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153화 (153/303)

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53)

51. 새로운 국면 (3)

수도의 기나긴 밤이 지났다.

마침내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아 오면서 처절했던 사투의 흔적이 수도 곳곳에 남았다.

제국 곳곳에 죽어 나간 시체들이 즐비했고, 끔찍한 실험으로 만들어진 실험체들이 죽어 있었다.

신기한 건 민간인들이다.

병사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피해는 예상했던 것보다 크진 않았다.

정문에서 광장, 그리고 황궁으로 이어지는 로열 로드는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의외로 다른 곳은 피해가 크지 않았다.

오직 황궁이 목표라는 듯, 황궁 근처에 있는 건물들의 피해만 극심했다.

귀족들의 거리와 상인들의 거리가 황궁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그쪽의 피해가 극심했던 것뿐이지, 빈민가, 일반 서민들이 사는 거리는 아예 죽음의 군대가 없는 곳도 있을 만큼 안전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일단 생존자부터 파악해!”

수도의 모든 전투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급히 움직였다.

막대한 숫자를 자랑하는 죽음의 군대는 지휘관을 잃었을 뿐 소멸되지 않았다.

오히려 통제가 없어지자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해서 더 위험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도 안에 있는 죽음의 병사들은 대부분 처리했다는 점이다.

남은 건 성 밖에 있는 자들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내가 먼저 죽일 거다!”

“코어! 그거 확보해! 쓸데가 많다고 연금술사들이 난리다!”

“최대한 검은 갑주가 파손되지 않게 죽여!”

“다 돈이다!”

성 밖 여기저기서 인간들끼리 서로 죽음의 군대를 죽이겠다고 난리가 났다.

이세계인들과 선택받은 자들이 너도나도 정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앙의 전투가 완전히 끝난 지금, 조금이라도 더 큰 칭호와 업적을 얻기 위해 남은 군대라도 쓸어버리고자 했다.

그렇게 성 밖의 죽음의 군대와 이세계인들, 선택받은 자들의 연합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자 수도는 평화를 되찾았다.

군인들이야 여전히 긴장 상태에 놓였지만 적어도 제국민들은 공포와 불안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제국민들이 조금씩 평온함을 되찾아 갈 때, 이 평온함을 되찾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은 반파된 황궁 한구석에서 기절해 있었다.

“으음…….”

아이언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자 크림슨이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엔 빨리 일어났군그래.”

“……사령관님.”

크림슨이 일어난 아이언을 보면서 반갑게 웃었다.

“이겼군요.”

아이언의 말에 그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덕분이지.”

크림슨의 말에 아이언은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든 창문 밖으로 보이는 새하얀 빛을 보았다.

아이언이 어떤 걸 보는지 단박에 눈치챈 크림슨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지켜 낸 백색 수정은 아쉽게도 곧 부서질 걸세.”

그의 말에 아이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제가……?”

“아니, 자넨 잘 지켰어. 다만…… 이미 한계치였던 상황에서 잠시뿐이지만 데스 로드에 오염된 게 컸다는군.”

“아…….”

아이언이 궁금해할 것을 예상한 크림슨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백색 수정은 내구도가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고 했다.

황제의 비밀 친위대 중에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통해 그간의 사정을 대략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연구가 심해지고 부패가 더욱 심해진 것은 바로 백색 수정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을 예상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제국과 대륙을 수호하는 백색 수정이 부서질 때를 대비해 수많은 연구를 하고, 피와 영혼을 제물로 바쳐서 백색 수정의 내구도를 조금씩 늘려 왔다고 했다.

“결국…….”

“……그래, 모든 원인은 황족이었지.”

크림슨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국을 수호하는 백색 수정.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황족들 역시 많은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럽혀지고 탁해졌기에 악마와 타락한 신이 대륙에 간섭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것의 한계 때문에 갓 게임이 시작된 건가?’

신은 이걸 예견했기에 자신과 이세계인들을 불러 대륙 규모의 거대한 전장을 만든 것 같았다.

대륙이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이 모든 걸 만든 것이다.

신 입장에선 인간들이 얼마나 죽든 상관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대륙과 세계를 외부 신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

그들에게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기 위해 황족에게 희생을 강요했지만 황족 또한 인간인 이상 신처럼 무한히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타락하고 붕괴되어 망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황실이었다.

‘잔인한 진실이네.’

아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신과 인간과의 생각의 차이에서 온 불행.

그것이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신을 믿는 자들에겐 신의 명령이요, 황실에 충성하는 자에겐 제국에 대한 충성심일 것이다.

또 진실을 아는 자들에겐 대의를 위한 희생으로 불리는 일이 바로 백색 수정을 지키는 일.

이 끔찍한 진실에 아이언이 깊은 한숨과 함께 창밖을 보았다.

크림슨 역시 답답한 표정으로 환한 빛을 바라보았다.

예정된 결과를 어떻게든 미뤄 보려 했던 노력의 결과는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황궁의 반파였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크림슨과 아이언의 표정은 착잡했다.

그래도 결국 황궁은 지켜 냈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수도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국 각지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막대한 물자들이 몰려들었다.

아직 죽음의 군대가 정리되지 않았기에 비룡 부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수많은 비공선이 날아와 수도에 내려앉았다.

“저…… 정말 사실이었어!”

한 남자가 밖으로 나와 괴물을 바라보았다.

한때는 황족이었던 존재.

하지만 흉측한 모습으로 죽음의 군대의 무기에 찔린 채 숨을 거둔 시신이 있었다.

중앙 지역, 혹은 다른 지역에서 다급히 수도의 상황을 듣고 지원하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 수도의 풍경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국 전 지역에 퍼져 있는 영상구에 담긴 것들이 전부 진짜라는 것을 지금의 풍경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모두 물러서시오!”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군거리고, 기자들이 영상구로 끔찍한 현장을 담아내려 하자 병사들이 그것들을 제지했다.

지금 와서 은폐한다고 가려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 중엔 끝까지 막다가 죽은 군인들도 있었기에 그들의 명예를 위해서 막은 것이다.

처음엔 반발하던 기자들도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죽은 병사의 시체를 보고선 조용히 수긍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가장 영광스러워야 할 로열 로드는 병사들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하나둘 전장의 흔적을 지워 나갔다.

가장 큰 문제는 황궁이었다.

대전이 있던 자리는 완전히 사라졌고, 피의 폭풍으로 대부분 반파되어 멀쩡한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가장 제 상태를 유지한 오래된 영광의 홀이 있기에 그곳을 지도 부처가 사용할 건물로 삼고 황궁 복구에 들어갔다.

그렇게 황궁 안의 상황이 바삐 돌아가는 동안 수도 역시 복잡해졌다.

수도에 있던 귀족들은 죽음의 군대에게 많은 숫자가 죽어서 그런지 대부분 지방에서 다급히 올라온 귀족들이 수도로 몰려들었다.

‘지금이 기회다!’

수도로 올라온 대부분의 지방 귀족들이 하는 생각이었다.

중앙귀족들 다수가 죽고 황제마저 죽은 지금, 권력은 재편될 것이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한 발 걸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수대에 걸쳐 명문가로 발돋움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꿈을 꾸면서 어중이떠중이까지 죄다 수도로 몰려왔다.

이세계인들 중에서도 제국의 귀족 작위를 받기 위해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수도에 몰려들어 황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눈치를 볼 때, 제국 권력 재편의 핵심들이 속속 수도로 몰려들었다.

“4황자 전하인가? 대단하군.”

지방 귀족들을 대거 모아 등장한 4황자는 첫 등장부터 강렬했다.

귀족들을 뒤에 달고 당당하게 황궁으로 들어서는 4황자의 앞길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껏 존재감이 없었던 황자들도 나타났다.

가장 먼저 2황자였다.

그는 준남작부터 남작, 지방의 이름 모를 기사 등 4황자에 비하면 정말 나약하기 그지없는 세력을 모아 등장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이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면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뒷세계를 주름잡는 이들.

그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3황자.

그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남부 왕국들과 바다 너머의 섬나라 소국들의 주요 귀족들을 데리고 수도로 돌아왔다.

둘 다 지금껏 조용했던 이유가 드러나자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반면에 이들과 다르게 황태자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어디로 도망간 것 아냐?”

“죽음의 군대에 죽은 것 같은데?”

이런 소문들이 퍼져 나가면서 황태자 실종에 대한 억측이 난무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제국 외부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남부에서 일어난 차원 게이트의 공격 방향이 제국에서 남부 왕국들로 바뀌었고, 서부의 조인족들도 서부 왕국들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러자 대륙의 다른 왕국들은 각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서로 연합하는 등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덕에 제국은 그사이 조용히 피해 상황을 복구해 나가면서 무너진 체제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중심을 잡기 위해 모든 귀족들이 모인 지금 이 자리를 만든 것이다.

모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황제의 장례식’.

이 간단하지만 확실한 이유가 적힌 소집장이 모든 귀족들에게 뿌려지자, 약속된 날 오래된 영광의 홀을 중심으로 임시로 만든 황궁의 공터에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무려 공터가 미어터질 정도였다.

영광의 홀의 가장 중심에 세 명의 황족들이 서고 그 뒤에 제국의 마스터들이 섰다.

본래는 중앙 귀족들이 있어야 하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욕심을 부린다면 마스터들에게 곧바로 숙청당하기 때문이다.

제국의 모든 비밀이 밝혀진 상황에서 공중분해 될 제국을 한데 모으고 있는 건 사령관들과 두 가주들 덕분이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마스터들.

그들이 비로소 권력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스터들 사이에 끼어선 안 될 것 같은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북부의 영웅이자, 이번 수도의 사건으로 제국의 영웅으로 발돋움한 장군.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영웅이라도 마스터들 사이에 있는 건 아니다!’

‘준장 계급으로 감히 사령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가! 오만하다!’

하지만 이런 말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공개된 한 영상 때문이었다.

바로, 피의 폭풍이 끝나고 백색 수정 앞에 모인 제국의 마스터들이 제국의 영웅을 향해 보인 ‘예’였다.

첫 번째는 영웅을 향한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새로운 마스터를 인정한 것이었기 때문.

그렇기에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 제국의 핵심이 될 존재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귀족들이 서로 조금이라도 홀에 다가가기 위해 눈치 싸움과 자리싸움을 하는 동안 날이 밝으면서 황제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먼저…….”

“아직, 한 분이 오시지 않았소.”

레오폴드 사령관의 말에 대주교가 말을 멈추었다.

그러자 다른 황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온단 말이오?”

4황자의 물음에 레오폴드는 말없이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감히 막을 생각조차 못 하고 황급히 길을 터 주기 바쁜 귀족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오는 남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4황자가 분노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걸어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숨어 있다, 죽었다, 이미 국외로 도주했다 등등 여러 소문이 나돌았던 황태자가 등장한 것이다.

“폐하가 붕어하시는 동안 숨어 있던 버러지가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 것인가!”

4황자의 분노 어린 외침에 3황자가 나직이 말했다.

“그러는 너도 다를 것 없을 텐데?”

3황자의 말에 4황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난 지방군을 이끌고 수도를 돕기 위해 간 것이다!”

4황자의 말에 3황자는 코웃음 쳤다.

그런 것치곤 지방에서 활약했다는 소문이 단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3황자는 각국의 지원 병력을 이끌고 최남부에서 제국으로 오며 활약했다.

그것이 뒤늦게 소문을 타면서 수도에서 3황자의 몸값이 올라가고 있었다.

또한 2황자는 뒷세계인들을 규합해 서부 지역에서 큰 활약을 했다.

덕분에 현재 서부 일부 지역에선 2황자에 대한 여론이 굉장히 좋았다.

반면에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한 4황자는 초반의 기세와는 다르게 지금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애초에 귀족들이 서로 간의 이득에 의해 뭉친 것이라 결속력도 약한 상황이다 보니 4황자 입장에선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황권에서 가장 멀어지게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황자가 가만히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어디에 숨어 있다 온 것이오?”

“숨어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2황자의 물음에 레오폴드 사령관이 대신 답했다.

그러자 황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폐하의 명으로 황제의 비밀 집무실에서 옥새와 황관을 지키고 계셨사옵니다.”

레오폴드의 말에 영광의 홀에 적막이 가득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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