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50)
50. 무너진 수도 (5)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의 황제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황궁에 갇혀서 제국의 위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이 가련한 자들을 보게.”
황제가 자신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황족들을 바라보았다.
황족 중에 온전히 죽을 수 있는 건 황제와 차기 황제, 그리고 막대한 권력을 쥔 황족뿐이다.
그렇기에 서로가 권력을 쥐고 파벌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쓴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황족들은 전부 제국을 지키기 위한 양분이 된다.
죽은 시체마저도 사용하는 악랄함을 자신의 혈족에 보이는 것이다.
혈족조차 그렇게 이용하는데, 제국민들을 실험체로 사용하는 데 꺼리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 보니 황족들은 세력을 모으기 위해 귀족들과 엮이게 되고 더 큰 이권을 약속했다.
이것이 수대에 걸쳐 반복되다 보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제국이 썩어 버린 것이다.
“물론 제국의 황제들 중에는 이 쓰레기 같은 국가를 살려보고자 한 자들도 있었지. 한데 그게 의미가 있을까?”
황제가 그렇게 말하며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시작부터 썩은 국가를 아무리 되살리려 한들 의미가 있겠는가?”
바로 앞에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음에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데스 로드를 바라보는 황제.
그의 눈에 죽음의 공포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의미가 없었다면 스스로 제국을 없앴으면 될 일!
데스 로드가 분노한 표정으로 사방에 죽음의 기운을 뿌렸다.
그러자 대전 안에 가득 차기 시작하는 죽음의 기운에 그것을 먹기 위해 사방에서 유령들이 모여들었다.
“하하하하! 우리가 그것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 같나?”
황제가 데스 로드의 말에 광소를 터뜨리면서 말했다.
“일부러 황권을 약화시키고, 귀족들을 강하게 키웠다. 또한! 이 빌어먹을 혈족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온갖 실험으로 얻은 약물을 어릴 때부터 주입했다. 그렇게 반역의 명분을 주고, 이 황궁을 무너뜨리게끔 조장한 지도 수십 년이 넘어간다. 그러나!”
황제가 절규하듯 데스 로드를 바라보면서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그럴수록 황제를 지키는 비밀 친위대는 데스 로드를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이놈들에 의해 그들의 시도는 언제나 좌절되었지.”
황제의 말에 데스 로드가 비밀 친위대를 바라보았다.
눈빛으로는 당장이라도 물러나고 싶어 했지만 몸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이러는 게 아닌 것이다.
“언제부턴가 진실을 아는 귀족들이 늘어나고, 황궁이 나약해졌음에도 아무도 반역을 생각지 않았다네. 그래서 그런지 이 친구들이 굉장히 지루해하더군.”
매번 황궁에는 일정 숫자 이상의 비밀 친위대가 있어야 했고, 그 숫자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황제 본인조차 죽어서 비밀 친위대가 된다.
그렇기에 황제와 황족들은 항상 수많은 자식들을 낳았고, 그들을 제물로 바쳤다.
하지만 반역은 없고, 황제를 향한 암살 시도도 점차 사라지자 비밀 친위대를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지루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여유가 생긴 황족들이 이 저주를 없애보고자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가자 황족들은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네, 바로 이걸 없애 보자고.”
황제가 옷을 찢어 내면서 드러낸 가슴엔 선명한 붉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제국을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명목하에 생긴 이 저주.”
-그것의 결과가 저것들이요?
“그렇지.”
몬스터부터 아인종까지 실험에 사용하고, 최근에는 다른 타 차원의 신과 계약한 자들의 시신을 이용해 황족의 저주를 없애 보고자 했다.
결과적으로는 전부 실패했다.
“아쉽게도 비밀 친위대는 전부 실패했지. 그래서 아직 살아 있는 ‘황족’들에게 실험해 보았지만 보다시피 끔찍한 벌레들이 되어 버렸지 뭔가.”
황제가 참으로 아쉽다는 듯 말했지만 데스 로드의 표정은 구겨졌다.
전투를 벌이면서 이 황궁을 통째로 날려 버리기 위해 강력한 마법을 만들었으나 전부 ‘무언가’에 의해 막혀 버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의 시도를 해 봤지만 매번 중간에 힘이 흩어져 버렸다.
“신의 힘을 빌리는 종자들이 어째서 황궁에 오기를 꺼리는지 아나?”
황제의 물음에 데스 로드가 이를 악물었다.
지금 황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황궁 내에선 신의 힘을 빌리는 게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지. 악마에게 힘을 빌려 마도사가 된 흑마도사나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사, 추기경 등이 짐 앞에서 빌빌 기는 것도 그 때문일세.”
황제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들의 약점을 계속 읊어 댔다.
진심으로 자신의 죽음을 바란다는 듯, 죽음의 군대에게 자신들의 정보를 말해 준 것이다.
1. 비밀 친위대는 황궁 밖에선 힘이 극히 제한된다.
2. 어떠한 경우에도 비밀 친위대는 수도 밖을 나갈 수 없다.
3. 황궁 안에선 신의 힘이 제한된다.
4. 황궁 특성상 물리력과 대규모 마법의 방어는 어느 정도 대비되어 있다.
5.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압도적인 힘으로 이 모든 걸 찍어 누르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말해 준 황제가 두 팔을 벌렸다.
“잡설이 길었군. 이제 자네들이 이 모든 걸 뚫고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어.”
황제는 지친다는 듯 다시 황좌에 앉은 채 다리를 꼬면서 자신의 심장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과연 저들이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을지 심히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오만하게 앉아 있는 황제.
그런 그를 보면서 데스 로드가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났다.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데스 로드의 말에 그의 주변에 모인 상원 의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은 로드의 뜻대로.
그들의 동의에 데스 로드가 무언가를 읊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인지 비밀 친위대가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뱀파이어와 리치, 다크 나이트가 사력을 다해 앞을 막아섰다.
그러는 동안 데스 로드에게서 뻗어 나온 핏줄기가 네 명의 상원 의원들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이 결정으로 인해 자네들은 영겁의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는 죽음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지옥조차 가벼울 정도의 고통이 그대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선택을 하겠는가?
-예!
데스 로드의 진중한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 순간 네 명의 상원 의원의 몸이 핏빛 고치에 묶여 지하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데스 로드를 중심으로 핏빛 원이 만들어지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지하를 뚫고 나와 형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황제가 말한 것처럼 황궁 안에는 외부 신의 개입을 제한하는 힘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완전한 형체를 이루지 못하고 자꾸만 무너지는 피의 거인.
그것을 보면서 데스 로드가 하늘을 향해 외쳤다.
-죽음의 신이여! 우리의 마지막 계약의 이행을 원합니다!
그의 말에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기둥이 떨어지더니 피의 거인을 가로막는 무언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에 저항하는 붉은 기운과 검은 기운이 치열하게 싸우는 사이 피의 거인은 완성되었고, 형체가 좀 더 명확해질수록 데스 로드의 신형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하하하! 크하하하하! 제법이다! 제법이야!”
황제가 죽음의 위기가 다가왔음에도 즐겁다는 듯 웃으면서 피의 거인을 바라보았다.
저 피의 거인이 이 빌어먹을 황족의 저주를 끝내 줄 수 있을지 진심으로 기대하는 표정.
그건 비밀 친위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몸은 거인을 막기 위해 달려가고 있을지언정, 눈빛만큼은 이 지독한 사슬을 끊어 내고 싶다는 그들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퍽! 퍽!
피의 거인의 주먹질에 저 멀리 날아가는 황제의 비밀 친위대.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거인의 주먹을 베어 내고, 찌르고, 가르는 것을 반복했다.
어느새 밖에 있는 실험체들과 괴물이 된 황족들 역시 피의 거인에게 달라붙었다.
거대한 피의 거인이 팔을 휘젓고 발을 움직일 때마다 황궁은 박살이 났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황제가 앉아 있는 황좌의 근처만큼은 조금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돌 조각 하나도 날아오지 않은 모습은 기이할 정도였다.
“어떨 것 같소?”
황제가 멍하니 허공을 보면서 물었다.
제국의 황제가 된 자만이 보이는 영혼들.
그들은 전원 푸른 사슬에 묶인 채 가만히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이들은 고개를 젓고, 어떤 이들은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수십 명이 넘어가는 영혼들은 저마다 경험을 늘어놓으며 가능성을 점쳤다.
이 빌어먹을 황궁을 완전히 박살 낼 수 있을지, 아닐지를.
“피의 악마와 죽음의 신, 둘과 계약하다니……. 인간의 몸으로 대단하긴 하군.”
황제가 단번에 데스 로드의 힘의 원천을 파악했다.
온갖 실험으로 단련된 육체가 그것을 버티게 했으며, 황족에 대한 지독한 증오와 이 땅에 간섭하고자 하는 외부 신들의 의지가 만들어 낸 경이로운 결과물.
죽음의 신이 황궁의 힘을 밀어내고 피의 악마가 현신해 황궁을 박살 낸다.
그 대가는 자신들의 모든 것.
그리고…….
“짐인가?”
증오의 대상인 황제와 황족들 전원의 영혼과 육체.
어쩌면 역대 황제들의 영혼까지도.
죽음 이후, 황제의 영혼을 속박해 제국을 지키는 양분으로 쓰는 이 쓰레기 같은 황궁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지옥조차 걸어가리라.
이 사슬만 끊어 낼 수 있다면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갈 의지도 있는 황제지만 아쉽게도 저들은 자신에게까지 닿지 못할 것 같았다.
피의 악마와 죽음의 신까지 힘을 발휘했음에도 이 황궁의 힘은 기어코 막아 내려 했다.
하지만 외부 신들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데스 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소망이 겹치자 황궁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외부 신들이 스스로의 힘을 희생해 피의 거인을 매개체로 공간을 찢었다.
그 과정에서 데스 로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다 주며 영혼까지 일부 찢겨 나갔지만 끝내 그 고통을 감내하며 바로 섰다.
“차원 게이트?”
황제가 놀란 표정으로 황궁 위에 생긴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하지만 죽음의 신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결계가 찢어진 지금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던 상황에서 차원 게이트가 열리며 황궁에 엄청난 숫자의 공허의 존재들이 넘어왔다.
외부 신들이 자신들의 권능 일부를 희생한 게이트답게 공허충이나 차원물고기가 따위가 아닌 공허의 타락한 신들을 추종하는 그들의 병사들이 넘어왔다.
황제의 비밀 친위대는 피의 거인을 막기도 버거워했고, 실험체들은 공허의 존재들을 막으며 죽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공허의 존재들에게 황좌를 두른 푸른 결계마저 찢겨 나가고, 그런 그를 향해 신체의 상당수가 가루가 되어 사라진 데스 로드가 걸어왔다.
“마침내 짐에게 도달했군.”
황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데스 로드를 바라보았다.
-편히 죽을 생각은 마시오.
“큭큭큭~ 그런 건 기대도 안 했네.”
황제가 그런 기대는 사치라는 걸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가리켰다.
“자네가 원하는 건 저기에 있을 걸세. 얼른 마무리 짓고 움직이게나.”
끝까지 여유로운 황제를 보면서 데스 로드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남은 한쪽 팔로 황제의 심장을 단번에 뽑아냈다.
“쿨럭! 드……디어…….”
심장이 뽑힌 상황에서도 웃고 있는 황제의 목을 단번에 날려 버린 데스 로드가 주변에 떠도는 영혼들을 바라보았다.
과거 황제였던 이들의 추악한 영혼들.
그들을 죽음의 신에게 던져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황제가 말한 황좌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그곳이 황제가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환한 빛이 뿜어지면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황궁과 수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백 년간 굳건했던 황궁이 붕괴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수도 역시 오랜 건물들이 하나둘 무너졌다.
황궁과 함께 수도를 지탱하던 결계의 축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게 대체……?”
멀리서 수도 상공에 펼쳐진 환영으로 만든 영상을 본 한 병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방금 전까지 황궁에 있던 모든 일들이 상공에 구현된 뱀파이어의 환영술을 통해 수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알려졌다.
추악한 진실.
믿을 수 없는 황족의 행위들.
그 모든 것이 진실임을 알려 주는, 괴물이 된 황족들과 이제는 무너져 가기 시작하는 황궁과 수도.
갑작스럽게 알려진 사실에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때, 모든 이들에게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의 무리로부터 황궁을 지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