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65)
54. 제국 특수 야전군 신설! (6)
모두가 바닥에 엎어져서 움찔거리는 모습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드로와 아리엘은 과거가 생각났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단계의 검술의 힘은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능숙하게 힘을 발휘했다.
다른 6단계처럼 현란함도, 파괴적인 모습도 없었지만 대신 어떤 검술보다도 깔끔한 검형을 드러냈다.
조금의 빈틈조차 보이지 않는 깔끔함 그 자체.
그렇기에 훈련을 할수록 절망감이 배가되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싸워 보면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함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때쯤 되면, 아이언은 또 다른 무기인 냉기와 뇌전을 사용한다.
“저게 끝이라면 우리가 그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지.”
“그러게.”
아리엘과 카드로가, 뇌전과 냉기를 뿜어내며 살벌하게 다그치는 아이언을 보았다.
아마 저들은 수없이 구르며 아이언을 공략하기 위해 머리를 굴릴 것이다.
단단하게 신체 능력을 강화한 강철마력을 뚫고, 뇌전과 냉기를 견제할 방법을 찾을 것이며, 아이언의 수준 높은 검술을 다수의 힘으로 뭉개 버리려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언에겐 신수의 힘이 남아 있었다.
바로 ‘본인’이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신수의 능력들 때문에 대응조차 못 하고 다시금 박살 나는 것이다.
“에휴…… 고생 많겠어.”
“그러게. 떠나는 전날까지 굴려질 거 생각하면 좀 불쌍하네.”
카드로와 아리엘은 열심히 굴려질 장교들과 부사관들을 짠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괜히 아이언의 눈에 띄어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이 떠나고 난 후 무려 1시간이나 더 굴려진 끝에 지옥 같은 훈련이 끝났으나, 그들의 훈련은 끝이 아니었다.
“오전 훈련을 버티지 못한 것에 실망이 크다. 이후 저녁 훈련까지 너희들과 함께할 테니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아이언의 한마디에 절규하는 장교들과 부사관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훈련 첫날의 지옥에 온 것처럼 괴로웠던 고통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지옥같이 괴로웠다.
그저 몸이 적응했기에 훈련 시간이 더 늘어났을 뿐.
그렇다.
이들은 그저 고통의 시간이 늘어났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간부터는 오전 훈련을 버텨 내는 이들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저녁 훈련을 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렇게 자칭 엘리트 집단이 아이언의 지옥 훈련을 받는 동안 다른 이들 역시 미친 듯이 훈련했다.
옆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는 자들이 보인다면 어떨까?
혹시 자신이 그곳에 들어갈까 두려워하며 열심히 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가끔 힐끔거리면서 아이언의 훈련을 볼 때면, 악마 같던 교관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두려워하는 모습이 선명했기 때문인지 다들 더더욱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했다.
그러는 사이 사자 가문에서도 동생들이 방계혈족들을 데리고 왔고, 마지막으로 북부의 카온 템페트가 북부의 영식들과 함께 왔다.
이들의 도착으로 아이언의 야전군의 기본 뼈대가 될 이들이 모두 도착했다.
다행인 점은, 북부에서 온 자들은 아이언의 훈련에 군말 없이 따라왔다.
그동안의 행적들을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언이 스스로 증명을 해 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떤 훈련을 시켜도 이유가 있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덕분에 아이언은 자신의 지옥 훈련에 추가적으로 인원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완성된 야전군이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갔다.
더 체계적이고, 더 전문적이며, 더 힘든 훈련들이 추가되면서 자리를 잡아 가는 동안 변함이 없는 건, 아이언이 직접 훈련을 시키는 자칭 ‘엘리트 집단’뿐이었다.
마법사들조차 그들의 훈련을 위해 신수들과의 훈련 시간을 줄여 주었지만, 아이언은 자칭 엘리트 집단만큼은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들의 자만심은 초장에 잡아 놓지 않으면 후에 반드시 문제가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쉬워.”
아이언의 말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장교들이 움찔거렸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지옥 훈련이 오늘부로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덕분에 이들은 오늘만 버티면 된다는 일념으로 평소보다 훨씬 끈질기게 아이언을 물고 늘어졌다.
그것이 마음에 든 아이언이기에, 며칠이라도 더 훈련이 이어졌으면 싶었다.
“이제 겨우 정신 개조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그들의 나태한 정신은 아직 완전히 개조가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두 달 정도는 더 굴려야 자신의 군대에 걸맞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시킬 수 있었다.
아쉽다고 한탄하면서 오늘의 훈련을 마무리한 아이언이 임시 사령관실로 돌아오자 아리엘을 비롯한 고위 장교들이 줄지어서 대기하고 있었다.
“들어가지.”
아이언이 말과 함께 사령관실로 들어가자 장교들이 줄지어서 안으로 들어왔다.
“내일인가?”
“그렇습니다!”
아이언의 ‘제국군 특수 기동 야전군’이 정식으로 신설되며 아이언이 사령관으로 공식적으로 임명받는 날이었다.
제국의 수도에서 야전군사령관으로 임명받는 것과 동시에 곧바로 남동부로 이동해야 했다.
건물을 만들 자재와 인부들은 모두 준비가 되었으니, 남동부에 있을 위험한 존재들을 쓸어버리며 그들이 공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활약할 시간이다. 모두 마음 단단히 먹도록.”
“예.”
“남동부에 들어서자마자 실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너희들이야 숱한 전투를 치러 왔다지만 그러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걸 명심하고, 배려해.”
“예!”
“후……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어쩔 수 없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간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우린 지금 이 상태로 최대의 효율을 보여야 한다.”
아이언의 말에 다들 굳은 표정으로 긴장했다.
개인의 강함, 개인의 능력 향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이들은 지휘관이다.
그들이 이끌어야 할 부하들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여단급을 이끌었을 때도 당부하긴 했지만, 이젠 규모가 달라졌다.
게다가 그때와는 다르게 훨씬 많은 미숙한 부하들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했다.
아이언의 성역을 통한 극상성의 존재들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연대나 여단급처럼 아이언이 하나하나 신경 써 줄 수도 없었다.
“아직 부대를 이끄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건 잘 안다.”
아이언이 자신의 동생들과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이야 부대를 이끌어 봤던 경험이 좀 있다.
북동부군은 물론이고, 북부의 영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개인 영지군을 이끈 경험이 많았으며, 다른 장교들 역시 군 경험이 있는 자들답게 어느 정도 기본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들과 마법사들은 달랐다.
‘레온하르트는 군을 이끄는 개념이 별로 없지.’
개인의 강함을 추구하는 그들이기에 다른 가문들과 달리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그나마 기사단에 들어가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경험을 쌓아 나가는데, 북부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기사단을 따라다니다 보니 그것도 늦어졌다.
죽어 나가는 자들이 많아서 그 빈자리를 메꾸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탑에 틀어박혀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하고 마법을 익히는 데 몰두하기 때문인지 누군가를 이끄는 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나하나 상냥하게 알려 줄 시간 따윈 없다. 지금도 대륙의 정세는 시시각각 변해 가고 있고, 우린 그에 대응하기도 시간이 빠듯하다. 배려는 여기까지야. 남은 건 몸으로 부딪쳐서 해결해라. 알겠나?”
“예!”
“좋아. 잔소리는 이쯤하고……. 지금부터 움직일 준비를 한다. 전원 남동부로 움직일 준비해.”
아이언의 명령에 아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도는 혼자 가시려는 겁니까?”
“그래. 정식으로 임명받고 바로 합류할 테니까 먼저 남동부로 움직여. 수송 임무와 물자 관리는 카드로와 카를 슈타인 너희들이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예!”
“예!”
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아이언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좋아. 움직여!”
아이언의 명령에 모든 장교들이 사령관실을 나서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아이언은 깨끗이 씻고 오랜만에 정복으로 갈아입었다.
왼쪽 가슴에 달려 있는 3개의 훈장.
보통 대장급이 되면 훈장이 주렁주렁 달리고 부대 마크, 그리고 특급 병사나 간부 같은 것들을 상징하는 여러 마크들이 박혀 있는 것과 다르게 아이언은 비교적 깔끔했다.
3개의 훈장과 고스트를 상징하는 마크와 겨울산의 수색대 마크, 그리고 기동여단을 상징하는 비공선 마크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이라면 누구나 보는 순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이름 난 부대 마크였고, 훈장 역시 최고 훈장들로만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건 2개인가?”
아이언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달린 훈장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북동부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훈장을 다 받고, 동부, 북부, 중앙의 최고 훈장을 받았다.
남은 건 남부와 서부뿐이다.
“확실히…… 효과는 좋아.”
6단계의 경지로 지옥 훈련을 빙자한 ‘구타’를 통해 반쯤 죽여 놓은 자칭 엘리트 집단.
사실 아무리 6단계라고 하더라도 매일같이 수백의 장교들을 이렇게 박살 낼 순 없다.
그들도 인간이었고, 지치기 때문이다.
처음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몇 번쯤은 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이언은 그런 게 없었다.
그 이면엔 바로 칭호 효과가 존재했다.
영웅의 업적으로 몇 배나 강력해진 아이언의 육체는, 능력 자체만 보면 마스터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해져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정신적인 면 역시 다른 무인들보다 훨씬 강하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쉽게 벽을 넘어서서 여기까지 왔을지도…….’
자신이 이른 나이에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칭호 효과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 학자나 겨울산의 사냥꾼처럼 확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영웅의 업적이 쌓일 때마다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여서 피의 폭풍을 상대로도 버틸 수 있는 육체와 정신을 만들어 주었다.
“……더 쌓아야겠지.”
제국의 영웅을 얻었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정복을 여미고 발걸음을 옮겼다.
깔끔한 모습으로 워프 게이트로 향한 아이언은 곧바로 수도로 이동했다.
워프 게이트를 담당하는 장교의 절도 있는 경례를 받으면서 워프를 한 아이언이 도착한 곳은 반쯤 무너졌던 황궁이었다.
폐쇄적이었던 황궁이 변했다는 모습을 보여 주는 증거로 황궁 안에 워프 게이트를 설치하면서, 지방의 많은 고위 관료들이 한결 편하게 업무를 하게 되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전까진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내관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따라 대전으로 향했다.
어디까지나 ‘임시’ 대전이었으나 그나마 멀쩡했던 황궁의 건물 중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이었기에 개조해서 사용 중이었다.
무너진 황궁을 다시 세우기 위해 여기저기 공사 중인 모습을 보면서 임시 대전으로 향하자 내관이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아이언 카터 대장이 도착했습니다.”
내관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열리고 아이언이 안으로 들어갔다.
새로이 임명된 대신들과 관료들, 주요 귀족들이 자리한 대전의 정상엔 아직까지 ‘황제’가 되지 못한 황태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제국의 모든 사령관들이 모여 있었다.
“이리 오시오.”
황태자의 명령에 아이언이 대신들을 가로질러 그의 앞에 섰다.
그 순간 마스터들이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서서 아이언을 둘러쌌다.
그러자 황태자가 보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대는 위협으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검이 되겠나?”
“예.”
“그대는 제국의 영광을 위해 신념을 다할 수 있나?”
“예.”
“그대는 제국을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황태자의 물음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아이언의 양쪽 어깨를 보검이 가볍게 두드리고 지나갔다.
“짐은 아이언 카터 대장을 제국군 특수기동야전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할 것이다. 그는 제국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을 가장 먼저 척결하는 창이 될 것이며, 대륙을 호령하는 제국의 자랑이 될 것이다.”
황태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엔 아쉬운 기색이 가득했다.
수도방위사령부의 신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싶었으나 ‘명분’에서 밀려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제국의 모든 사령관은 이에 동의하는가?”
“그렇습니다!”
모든 사령관들의 동의에 황태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제국에 새로운 군이 신설되었음을 알린다. 또한 신설된 군의 초대 사령관은 아이언 카터 대장이 될 것이다.”
공식적인 선포와 동시에 황태자가 갖고 있던 보검을 검집에 넣어 아이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내관이 가져온 정식 임명장을 전하며 말했다.
“아쉽지만 제국의 ‘위협’을 가장 먼저 섬멸하고자 하는 그대의 뜻을 존중하겠소.”
“알아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반드시 전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아이언의 대답에 황태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 순간, 모든 사령관들과 대신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사령관에 임명된 아이언이 대전에서 나오며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령관들을 마주했다.
“사령관들이 이렇게 모이는 일이 흔치 않은데…… 자네 덕분에 자주 모이는군.”
서부 사령관의 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이왕 모인 김에 같이 술이라도 한잔하는 게 어떻겠나?”
그리고 이어지는 북부 사령관의 말에 다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이언은 고개를 저었다.
“제 부하들이 남동부로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 일정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바쁘군.”
아이언의 말에 제든 윅스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남부 사령관이 말했다.
“도울 일이 있으면 말만 하게.”
“남부가 어지러운데 폐를 끼칠 순 없지요. 남동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저희 힘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아이언의 자신감에 찬 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저 말이 허언이 아님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 사령부가 완성되면 한잔하지.”
“그때는 밤새 마셔 드리겠습니다.”
제든 윅스의 말에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그의 대답에, 다른 사령관들도 그때는 꼭 시간을 내겠다며 후일을 기약했다.
그렇게 사령관들이 나중을 기약하며 아이언의 사령관 임명을 다시 한번 축하해 주면서 수도에서의 일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건 남동부의 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