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56)
52. 아이언을 꼬셔라
승전식이 끝남과 동시에 제국을 충격에 빠트린 수도의 사건은 공식적으로 끝맺음을 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축제를 시작했는데, 또다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오며 환호하기보다 걱정 어린 마음이 앞서는 축제가 되어 버렸다.
관료들 역시 오랜만에 열리는 축제를 즐기지도 못하고 밤낮 없는 야근에 빠져들었다.
“아! 쉬지도 못하고!”
한 관료가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갈 기세의 얼굴로 머리를 푹 숙였다.
가뜩이나 과로로 뒈질 거 같은 상황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축제에도 일하게 생겼으니 절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중앙의 관료들이 절망하는 상황 속에서 중앙으로 파견된 남부와 서부 장교들은 더욱 죽을 맛이었다.
갑작스러운 남부의 소식에 가볍게 술을 마시면서 축제를 즐기던 남부 장교들은 죄다 통신실로 끌려나왔다.
“남부연합군이 패퇴했다는 게 사실인가?”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온 남부 사령관이 정보장교와 통신장교를 향해 물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제국의 남부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남부 사령관이 다급하게 통신장교에 묻자 그가 남부에서 알려온 정보들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충격적인 남부연합군의 패배 소식.
그와 더불어 전선을 유지 중이던 왕국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럼…… 남부는 끝이군.”
남부 사령관의 말에 통신장교가 그건 또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선은 유지 중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남부의 주력군이 박살 난 상황에서 어떻게 전선이 유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령관이 장교를 바라보자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세계인들은 연이어 승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그게 뭔 개소리야?”
남부 사령관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부연합군의 주력군이 박살 났는데 소수에 불과한 이세계인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세계인들이…… 예상외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합니다.”
“허…… 더 자세한 소식은 없나?”
“그렇습니다.”
“후…… 일단 대기하게.”
사령관의 명령에 통신장교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남들은 축제를 즐길 때, 자신은 이런 곳에 처박혀서 언제 올지 모르는 통신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부의 통신장교 역시 서부의 급변 사태로 인해 중앙의 통신 시설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향하는 길도 혼자면 외롭고 쓸쓸하지만 동료가 있으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법.
남부 사령관처럼 똑같이 화를 내며 들어오는 서부 사령관을 보면서 남부의 통신장교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항상 이런 일이 터지면 쥐어 터지는 건 자신 같은 통신장교이기 때문이다.
“서부 왕국들이 함락당하고 있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
“현재 서부의 타락한 조인족들이 제국에 대한 모든 공세를 접고 서부 왕국들에게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국을 포기한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제국 입장에선 그나마 다행인 상황.
문제는 서부의 다른 왕국들이었다.
본래 서부의 왕국들과 제국 서부군이 나누어서 막고 있던 타락한 조인족들을, 그들의 자체 병력만으로 감내해야 했다.
“후…… 갑자기 여유롭더라니…….”
서부 사령관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죽음의 군대도, 조인족들의 습격도 없어서 운 좋게 함락 직전의 수도를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함정이었다.
공허의 녀석들은 수도에서의 계획이 실패될 상황을 예견하고 두 번째 플랜을 짠 것이 분명했다.
“서부 왕국들 상황은?”
“조인족의 초기 습격으로 2개 왕국의 전선이 뚫렸습니다. 이후의 전쟁에서 3개의 소국이 멸망했고 남은 왕국들 역시 한계까지 몰려 있는 상황인데, 성국이 움직여 전선이 뚫리는 건 면했습니다.”
“초기에 전선이 뚫린 2개 왕국은?”
“토론과 바르단입니다. 다행히 왕도까지 뚫리진 않아 나라 자체는 유지 중입니다."
통신장교의 보고에 서부 사령관이 턱을 문지르며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지금 당장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있나?”
서부 사령관이 정보장교를 보면서 물었지만 딱히 도울 수 있는 게 없었다.
서부 사령부가 박살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이제 막 잔여 병력을 모아 그럴싸한 체제를 만들어 가는 중이니, 남을 도울 여력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후……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지원 요청이 올 때까진 정보만 모아.”
“알겠습니다.”
사령관의 명령에 정보장교와 통신장교는 고개를 숙였다.
정보장교는 그동안 모은 정보와 현 서부 사령부의 부대상황을 대조해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고, 통신장교는 하염없이 다음 통신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서부와 남부 장교들이 바삐 움직일 때, 아이언 역시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북동부 사령관 핑계를 대고 중앙 귀족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지만, 여전히 귀찮게 했다.
추후에 수도방위사령관을 할 가능성이 있기에 미리미리 연을 만들려는 것이다.
승전식답게 연회를 열고 수많은 귀족들이 새로이 연을 만들기 위해 참석하는 와중에 아이언 역시도 꼭 필요한 연회만큼은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자신을 귀찮게 하는 귀족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특히 자신의 여식을 들이밀며 은근히 사고 치라고 부추기는 귀족들을 보면 치가 떨렸다.
보통 한 가문의 가주부터 공략하기 마련인데 사자가주인 라이너가 대놓고 기세를 흘리고 다녀서 그런지, 아니면 자신이 최소한의 이미지 관리를 해 왔기 때문인지 오히려 자신에게 들이대고 있었다.
“하…… 나도 기세나 흘리고 다닐까?”
아이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나마 자신이 좀 유명해졌는지 지방에서 올라온 하위 귀족들만은 껄떡대지는 않는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이언을 노리는 건 귀족들뿐만이 아니었다.
“어…… 그러니까 동부로 한번 와 달라는 겁니까?”
“그렇네. 동부의 해상로에 문제가 좀 생겨서……. 자네가 도와주면 손쉽게 해결될 것 같아서 말이야. 어차피 북동부에도 이득 되는 일이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아이언이 망설이자 동부 사령관이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북부를 가로지는 무역로, 자네 머리에서 나왔다며? 좀 도와줘.”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래, 좋은 답변 기대하겠네.”
동부 사령관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피해 나오자 이번엔 북부 사령관이 달려왔다.
“술 한잔하겠어?”
비싼 술을 갖고 와서 말하는 북부 사령관.
그런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엔 뭐해서 테라스에서 가볍게 한잔하는데 그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언제까지 북동부에 있을 거야?”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북동부는 아직 새로운 부대를 신설하긴 어렵지?”
“그럴 겁니다.”
아이언은 미안한 표정으로 북동부 장교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아직 기존 군단들도 병력을 채우지 못해 난리인 상황에서 자신이 이런 결정을 내려 버렸으니 골치가 아플 거다.
“흠…… 그냥 북부로 오는 게 어때?”
“예?”
제든 윅스의 제안에 아이언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군단급을 새로 신설하긴 어렵고…… 그렇다고 대장급인 널 군단보다 못한 곳에 넣기도 그렇잖아.”
“음…….”
“북동부 사령관 자리를 주지 못한다면 하다못해 요새 사령관 자리라도 만들어서 줘야 할 텐데, 북동부 상황이 녹록치 않을 거고……. 북부에는 자리 많아.”
엘프들과의 싸움에 죽어 나간 고위 장교들이 많아 그런지 북부 사령부는 자리가 넉넉했다.
게다가 망가진 요새도 많아 적당한 자리에 아이언을 꽂아 넣고 요새 사령관으로 만들어 주면 되었다.
“그리고 레온하르트랑도 우리가 가깝지 않아? 가끔가다 가족들을 보기도 하고 그래야지.”
“음…….”
“잘 생각해 봐. 북동부에 대한 충성심은 좋은데, 미래도 생각해야지. 거기다 이젠 자네가 너무 커서 북동부도 부담스러울걸.”
그렇게 말한 제든 윅스는 아이언의 술잔을 자신의 잔과 부딪치면서 씨익 웃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북부 사령관과 부담스러운 대화를 끝낸 아이언은 답답한 표정으로 테라스에서 나왔다. 그러자 자신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아리엘이 머뭇거리면서 다가왔다.
군복이 아닌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쭈뼛거리면서 다가오자 아이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드레스 잘 어울리네?”
“가…… 감사합니다.”
“말 편하게 해. 사적인 자리인데 너무 굳어 있네.”
“그…… 그래.”
아이언의 칭찬에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애들은?”
“저……쪽에 있어.”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면서 아이언은 같이 그들에게 가자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옷을 잡으면서 뭐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자꾸만 멈칫거리면서 입만 벙긋거렸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왜 그래? 할 말 있어?”
“그게…….”
아리엘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시구르드 가주와 한번 만나 줄 수 있어?”
“신검가주?”
“……응.”
아리엘의 부탁에 아이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그러지, 뭐. 근데 그 정도 부탁을 왜 그렇게 뜸들인 거야?”
“그게…….”
아리엘이 더는 말 못 하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그녀의 반응이 처음인지라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아이언은 헛기침하면서 그녀의 안내를 따라 시구르드 가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한데 절 부르신 이유가……?”
“음…… 사실 이 친구 때문에 불렀네.”
시구르드 가주가 그렇게 말하면서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남부 사령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 자네도 들었겠지만 남부 상황이 좋지 않네.”
“들렀습니다.”
“좀 도와주게.”
남부 사령관이 대놓고 도와 달라고 말하자 시구르드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자존심 강한 남부 사령관이 이렇게 대놓고 부탁할 정도면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데이비드 자네…….”
“나 자존심 강한 사람일세. 근데…… 상황이 개똥 같아. 여기저기에 손이라도 벌려야 할 처지일세.”
“많이 심각합니까?”
“솔직히 말하면 남부가 박살 나는데 한 달도 안 걸릴 것 같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아이언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멀리서 서부 사령관이 달려왔다.
“같이 말하기로 해 놓고 선수를 쳐? 상도의도 없는 놈!”
과묵한 줄 알았던 서부 사령관이 분노한 표정으로 남부 사령관을 삿대질하고는 아이언에게 말했다.
“내가 더 급해.”
“……예?”
“지금 서부 왕국들, 아작 났어. 다음은 우리야.”
“거기는 지금 성국이 있지 않나!”
“너희들도 이세계인들 있잖아!”
“그쪽은 선택받은 자들이 몰려가고 있을 텐데?”
서로 멱살 잡을 기세로 싸우는 두 사령관을 보면서 아이언이 당황하고 있을 때, 시구르드 가주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 멍청한 놈들은 싸우게 내버려 두고…… 나와 얘기 좀 할 수 있겠나?”
“아…… 예.”
신검가주의 말에 아이언은 조심히 그를 따라 옆 테이블로 이동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 딸과 한번 만나 보지 않겠나?”
“……예?”
갑작스러운 제안에 아이언이 벙찐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신검가주가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듣기론 자네와 잘 안다던데……. 자네와 같이 전투로 많이 치렀으니 그래도 꽤 친해졌을 테고?”
“예? 무슨……? 따님이 절 아십니까?”
아이언의 물음에 신검가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내 딸이 아직 말을 안 했나? 허…….”
자신이 뭔가 실수했음을 느낀 신검가주는 당황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흠칫하더니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가 바라본 곳에서 아리엘이 매서운 눈으로 신검가주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