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89)
60. 성장하는 야전군 (2)
레이븐의 보고와 함께 전투가 시작된 장소는 몬스터들의 최후방 지역이었다.
소형 비공선으로 하늘 높은 곳에서 정찰한 레이븐이 레인저들에게 알리고 그들은 그 즉시 정보를 토대로 직접 움직였다.
그리고 뚫기 어려운 곳은 돌격대에 연락했다.
그러면 돌격대는 오직 한 곳만을 노리고 들어가 몬스터들이 지은 임시 요새를 박살 내 버렸다.
이러한 직할대들의 연계 플레이에 후방에 있는 병참들이 실시간으로 박살 났고, 후방의 진영은 혼란에 빠졌다.
-숨겨 둔 한 수라…….
만티코어가 후방이 박살 났다는 보고를 들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언의 한 수로 인해 자신 역시 뒤가 없어졌다.
병참과 후방이 박살 나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었다간 철갑지렁이와의 전투는 꿈도 꾸지 못하고 후퇴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 쉬우면 재미가 없지.
만티코어의 늙은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되어 가는 것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었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 쟁취하는 승리여야만 달콤한 꿀과 같이 달콤한 것이다.
-모두 불러들여라.
만티코어의 명령에 몬스터들의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사령부를 공격하던 모든 몬스터들은 일제히 퇴각했다.
그러자 인간 진영 역시 다시금 사령부로 복귀했다.
몬스터군의 후방을 어지럽히던 부대들 역시 재빨리 퇴각하며 몬스터들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까지 물러났다.
하지만 사령부로 완전히 복귀하지는 않았기에 언제든 후방을 공략할 수 있었다.
그러자 만티코어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병참을 버렸다고?”
-그렇습니다.
레이븐의 보고에서 아이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병참을 버렸다는 건 초단기전으로 끝나겠다는 의지였다.
몬스터들은 퇴각한 이후, 만티코어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후방에 둔 최소한의 몬스터들조차 모조리 끌어모아서 한 방에 끝낼 생각인 것 같았다.
“일단 복귀해.”
-예!
레이븐에게 레인저와 돌격대를 불러들이라고 명령을 내린 아이언은 곧바로 다른 부대에게도 연락했다.
“전군, 사령부로 집결해.”
-예!
모든 병력이 아이언의 명령에 일제히 사령부로 집결했다.
한 방으로 끝내겠다는 만티코어의 강력한 의지에 몬스터들이 서로의 버프를 중첩시키기 시작했다.
타락한 비룡은 주변에 공허의 기운을 뿌려 몬스터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거대 개미들은 대지를 오염시켰다.
거대 물소들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지속적으로 몬스터들을 자극했다.
그 결과, 그들은 아주 강력한 몬스터 웨이브를 만들어 냈다.
한 방에 끝나겠다는 만티코어의 의지처럼 몬스터들 역시 이 한 방에 모든 걸 걸겠다는 생각으로 힘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기동 야전군 역시 사령부를 중심으로 총력전에 들어갔다.
“아끼지 마!”
“이 한 방에 끝난다. 있는 거 다 꺼내 와!”
“뒤는 생각하지 마!”
군수장교들은 창고 있는 모든 치장 물자들을 꺼내서 각 부대에 보내 주었고, 병사들은 그것을 나르느라 등골이 휠 지경이었다.
게다가 외부에서 작전을 한 21군단과 22군단의 소모된 물자들 역시 전부 채워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자가 부족해서 사령부 내에 있는 공장들과 상인들로부터 빌려야 했다.
나중에 혜택이나 돈으로 갚겠다는 약속과 함께 막대한 물자가 각 부대로 몰려들었다.
서로 간에 뒤가 없는 전투를 위해 바닥에서까지 힘을 끌어모았다.
뿌우우우우~.
밤이 되자 멀리서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와 함께 몬스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붉은 안광을 뿜으면서 오는 모습은 소름 돋을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아이언의 부대 역시 정예였다.
북부 전쟁부터 활약한 베테랑들부터, 신입들 역시 남동부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른 정예들이다.
이 정도에 겁먹을 병사들 따윈 없었다.
포격 소리가 대지를 뒤흔들고 다양한 마법들이 떨어져 내리며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몬스터들 역시 단단히 준비했는지 반격이 매서웠다.
주술부터, 오염된 기운까지 모든 공격이 사령부로 쏘아졌다.
비공선들이 공중에서 맘 놓고 폭격하지 못하도록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타락한 비룡들이 공허의 기운을 울음소리에 담아 쏘아 냈다.
몬스터 웨이브에 의해 서로의 버프가 중첩된 것과 더불어 공허의 기운까지 공명하며 몬스터 진영 자체가 공허의 요새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이언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째애액!
작은 뱁새가 하늘 높은 곳에서 태양처럼 밝게 빛을 비추었다.
밤이었음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는 그 빛은 몬스터 진영을 제외한 모든 것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콰곽!
공허의 기운과 성역이 충돌하면서 힘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두 힘이 부딪치며 생겨난 균열 사이로 몬스터들이 일제히 진입했다.
그렇게 몬스터들이 사령부로 맹렬히 돌진해 오자 전처럼 마법사들이 지형을 뒤틀고 요새포가 발사되며 쓸어버렸다.
하지만 전과 달리 몬스터들은 요새포를 버텨 냈다.
병정개미가 서로 뭉쳐 버프로 강화된 외피를 내세워 요새포에 저항했고, 마법들은 트롤들의 주술로 버텨 냈다.
“성장한 건가?”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몬스터들을 지켜보았다.
자신들과 싸우면서 녀석들도 성장한다.
처음이야 몰라서 당했다지만 두 번째부턴 녀석들도 머리가 있는 이상 쉽게 당하지 않는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아이언은 한숨을 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하고 검집에서 부드럽게 검이 뽑혀 나왔다.
그 순간 몬스터 진영에서 강력한 힘의 파장이 뿜어져 나와 사령부에 강타했다.
쿠구구구!
사령부와 주변 대지를 떨리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
만티코어 역시 이번 전투에 모든 걸 걸 생각인지, 육체에 무리가 갈 것을 각오하고 힘을 증폭시켰다.
그러자 아이언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모든 힘을 개방했다.
천둥새가 번개로 주변을 쓸어버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냈고, 피닉스가 활공하면서 화염의 비를 내렸다.
그러자 만티코어의 보랏빛 숨결이 응축되면서 아이언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건 아이언에게 닿지 못했다.
어느새 나타난 두 개의 달의 광선이 그것을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후…… 2차전인가?”
아이언은 긴 숨을 내뱉으면서 긴장감을 가라앉히고는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저 준비운동과 다름없는 단순한 휘두름.
하지만 그 단순한 휘두르기에 앞에 있는 병정개미들이 그대로 몰살당했다.
어느새 아이언의 검은 오러가 응축된 거대한 검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자 만티코어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두 날개에서 공허의 기운을 발산하며 날아올랐다.
단순한 날갯짓.
하지만 증폭된 그 힘은 파동만으로 비공선 몇 대를 반파시켜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괴물들의 싸움이 시작된 건가?”
카를이 중얼거린 순간 아이언과 만티코어가 전투를 시작했다.
그저 단순히 부딪친 것만으로 강력한 힘의 파동이 만들어지면서 주변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 힘의 파동 밖으로 타락한 거대 비룡이 날아올랐고, 회색빛으로 물든 날개를 가진 하피가 마법을 부리며 신수들을 견제했다.
보랏빛으로 물든 뿔을 가진 거대한 물소는 두 개의 달을 물고 늘어졌고, 그 주변으로 만티코어의 친위대가 된 병정개미와 수개미들이 날아들었다.
만티코어와 아이언, 그리고 친위대와 신수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면서 순식간에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어느새 두 존재만의 영역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괴물들의 싸움을 뒤로하고 남은 몬스터들과 사령부의 싸움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달이 하늘 높이 떠올랐음에도 전투는 끝날 줄 몰랐다.
공허의 힘에 강화된 몬스터들은 지칠 줄 몰랐고, 인간들 역시 전원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자들이며 성역의 힘으로 증폭된 뱁새의 힘으로 계속 회복되었다.
서로가 지치지 않은 체력으로 계속 싸웠다.
부상당한 자들 역시 빠르게 회복하며 빠르게 전투에 복귀했다.
몬스터들은 공허의 기운으로 치명상조차 1시간도 안 되어서 회복했고, 인간들은 뱁새의 힘으로 잘린 팔조차 주워다 붙이며 회복했다.
그러다 보니 자정이 지나고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음에도 전투는 멈추지 않았다.
쾅! 쾅!
“포탄이 바닥났습니다!”
“성벽 위로 올라가서 폭탄이라도 던져!”
도미닉 스톤이 버럭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러자 포병 장교가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그것도…… 없습니다!”
그제야 도미닉 스톤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마지막 포탄을 넣는 몇몇 포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도미닉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본 도미닉이 검을 뽑아 들었다.
“총을 들어라! 탄을 다 쓰면 검을 뽑아라! 전투가 끝날 때까지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알겠나?”
“예!”
“모두 성벽 위로 올라가!”
도미닉의 명령에 모두가 총을 들고 성벽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포병 부대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비공선 위에서 모든 폭탄과 포탄을 소모하자 카드로는 모든 병력을 강하시켰다.
아리엘의 21군단은 포탄은 물론이고 마탄마저 전부 소모해 전원 창을 잡게 한 지 오래였다.
“밀리지 마라!”
“창을 찔러 넣어!
“부상을 두려워 마라!”
“성벽을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
모두가 악을 쓰면서 올라오려는 몬스터들을 사력을 다해 막아 냈다.
그들의 그런 노력 덕분인지 사령부의 성벽은 아슬아슬하게나마 버텨 내고 있었다.
성문 역시 두 번이나 뚫렸지만 끝내 버텨 냈다.
그러자 몬스터들 역시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여기서 밀리면 자신들은 끝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뒤가 없는 싸움이기에 더욱 간절하게 전투에 임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해가 중천에 다다르기 시작하자 인간도, 몬스터도 조금씩 지쳐 갔다.
아무리 활력을 불어 넣고 공허의 힘으로 육체가 회복된다 한들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반사적으로 창을 찔러 넣고, 무기를 휘둘렀다.
아이언과 만티코어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들이야 더 싸울 수 있다지만 부하들은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라는 걸 알았기에 안 것이다.
그래서 물러나려 했다.
바로 그때,
쿠구구궁!
-키에에에엑!
갑자기 대지를 뚫고 나오는 거대한 지렁이들.
“이 녀석들이 어째서!”
-설마…….
아이언과 만티코어가 경악하면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자이언트 웜들을 바라보았다.
“못 느꼈는데…….”
-대체 어디서…….
마스터의 감각으로는 분명 못 느꼈다.
아무리 서로가 전투에 집중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마스터급의 감지 능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자이언트 웜들이 나타난 건 전투 지역의 끝자락이었고, 그마저도 깊은 지하에서 솟구쳐 오른 것이다.
그리고 마스터의 감각은 같은 마스터급이라면 충분히 숨길 수 있었다.
-대장 지렁이…….
“이무기……인가?”
대량의 몬스터들을 씹어 먹으면서 등장한 거대한 검은 지렁이.
동대륙의 이무기처럼 거대한 크기의 그것은 더러운 체액을 뚝뚝 흘리면서 아이언과 만티코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사령부와 몬스터군의 주변을 자이언트 웜들이 하나둘 솟구치면서 포위하고 있었다.
“낚인 건가?”
-하…… 굴욕이군, 지렁이 따위에게 낚이다니.
아이언과 만티코어가 싸워서 서로의 힘을 소모하는 순간을 노렸다는 듯, 이무기가 괴상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렁이가 웃을 줄도 알았나?”
아이언의 물음에 만티코어도 처음 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들이 북부로 간 것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일부러 북부로 간 것처럼 하고선,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부랴부랴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덕분에 이무기의 자이언트 웜 군단은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아무래도…… 손잡아야겠지?”
-몰살당하지 않으려면 할 수 없지.
아이언과 만티코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몬스터들과 인간 진영의 전투 역시 멈추었다.
굳이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그들 역시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 와라, 지렁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