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68)
55. 사령부 방어전 (3)
검은 숲에서 호되게 당한 아이언은 더 이상 방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안전하게 군을 운용했다.
비공선은 무조건 제일 높은 상공까지 상승한 후 움직이라고 명령했으며, 비룡 기사단 역시 최대 상승 고도에서 같이 움직이는 편대 숫자도 늘렸다.
그리고 강습부대를 비롯한 육상 병력은 사령부 부지 중심으로 방어진을 짜고 움직이지 않게 했다.
남동부의 몬스터 수준을 가늠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사령부가 지어질 터에 자리를 잡고 명령을 내린 아이언은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너진 성터가 남아 있는 이곳은 과거 꽤나 발전했던 곳답게 여러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미 헌터들이나 유물 사냥꾼들이 죄다 몰려들어 털어 갔기 때문에 남아 있는 건 별로 없지만 흔적만 보았을 때, 번성한 도시의 느낌이 남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옆에 큰 강이 흐르고 있고, 평야 지대인데 이곳에 터를 잡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방어하긴 쉽지 않겠네.”
산을 끼고 있거나 협곡에 요새를 세우는 것이 아닌 이상 평야 지대에서 방어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나하나 성벽을 쌓고, 마법진을 각인하고, 함정을 만드는 등 전부 손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자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인간의 힘만으로 요새를 만드는 것은 시간과 자원 모두 막대하게 소모될 것이다.
-짹!
어느새 날아온 뱁새가 아이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계약한 신수답게 아이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금세 읽어 낸 뱁새가 한숨을 폭 쉬었다.
귀여운 뱁새의 한숨에 아이언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걱정되냐?”
아이언이 웃으면서 묻자 뱁새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계약하고 나서 거의 쉬지 않고 달린 아이언이다.
매일을 바쁘게 살아온 아이언이기에,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먼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고민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건 곧 그의 능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험이 닥친다는 뜻과 같았다.
북부에서도, 동부에서도, 중앙에서도 그러했다.
“한동안 고생 좀 해야 할 거 같아.”
뱁새가 빤히 바라보자 아이언이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실직고했다.
군의 체계가 아직 불완전한 이상 자신이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각 군이 쥐어짜 내 만들어 준 군대이기에 최대한 희생시키지 않고 키우려면 결국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뛰어다녀야 했다.
-짹…….
뱁새의 걱정 어린 표정을 본 아이언은 손가락으로 녀석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무리 안 할게.”
-짹!
안 믿는다는 듯 고개를 팩 돌리는 귀여운 뱁새의 모습에 아이언이 웃으면서 말했다.
“약속할게. 이번엔 진짜야. 믿어 줘.”
아이언이 믿어 달라고 하면서 질척거리자, 뱁새가 작은 날개로 파닥거리며 머리에 올랐다.
-짹짹!(여기서 감시할 거야.)
“그래.”
아이언은 뱁새의 단호한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1진이 새로운 사령부에 내려앉으며 모든 물자를 내리고, 야전 텐트를 이용해 진지를 구축했다.
앞으로 기술자들과 모든 병력이 올 때까지는 지금 만드는 막사에서 지내야 했기에 다들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대부분의 병력이 진지 구축에 매달릴 때, 일부 병력은 높은 고도에서 정찰에 나섰다.
이미 오면서 한차례 겪어 봤기에 이곳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쯤은 머릿속에 박아 놓고 있었다.
덕분에 최대한 안전하게 정찰 임무에 임해, 큰 사고는 나지 않았다.
정찰 초기가 비효율적인 걸 알면서도 최대한 많은 비룡편대가 같이 움직였고, 어떨 땐 비공선까지 같이 움직였다.
그만큼 안전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신설된 사령부를 중심으로 정찰하는 지역을 조금씩 넓혀 가면서 동시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하지만 뭐든 공이 있으면 과가 있는 법.
안전을 중시한 나머지 작업의 진행 속도는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었다.
적을 막는 함정이나 임시 철벽에 시간을 들이다 보니 편의 시설들이나 행정, 군수에 필요한 시설들이 제일 늦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병사들 사이에서 아이언이 너무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 어린 목소리가 나왔다.
차라리 빨리 작업을 끝마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까지만 보면 그게 맞았다.
이렇게 더디게 진행될 바에 빠르게 작업하고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언은 이런 불만을 무시하고 비공선에 올라 주변을 정찰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모두의 불만을 감내하면서 며칠이 흘렀을 때였다.
-치직! 적이 몰려옵니다!
“위치는?”
대장선에 곧바로 보고되는 보고에 아이언이 정찰병에게 바로 물었다.
-남서쪽 20km 부근에서 올라옵니다. 형체는 물소. 하지만 덩치가 10배는 크고, 온몸이 갑각류로 덮여 있습니다.
“철갑지렁이 때와 비슷한 외피인가?”
-그렇습니다.
“알겠다. 천천히 복귀하면서 지속해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충성!
보고를 들은 아이언이 다른 명령을 내리려 할 때였다.
-치직! 남동쪽 60km 부근 검은 숲에서 거대 개미 출현.
“이쪽으로 올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멀리서 주시하면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아이언이 곧바로 명령을 내리고는 한숨을 쉴 때였다.
또다시 정찰병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다.
-보고! 남부 사령부 기준 방위 130도 80km 부근 거대한 검은 말벌 발견. 비룡 기사단을 위협 중.
“싸우지 말고 바로 후퇴해.”
-알겠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정찰병들의 보고에 아이언이 바로바로 대답해 주면서 대부분의 병력을 사령부에 집중시켰다.
대부분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데, 변종 물소로 보이는 놈들이 사령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하던 작업을 멈추고 전투준비 하라고 해.”
아이언의 명령에 작전 장교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모두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빨리 움직여!”
“실전 상황이다!”
“전투준비!”
장교들이 악을 쓰면서 병사들을 닦달했다.
오면서 치렀던 전투는 그냥 맛보기 수준이었기에 지금의 남동부에서 겪을, 제대로 된 첫 실전이었다.
게다가 북부와 달리 이곳의 몬스터들은 전부 변이종이기에 아이언에게서 배운 내용들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장교들조차 긴장하면서 애꿎은 병사들만 윽박지르면서 갈구고 있었다.
“밀집대형은 위험해. 진지를 중심으로 산개해.”
“예!”
아이언의 명령에 장교들이 다시 명령을 하달하는 사이 멀리서 먼지구름이 보였다.
“대형을 흩뜨려 볼 테니까 산개해서 각개격파 하라고 전해.”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아이언은 비공선에서 뛰어내려 두 개의 달 위로 착지했다.
“부하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올 때까진 우리가 고생 좀 해야 할 거 같다.”
-부!
아이언의 말에 부엉이가 괜찮다는 듯 대답했다.
오히려 몸을 풀어서 좋다고 대답했지만 아이언이 말한 것이 그 뜻이 아님을 두 개의 달 역시 잘 알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고, 그때마다 아이언과 신수들이 활약해야만 했다.
적어도 부하들이 믿고 맡길 수준까진 올라와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진 아이언과 신수들이 열심히 굴러야 했다.
-무우우우우!
멀리서 들려오는 거대 물소들의 울음에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천둥새였다.
남부 사령부 앞에 폭풍을 만들어 내 회오리와 수백 개의 번개가 내려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 뒤를 이어 피닉스의 불의 파도가 만들어지고 두 개의 달의 검은 마력이 휘몰아치면서 물소들을 짓뭉갰다.
신수들의 광역기가 연이어 펼쳐지면서 거대한 검은 물소들의 맹렬한 돌진이 잠시 멈춰 섰다.
하지만 일부는 신수들의 광역기를 피해 돌아서 움직였다.
공허의 기운에 잠식된 녀석들답게 귀신같이 인간들과 오염되지 않은 생명체를 발견하곤 맹렬히 돌진해 왔다.
“골치 아프네.”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두 개의 달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선두에 선 물소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거대 철갑지렁이와는 다르게 거대 물소들의 외피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아이언의 강철 마력검에 충분히 베이는 수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언의 수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순수 검술 수준은 6단계 중에 평범한 수준이지만 칭호 효과로 인해 마스터를 제외하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상태라 가능한 일인 것이다.
사실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다 뿐이지, 순수 육체만 따지면 마스터보다 강했다.
인간의 육체를 초월했다는 마스터의 육체조차 몇십 배 증폭된 아이언의 육체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
-무우우!
기계와도 같은 몸놀림으로 하나씩 죽여 나가는 아이언의 모습에 오염되지 않은 생명체를 보고 눈 돌아갔던 물소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뒤라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었다.
신수들에 의해 지옥도로 변해 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언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변종 물소들을 막을 순 없었다.
수천 마리 중에 일부가 새로 만든 진지를 향해 돌진했다.
앞을 막은 아이언은 괴물 같아 보이지만, 뒤에 있는 인간들은 별거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쾅! 쾅! 두두두두!
“막아!”
“접근하게 하지 마라!”
도미닉 스톤의 명령에 포격이 떨어지고, 진지를 구축한 병력이 일제히 사격하면서 최대한 접근을 저지시켰다.
그러는 동안 소수의 기사들이 양옆에서 난입하며 떨어져 나온 물소들을 사냥했고, 비공선이 폭격을 가하며 다시 한번 물소들의 대형을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끝까지 도달한 물소들에 의해 몇몇 병사들이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진지에 도착하는 순간 재빨리 산개했음에도 워낙 돌진 속도가 빨랐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사망자까지 나오면서 군의 사기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이언의 압도적인 활약으로 대부분의 물소들이 죽어 나가면서 돌진을 막아 낼 수 있었지만, 결국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건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이곳의 변이체들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만큼 그들이 안이하고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모두가 침울해지려는 그때, 대장선으로 복귀한 아이언이 음성 증폭구를 들고 말했다.
-아아! 사령관이다.
아이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사령관이 말하니 모두들 반사적으로 귀를 쫑긋 세운 것이다.
-다들 정신 차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제 매일같이 적들이 몰려들 거고, 이런 상황은 수없이 겪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럴 건가?
대장선에서 울려 퍼지는 음성에 모두들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쟁으로 끌려 나온 이상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모두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온 거 아닌가?
아이언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숙였다.
-동료의 희생을 밟고 일어서라. 더 능숙하고 더 강해져라. 그대들이 엘리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변할 때까지 내가 막아 주겠다. 그러니 정신 차리고 이를 악물고 노력해!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니까.
그의 말에 모두의 눈빛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부족하다고 좌절하지 마라. 그대들이 성장할 때까지 내가 막아 주겠다. 날 믿어라.
아이언의 말에 병사들의 눈빛이 완전히 돌아왔다.
-내 부대는 중앙 지역에서 일당백의 정예들처럼 싸웠다. 짧은 시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대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날 믿고 따라와라. 할 수 있겠나?
“예!”
-좋아. 믿어 보지.
아이언은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을 끊었다.
자칫 사기가 저하될 수도 있었던 상황.
하지만 아이언의 짧은 연설로 다시금 군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끝났지만, 앞으로 계속되는 습격을 생각하면 결국 다시금 사기는 내려갈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이언이 그와 그의 부대를 통해 그를 믿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왔기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며칠 사이 나타난 변이체들의 습격에도 1진의 병사들은 훌륭히 막아 냈다.
사상자가 나오고, 반복되는 습격에 지칠 법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텨 냈다.
그리고 마침내 2진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