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51)
51. 새로운 국면
모두에게 들려오는 신의 음성.
그건 이세계인들과 선택받은 자들뿐만이 아니라 대륙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는 ‘신의 명령’이었다.
-악의 무리가 황궁을 집어삼킨다면 대륙은 어둠에 굴복하게 될 것이니…… 반드시 황궁을 사수하거라, 나의 아이들아.
신의 음성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황궁에서 새하얀 빛의 기둥이 만들어지며 공허의 기운에 저항했다.
황궁에서 만든 괴물들, 죽음의 군대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공허의 존재들과 빛의 기둥에서 나오는 빛 덩이들까지 수도 전체에 퍼져 나가며 전투를 벌였다.
신이 보낸 빛의 정령들이 공허의 존재들과 싸워 나가며, 죽음과 공허의 기운으로 가득 찬 수도를 조금씩 정화해 가자 절망에 빠졌던 병사들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싸워 나갔다.
그런 그들에게 빛 덩이들이 하나둘 흡수되며 그들의 몸에 신성력 혹은 이능의 힘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을 위해 용맹하게 싸워 주는 자들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렇게 수도방위군이 밖을 막을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두고 죄다 수도 안으로 진입해 적을 섬멸하기 시작할 때, 일반 시민들 역시 바쁘게 움직였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쉬이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이 가중되며 생존자들은 안전한 건물로 들어가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자들과 무기라도 들고 싸우려는 이들로 나뉘었다.
아무 힘이 없던 사람들이 용맹하게 죽음의 군대와 대적할 때면 어김없이 빛 덩이가 다가와 그를 도왔고, 그것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몽둥이와 물건들을 들고 거리에 나와 싸웠다.
마력이 없어도, 빛 덩이에 의해 일시적으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이들이 공허의 존재들과 대적할 수 있게 되면서
수도는 유례없을 정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스러운 수도를 향해 저 멀리 상공에서 비공선 부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도 저 멀리서 비공선을 타고 수도로 향하던 아이언이 다급히 움직이려 하자 레오폴드 사령관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같이 가세.”
“그 몸으론 위험하십니다.”
아무리 마스터라지만 내상을 입은 몸으로는 위험했다.
뱁새의 힘으로 최대한 치유하고 있다지만 한계가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죽음의 기운에 누적된 내상은 단시간에 치유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야 하지 않겠나?”
레오폴드 사령관이 황궁 위에 떠 있는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오염된 마나와 공허의 존재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게이트를 보면서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 아이언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무리하지 마십쇼.”
“알겠네.”
아이언의 걱정 어린 말에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 지휘를 부탁드립니다.”
“예.”
자신과 같은 준장 계급의 장군을 보면서 부탁한 아이언은 비공선의 문을 열었다.
붉은 요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중앙군이 수도로 진격하면서 합류한 장군이었다.
아이언이 그를 믿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는 다른 장교들처럼 부하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
여기저기 상처입은 상태로도 휘하 병력을 끝까지 끌고 다니면서 죽음의 부대와 전투에 위기에 빠져 있던 것을 그의 부대가 발견해 살린 것이다.
최소한의 믿음이 확보된 상태라 아이언도 다른 생각 하지 않고 비룡을 타고 레오폴드 사령관과 둘이서 먼저 수도로 향했다.
“결계는 이미 박살 났군.”
“그런 것 같습니다.”
공중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결계는 이미 박살 난 지 오래였다.
몇몇 콥스 윙들이 아이언을 보고 달려들려 했지만 근처에서 같이 움직이는 비룡 부대가 대신 상대해 주었다.
그들의 호위를 받아 재빠르게 황궁 쪽으로 날아가는 아이언과 중앙 사령관.
“최악이군.”
비공선에서 영상구를 통해 보았던 장면들.
죽음의 군대를 막아서는 괴물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레오폴드 사령관의 눈이 찌푸려졌다.
황궁이 썩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까진 알지 못했다.
자신이 그림자들을 통해 들었던 지식은 단편적인 것들에 불과했다.
황족이 어떤 희생을 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잘못된 것을 알아도 바로잡지 못한다는 것까지였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정도까지 끔찍한 짓을 벌였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자네부터 가야 될 것 같군.”
황궁으로 향하던 비룡에서 내려다보던 레오폴드가 그렇게 말하면서 비룡 위에서 일어났다.
마스터답게 공중에서도 훌륭하게 자세를 잡은 후 밑을 내려다봤다.
공허의 존재들 중 하나가 기사들과 병사들을 도륙하면서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리하지 마십쇼. 반나절만 버티면 북부와 동부에서 지원군이 올 겁니다.”
“알고 있네.”
다시 한번 당부한 아이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레오폴드가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오면서 기사들을 도륙하는 악마 하나를 그대로 베어 냈다.
콰아아앙!
부상을 입어도 마스터는 마스터였다.
오러가 뿜어지면서 순식간에 근방에 있는 공허의 존재들을 쓸어버리면서 악마에게도 치명상을 입혔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언이 다급히 비룡을 몰았다.
거슬리던 황제가 죽었고, 대부분의 황족들이 죽은 이상 일단 황궁을 지키고 봐야 했다.
그렇게 아이언이 황급히 비룡을 타고 황궁으로 날아가자 갑작스럽게 폭발이 일어났다.
제국의 대전이 있던 자리에는 피의 거인과 공허의 괴물들이 비밀 친위대와 실험체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그 너머로 하얀 갑주를 입은 뼈다귀들이 공허의 존재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상체가 반쯤 사라진 데스 로드를 하얀 갑주의 뼈다귀 뒤에 있는 거대한 수정으로 밀어 넣으려는 공허의 존재와 그를 막으려는 자들.
어느새 나타난 황궁기사들이 하얀 갑주의 기사들을 도와 데스 로드를 사력을 다해 막았다.
하지만 공허의 존재들은 많았고, 몇몇은 타 차원의 사도급에 비견될 만큼 강한 자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의 파상 공세에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하는 기사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틈을 벌리고 데스 로드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안 된다!”
하얀 로브를 신관들이 황급히 달려와 데스 로드를 막아 보려 했다.
이건 단순히 제국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신관들도 목숨 바쳐서 막아 보려 한 것이다.
마탑의 마법사들도 달려들었으나 죽음의 신에 의해 결계가 찢기면서 힘을 회복한 데스 로드의 힘은 막강했다.
마법사들과 신관들의 마법이 피의 마법에 갈려 나가면서 결국 길이 뚫리고 한쪽만 남은 그의 손이 마침내 수정에 닿았다.
그 순간 하얀 수정이 점차 검게 물들기 시작하면서 오염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실시간으로 하늘에서 차원 균열이 만들어지는 모습에 모든 이들이 절망에 빠져들었다.
데스 로드를 막기 위해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달려들었지만 공허의 존재들이 그것을 막아 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1시간도 안 돼서 수정이 전부 검게 물들 기세였다.
하얀 수정이 반쯤 검게 물들었을 때, 무언가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황궁을 감싸던 힘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불완전했던 차원 게이트가 더욱 크게 확장되면서 막대한 오염된 마나를 내뿜기 시작했다.
거대한 수정을 절반이나 먹어 치운 죽음의 기운이 순식간에 모든 하얀 수정을 검게 물들이려 할 때였다.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참격이 데스 로드의 손을 향해 날아갔다.
서걱!
-큭!
갑작스럽게 나타난 검이 손가락 일부를 베어 내면서 한 청년이 등장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에 의해 부정한 기운이 쓸려 나가면서 황궁을 중심으로 성역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성자…….
데스 로드가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낸 존재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대계를 무너뜨린 위험인물 1순위의 존재.
그가 검게 물든 강철마력검과 함께 온몸에서 뇌전을 뿜어내며 등장했다.
어느새 상공에는 거대한 신수 세 마리와 막대한 신성력을 증폭시키고 있는 작은 새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대도 진실은 보았을 터.
“봤지.”
데스 로드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족들의 추악한 진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으로 끌고 오게 된 모든 걸 보았다.
수도에 살아남은 군용 영상구를 통해 뱀파이어들이 만든 환영을 그대로 보았기 때문이다.
-황족들의 잘못된 행동을 방관하고, 같이 썩어 버린 이 제국을 굳이 지키려는 이유가 있소?
“그렇다고 이걸 넘겨줬다간 이 대륙이 공허에 잠식될 텐데? 그건 아니지.”
아이언이 그렇게 말하면서 헛소리 말라는 듯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데스 로드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차라리 외부 신들이 이곳을 점령하는 게 나을 겁니다. 그대라면 이미 눈치챘을 텐데요.
“신이 의도적으로 황족을 이렇게 몰고 간 거 말인가?”
제국의 황족들을 혈통의 힘과 함께 제국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내린 저주.
그것을 통해 대륙의 중심축인 하얀 수정을 지키게 하고, 그로 인해 황족들은 점차 피폐해져 갔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범죄, 그릇된 행동들을 방관했다.
신 입장에서 인간들의 고통이야 대륙 전체를 놓고 봤을 땐 별거 아닌 것에 불과했으니.
그건 이종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륙과 세계 전체를 수호해야 하는 신 입장에서 종족 몇 개 사라지는 것쯤은 쓸모없는 벌레 하나 사라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은 위대하지 않소. 그는…….
“그렇다고 외부 신이 공평하지도 않지. 악마는 더더욱.”
아이언의 확고한 입장에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걸 안 데스 로드가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피의 거인이 거대한 주먹을 들고 하얀 수정과 아이언을 통째로 날려 버릴 생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이언이 맞아 줄 리 없었다.
부엉이의 두 개의 빛이 주먹을 녹여 버리고 피닉스의 화염과 천둥새의 번개가 피의 거인 상체 한 부분을 날려 버렸다.
그러자 데스 로드가 직접 움직였다.
몸의 일부분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음에도 그의 능력은 여전했다.
마스터인 중앙사령관을 패퇴시킨 존재답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아이언을 몰아붙인 것이다.
그러자 뱁새가 아이언에게 다가오며 그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증폭된 신성력과, 평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해 주는 활력, 그리고 소소하게 증폭된 힘까지.
그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나마 데스 로드와 대등하게 만들어 주었다.
거기다 상대는 성역에 의해 힘이 깎여 나간 상황이고, 극상성의 상대이니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까다롭군요.
“단시간에 날 뚫긴 어려울 거야.”
-글쎄요. 시간이 꼭 당신의 편일까요?
아이언의 말에 데스 로드가 그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황궁의 결계는 깨졌다.
거기다가 수도의 모든 결계도 박살 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는 건 데스 로드가 계약한 두 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더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새 시체들의 피가 모이더니 가루가 되어 사라지던 데스 로드의 신체 일부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차원 게이트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사도…….”
타 차원 신의 사도가 모습을 드러내려 하자 아이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것을 상대하려면 마스터는 필요할 텐데, 중앙군 사령관의 힘으로는 어려웠다.
정상적인 몸으로도 힘들진대, 부상 입은 몸으로는 30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피의 사도와 죽음의 사도가 차원 게이트를 찢고 현신하면서 데스 로드가 만든 피의 거인 역시 좀 더 강력하게 변모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기가 막히게 균형을 맞추려는 듯, 수도 한복판에 워프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워프 게이트를 통한 것이 아닌 듯 불안정했으나, 기어코 사람 한 명을 수도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건 한 명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을 통해 나타나는 강자들.
그런 그들의 힘을 느낀 데스 로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국의 모든 사령관이 다 모였군, 양대 가주까지 왔으니……. 이러면 누가 유리하지?”
모든 결계가 깨지면서 임시 워프 마법으로 모인 제국의 모든 마스터들.
설령 황족이 지은 죄가 크다 한들 제국은 지켜야 했기에 모인 절대 강자들이 수도를 어지럽힌 타락한 자들을 섬멸하기 위해 모였다.
“이제 2차전 시작인가?”
아이언이 그 말과 함께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자 데스 로드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힘을 끌어 올렸다.
이미 물러날 곳은 없는 상황.
서로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한쪽은 지키기 위해, 한쪽은 부수기 위한 전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