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59)
53. 중앙의 몰락 (2)
마침내 중앙군마저 수도에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새로이 지어질 중앙군 사령부.
그곳으로 갈 준비를 마친 병력이 일제히 도열하자 단상에 중앙군 사령관 올리버 반 레오폴드 후작이 섰다.
“수도에서 벗어나는 건 우리가 마지막이군.”
레오폴드 후작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먼저, 그동안 수도방위군과 겹쳐서 힘든 시기를 보낸 제군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사령관으로서 제군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그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마스터의 사과.
그것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알기에 중앙군의 장교들과 병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엘리트만 모인 수도방위군과 다르게 중앙군은 온갖 비리에 연루된 쓰레기들이 모인 집단으로 불렸다.
실제로 그러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스스 로 재능이 있음을 감추고 중앙군으로 들어온 자들.
후원한 귀족과의 계약 때문에 썩어 버린 중앙군에 어쩔 수 없이 입대한 자들.
가난에 지쳐 입대한 자들.
이런 이들마저 중앙군이라는 오물통에 빠졌다는 이유로 같은 취급을 받아야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썩어 버린 중앙군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했던 모욕의 나날들.
“앞으론 변할 것이다. 더 이상 중앙군은 제국의 쓰레기 처리장이 아닌, 오롯이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이다.”
레오폴드의 말에 몇몇 병사들과 장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중앙군 중에 때 묻지 않은 자들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그다음으로 본래는 깨끗했으나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던 자들이 눈을 빛냈다.
“기대하라. 앞으로 우리 군은 정예화될 것이며, 그대들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레오폴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중앙군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말과 함께 병력이 일제히 비공선에 올라탔다.
누구는 말한다.
중앙 지역을 지키지 못한 패장.
어떤 학자는 말한다.
중앙군의 타락을 방관하는 졸장.
어떤 군인은 말한다.
제국 사령관 중 최약체라고.
하지만 중앙군에만큼은 레오폴드 사령관은 최고의 사령관이었다.
그런 이가 마음을 다잡고 새로이 시작하려고 하자 병력과 장교들 역시 뒤따르기로 마음먹었다.
한때 잠시 타락했던 자들 역시 마음을 다잡았다.
전쟁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목숨을 위협받는 것을 경험하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수도에서 벗어난 이상 적어도 전처럼 빠르게 타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명연설 잘 들었습니다.”
“쑥스럽군.”
단상에서 내려온 레오폴드를 웃으면서 반긴 아이언이 그와 함께 비공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자네와 자네 부대까지 한꺼번에 빠지면…… 수도는 더더욱 혼란에 빠지겠군.”
“……어쩔 수 없지요.”
레오폴드의 말에 아이언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분명 수도 사람들 중에도 죄 없는 자들은 있었다.
북동부의 지원 물품에 비리가 있었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자들도 있었고, 중앙정부의 안일한 정치로 제국이 위기에 빠지자 항의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자신이 중앙에 남아 있기엔 이곳은 너무 썩었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나아.’
오랜 시간에 걸쳐 썩어 버린 수도는 더 이상 갱생의 여지가 없었다.
차라리 이곳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편이 제국을 위해서도 나을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선 썩어 버린 중앙보다는 군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체제가 나을 수도 있었다.
“가지. 앞으로 자네도 바빠질 터인데…….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쉬어야 하지 않겠나?”
레오폴드의 말에 아이언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언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자 레오폴드 사령관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바라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무료 봉사는 좀 그런 것 같아서…….”
“크흠! 나도 뭔가 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지금 중앙군 사정이 좋지 않네.”
아이언의 말에 레오폴드가 크게 헛기침하면서 말했다.
죽음의 군대에게 박살 난 중앙군인 데다 수도도 반쯤 박살 난 상황이었기에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아이언에게 병력을 지원해 줄 수도 없었다.
자신들 앞가림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어려울 나날들을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 사실상 아이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령관들처럼 도와 달라 말하지는 못하고 끙끙거리다 잠시라도 훈련을 맡아 줄 수 없겠냐고 부탁한 것이다.
“병력이나 자원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뭘 원하는가?”
레오폴드의 물음에 아이언은 그에게 좀 더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제 검술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자네의?”
아이언의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6단계에 오른 아이언이기에 이미 자신만의 길을 정립한 상태였다.
이 단계에서 괜한 어설픈 조언은 길을 헤매게 만들 뿐이었다.
그것을 아이언 본인도 잘 알 텐데 왜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게다가 그의 검술을 봐줄 사람은 자신 말고도 많았다.
북동부 사령관 크림슨부터 사자가주 라이너까지 넘쳐 났다.
“이런 말 하긴 뭐하네만…… 제국 마스터 중 내가 가장 약한 편일세.”
“상관없습니다.”
“흠……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도와줄 수 있네. 한데 자네의 검술은 딱히 내가 도와줄 부분이 없을 텐데?”
강철의 길을 걷는 그에게 자신이 검술적으로 도와줄 부분이 있을까?
레오폴드 가문의 검술 역시 정석에 가까운 검술이라고는 하지만 아이언만큼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발전해 오면서 기교를 넣으면서 발전해 온 검술이라 정석 그 자체에 가까운 아이언의 검술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오러’에 대한 것을 좀 묻고 싶습니다.”
아이언의 말에 레오폴드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오러?”
“예.”
아이언의 대답에 레오폴드가 조심스레 물었다.
“자네 혹시……?”
“아! 벽에 다다른 건 아닙니다.”
마스터에 한 발자국 걸쳤냐고 물어본 레오폴드에게 아이언은 바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음…… 벌써 그럴 리 없겠지.”
레오폴드는 자신이 너무 과한 상상을 했다며 머쓱한 웃음을 터뜨렸다.
6단계에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마스터인가?
아이언이 6단계에 오른 시점도 최연소에 가까울 정도로 빨랐는데, 벌써 마스터를 바라본다면 자신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자신은 40이 넘어서야 간신히 마스터라는 벽에 다다랐으며 50이 다 되어서야 그 벽을 넘을 수 있었다.
아무리 천재라 불리는 아이언이라지만 지금 마스터의 벽을 넘보는 건 선 넘은 짓이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오러라는 건 백날 말해 봐야 별 의미가 없네.”
이미 오랜 세월 마스터의 오러에 관한 걸 연구해 왔다.
하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학자들이 논문으로 백날 논해 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머리로 알고 있다 한들 마력을 오러로 만들어 내는 건 철저히 경험과 수련이 동반되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벽에 다다른 자들 역시 끊임없이 좌절하며 오러에 관한 논문을 들여다보았으나, 결국 벽을 뚫는 자들은 그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했다.
즉, 마스터란 경지는 머리로 안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제 기억이 맞는 건지 모르겠는데…… 자꾸 묘한 감각이 남아 있습니다.”
“묘한 감각?”
“예, 데스 로드의 피의 폭풍을 막을 때였는데, 일순 모든 힘이 압축되면서…….”
아이언이 데스 로드와 싸울 때를 회상하면서 그때의 감각을 설명했다.
아래로 내리그은 일검에서 한데 뭉친 자신의 모든 힘들이 터져 나오는 감각.
그것이 오러인 것인지, 아니면 강철의 또 다른 특성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음…….”
레오폴드는 아이언의 설명을 듣고는 턱을 문질렀다.
“더 없나?”
“자세한 건 사령부에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레오폴드가 더 설명해 보라고 재촉하자 아이언은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몇몇 이들이 둘을 힐끔거리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러세. 이 부분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의 말에 아이언은 반색했다.
답답했던 찰나에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얼굴이 환해진 것이다.
레오폴드와 아이언이 비공선에 올라타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중앙군의 모든 병력과 아이언의 부대 역시 비공선에 탔다.
아이언과 중앙군 중에 새로 만들어지는 중앙군 사령부에 미리 가 있는 자들이 많았기에 소수의 비공선이 남은 병력을 전부 태우고 수도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그것을 본 제국민들은 탄식했다.
수도의 마지막 희망인 두 마스터가 이끄는 병력마저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앞으로 지옥의 나날들이 시작되는가?”
북동부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아카데미의 한 교수가 비공선들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수도가 혼돈에 빠져드는 것을 막는 마지막 병력이 오늘 떠났다.
곧 떠날 그는 상관없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지옥일 것이다.
지금도 수도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음을 알기에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하루가 다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제국민들.
한때 제일 많은 인구를 자랑했던 수도는 오늘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곳도 다시 부활하기를…….”
제국과 역사를 같이한 수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바라는 교수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언과 레오폴드가 떠난 이후 수도의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져만 갔다.
당장에 중앙군이 떠나는 그날부터 수도 사람들의 격렬한 시위가 계속되었다.
귀족들은 잘못을 떠넘기며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으며, 중앙 관료들은 부족한 인원 때문에 졸속 행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원 충원을 약속한 대신들은 눈치만 보며 정치질을 하는 데 정신 팔려 수도가 혼란에 빠지든 말든 줄타기에만 집중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황제 자리를 넘보며 물고 늘어지는 4황자.
그리고 그런 그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 1황자.
그 둘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2황자와 3황자.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으면서 격렬하게 싸우는 정치 싸움 속에 제국민들의 분노는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점점 수도의 상황은 악화되어 갔고, 드높았던 제국의 중앙정부는 점점 몰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차라리 마스터들을 모아 군정을 만들어라!”
“귀족들을 다 잡아 죽여야 해!”
제국민들은 침을 뱉으며 욕했고.
“요즘 동부가 잘나간다며?”
“그래도 북부만 할까?”
“쯧! 남부도 빨리 회복해야 하는데……. 외가가 요즘 죽을 맛이더라고.”
중앙 귀족들은 다른 지역 소식에 집중하며 몰락하는 중앙의 상황을 외면했다.
그런 상황에서 중앙 관료들 역시 점차 손을 놓기 시작했다.
자신 혼자 애쓴다고 해서 이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위에 있는 황족들과 대신들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는 이상 자신들이 아무리 용써 봤자 의미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족들과 그들을 따르는 귀족들은 오늘도 싸웠다.
한 줌 남은 권력을 쟁취하고자 매일같이 정치 싸움에 몰두했다.
사실 그들도 더 이상의 정치 싸움은 의미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중앙은 사실상 몰락했으며, 중앙 귀족들의 시대는 저물고 있음을…….
그래도 지금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적어도 자신의 대에 한해서는 달콤한 과실을 쥐고 살아갈 수 있기에 싸웠다.
지금 당장 정신을 차리고 수도의 상황을 정리해도 오랜 세월이 걸릴 것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한 줌의 권력을 쥐기 위해 싸워야 했다.
자신들은 마스터도 아니요, 능력보다 인맥과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살아왔기에 지금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이 한 줌의 권력만이 살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황궁으로 몰려가 파벌 싸움에 임했고, 제국민들은 광장으로 모여들어 시위했다.
관료들은 방관했으며, 지식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광된 역사를 간직한 제국의 수도는 혼란 속에서 몰락해 갔다.
훗날 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때가 제국 역사상 최악의 시기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