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45)
49. 중앙 지역의 혼란 (4)
서로 간에 견제만 하던 죽음의 군대.
그들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이 뜨자 죽음의 기운이 어둠을 틈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뿌우우우우!
“죽음의 군대가 움직입니다!”
“지원은?”
“워…… 워프 게이트가 봉쇄되어 직접 와야 합니다. 시간이 걸릴 듯싶습니다.”
장교의 대답에 1차 관문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떠한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워프를 사용할 수 없다.
주변의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한 것이 원인일 것이다.
“후…… 지원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장교들에게 병사들을 다독이라고 전해.”
“예!”
1차 관문장의 명령에 장교가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달려갔다.
“모두 전투준비!”
“적들이 쳐들어온다!”
사방에서 지휘관들의 명령이 들려오면서 1차 저지선에 있는 병력이 재빨리 움직였다.
오랜 역사와 함께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만들어진 세 개의 관문.
중앙군이 썩어 빠져도 수도가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수도방위군이 정예만을 모은 것임을 증명하는 관문.
그 첫 번째 관문을 향해 죽음의 군대가 공격해 들어왔다.
“막아! 절대 근접하게 두지 마라!”
“신관들은 뭐 하는 거야! 검은 안개를 걷어 내!”
“마법사들은 정화 마법 위주로 전개해라!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악을 쓰면서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법사와 신관은 죽음의 안개를 쉽사리 걷어 내지 못했다.
아이언의 성역으로 영 힘을 못 쓰면서 손쉽게 죽어 나갔던 죽음의 군대.
하지만 그건 아이언이 대단하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증명하듯, 정예로 구성된 수도방위군의 1차 관문의 저지선이 손쉽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막아라! 절대 이곳을 넘겨줘선 안 된다!”
성벽을 타고 오르는 좀비들.
시독을 내뿜는 구울들.
죽음의 군대의 파상적인 공격에 1차 관문이 위기에 빠졌다.
바로 그때, 제국이 자랑하는 수도방위군의 기사단이 나타났다.
귀족들 중에서도 선별해서만 뽑는 수도방위군의 기사단.
중앙군의 기사단과 다르게 엘리트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들이 전면에 나서며 단번에 밀릴 것만 같았던 전황은 백중세로 변해 갔다.
“조금만 더 버텨라! 정화 마법진이 완성되면 상황은 나아진다!”
“버텨! 해가 뜨면 우리가 유리하다!”
밤이 되어 더욱 강력해진 죽음의 부대를 막기 위해 1차 관문의 병력이 사력을 다했다.
어느새 지원하러 온 공중 병력이 포탄을 떨구고, 지원 병력이 내려서 도왔지만 죽음의 부대는 그런 그들의 노력을 비웃듯 더 강력한 한 방을 꺼내 들었다.
“언데드…….”
좀비와 구울의 외형을 한 혼종들.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이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뱀파이어들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마치…….
‘우리가 언데드들을 못 쓰는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듯한 비웃음.
언데드들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스켈레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스켈레톤 솔저.
스켈레톤 나이트.
스켈레톤 아처.
스켈레톤 메이지.
가장 기본적인 이들로 구성된 뼈의 군단부터.
듀라한.
리치.
벤시.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존재.
어둠을 먹는 기사.
다크 나이트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5단계 이상의 강자로 만들어진 어둠의 기사마저 나타나자 1차 관문을 지키는 병력은 혼란에 빠졌다.
예정에 없던 언데드 군단의 등장은 그들을 혼란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아…… 안 된다!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1차 관문을 지키는 관문장이 악을 써 보았지만 이미 아군의 전의는 상실했다.
죽음의 군대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끝도 없이 몰려오는 언데드들의 공격까지 버티라는 건 무리였다.
결국 조금씩 밀리더니 마침내는 관문이 뚫려 버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1차 관문장.
그런 그를 향해 다크 나이트가 다가왔다.
“여기서 죽더라도 너희들이라도 전부 베고 가겠다.”
1차 관문장이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 올렸다.
스켈레톤 나이트들과 다크 나이트들을 보면서 1차 관문장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한 줌의 마력마저 모조리 끌어 올리는 건 뒤는 생각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는 그런 그를 상대하는 대신 옆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가 있던 자리에 한 뱀파이어가 나타났다.
“넌…….”
-수도에 아직도 너 같은 자가 남아 있다니…… 놀라군.
마지막까지 싸우는 1차 관문장을 보면서 뱀파이어가 흥미로워했다.
-자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지. 자네의 명예를 위해 서열 2위인 나 이반 로드리오가 직접 상대하겠다.
“서열 2위…….”
스스로 서열 2위라 밝힌 뱀파이어가 관문장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곁에 모인 검은 갑주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고작 네 명밖에 없는 기사들이지만 그들 전원이 진한 어둠의 기운을 뿜어 대고 있었다.
이런 이들을 이끄는 존재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데스…… 나이트.”
그가 검을 드는 순간 죽음의 기운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1차 관문장은 이를 악물었다.
마스터에 비견된다는 데스 나이트.
물론 모든 데스 나이트가 마스터급의 힘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가 된 이들이 하나같이 마스터에 근접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설령 마스터급 데스 나이트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데스 블레이드는 6단계 무인에겐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힘이었다.
“오라!”
6단계 무인인 1차 관문장이 검에 마력을 한계까지 밀어 넣자 그런 그를 향해 데스 나이트이자 뱀파이어인 이반이 달려들었다.
무너지는 관문 속에서 사력을 다해 이반을 공격하는 1차 관문장.
하지만 전투를 치르면서 소진한 체력 문제와 실력 차이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쿨럭!”
결국 피를 내뿜으면서 심장에 박힌 검을 바라보았다.
“아…… 안…… 된…….”
마지막까지 막으려던 그가 무너져 내리자 이반이 그런 그를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명예롭게 죽은 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다.
그러자 다크 나이트들이 그의 시신에 손대려 했다.
죽음의 기운이 시신에 스며들려 할 때였다.
이반이 손을 들어 그 기운을 막아 냈다.
-이자는 명예롭게 죽은 자이다. 적어도…… 진실을 보고 선택은 할 수 있게 해 줘야지.
이반의 말에 다크 나이트들이 1차 관문장의 시신을 들쳐 멨다.
-그에게 진실을 보여 준 후, 부활시켜도 늦지 않는다.
이반의 명령에 다크 나이트들이 고개를 숙인 후 움직였다.
그렇게 1차 관문장의 죽음과 함께 제국이 자랑하는 세 관문 중 첫 번째 문이 뚫렸다.
이 소식은 그 즉시 수도와 제국 전역에 알려졌다.
1차 관문이 뚫리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6시간.
하루는커녕 반나절도 버티지 못했다는 것에 모두가 충격 속에 빠져 있을 때, 또 한 번의 급보가 날아들었다.
2차 관문마저 뚫렸다는 비보.
심지어 두 번째 문은 훨씬 빨리 뚫렸다.
온갖 발악을 하면서 버텼던 1차 관문의 6시간의 반도 안 되는 2시간.
-쓰레기들.
이반은 1차 관문에서 보였던 것과 달리 벌레를 바라보듯 2차 관문장을 바라보았다.
관문이 뚫릴 것 같자 슬금슬금 후퇴할 생각을 하던 2차 관문장의 시신에 침을 뱉었다.
-죽음의 신께 제물로 바쳐라. 쓰레기는 지옥으로 보내 줘야지.
-예.
그의 명령에 다크 나이트들이 2차 관문장의 시신을 갖고 사라졌다.
곧 그의 영혼은 지옥 어딘가로 떨어지고 그의 육신은 죽음의 군대로 부활할 것이다.
그렇게 관문장을 죽이는 것으로 2차 관문마저 뚫리자 그가 이끄는 죽음의 군대는 다시금 전진했다.
그들의 최종 목표인 수도를 향해서.
이반에 의해 순식간에 뚫린 2차 관문의 패배 소식이 수도를 강타하자 황궁과 중앙 관료들이 다급해졌다.
마지막 관문만 남은 상황에서 황궁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황궁기사단이 직접 3차 관문으로 나아가고, 황궁을 지키는 황궁근위대부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키운 황제의 친위대인 로열 가드들까지 움직였다.
그러자 3차 관문은 만만찮다는 것을, 죽음의 군대도 아는 것일까?
진군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봤다.
곳곳에서 모여드는 죽음의 부대를 모아 소모된 병력을 충원하고 마지막 일전을 준비했다.
그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던 전쟁 상황이 아주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는 동안 아이언의 군대 역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소렌령을 지킬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움직일 태세를 갖췄다.
훈련양이 미숙한 자들과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자들만을 소렌령에 남기고 모든 병력을 끌어모았다.
“우린 남쪽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중앙군과 합류해 수도를 구원한다.”
아이언의 명령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한 번도 틀린 판단을 내린 적 없는 자신들의 영웅을 향한 무한한 신뢰.
비공선에는 물자만 실은 채 모든 병력이 지상으로 이동했다.
소렌령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아이언의 병력 소식이 수도를 강타했다.
당장 구원하러 올 것이라 생각했던 아이언이 중앙군을 먼저 도우러 간다는 소식에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이건 아이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세계인들의 연합 역시 수도를 곧장 오지 않고, 앞을 막는 죽음의 부대를 처치하며 천천히 진군했다.
그들 입장에선 굳이 자신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또한 개별적으로 부여된 퀘스트를 깨면서 천천히 수도를 돕겠다는 뜻도 보였다.
아이언과 이세계인들이 곧장 지원하러 올 수 없다는 소식에 수도 사람들은 절망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워프 게이트를 통한 이동이 봉쇄되면서 북부와 북동부의 즉각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동부군도, 서부군도, 남부군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비룡을 타고 오든 비공선을 타고 오든, 지원군이 오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 시간이 필요하다!”
“제길!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워프를 복구해! 아니면 다 죽는다!”
워프 게이트를 복구시키라고 마법사들을 닦달해 보았지만, 죽음의 기운에 어그러진 마나 흐름이 쉽사리 정상화될 리가 없었다.
마치 모두가 수도를 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아이언의 군대는 빠르게 남하했다.
가로막는 죽음의 부대를 모조리 소멸시키면서 중앙군과 합류하겠다는 명분 아래 중앙으로 집결하는 죽음의 부대를 박살 냈다.
연이은 승전.
관문들이 연이어 뚫리고, 패전을 거듭하는 중앙군과 달리 너무나도 손쉽게 죽여 나가는 아이언의 부대.
그즈음 마침 북부와 북동부군, 그리고 이세계인들과 합류해서 움직이는 동부군 일부가 지원하러 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수도 사람들에게는 동부군과, 중앙군과 합류한 아이언이 수도로 얼른 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기다렸다는 듯 죽음의 군대가 움직였다.
수도 앞을 새까맣게 물들인 그들은 마치 더 큰 절망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듯, 희망을 갖기 시작한 수도 사람들을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두려워 말라! 폐하께서 은혜를 내리사 그분을 지키는 검들이 그대들을 위해 나섰으니.”
그때 황궁 기사단장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성벽 위에 오롯이 선 그가 뽑아 든 검에는 어느새 오러 블레이드가 맺혀 있었다.
오러로 이루어진 거대한 검과 함께 그의 강력한 기세는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에게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무적이라 불리는 마스터.
그가 있는 이상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죽음의 군대와 수도방위군이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할 때, 중앙군 역시 수도를 지원하기 위해 움직였다.
자신들을 가로막는 죽음의 군단을 부수고 나아가기 위해 올리버 반 레오폴드가 검을 휘둘렀다.
마스터인 그의 검에 죽어 나가는 죽음의 존재들.
하지만 싸움은 그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없이 죽음의 부대와 싸운 중앙군이었지만,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그들에게 죽음의 군단을 이겨 내길 바라는 건 무리였다.
그나마 레오폴드가 있기에 버텨 낸 것이지만, 중앙군 총사령관인 그조차 부상을 입은 상황이기에 압도적인 무위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제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수도를 구원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조차 승산이 크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뱀파이어 서열 4위 붉은 요녀가 시간을 끌면서 중앙군을 갉아먹었다.
“이놈들!”
레오폴드 사령관이 자신의 앞을 어지럽히는 뱀파이어들을 향해 노성을 터뜨리면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의 거대한 검이 휘둘릴 때마다 환영은 찢겨 나가고, 마법들은 소멸되어 갔다.
뱀파이어들 역시 죽어 나갔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를 막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기에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움직였다.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 웃으면서 죽어 나가는 뱀파이어들.
그런 그들의 행동에 지독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호호~ 마스터라도 혼자서 모든 걸 할 수는 없는 법. 지쳤으면 이만 죽는 게 어떨까?
붉은 요녀가 요염하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는 굳건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재미없는 늙은이.
“내 반드시 너를 뚫고 수도로 갈 것이다.”
-할 수 있다면 해 봐, 후후후. 그때쯤이면 다 끝난 뒤가 되려나?
요녀의 말에 레오폴드는 지친 몸을 다시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군대는 밀리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빨리 저 요녀를 죽여야만 승산이 보였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쏟아 낼 생각으로 그는 힘을 끌어 올렸다.
부상을 입은 상태로 모든 힘을 끌어 올렸다간 영영 회복하기 힘든 내상을 입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것을 붉은 요녀도 느꼈는지 눈을 찌푸렸다.
-늙은이…….
붉은 요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레오폴드를 부를 때였다.
저 멀리서 날아드는 두 줄기의 빛.
그 빛에 닿은 자리에 있던 죽음의 병사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
동시에 하늘에서부터 펼쳐지는 신성한 결계.
-성역…….
붉은 요녀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순간 하늘에서 누군가가 떨어졌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네…….”
“지금부터 전장은 제가 맡겠습니다. 쉬고 계십시오.”
아이언은 믿음직한 미소와 함께 붉은 요녀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나랑 놀아 볼까?”
그의 말에 이제껏 여유를 부리던 붉은 요녀의 표정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