일이기에 침묵하는 것이다.
중앙 귀족들의 끄나풀이 아닌 황태자가 가장 믿는 자가 바로 시종장이었다.
그런 그가 입이 가벼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사령관께는 말해도 괜찮겠지요.”
시종장이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고민하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하께오서 바뀌신 거 악몽을 꾸고 나서부터입니다.”
“악몽…… 말입니까?”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하자 시종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정말 죽다 살아난 것 같으셨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그런 악몽을 꾸셨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눈에 현기가 차오르더군요. 그리고 얼마 전부터 완전히 달라지셨습니다.”
시종장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몽이 사람을 바꿀 수 있나?’
보통 사람을 더 망가뜨리는 게 악몽이란 녀석이었다.
그런데 악몽을 꾸면서 눈에 현기가 찬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궁금하시다면 전하께 직접 물어보십시오. 사령관이라면 답해 주실 겁니다.”
“저라면…… 말입니까?”
“예. 전하께오선…… 사령관을 제국의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시종장의 말에 더 많은 궁금증이 일어났으나 그는 더 이상 입을 열 생각이 없는지 진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머릿속에 시종장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며 궁금증이 증폭되어 갈 때, 급하게 처리하고 왔는지 황태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늦어서 미안하오.”
황태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시종장에게 차를 다시 내오게 했다.
그렇게 시종장이 나가자 방 안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깬 건 의외로 아이언이 아닌 황태자였다.
“나에게 물을 것이 있다 하던데…….”
“예, 전하.”
“필시 신의 보석에 관한 것이겠지. 종말의 때를 알고자 왔소?”
황태자의 물음에 아이언이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숙였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오. 한 가지 확실한 건 온갖 방법을 다 쓰면서 버틴다 해도 1년 정도 남았다는 것이오.”
“1년…….”
“사실 지금 당장 붕괴돼도 이상하지 않소만…… 주신께서 우리에게 마지막 준비를 할 시간 정도는 주는 것 같소.”
황태자의 확신에 찬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도 영상구를 봤었다.
거대한 신의 보석 전체에 가 있는 균열.
사실 이곳에 직접 찾아온 것은 오랫동안 신의 보석을 관리해 온 황실로부터 보석의 붕괴 시점에 대한 추측이라도 듣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황태자는 거의 확답을 내놓았다.
“내가 어찌 이리 확신할 수 있는지 궁금하오?”
황태자의 물음에 아이언이 고개를 들어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시종장이 말했던 것처럼 약간의 현기가 느껴지는 눈.
예전의 멍청했던 눈은 더 이상 없었다.
“사실 그대를 이 황궁에 초대하고 싶었소. 내가 아는 바를 조금이라도 더 들려주고 싶었는데…… 이리 찾아와 주다니…… 이것조차 신의 안배인 것인지…….”
황태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하며 생각을 정리한 황태자가 작게 입을 열었다.
“나는 미래를 보았소.”
황태자의 말에 아이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 무슨……?”
“예지. 아마 내가 꾼 꿈은 예지일 것이오.”
“예지…… 말입니까?”
“그렇소.”
황태자가 그렇게 말하며 긴 숨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결코 말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말했다.
“……제국은 멸망할 것이오.”
황태자의 말에 아이언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사령관들과 제가 굳건하다면 제국 역시 존속될 것입니다.”
“아니, 제국은 신의 보석이 붕괴되는 순간 끝을 맞이할 운명이었소.”
아이언의 입발림 소리에도 황태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아이언이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제국에 미련 같은 건 없소. 다만…… 인류라도 존속되기를 희망할 뿐이지.”
황태자가 미래를 보았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한심함에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는 듯 말했다.
“내 역할은 아마 단편적으로라도 그대에게 내가 본 것들을 전하는 것일 테지.”
황태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이 꿈속에서 겪은 것들을 경악하는 아이언에게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