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90)
60. 성장하는 야전군 (3)
갑작스러운 자이언트 웜 군단의 습격에 몬스터들과 인간들이 뭉쳤다.
그레이트 웜으로 진화한 개체만 수천.
하나하나가 강력한 개체들인 자이언트 웜 군단은 그동안 진화를 거듭했다는 걸 증명하듯,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날개가 달린 녀석도 있었고, 온몸에서 독을 뿜어내는 개체도 있었다.
“확실히 영악해졌어.”
아이언은 똑똑해진 이무기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철갑지렁이였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머리 좀 쓸 줄 아는 정도에 불과했던 녀석이 지금은 전술이란 걸 사용할 줄 알 게 되었다.
더 놔두면 위험해질 정도로 똑똑해질 것이다.
게다가 무력 역시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예전엔 자이언트 웜과 철갑지렁이들을 아이언 혼자 막아섰다면 이젠 이무기 하나만 막기도 버거울 정도로 성장해 버렸다.
“똑바로 좀 해!”
-네가 더 움직이면 될 거 아닌가!
서로가 격렬하게 싸운 탓에 힘의 소모가 컸던 아이언과 만티코어는 무조건 이무기를 상대로 힘을 합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방금 전까지 싸웠던 탓에 힘을 합친다는 게 뭔가 어색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언과 만티코어는 이무기를 공격할 때마다 서로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게다가 영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만티코어라는 게 문제였다.
자꾸만 눈치를 보면서 아이언의 뒤를 칠 각을 보고 있었다.
아이언 역시 그것을 느꼈기에 일부러 몸을 사렸고, 그러다 보니 이무기에게 치명상을 입힐 상황에서도 머뭇거리면서 기회를 놓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에 뒤통수 칠 계획만 하고 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것은 다른 부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고 지휘관들이 이 꼴이니 다른 부대들 역시 다를 리가 없는 것이다.
“이 새끼들 뒤통수 치려고 하네?”
“야! 우리도 틈 보이면 조져.”
“저것들 일부러 사리는 거 보소.”
영악한 몬스터들이 뒤통수 치려는 걸 눈치챈 인간들 역시 전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보다는 사리는 걸 택하면서 전투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자이언트 웜 군단의 힘이 강하기에 결국 뭉쳐서 싸우기는 했지만 피해를 입는 상황이 오는 순간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인간과 몬스터들이 서로 피해를 안 입으려고 사리는 동안 자이언트 웜들은 더 기세등등해져서 달려들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몰리는 건 인간과 몬스터들이었다.
결국 한계까지 몰리자 뒤통수 칠 생각을 완전히 버리기 시작했다.
이 이상 몰리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몬스터들은 먼저 자이언트 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인간들 역시 몬스터들을 도와 자이언트 웜들을 진심으로 공격했다.
거대 개미가 시선을 끌면, 기사들이 자이언트 웜의 약점을 공략했고, 트롤이 주술을 사용하면 마법사들이 강력한 화력으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인간과 몬스터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합치기 시작하자 자이언트 웜들의 공세도 점차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이무기가 본격적으로 힘들 드러냈다.
“얼마나 처먹었길래 저 정도로 커진 거지?”
아이언은 지상으로 완전히 몸을 드러낸 이무기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무기는 웬만한 공격으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을 단단한 외피를 갖고 있었다.
거기다가 외피를 날릴 때 사용했던 공허의 기운은 이제 주변의 공기에도 사용할 수 있는 듯싶었다.
검게 물든 바람이 회오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중간중간에 공허의 기운이 뭉쳐서 날아들기도 했다.
“안 본 사이에 엄청나게 성장했네.”
아이언이 혀를 내두르자, 만티코어가 하늘 높은 곳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보랏빛 기운을 날렸다.
하지만 이무기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공허의 기운을 압축해서 날렸다.
보랏빛 섬광과 충돌하는 검은 섬광.
이제는 정말 지렁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성장해 버린 이무기는 살벌한 눈으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입꼬리는 미소를 짓는 것처럼 살짝 올라가 있었다.
“하…… 비웃네?”
이젠 자신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꼿꼿하게 선 녀석의 머리.
그것을 박살 내 주기 위해 자신의 주위로 신수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언의 분노 어린 마음을 읽었는지 신수들 역시 전력으로 힘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이무기 역시 힘을 끌어 올리면서 아이언을 향해 돌진했다.
아이언과 이무기의 충돌과 동시에 강력한 힘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진짜 성장했네.’
자신의 오러 블레이드는 가장 단단한 꼬리로 쳐 내고, 두 개의 달의 공격은 검은 섬광으로, 천둥새의 폭풍은 공허의 기운으로 만든 회오리로, 피닉스의 불꽃은 외피를 겹쳐서 견뎌 냈다.
사실상 아이언이 낼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음에도 견뎌 낸 것이다.
남은 건 고유 능력과 신성력 정도.
아이언이 쏟아 낼 수 있는 대부분의 신성력은 뱁새가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즉시 고유 능력인 번개에 신성력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오러 블레이드를 타고 하얀 번개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파지직!
-키르르르!
오러 블레이드로 후려치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르르 떠는 이무기.
공허의 기운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외피에 때려 박은 뇌전이 천둥새의 번개와 달리 공허의 기운에 극상성이다 보니 내부까지 침투한 것이다.
게다가 오러 블레이드에 휘감겨 있다 보니 상처 부분이 쉽게 회복되지 않도록 지져져 버렸다.
거기다 미약하지만 냉기의 효과로 그 즉시 얼려져 버리기까지 했다.
-키륵!
그래 봤자 찰과상에 불과한 상처.
상처를 쉽게 회복할 수 없게 만들었지만 치명상이 아닌 이상 큰 의미가 없었다.
아이언 역시 그것을 알기에 장기전을 대비하며 무리하지 않았다.
또다시 충돌하는 아이언과 이무기.
서로가 빈틈을 찾으면서 격렬하게 싸우던 그들이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물러나면서 한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쿠우웅!
“얍삽하기는…….”
-키르르…….
자신들이 싸우는 동안 빈틈을 노린 만티코어를 향해 이무기와 아이언이 동시에 살기를 드러냈다.
비겁한 놈에게는 응징을 가해야 하는 법.
이무기와 아이언이 동시에 만티코어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애초에 순수 무력으로는 아이언과 이무기에게 달리는 것이 만티코어였다.
그래서 그런지 둘의 합공에 형편없이 밀려 나갔다.
친위대를 동원해 봤자, 둘의 합공을 견뎌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 일단 이무기부터 처치하자. 저 녀석을 처리할 때까지는 빈틈을 노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개소리 말고 그냥 뒈져라.”
다급하게 협상을 제안하는 만티코어에게 아이언이 가볍게 응수하며 전력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이무기는 만티코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뒤쪽에서 날아들었다.
그래도 몇 개월간 지독하게 싸워 봤던 경험 때문인지 아이언과 이무기의 협공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맞았다.
하늘도 막히고 뒤쪽도 막힌 만티코어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러면 곤란한 건 너일 텐데!
어느새 몬스터들이 얻어터지는 만티코어를 보면서 인간과의 협공을 끝내고 적대적인 포지션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그러자 아이언이 비웃었다.
“동맹은 몬스터들이랑 맺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아이언이 말을 내뱉는 순간 자이언트 웜들이 인간 진형에서 물러나 몬스터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눈치 빠른 장교들이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선 몬스터들을 향해 창끝을 돌렸다.
사면초가에 빠진 만티코어와 몬스터군.
인간과 자이언트 웜들의 협공에 여기저기서 죽어 나가면서 후퇴하기 바빴다.
만티코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치명상을 감수하고 퇴각하는 데 모든 것을 건 만티코어가 발악하듯 최후의 한 수인 보랏빛 뇌전을 사용했다.
아이언과 이무기 측이 전방으로 쏟아지는 번개의 줄기들을 걷어 내는 사이, 만티코어의 몸이 뇌전처럼 변하며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나갔다.
끝끝내 숨겼던 마지막 한 수를 살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 덕에 몬스터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뒤로 퇴각하는 데 성공했다.
남은 건 자이언트 웜 군단과 기동 야전군뿐.
콰아앙!
“그럴 줄 알았지.”
만티코어가 도망치는 걸 본 순간 이무기의 꼬리가 날아들었고, 아이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오러 블레이드로 가볍게 그 공격을 쳐 냈다.
기동 야전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전장의 상황 속에서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전투에 임하는 부하들을 보며 아이언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그렸다.
오랜 전투 경험 때문인지 바로바로 대응하는 부하들의 모습에 더 이상 직접 지휘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아이언.
그래선지 부하들을 믿고 이무기에게만 전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끼르르!
“아직은 네가 위인 것 같다?”
이무기 하나에게 전력을 집중하자 오래 지나지 않아 전투 결과가 드러났다.
신수들의 융합기와 아이언의 하얀 뇌전이 담긴 오러 블레이드를 견디지 못하고 이무기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 시간이 길어질수록 차이는 점차 벌어지면서 나중에는 복날 개 패듯 오러 블레이드로 이무기를 쥐어 팼다.
물론 녀석의 맷집은 상상을 초월해서 그렇게 쥐어 패도 치명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이무기가 진다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았기에, 사령부를 압박하던 그레이트 웜들이 아이언을 향해 돌진해 왔다.
“야! 부하들 부르기 있냐? 일대일 해! 인마!”
아이언은 치사하게 부하들을 부르는 얍삽한 이무기를 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투덜거리는 것과 달리 속내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사령부를 압박하는 다수의 그레이트 웜이 자신에게 몰려왔기 때문인지 사령부에 한결 여유가 있는 것이 보였다.
몬스터들과 전투로 대부분의 물자를 소진한 부대들이기에 계속 싸우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레이트 웜들이 이무기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으니 사실상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키르…….
아직까진 혼자서 아이언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이무기가 슬그머니 후퇴할 준비를 했다.
그것을 본 아이언도 굳이 쫓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도 몸에 무리가 온 상황이고, 무엇보다 연이은 전투로 부하들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혼자서 자이언트 웜 군단을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끝내는 게 맞았다.
그렇게 암묵적인 합의하에 전투가 끝나고, 기동 야전군의 사령부는 곧바로 복구 작업에 돌입했다.
격렬했던 전투치고 사상자는 크지 않았는데, 그게 다 신성력과 뱁새 덕분이었다.
반면에 물자는 어마어마하게 소비되었고, 사령부도 곳곳이 망가져 있었다.
“엉망이네.”
아이언이 씁쓸한 표정으로 사령부를 바라봤다.
결국 가장 위험한 순간을 견뎌 냈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상 기동 야전군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얼마 안 가 또다시 쳐들어온 자이언트 웜 군단을 상대로 훌륭하게 막아 냈다.
이전과는 다른 여유 있는 전투.
이무기를 상대로 아직 여유가 있는 아이언이 압박을 가하면 그레이트 웜들이 이무기를 돕기 위해 귀신같이 몰려들었고, 그러면 기동 야전군이 밀고 들어갔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이언이 이무기를 상대로 우위에 있을 때만 가능한 작전이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이무기이기에 언젠가 따라잡힐 걸 생각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이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전투 속에서 기동 야전군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 사체와 진화한 그레이트 웜들의 사체를 얻게 되면서 사령부 내에 있는 연구소도 쓸 만한 연구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쓸 만한 연구는 자이언트 웜들의 몸 안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마석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언의 끊임없이 나오는 신성력으로 공허의 기운을 정화하면 그 반발력을 통해 계속해서 주변 마나를 끌어모아 증폭한다는 점이다.
반영구적인 동력원의 확보.
거기다가 시간이 지나 완벽히 정화되면 마석 자체가 신성을 띠게 되는데, 이것을 이용하면 신성력을 머금은 무구들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요새포 역시 이것들을 통해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당연히 비공선을 비롯한 무기들 역시 빠르게 업그레이드가 시작되면서 병사들의 질적 수준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시작인가?”
아리엘의 6단계에 이어 카드로와 세리덴마저 6단계의 벽을 넘어섰고, 나머지 직할대의 사단장들 역시 6단계를 향해 다가간 것이다.
매일같이 목숨을 건 전투로 인해 실력이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몬스터들에 비해선 실력 향상의 한계가 명확했었다.
그런 그들이 한계가 넘어설 수 있게끔 한 것이 바로 몬스터들이었다.
반복되는 전투와 공허의 기운을 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침식된 오염된 기운이 신성력과 뱁새의 힘에 치유되며 또 다른 힘을 각성하게끔 했다.
특히 몬스터 중에 고대 신의 잔재를 흡수한 녀석들과 싸우면서 그 힘에 침식될 경우 이세계인들처럼 힘을 각성하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몬스터 사체를 가르거나 마석을 옮기거나, 어떤 때는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각성하는 자들도 있었다.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방식으로 각성하는 병사들과 장교들.
한 가지 확실한 건 각성하는 자들이 많아질수록 기동 야전군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자이언트 웜 군단도 최근 들어 습격하는 빈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성장한다지만 장기간에 걸쳐 격렬하게 싸우면서 두 세력의 전체적인 전력이 많이 깎여 나간 상황이었기에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빈틈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만티코어의 몬스터 군단이 공격해 들어왔다.
3개의 세력이 빈틈만 보이면 공격해 들어오는 물고 물리는 전장.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이 전장은 의외로 가장 약한 전력을 갖고 있던 인간들의 승리로 굳어져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