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52)
51. 새로운 국면 (2)
피의 신을 모시는 사도들과 죽음의 신을 모시는 사도들을 막기 위해 제국의 모든 마스터들이 모였다.
이제는 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 되어 버린 북부와 북동부의 사령관.
아이언의 도움으로 한결 여유가 생긴 동부 사령관.
데스 로드가 모든 죽음의 부대를 모은 탓에 부대를 수습할 수 있었던 서부 사령관.
그리고 남부의 위기 속에서도 중앙으로 온 남부 사령관.
이들 사령관들과 함께 제국을 지탱하던 두 가주가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상을 입었으나 용맹함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중앙군 사령관까지.
사실상 제국이 자랑하는 가장 강력한 전력이 전부 모인 것이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막 모습을 드러낸 신의 사도들이 맥을 못 추고 얻어터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데스 로드는 아이언을 잡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자신과 동료들의 모든 것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황궁을 점령하고 황제가 안배한 모든 것을 꺾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언 하나에 가로막힌 이 사실이 기가 막혔다.
-제발! 제발 비키십시오!
데스 로드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죽음의 기운을 뿌려 댔다.
그와 동조하는 영혼들이 뭉쳐서 아이언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성력으로 대부분을 상쇄시킨 아이언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일반적인 마법사였으면 진즉 아이언을 죽이고 신의 보석을 타락시켰을 것이지만, 자신과 성자의 힘은 극상성이었다.
그의 힘 대부분을 바친 피의 거인은 신수들에게 막혀 있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그의 힘은 어느새 아이언의 머리 위로 날아와 힘을 불어 넣는 뱁새의 영향으로 실시간으로 깎여 나갔다.
뱁새의 신성한 기운은 아이언에게는 활력이 될지 모르나, 타락한 자에겐 저주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후…….”
죽음의 기운으로 만든 온갖 마법들이 아이언을 공격했지만 뱁새와 함께하는 강력한 신성력이 그 모든 걸 상쇄시켰다.
남은 건 순수한 피의 기운으로 사용하는 데스 로드의 혈투술뿐.
데스 로드는 뱀파이어 종족 특유의 피의 마법과 독특한 투술이 결합한 혈투술로 근접전을 걸어왔다.
마스터를 패퇴시킨 막강한 힘을 가진 데스 로드답게 혈투술을 사용하는 내내 죽음의 마법을 같이 사용했다.
쾅! 쾅! 쾅!
“큭!”
아이언은 데스 로드의 혈투술을 막아 내면서 신음을 흘렸다.
뱁새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죽음의 마법들을 증폭시킨 신성력으로 상쇄시키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했다.
그렇기에 혈투술만큼은 아이언이 직접 막아야 했는데, 데스 로드는 혈투술마저 마스터에 근접할 정도로 막강했다.
그나마 뱀파이어라는 특성상 근본이 타락한 존재이기에 혈투술 자체도 위력이 반감되어 버틸 수 있는 것이었다.
극상성이라는 행운과 여러 상황들이 겹쳐서 간신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데스 로드는 막강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아이언이 강하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동료들의 희생으로 더욱 강력해진 데스 로드를 홀로 막고 있을 만큼 아이언이 성장한 것이다.
-당신만…… 당신만 뚫는다면!
“그래, 날 뚫으면 제국은 무너질 거다.”
데스 로드의 말에 아이언이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말했다.
수정 앞을 지키는 자는 오직 아이언 혼자뿐.
황궁을 지키는 기사들도, 황제의 비밀 친위대도, 마법사들도, 신관들도 모두 공허의 존재들을 막기에도 벅찼다.
아이언의 주력이라 볼 수 있는 신수들 역시 피의 거인에게 묶인 상황.
-어째서! 어째서! 막는 겁니까! 당신도 중앙이 싫잖아요!
쾅! 쾅! 쾅!
짜증 나는 신성력을 죽음의 마법으로 대부분 상쇄시키고 혈투술로 사정없이 몰아치는데도 아이언은 쓰러지지 않았다.
동료들의 희생 덕에 더욱 강력해진 피의 힘으로 몰아붙였음에도 기어코 버텨 내는 아이언.
-기어코 추악한 자들을 지킬 것입니까?
데스 로드가 지친 표정으로 묻자 아이언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전생의 경험으로 황제의 추악함을 알고 있던 아이언은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신의 이기적인 모습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수없이 많은 전쟁 경험을 통해 이 세계에서 절대적인 ‘선’이라는 건 없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였다.
“황족이나 신이 추악하든 말든 난 상관없어. 지금은 너희들보다 이들을 지키는 것이 이득이 되기에 이 자리를 지키는 거다.”
아이언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문 데스 로드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요. 각자의 입장이 있는 거겠죠.
데스 로드는 그 말과 동시에 위쪽으로 팔을 뻗었다.
-이 제국이 무너지는 모습을 꼭 이 두 눈으로 보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할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데스 로드.
그런 그의 모습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아이언은 방어 자세를 풀고 다급히 데스 로드를 향해 달려갔다.
“천둥아! 부엉아! 막아!”
아이언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데스 로드의 손을 통해 피의 거인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천둥새와 부엉이가 온 힘을 다해 데스 로드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데스 로드에게 집중된 막대한 힘에 역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그건 아이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불길을 토해 내면서 추가적으로 몰려드는 공허의 존재들을 막던 피닉스마저 달려들었지만 데스 로드를 막지 못했다.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막대한 힘이 그의 몸에 집중되자 간신히 유지되던 그의 몸이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데스 로드가 아이언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부디 당신은 목표한 바를 이루셨으면 좋겠네요.
데스 로드의 말에 아이언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렸다.
동시에 신수들을 불러 모았다.
“지켜야 해. 할 수 있지?”
아이언의 말에 신수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먼저 나선 건 아이언이었다.
강철 마력으로 선두에 굳건히 서자 그 앞으로 불의 장벽에 세워지고, 부엉이 특유의 영역이 만들어지면서 강력한 마력 장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주위로 휘몰아치는 천둥새의 폭풍.
그 모든 게 한 호흡에 끝마쳐지자 아이언은 성역을 자신과 데스 로드만 감싸는 형태로 압축시켰다.
밖으로 데스 로드의 힘이 발산되지 못하도록 막는 순간 데스 로드의 몸이 터져 나가면서 강력한 피의 폭풍이 만들어졌다.
드드드드!
몸 안에 품고 있는 피의 마력이 모조리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 안에 있는 검은 코어가 깨져 나갔다.
죽음의 신과의 계약의 산물인 그의 코어가 깨지자 그가 모은 수많은 영혼들이 피의 폭풍에 휘감겨 아이언이 압축한 성역을 깨트렸다.
피의 신과 죽음의 신 둘을 계약한 데스 로드의 모든 것을 건 자폭을 아이언 혼자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황궁 전체가 휘말리면서 피의 폭풍의 영향이 점차 커져 갔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거대한 백색 수정이 자리한 곳은 조금의 피해도 없다는 점이다.
“버……텨!”
아이언이 이를 악물면서 자신의 신수들에게 말했다.
가장 먼저 천둥새의 폭풍이 벗겨지고, 뒤이어 부엉이의 마력 장벽이 깨져 나갔다.
피닉스의 불의 장벽은 좀 더 버텨 줬지만 그것도 결국 한계가 있었다.
신수들 역시 온 힘을 다 쏟아 냈는지 거대했던 그들의 몸이 작게 변하면서 아이언의 뒤로 픽픽 쓰러졌다.
뱁새마저 온 힘을 쥐어짜 내 신성력을 증폭시켜 일시적으로 방어막을 만들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으나 결국 한계에 다다라 아이언의 머리로 떨어졌다.
남은 건 강철 마력검으로 피의 폭풍을 갈라 내고 있는 아이언뿐이었다.
신수들이 자신을 위해 온 힘을 다한 것을 지켜본 아이언은 이를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검에서 손을 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에 힘을 쥐고 버텼으며, 폭풍에 찢겨 나갈 것 같은 육체에 한 줌의 강철 마력까지 긁어모아 발산했다.
그리고 무너질 것 같은 다리를 의지만으로 지탱하면서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은 정신을 입술을 짓씹으며 버텨 냈다.
그런 그의 의지에 하늘이 감명이라도 한 것일까?
갑자기 그의 검은 검이 거센 피의 폭풍을 조금씩 갈라 내기 시작했다.
“후…….”
당장이라도 감길 것 같은 눈이 일순간 평온하게 변하며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자세를 취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적을 만났을 때 보여 주었던 아이언의 집중력.
다크 엘프를 처음 만났을 때가 그러했을까?
아니면 유령왕을 만났을 때?
어쩌면 엘프의 왕을 만났을 때도 그러했을지 모른다.
“흡!”
마지막 정신력을 쥐어짠 아이언이 숨을 들이켜면서 억지로 피의 폭풍을 가르는 순간.
그의 검에 주변의 모든 마나가 모여들면서 하나의 형상을 이뤄 냈다.
하지만 그건 극히 잠시뿐이었고, 아이언 역시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의 순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온전한 형상을 이룬 검은 기어코 피의 폭풍을 완전히 베어 내고야 말았다.
“저게…….”
“가능한 거야?”
멀리서 지켜보는 병사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황궁이 있던 자리에 휘몰아치는 피의 폭풍.
그 거센 회오리가 조금씩 갈라지며 힘을 잃기 시작했다.
북부 사령관처럼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낸 것도, 북동부 사령관처럼 강력한 검풍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피의 폭풍은 조금씩 갈라지면서 힘을 잃어 가고, 그 사이로 검게 물들어 힘을 잃어 가던 신의 보석이 다시금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어둠이 걷히는 것처럼 힘을 잃는 피의 폭풍 사이로 뻗어 나오며 수도 전체를 비추는 빛.
그와 동시에 다시금 빛의 기둥이 황궁에 신성력을 퍼뜨리며 차원 균열을 닫기 시작했다.
-여기까진가?
-아쉽군.
자신들의 사도를 통해 힘을 발휘하던 신들이 아쉬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서서히 차원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여유가 생긴 마스터들이 일제히 피의 폭풍을 향해 자신들의 힘을 발휘했다.
힘을 잃어 가는 피의 폭풍에 마스터들의 공격이 더해지자 황궁 전체를 압박하던 폭풍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서서히 소멸했다.
신의 힘에 의해 균열이 완전히 닫히고 황궁에 남은 공허의 잔재들을 일방적으로 쓸어버리며 신의 보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백색의 수정.
그것을 향해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크림슨이었다.
홀로 데스 로드를 상대하였다는 것을 알기에 다급한 마음에 달려갔으나 이내 그의 발걸음은 서서히 멈췄다.
뒤이어 따라온 라이너와 북부 사령관을 비롯한 마스터들.
그들 또한 하나같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오랜 시간 제국이 그토록 지키고자 한 것을 홀로 지켜 낸 사내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피의 폭풍에 휘말려 시체조차 남지 않은 곳에서 기어코 피의 폭풍을 갈라 낸 한 어린 청년이 내리그은 검을 땅에 대고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기절한 작은 새들과 균열이 생긴 거대한 백색 수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국의 영웅…….”
크림슨이 멍하니 중얼거리자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예를 표했다.
오만한 사자가주도, 오로지 자신의 무력 향상만을 생각하는 신검세가의 가주도 검을 들어 가슴에 대고 제국 최고의 영웅에게 행하는 예를 표했다.
동시에 마스터들이 저마다 무기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새로운 마스터가 탄생하는 것을 인정할 때 보이는 예.
그것을 제국의 모든 마스터가 행했다.
검술이 벽을 넘지 못했더라도, 신수 계약자의 마스터 기준이 애매하더라도, 신성력의 활용이 미숙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가 해 온 모든 행보가 그가 마스터임을 증명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