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84)
59. 격전의 남동부 (2)
다급한 통신과 함께 기동 야전군의 사령부가 바쁘게 움직였다.
동부로 나가 있는 아리엘의 군단부터 경계를 서는 카드로의 군단과 세리덴의 군단까지 전부 불러들였다.
주변에 정찰 및 임무 수행 중인 직할대 역시 전부 불렀다.
아이언이 사령부로 모든 군을 불러들이는 것은, 대규모 전쟁이 예정되어 있다는 뜻이기에 모두가 긴장된 표정으로 최대한 빨리 복귀했다.
동시에 남부 사령부와 동부 사령부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동부 사령부는 이무기의 자이언트 웜 군단 때문에 도움을 주기 힘들었다.
몸집을 크게 부풀린 자이언트 웜 군단만 해도 위협적이었고, 동부 사령부의 주력이 해군인 점도 컸다.
그들의 지상 병력으로는 자이언트 웜들을 막기에도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기대할 곳은 남부 사령부뿐이었다.
하지만 남부 사령부 역시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이유는 갑작스럽게 대수림 쪽에서 대규모 몬스터가 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첩보 때문이었다.
“대수림의 몬스터들이 갑자기 몰려온다라…….”
보고를 받은 아이언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깊은 고민에 빠질 때 나오는 아이언의 버릇이었기에, 카를은 가만히 그가 입을 열 때까지 입을 다물고 지켜봤다.
“정보참모 불러.”
“예!”
아이언의 명령에 카를이 재빨리 사령관실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폴덴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대수림을 조사해 봐.”
아이언의 명령에 폴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남부 사령부 때문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걸리는 게 있어.”
“무엇이 걸리시는 겁니까?”
폴덴의 질문에 아이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만티코어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언의 말에 폴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만티코어가 만든 것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그래.”
아이언의 대답에 폴덴이 잠시 침묵했다.
영악하다고 알려진 만티코어지만 그래 봤자 몬스터치고 영악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이언은 그런 편견을 걷어 내고 지금 상황 자체를 바라보았다.
만티코어의 영역은 대수림 근방까지 뻗어 있었다.
처음엔 제국과 남부 왕국의 국경선 근방에만 머물던 녀석이었지만, 어느새 야금야금 세력권을 넓히더니 멸망한 국가들의 영토를 먹어 가면서 엄청나게 세력을 부풀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만티코어와 남부 왕국 연합의 마스터가 싸운 곳도 대수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폴덴의 말에 아이언은 자신의 가정을 확신했다.
철갑지렁이였던 이무기조차 공허의 기운을 먹으면서 점차 똑똑해졌다.
그런데 본래 영악한 녀석이었던 만티코어가 공허의 기운을 흡수한다면?
이무기만큼 강할 것으로 추정되는 녀석이 머리마저 더 똑똑해졌다면, 천재라 불리는 인간들만큼 똑똑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그런데 심지어 판을 읽고, 전술과 전략을 사용할 줄 아는 거라면?
‘이번 싸움…… 쉽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한 아이언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폴덴을 바라보았다.
“……바로 조사해.”
“예!”
아이언의 명령에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폴덴.
동생을 내보낸 아이언은 카온에게도 비상 연락망을 통해서 남부에서 했던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대수림 조사에 전력을 다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필…… 최악의 상황이 나타났네.”
골치 아프게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 나타났다.
그것도 단순히 철갑지렁이 정도로 사용할 줄 아는 게 아니었다.
노련한 전술가가 있다고 가정하고 싸워야 했다.
녀석은 이 한 방을 위해 꾸준히 준비를해 온 것이 분명했다.
1. 남부로 확장해 다양한 세력을 흡수해 규모를 키운다.
2. 자신의 힘이 일정 수준에 오를 때까지 대규모 교전을 피한다.
3. 때가 올 때까지 본인의 능력을 숨긴다.
이 과정을 지금까지 해 온 게 만티코어였다.
남부 확장 때까지 남쪽의 수장이 누구인지 쉽게 파악조차 못할 정도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것이 만티코어였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이무기가 남동부를 비우자마자 기회가 왔다는 듯 움직였다.
남부 왕국 연합이 쉽게 자신들의 본진을 칠 수 없도록 남쪽으로 더 밀어내면서 본진까지의 거리를 확보했다.
그리고 가장 큰 한 방은 대수림의 몬스터들과 모종의 거래를 한 것.
이 한 방으로 기동 야전군은 고립되었다.
1. 동부 사령부는 이무기에 묶였다.
2. 남부 사령부는 대수림의 몬스터들에게 묶였다.
3. 자신들이 공격할 동안 남부 왕국 연합의 도움을 바라기엔 거리가 멀다.
이렇게 판을 짠 영악한 녀석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바로 마스터급을 자신이 이길 수 있느냐였다.
그걸 남부 왕국 연합의 마스터를 상대로 확인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모든 판이 짜인 후에야 움직이는 녀석은 노련한 전술가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단순히 판을 짜는 것에 자신이 생각한 판이 짜일 때까지 참는 인내까지 겸비한 녀석은 굉장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언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재밌겠네.’
오랜만에 머리를 굴릴 만한 녀석이 나타났다.
단순히 강한 녀석이 아니기에 좋았다.
전생에는 항상 약자 입장에서 머리를 굴려 살아남아야 했던 아이언이지만, 현생에는 신수들의 힘에 의지하며 무력으로 해결한 것이 많았다.
그런데 제대로 두뇌 싸움을 해 볼 만한 상대가 나타났다.
분명 사령관 입장에선 골치 아픈 상대였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선 재밌는 녀석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방 먹었으니 되돌려줘야겠지.”
아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에 쌓인 수많은 서류들이 있었지만 이미 아이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언은 사령관실을 나서자마자 카를에게 비룡 부대를 준비시키라는 말과 하나둘 복귀하기 시작하는 직할대의 지휘관들을 호출했다.
“돌격대.”
“예!”
“남서쪽에서 시선을 끌 수 있겠어?”
“가능합니다!”
돌격대장이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대답하자 아이언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병대장을 바라보았다.
“좋아. 도미닉은 포병대를 이끌고 돌격대는 엄호해.”
“예!”
“기사단은 포병대를 비롯한 직할대를 보호하는 데 집중해.”
“……알겠습니다.”
로뎀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기에 얌전히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은 아이언은 레인저 대장을 보았다.
“레인저들은 나와 같이 비룡을 타고 움직인다.”
“예!”
“카를은 지금 즉시 카드로에게 연락해서 압박을 시작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남쪽을 경계하는 카드로의 군단이 압박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돌격대가 휘저으면 그때를 틈타 아이언과 레인저들이 적진 깊숙이 들어간다.
그것이 아이언의 작전이었다.
“23군단은 사령부로 곧장 복귀해서 돌격대와 기사단, 포병 부대가 안전하게 복귀하도록 돕게 해.”
“21군단에는 따로 내리실 명령이 없습니까?”
카를의 물음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귀하는 데에만 주력하라고 해. 항구는 동부 사령부에 맡기고 전 병력을 끌고 오게 해.”
민다니아 항구에서 이곳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잡아먹는데 따로 작전까지 명할 순 없었다.
“적들이 우리한테 한 방 날렸으니 우리도 한 방 먹여 줘야지?”
아이언의 말에 모든 지휘관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볍게 몸이나 풀고 오자고.”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지휘관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아이언과 레인저들이었다.
특히 레인저들 같은 경우 완전무장으로 비룡 기사들의 뒤에 올라탔다.
“너희들이 해야 할 임무는 간단하다. 내가 시선을 끄는 사이 뒤에서 몬스터들의 뒤를 쳐.”
“홀로 이목을 끄실 생각입니까?”
레인저 대장 닉스 콜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아이언이 웃으면서 말했다.
“만티코어가 날 무시하는 것 같더라고.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 줘야 하지 않겠어?”
아이언이 그렇게 말했지만 단순히 그런 자존심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아리엘의 21군단이 복귀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남부와 동부 사령부가 묶였다지만 북동부와 북부는 아니었다.
그쪽에 지원을 요청할 경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지원군을 보내 주긴 할 것이다.
즉, 시간은 이쪽 편.
“만티코어에게 이쪽의 힘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려 주자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닉스 콜의 믿음직한 말에 아이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시선을 끄는 사이 레인저들이 후방을 휘젓는다.
앞쪽에선 카드로의 22군단이 압박을 계속하고, 시선을 끄던 돌격대와 직할대들이 23군단과 합류해서 우리가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도록 퇴로를 확보한다.
아무리 몬스터들이라도 군대가 된 이상 피해를 입는다면 전진 속도는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전초전은 우리가 승리한다.’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비룡을 타고 하늘 높이 올랐다.
그러는 사이 아이언의 명령을 들은 카드로의 22군단이 전진을 시작했다.
“공격을 시작해라.”
카드로의 명령과 함께 기동 야전군에서 가장 많은 비공선을 보유한 22군단의 공군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22군단의 공군을 저지하게 배치한 변종새들과 하피들이 있었지만 만티코어의 주력군은 남쪽에 몰려 있는 만큼 전력을 다해 공격한 카드로의 공세를 견딜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우세로 뚫려 버리자 지상은 그저 학살당할 뿐이었다.
비공선의 폭격으로 전선을 유지 중이던 몬스터들을 대량 학살하면서 전진하자, 만티코어의 몬스터 군단이 다급히 카드로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전력으로 전진하는 카드로의 공격에 몬스터들이 다급하게 몰려들자 여기저기서 구멍이 뻥뻥 뚫리기 시작했다.
그 빈틈을 돌격대가 파고들었다.
돌격대가 맹렬히 돌진하며 남서쪽을 휘젓기 시작하자 최소한으로 남겨 두었던 몬스터 부대들이 박살 났다.
이미 사전에 수십 수백의 정찰을 통해 몬스터들의 부대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 두었기에 함정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돌격대가 주력부대가 빠진 빈집을 훌륭히 털어먹자, 뒤이어 돌아오는 몬스터들을 포병 부대가 적절히 견제하면서 시선을 끌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피맛을 보는구만.”
루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지휘관이라고 앞서 달리지 좀 말라고 경고를 들은 터라 최근엔 줄곧 명령만 내리는 처지였다가 오랜만에 이렇게 직접 움직여서 그런지 루뎀의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자신들의 상관이 활짝 웃으면서 정신없이 돌진하니 당연히 밑에 있는 돌격대원들 역시 환호성을 지르면서 더욱 맹렬하게 돌격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몬스터들이 털리는 사이, 몬스터 측에서도 바보만 있는 것은 아닌지 소수의 몬스터 부대가 포병 부대가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하지만 그들은 기사단이라는 벽을 넘지는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감질나네.”
로뎀이 몇 마리 베지 못하자 혀를 차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과는 다르게 포병 부대로 몰려오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흠…… 사령부로 몰려간 건가?”
로뎀이 중얼거리면서 사령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예측처럼 물소 무리는 사령부가 비어 있을 거 판단하고 직접 사령부를 쳐들어갔다.
-무우우우우우!
처음 남동부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강력하고 흉측해진 변종 물소들이 일제히 사령부로 돌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사령부는 군단급도, 사령관도, 직할대도 대부분 빠진 상황에서 훌륭하게 막아 냈다.
마법사의 대규모 마법과 정령 부대의 적절한 서포트, 사령부에 남은 방위부대가 완벽에 가깝게 막아 낸 것이다.
물소들의 돌진을 저지하기 위해 바닥을 미끄럽게 하고, 벽을 세워 돌진력을 최대한 늦춘다.
그 후, 함정을 발동시켜 바닥을 늪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로 포병 부대의 포격이 떨어지게끔 만들었다.
-무…… 무우…….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물소들.
그런 그들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마법 부대장 피터 마르비오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와는 다르지.”
피터 마르비오가 그렇게 말하면서 물러나는 거대 물소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신들은 더 이상 아이언 한 명에게만 의지하던 어리숙한 자들이 아니었다.
아직 경지는 부족하지만 노련한 만큼은 다른 어떤 군 못지않아졌다고 자부했다.
어린 시절처럼 위력이 강한 마법에만 마냥 집착하는 버릇도 깔끔하게 버렸다.
“사령관님이 오셨을 때 거슬리지 않게끔 완벽하게 쓸어버려라.”
그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상공을 가득 메운 불덩이가 늪과 함정에 빠진 거대 물소들을 향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