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62)
54. 제국 특수 야전군 신설! (3)
크림슨의 축하에도 아이언은 기쁘기보단 암울했다.
앞으로 여기저기에 불려 다닐 생각하니 고생길이 훤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나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이끌 수 있는 군의 규모가 야전군 단위라는 것.
전생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아닌, 그나마 제국이 온전한 상황에서 야전군 단위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가 있었다.
‘할 만하다.’
아이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그런데 장군급 이상은 어떻게 충원합니까?”
아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현재 제국에서 장군급 이상은 씨가 마른 상황이었다.
북동부는 군단장이나 사단장급까진 어떻게든 살아남은 상황이지만 그 이하의 장군급과 영관급 장교들이 대다수 죽어 나가서 구멍이 뻥 뚫린 상황이다.
중앙군은 군단장급이 전무한 상황이며, 사단장급 역시 몇 명 없었다.
그마저도 비리로 얼룩진 자들이 많아서 갈아야 할 판이다.
서부 역시 군단장은 한 명만 살아남았고, 남부 또한 최근 전투로 군단장과 사단장급 다수가 전사했다.
동부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인어족과의 싸움에도 제독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 상황.
북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엘프와의 전쟁으로 절반이 갈려 나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복구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예측조차 힘들 지경.
“음……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네만…….”
“설마…….”
머뭇거리는 크림슨의 모습에 아이언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자네가 생각하는 게 맞네. 아마 자네가 알아서 키워야 할 걸세.”
“허…….”
아이언이 허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러면 군단장은커녕 사단장급과도 다르지 않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자네에게 선물을 몇 가지 줄 걸세.”
“선물…… 말입니까?”
“그렇네. 먼저 자네에게 장군급을 임명할 권한을 줄 걸세. 야전군에 필요한 군단장 및 사단장의 최소 인원수에 한해서 상부에 보고 없이 바로 임명 가능하네.”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자네와 친숙한 자들을 뽑아 군에 배치시킬 걸세.”
“저와 친숙한 자들…… 말입니까?”
“그렇네.”
크림슨은 아이언의 말에 대답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 모습에 뭔가 불안함을 느낀 아이언이었지만 차분하게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알란 리쇼어, 피터 마르비오가 자네 부대에 합류한다고 하더군.”
“어…….”
“익숙한 이름이지?”
크림슨의 물음에 아이언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에서 자신에게 덤비다가 발린 마법사들의 이름이었다.
“그자들이 왜……?”
“마탑주들이 반강제적으로 그들을 보냈다더군. 아무래도 자네의 위세가 대단해지니 사과의 의미로 보낸 것 같아.”
“아…….”
크림슨의 말을 들으며 아이언은 새삼 자신의 권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생엔 사자성을 중심으로 살아남은 북부군의 절반을 이끌어도 명예는커녕 조롱받던 처지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선물은 이게 끝이 아닐세. 카온 템페트와 어린 사자들이 자네 부대로 들어오고자 청해 왔네.”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카온 템페트라면 북부의 명가인 템페트의 미래를 책임질 존재였다.
윈스텔 가문과 템페트 가문이 맺어져 태어난 엘리트.
그런 그가 왜 자신의 부대로 오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어린 사자들이었다.
“어린 사자들이라면…….”
“세리덴과 루뎀, 로뎀 형제들일세.”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한 표정만 지었다.
갑자기 그들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게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카이덴 레온하르트와 에이든 레온하르트가 본격적으로 가주 경쟁에 들어가면서 남은 어린 사자들이 자네에게 넘어오려는 듯싶네.”
“허…….”
“뭐, 가문의 복잡한 사정은 그들이 오면 직접 듣게나.”
“……알겠습니다.”
아이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크림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로 장군급을 영입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좋게 생각하게, 향후 미래를 책임질 자들을 자네가 직접 키우는 것이니.”
“하하…….”
크림슨의 말에 애써 웃는 아이언.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제국군의 사정을 알기에 군단장이나 사단장급 한 명이라도 달라고 때를 써 볼 수도 없었다.
군 역사상 처음으로 장군급이 전무한 야전군이 탄생하게 생겼다.
물론 몇 년만 금세 성장할 천재들이 있기에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가 문제였다.
규모는 야전군인데 장군급 장교들이 전무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군단급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추후 야전군으로 확대하는 게 편할 겁니다.”
“그건 안 되네.”
아이언의 말에 크림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렇게 무리하게 야전군을 만들 바에야 그냥 군단급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합리적이긴 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원칙적으로만 돌아가진 않았다.
“마스터급에다 대장급에 오른 자를 군단급에 박아 둔다?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 생각하나?”
“음…….”
“자네가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이루지 못했다면 어떻게든 내 휘하에 두었을 걸세. 하지만…… 자네가 너무 커 버렸네.”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저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데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간다.
아이언이 만약 마스터급이 아닌 상황에서 대장급이 되었다면 부사령관에 박아 두고 추후 사령관이 되게끔 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 반대였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장의 반열에 오른 상황에서 제국의 모든 마스터들에게 그 자리에서 새로운 마스터로 인정받았다.
유명세 역시 다른 사령관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군단급을 이끈다?
그걸 결정한 사람들은 제국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아야만 했다.
현 상황에서 그걸 감내할 사령관들은 없었다.
굳이 제국민들의 분노를 받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 만큼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
아이언이 깊은 한숨을 쉬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울 좋은 야전군.
그것을 이끌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비웃어도 이상하지 않을 괴상한 야전군을 이끌게 생긴 아이언의 입장에선 속 터질 일이었다.
“저한테 얼마만큼의 자율권이 주어지는 겁니까?”
“줄 수 있는 최대한이 주어질 걸세.”
“그럼…… 군 체계 역시 제가 새로 짜도 되는 겁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크림슨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졌다.
‘기존의 군 체계를 갈아엎고 새로 짠다.’
어차피 기동군이다.
거기다 전부 자신이 부대를 개편해야 하는 상황이니 자신의 마음대로 병력을 구성할 수 있었다.
“벌써 계획을 세우는 건가?”
“미리미리 해 놔야 나중에 편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부지런하구먼.”
크림슨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령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도울 일이 있으면 최대한 돕겠네.”
“음…….”
“아! 물론 장군급을 빼 가는 건 불가하네. 고스트들 역시 마찬가질세.”
크림슨이 단호하게 말하자 아이언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자네 동기들은 최대한 자네 부대 쪽으로 배치해 주도록 하겠네.”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구 북동부 아카데미에서 최강의 세대로 평가받던 자신의 동기들이라면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각 지역의 사령부에서 엘리트들을 추려서 아이언의 부대로 몰빵 해 주는 것 역시 나쁘지 않았다.
전력 부족으로 장군급과 엘리트 영관급을 내줄 수 없으니 미래의 엘리트들을 보내 주는 것이다.
비록 허울뿐인 야전군이 되겠지만 몇 년만 지나면 살림살이가 제일 좋아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본부는 어디다 둬야 하는 겁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크림슨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북서부와 남동부, 둘 중 하나를 정하게나.”
그의 말에 아이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크림슨이 제국의 지도가 걸린 벽을 가리켰다.
“중앙군 사령부가 서남부에 있지 않나?”
“아…….”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바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현제 제국의 사령부는 동부, 서부, 남부, 북부의 사방위와 중앙 사령부, 북동부 사령부가 있었다.
근데 중앙 사령부가 서남부로 옮겨 갔으니 남은 자리는 북서부와 남동부뿐이었다.
크림슨이 가리킨 지도를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언이 생각에 잠겼다.
둘 다 장단점이 있었다.
북서부를 선택할 경우.
1. 북부군·북동부군과 연계하기 편하다.
2. 동부에서 서부로 이어지는 신무역로에 자신이 관여할 수 있다.
3. 사자가문을 비롯한 북부 영주들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이 세 가지만 보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조인족과 공허의 존재를 견제하기에도 썩 괜찮은 곳이었다.
물론 산악 지형이 많아 서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엔 힘들긴 하지만 그것도 방법을 찾아보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남동부가 매력이 없나?
그것도 아니었다.
남동부를 선택할 경우.
1. 동부, 남부와 연계할 수 있다.
2. 남부 왕국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건 익숙한 북부의 힘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신의 인맥과 힘은 전부 북동부와 북부에 몰려 있다.
동부 사령관과 인연이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서부 사령관과도 인연이 있었다.
그래도 메리트가 없는 건 아니다.
남동부에 사령부를 세울 경우 동부 사령부와 별개의 해군을 창설할 수도 있고, 또 남부에 또 다른 영향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남부 왕국들과 직접적으로 연계하기도 편할 수 있었다.
모든 걸 종합해 본 아이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현재만을 생각하면 북서부가 괜찮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남동부가 좀 더 나아 보였다.
‘남동부를 잘만 장악한다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북동부는 이미 충분히 잘 성장하고 있다.
북서부에 사령부를 세워 봤자 더 빠르게 성장하긴 어려웠다.
그렇다면 남동부는?
남부 왕국들 몇 개가 날아가면서 제국 남동부 일대로 쑥대밭이 된 지 오래였다.
남부 사령부가 다시 복구할 엄두조차 못 낼 정도.
만약 그곳을 자신이 먹는다면 추후 남부 왕국들과의 연계가 쉬워진다.
게다가 그곳 역시 한때는 타 대륙과의 중요 무역로 중 하나였을 정도로 전략적 가치가 높았다.
“결정했나?”
“……예.”
“어딘가?”
“남동부입니다.”
아이언의 결정에 크림슨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솔직히 북서부를 결정할 줄 알았다.
남부 역시 위험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건 서부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북부와 자신의 도움을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위치라 신설된 야전군을 키우기엔 딱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사자가문과도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라 여차하면 사자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버리고 남동부?
“어째서인가?”
“여기에는 제가 할 게 없습니다.”
아이언의 대답에 크림슨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비록 부족한 야전군이지만 사령부가 들어서는 지역은 그 즉시 안전 지역이 될 겁니다.”
“그렇겠지.”
“현재 위험지역은 북서부보단 남동부입니다. 게다가 제가 내려갔을 때 제국에 도움이 되는 측면 역시 남동부가 훨씬 크죠. 제국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남동부로 가는 게 맞습니다.”
“음…….”
“북부와 북동부에서 제가 할 일은 끝났습니다.”
아이언이 확답을 내리듯 말하자 크림슨이 침음성을 흘리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북서부에 남았다면 가끔가다 들러서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훈련을 핑계로 만나거나 연합군을 핑계로 만나는 등, 서로 엮일 일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언은 남동부를 택했다.
“힘들 걸세.”
“알고 있습니다.”
“각오는 된 건가?”
“……예.”
북서부와 달리 남동부는 지금도 전쟁이 한창인 지역이었다.
불완전한 군을 이끌고 곧바로 실전부터 치러야 될 수도 있었다.
고생길이 훤한 상황.
“후…… 무운을 빌겠네.”
모든 걸 알고서도 그런 선택을 한 아이언을 보며 크림슨이 해 줄 수 있는 건 이 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