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66)
55. 사령부 방어전 (1)
아이언이 사령관 임명장을 받음과 동시에 곧바로 수도를 떠날 준비를 했다.
본래 사령관이 되면 여러 관료들과 인사를 하고 안면을 트는 등 여러 일을 한다.
사령부에 지원받기 위해 원치 않아도 대신들과 식사하고, 황제를 비롯한 황족들이 여는 파티에 참여하는 등 대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기간이 보통 한 달에서 두 달 가까이 될 정도로 길었다.
하지만 그건 중앙정부가 온전했을 때의 일이다.
게다가 지금은 전시 상황.
급하다는 핑계로 각 부처를 돌아다니면서 신설된 사령부의 지원에 대한 것을 대신들과 빠르게 협의를 끝내고, 그들이 붙잡기 전에 재빨리 황궁을 나섰다.
제국법상 전시 상황에서 사령관의 권력은 절대적이었기에 통솔권도 대부분 사령관이 갖고 있었다.
황권이 강했던 시절에도 황제가 한발 물러설 정도로 전시 상황에서 사령관의 판단은 존중되어 왔다.
그렇기에 반나절도 안 되어 수도를 떠나는 아이언을 보면서 무례하게 느껴져도 아무 말 못 하는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명분에서 밀리고, 법에 저촉되지도 않으며, 그걸 무시하고 찍어 누를 힘조차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중앙은 나락까지 떨어졌군.”
“후…… 이런 상황에서도 정쟁이라니…….”
“여긴 이제 희망이 없군.”
학자들이 다들 황궁 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목적지가 남동부다 보니 워프 게이트가 아닌 천공의 탑까지 이동해야 하기에 황궁 밖으로 나왔는데, 일찍이 아이언의 모습을 봤던 사람들이 죄다 몰려들었다.
제국 최고의 영웅이 칭송받는 아이언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에 몰려든 인파를 본 학자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의 제국은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이 힘을 갖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제국민들이 어느 지역에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있느냐로 싸우기도 할 정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 신문사가 만든 제국을 빛낸 100인을 뽑았다.
문제는 그곳에 수도의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었다.
중앙 사령관조차 수도를 버리고 떠났으니 당연했다.
그렇다 보니 제국의 중앙 중심 체제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지난 수백 년간 변화가 없던 제국이…… 바뀔지도 모르겠어.”
한 늙은 학자의 말에 모두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학자는 대답 대신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붉은 글씨로 적힌 대자보가 벽에 붙어 있었다.
깨어 있는 학생들이 제국의 변화를 위해 시위하며 붙인 종이들.
그 종이들에 가장 크게 적힌 글귀는 동일했다.
바로 ‘혁명’이라는 단어.
그 단어가 앞으로 제국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국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격동하는 변화 속에서 각자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마도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 영웅들이 제국의 수도에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어쨌든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창공의 탑으로 간 아이언이 곧바로 비룡에 올라탔다.
수도를 벗어나는 비룡 하나를, 많은 제국민들이 지켜보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국을 지키기 위해 떠난다는데 말릴 수 있는 자들이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젊은이들은 아이언처럼 되고자 열정을 불태웠다.
어린 아이들은 언젠가 아이언과 같이 되고자 꿈을 키웠으며, 젊은이들은 스무 살의 나이에 야전군 사령관이 된 젊은 영웅의 뒤를 따라가고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건 점차 중년에게까지 영역을 넓혀 갔다.
모든 걸 이룬 영우조차 발 벗고 뛰는데 자신들만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마음.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주 모여 토론하게끔 하고, 제국의 잘못된 체제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끔 해 주었다.
한 젊은 영웅에 의해 타오르기 시작한 그것은 ‘혁명’이라는 단어로 구체화되어 갔다.
어쩌면 머지않은 날에 정말로 제국을 뒤엎을 혁명의 불씨가 지금 생겨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불씨를 만든 당사자는 수도에 어떤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오로지 남동부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고심에 빠져 있었다.
“어…… 사…… 사령관님.”
“응?”
비룡 기사가 덜덜 떨면서 자신을 부르자 상념에 젖어 있던 아이언이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지?”
“저기…… 누군가 저희를 노리고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런데 이분들이 왜 소환된 것인지요?”
자신을 태운 비룡과 함께 따라가는 거대한 새들.
그들의 존재감에 비룡이 겁먹어서 자꾸만 위축되고 있었다.
딱히 위협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거대한 새들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비룡을 겁먹게 만들었다.
덕분에 자꾸만 활공하던 것이 뚝뚝 끊기며 낙하할 뻔했다.
“이런…….”
그제야 눈치챈 아이언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애들아, 좀 떨어져서 날아라.”
-삑?
불사조가 거대한 눈으로 아이언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는 의문이 담긴 눈동자였다.
“비룡이 겁먹었대.”
아이언의 말에 피닉스가 슬쩍 비룡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죄 없는 비룡이 움찔하며 짧게 울었다.
-끼우우…….
“야! 애 겁먹잖아.”
아이언의 타박에 피닉스가 슬쩍 고개를 돌리면서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오랜만에 나와서 기분 좋은데 괜히 아이언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다시 들어갈 수 있으니 얌전히 말을 들은 것이다.
피닉스뿐만 아니라 두 개의 달과 천둥새도 서서히 멀어지자 하늘에서 작은 새 하나가 뚝 떨어져 아이언의 머리에 앉았다.
두 개의 달 머리에 앉아 있던 뱁새였다.
-짹!
한껏 상공의 공기를 마시고 있던 뱁새가 오랜만에 아이언과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애들을 훈련시키느라 바빴던 주인과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물론 주로 듣는 건 아이언이었다.
-짹! 짹짹!(너 진짜 몸 관리 그따위로 할래?)
“미…… 미안.”
-짹짹!(내가 회복시켜 준다고 자꾸 무리할 거야?)
“흠흠! 아냐. 이제 진짜 무리 안 할게.”
오늘만 해도 살짝 무리한 일정을 진행시킨 것을 귀신같이 파악한 뱁새가 호되게 아이언을 야단쳤다.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는 신수들.
그동안 자신들을 부려 먹은 주인이 뱁새에게 호되게 야단맞으니 매우 재밌어했다.
신수력이 늘어날수록 신수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더욱 잘 느낄 수 있게 된 아이언에게 세 신수들의 기뻐하는 감정들이 계속해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짹짹짹!(또 내 말 안 듣고 있지! 정신 안 차려?)
뱁새의 호된 잔소리에 아이언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얌전히 꾸지람을 들었다.
신수와 대화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비룡 기사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비룡을 몰아 방향을 잡았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표정으로 아이언에게 물었다.
“저……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응? 물어보게.”
“신수가 있으신데 어찌 비룡을 타고 가십니까?”
그의 물음에 아이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빙그레 웃었다.
“삐져.”
“예?”
아이언의 대답에 비룡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녀석을 골라 타면 남은 두 녀석이 삐진다고.”
“하…… 하하…….”
그의 대답에 비룡 기사가 아이언의 유머라고 생각했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장난 아닌데…….’
아이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른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등록된 비룡이 아니면 수도에서 벗어날 수도 없을 텐데?”
“원하시면…….”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수도를 왔다 갔다 할 순 없지.”
아이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나락까지 떨어진 중앙정부라지만 그래도 제국의 중심이다.
괜히 쓸데없는 짓으로 그들에게 명분을 쥐여 줄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조금만 움직이면 되는 일인데, 저들이 다시 기어 올라올 여지를 만들 필요가 어디 있을까?
“뭐…… 중앙 입장에서도 내 공식적인 행적이 필요할 테니 겸사겸사 비룡을 이용했네. 자네들 입장에서야 쓸데없이 장거리 임무를 하러 가는 거니 짜증 날 테지.”
“아…… 아닙니다!”
“다 아네. 쉬는 사람을 괜히 장거리 뛰게 만드니 짜증 날 거 아닌가. 군인이 다 똑같지.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자네 상관에게 내가 고마워했다고 전해 주게. 돌아갈 때 자네의 비룡 모는 솜씨가 일품이었다고 서신도 적어 주지.”
“가……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비룡 기사를 구워삶은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금 뱁새와 대화했다.
가는 동안 중간중간 창공의 탑에 들러서 쉬었다가 가면서, 주변 상황 역시 체크했다.
남쪽으로 갈수록 확실히 상황이 어려웠다.
그렇다고 중앙의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아직 죽음의 군대는 중앙 지역에 상당히 많이 남아 있고, 북부에서 몰려온 몬스터들 역시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중앙 지역은 개판이 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남부 전선은 계속해서 밀리는 형국이니 이쪽 일대의 창공의 탑 역시 형편이 좋지 않았다.
“비…… 비상이다!”
아이언이 창공의 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비상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콥스윙이 나타났다! 숫자는 70기! 다시 말한다! 콥스윙……!”
황급히 창공의 탑에 있는 비룡 기사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관제원의 어깨를 두드린 아이언.
“아아! 아이언 카터 대장이다. 다들 그 자리에서 대기하도록.”
아이언의 말에 관제원이 눈을 크게 뜨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왜?’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를 향해 아이언이 피식 웃었다.
지금 당장 준비해서 비룡을 타고 날아올라도 부족할 시간에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이 좀 놀고 싶다네.”
“아…….”
멀리서 거대한 화염 폭풍과 천둥 번개가 몰아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창공의 탑 전원이 달려들어도 목숨을 걸어야 할 콥스윙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거대한 새들.
마치 놀러 나온 것처럼 불로 이루어진 날개로 치거나 고속 기동으로 갖고 놀면서 죽여 나가는 아이언의 신수들을, 그들은 경이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창공의 탑 전원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적이 사라지는 데에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것 역시 신수들이 갖고 놀았기에 걸린 시간일 뿐.
전력으로 싸웠다면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그대로 쓸어버렸을 것이다.
“잘 쉬게 해 준 보답이네.”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관제원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비룡 기사를 불렀다.
잠깐의 휴식과 함께 다시금 하늘로 날아오른 비룡을 타고 사라지는 아이언을, 창공의 탑에 있는 모든 자들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저 소문으로 새로운 마스터가 나타났음은 들었다.
하지만 재앙이라고 불리는 마스터를 20세에 이뤘다고 했을 때만 해도, 솔직히 중앙정부의 영웅 만들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그의 활약을 본 순간, 소문이 과소평가 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저 잠시 놀아 준 것뿐인 신수들의 활약으로 창공의 탑 수십 명의 목숨이 살았다.
덕분에 살아난 창공 기사들과 큰 도움을 받은 관제원들이 아이언이 떠났음을 보고하며 다른 곳에 은근슬쩍 오늘 일을 알렸다.
마침 창공의 탑에 있는 영상구에도 콥스윙을 쓸어버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기에 창공의 탑들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러는 동안 아이언은 심심해하는 신수들을 위해 중간중간 경로를 바꿔서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면서 지나갔다.
그렇게 몇 번의 창공의 탑을 더 거쳐서 마침내 남동부에 도착했다.
저 멀리 사령부가 건설된 예정인 땅이 보이자 아이언이 웃으면서 기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까지면 되었네. 이제부턴 내가 직접 움직이지.”
“예? 하지만…….”
비룡 기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끝까지 아이언을 데리고 가려 하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부턴 위험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나?”
전투 요원도 아니고 수송 임무에 치중된 비룡 기사가 굳이 남동부에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새 공중으로 뛰어내린 아이언이 천둥새의 머리에 착지하며 그대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얼마 뒤, 수많은 하피 떼가 나타나 아이언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그러자 그런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하는 신수들.
그렇게 아이언 홀로 수많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할 때, 저 멀리 상공에서 수백의 비공선들이 구름 속에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