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88)
60. 성장하는 야전군
미친 듯이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사령부의 모든 병력이 분전하기 시작했다.
몬스터 군단을 넘어선 몬스터 웨이브.
그 막대한 힘이 한 곳을 향해 분출되는 것이다.
전생에선 두 명의 마스터와 살아남은 제국의 방위군이 몰려와 막아 내야 할 정도로 막강한 기세.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전생보다 발전된 무기 체계와 명령 체계가 분산되지 않은 일원화된 기동 야전군.
이 두 가지가 그걸 가능하게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이언은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엔 제대로 준비했네.”
저번에 된통 당한 것이 분했는지, 이번엔 아예 아이언을 상대하기 위한 병력까지 빼 둔 상황이었다.
영악한 만티코어답게 자신 혼자서는 아이언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심지어 빼 둔 개체들은 전부 상위 개체들이었다.
변이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는지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없는 거대 병정개미 일부와 변이된 비룡 개체들이 보였다.
하늘을 압박해 신수 숫자를 줄이고, 지상에선 병정개미로 밀어붙여 보겠다는 뜻 같았다.
‘변이도 더 진행된 걸 보니 만만치 않은 놈들이겠네.’
아이언을 상대하는데 어정쩡한 녀석은 있느니만 못했다.
영악한 만티코어가 고작 이 정도로 아이언을 묶을 생각은 아닐 것이다.
숨겨 둔 한 수까지 생각하면 아이언은 움직이지 않는 편이 나았다.
아이언이 움직이는 순간 만티코어도 움직일 것이기에 서로가 가만히 주시하면서 견제만 하고 있는 상황.
몬스터 측은 만티코어와 주력 중 일부까지 봉인되어 있었지만 상황은 아이언 측이 더 심각했다.
기동 야전군에서 아이언이 담당하는 무력이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저거 보이냐?”
“……예.”
아이언의 물음에 폴덴이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있는 만티코어를 바라보았다.
거체가 작게 보일 정도로 멀리 있는 녀석.
하지만 폴덴 역시 명색이 레온하르트 직계답게 상당한 수준의 무인이었고, 그렇기에 만티코어가 있는 곳을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저놈이 작정하고 자기 주력까지 묶어 두면서 날 견제하고 있어.”
아이언의 말에 폴덴의 표정이 굳어졌다.
“난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니 너희들끼리 해내야 해.”
아이언이 뒤를 돌아보면서 말하자 폴덴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옆에 있는 카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언 없이 이 많은 몬스터들을 막아 내는 것.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어떤 피해를 입는다 해도 해내야 했다.
“지금부터는 각 지휘관들은 알아서 판단해 지휘한다.“
“그건…….”
카를이 아이언의 말에 반박하려 했지만 그의 볼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아이언이 하고 있는 건 단순히 견제만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알 수 없는 수 싸움이 만티코어와 아이언 사이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
마스터 특유의 파장이 전장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그건 만티코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마력 파장으로 치열하게 영역 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빈틈을 확인했다.
“내가 빈틈을 보이는 순간 만티코어가 움직인다.”
아이언의 말에 카를은 말없이 입술을 짓씹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지휘관들에게만 전해 두겠습니다.”
카를의 말에 아이언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해 준 카를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가만히 만티코어를 응시했다.
본격적으로 그와의 기세 싸움에 돌입할 생각인 것이다.
그러자 카를이 폴덴의 어깨를 잡고 그에게서 멀어졌다.
“토템도 아니고…….”
아이언이 토템처럼 가만히 서서 만티코어만을 견제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에 반해 만티코어는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타입도 아닌 데다, 아이언과 이런 기세 싸움을 하는 것도 나름 재밌었기 때문이다.
아이언은 단순히 육체와 무력만 높은 맹장 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머리도 쓸 줄 아는 지장이었다.
몇 번의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검증된 지휘관인 용장이 그였다.
그렇기에 재밌었다.
무력도 마스터급이고, 머리도 굴릴 줄 아는 자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사람이 자신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으니 그 어떤 전투보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재밌군.
만티코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상황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주력 병력을 묶어 두면서까지 이런 판을 짰다.
서로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부하들끼리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는 부족한 병력으로 막대한 몬스터들의 돌격을 막아 낼 수 있을까?
그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일까?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확실한 건 부하들끼리의 싸움은 자신보다는 아이언이 훨씬 불리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판을 짜는 데 능하고, 아이언은 전술에 능하다.
아이언이 전술적 승리를 하나하나 쌓아서 거대한 전략적 승리를 거두는 타입이라면, 자신은 애초부터 판을 짜고 시작하는 타입이라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투는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아이언의 군대가 전술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도록 피해를 감수하고 재빠르게 이곳까지 도달했으니까.
게다가 이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언이 직접적으로 진두지휘하지 못하도록 묶어 두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자신이 짠 판이 통한 것이다.
-다음 수는 뭐가 되려나?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언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즐겁게 해 줄지 만티코어는 기대되었다.
자신과의 싸움을 대비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전투에서 나타날지 기대됐다.
그렇게 만티코어가 아이언의 다음 수를 생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이언의 부하들은 죽을 맛이었다.
폴덴을 통해 모든 지휘관들이 지금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카드로였다.
“……최악이군.”
카드로가 한숨을 쉬면서 전황을 살폈다.
전체적인 상황은 불리했다.
이 불리한 전투를 극복하려면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기습적인 공격이면서도 전열을 흩뜨려 놓을 수 있는 한 방.
그러려면 단순히 막기만 해선 이뤄 낼 수 없다.
‘사령부 내에서 내가 할 일은 제한적이야. 그렇다면…….’
22군단의 장기는 압도적인 공중 우세와 그걸 이용해 지상으로 쏟아 내는 공중폭격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묶여 있기만 해선 안 되었다.
거기다 이 사령부 내에선 자신들이 자리를 잡기도 수월하지 않았다.
꽉 들어찬 성벽 위는 22군단의 병사들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렇다면 앞의 병사가 죽을 때를 대비해서 대기하는 것.
카드로가 보기에 그건 낭비였다.
‘이곳 방어는 직할대와 다른 병력으로 충분해.’
거기까지 생각한 카드로는 곧바로 자신들의 병력을 물려서 비공선에 태웠다.
사령부 내에서 자신들이 큰 활약을 하긴 어려웠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장기를 발휘하기로 했다.
“우리는 따로 움직인다.”
카드로의 말에 휘하 장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그것을 하자.”
카드로의 말에 모든 장교들의 눈이 빛났다.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
기동 야전군 중 가장 강력한 공군을 가진 그들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런 그들을 막기 위해 몬스터 측에서도 변이된 비룡들이 날아올랐다.
붉은 비룡 부대와 검게 타락한 비룡들이 서로를 노려보면서 하늘에서 대치했다.
그러는 동안 카드로의 비공선들이 움직였다.
마치 크게 우회해서 만티코어가 있는 주력부대를 치려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사령부에만 집중하던 몬스터들 일부가 카드로가 이끄는 22군단을 노리기 시작했다.
타락한 하피 떼부터, 하늘을 향해 주술을 날릴 수 있는 트롤들까지.
비공선을 공격할 수단을 갖고 있는 몬스터들이 개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드로는 공격하는 대신 일부러 지상에서 공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 근방으로 내려왔다.
아슬아슬하게 사정거리에 닿을 때쯤이면 위로 올라가고, 포기하려 하면 살짝 아래로 내려가면서 약을 올렸다.
그렇게 몬스터들을 약 올릴수록 더 많은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군단장님! 더 이상은…….”
“조그만 더. 아직 사령부로 공격하는 몬스터들이 너무 많아.”
몇몇 장교들이 조금씩 타격을 입는 비공선을 지키기 위해 고도를 상승시키자 카드로의 지휘기가 직접 몬스터들을 유인했다.
딱 봐도 일반적인 비공선들과는 다른 화려한 문양 때문에 더 많은 몬스터들이 카드로를 노리고 공격해 들어왔다.
공중 몬스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에 삐죽 나와 있는 지휘기를 공격하기 위해 공격해 들어왔고, 비룡 부대는 그것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군단장님! 이젠 정말…….”
“폭격 시작해.”
장교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말할 때, 카드로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 순간 비공선의 아래에 있는 문이 열리면서 막대한 양의 폭탄들이 떨어졌다.
양옆에는 포탄이 발사되면서 접근하는 하피들을 죽여 나갔다.
서부 사령부의 공중 전단이 부럽지 않은 압도적인 화력이 펼쳐졌다.
특히 공허의 존재에 한해서는 서부 사령부보다 더한 위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게 카드로의 22군단이었다.
폭탄부터 포탄에까지 전부 신성력이 깃들어 있어서 공허의 기운에 타락한 존재들에게 압도적인 위력을 보여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콰과과광!
압도적인 화력 세례에 죽어 나가는 몬스터들.
하지만 변이체였고, 만티코어 휘하에 들어가면서 더 강력해졌기에 폭격 한 번에 쓸려 나가진 않았다.
단단한 외피, 강력한 주술, 마력 운용 등에 의해서 몇 번 정도의 폭격을 버티는 녀석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로의 22군단이 보인 전과는 확실했다.
많은 수의 몬스터들을 죽인 것도 성과였지만, 사령부로 향하는 많은 몬스터들을 끌어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전술적 임무는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22군단의 활약을 보면서 아리엘 역시 결단을 내렸다.
기동 야전군 중 가장 균형 잡힌 군대를 보유한 곳이 바로 21군단이다.
그런 그녀의 군대가 사령부를 빠져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드로가 공중에서 우세한 특성을 이용해 왼편의 몬스터들을 끌고 나왔다면, 그녀는 오른편에서 전선을 확장시키며 사령부로 향하는 몬스터들의 집중 공세를 분산시킬 생각이었다.
일반적으로 야전보다 수성이 훨씬 피해가 적기에 이 판단은 잘못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했다.
야전에 자신 있는 그녀의 부대라면 단순 수성보다 이편이 훨씬 나을 거라고.
그런 그녀의 자신감과 함께 21군단이 사령부를 나서기 시작했다.
반면 세리덴 같은 경우 비어 버린 사령부의 지원을 위해 모든 병력을 방어에 집중시켰다.
그 역시 자신들의 군단이 가진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균형 잡힌 전형적인 군단 체계의 21군단.
공중 우세를 위한 22군단
전선 유지에 특화된 23군단.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3개의 군단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운용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몬스터들은 갑자기 늘어난 전선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만티코어에게 교육받은 자들이 있었기에 나름 머리를 굴릴 줄 알았다.
각자가 자신 있는 방향으로 흩어졌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사령부 공략에 집중했다.
기동 야전군이 숨겨 둔 한 수.
그것이 나왔다고 생각한 만티코어 역시 이대로 사령부를 향한 공격에 더욱 집중했다.
바로 그때, 아이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공격 시작하겠습니다.
레이븐에게 온 통신과 함께 어디선가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