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 장남은 군대로 가출한다 (142)
49. 중앙 지역의 혼란
[살고 싶으면 아이언에게 가라. 그가 중앙의 마지막 희망이다!]
동부와 북부의 도시들에 퍼진 신문 기사.
북부의 성자가 중앙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왔다는 서문으로 시작한 그 기사는 그가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서부를 시작으로 중앙에서 붕괴된 중앙군의 북쪽 지역 병력을 끌어모아 세력을 만들고 있다.
특히 죽음의 부대가 힘을 쓰지 못하고 연전연패하면서 중앙의 북쪽 지역은 상대적으로 안전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 모든 게 고작 한 사람.
아이언으로 인해 만들어진 일이다.
그가 점령한 지역은 누구보다 안전한 지역이 되었다.
그를 믿어라.
그는 북동부와 동부, 북부를 지켜 낸 영웅이다.]
다소 낯간지러울 정도의 기사.
하지만 이런 기사는 하나만이 아니었다.
[아직도 그의 힘을 의심하는 자가 있는가?
막대한 신성력은 죽음의 존재들에게 극상성이요, 그의 신수의 힘은 수많은 공허의 존재들을 소멸시켰다.
무엇보다 개인의 힘으로 죽음의 군단장이자 뱀파이어 서열 3위 몰리나조차 물리친 그의 힘은 진짜다.
믿어라.
의심하지 마라.
그야말로 제국을 지탱할 새로운 기둥이다.]
공식적으로 소렌 지역이 완전히 탈환되면서 쏟아져 나오는 신문 기사들.
그들은 하나같이 아이언의 소식에 칭찬 일색으로 기사를 내었다.
절망적인 중앙의 상황에 한 줄기 빛이 나타났기에 모든 중앙 지역 사람들은 아이언을 환호했다.
북동부처럼.
북부처럼.
동부처럼.
자신들을 공허의 존재들에게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고립된 중앙군과 이기적인 수도방위군, 그리고 이득이 있을 때만 움직이는 이세계 연합.
그런 상황 속에서 아이언의 소식은 중앙 지역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었다.
“많기도 하군.”
아이언이 창밖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한때 백작의 영지였던 도시.
반쯤 무너진 성벽과 오랜 시간 비어 버려 망가진 건물뿐이었던 그곳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다시 활기차게 변했다.
그들에 의해 복구되는 성벽들.
그리고 북부에서 지원받은 물자들로 요새화가 진행되면서, 아이언은 몰려오는 중앙군을 훈련시켰다.
특수기동단급은 아니더라도, 아이언이 알고 있는 지식을 강제로 주입시키면서 적어도 자신들이 없어도 단번에 무너지지 않을 만큼 훈련시켰다.
본래는 이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은 아니었다.
병력을 모으면서 남하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중앙 지역에 살아남은 사람들도, 중앙군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레오폴드의 중앙군과 빠르게 합류하려는 기존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렌 지역을 점령하면서 만들어진 세력이 중앙군에 합류해서 싸우는 것보다 전략적 가치가 커졌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신 이 전력으로 서부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북서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서부로 향하는 죽음의 부대를 주기적으로 소탕하기로 했다.
특수기동단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엉덩이가 무거웠지만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언이 소렌에 오래 남아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후…… 골치 아프네.”
사람이 모이면 문제가 생기는 법.
일개 군인인 자신이 하기에 버거운 일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있었다.
사소한 일들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 해결까지.
본래 각기 다른 공직에 앉은 자들이 해야 할 일까지 임시로 자신이 처리해야 하니 머리가 아팠다.
그나마 전생에 해 왔던 일이기에 그럭저럭 해내고 있지만, 오랜만에 이런 일에 머리를 굴리다 보니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똑똑’ 소리와 함께 아리엘이 들어왔다.
“소렌으로 모여든 중앙군의 총 병력 숫자입니다.
아리엘의 보고에 아이언이 눈을 빛냈다.
“군단급이 얼마 안 남았네?”
“그렇습니다.”
“여단장이 군단을 이끌다니……. 본래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아이언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책상에 올려진 서류를 바라보았다.
특수기동단과 몰려든 중앙군을 합쳐지면서 군단급에 다가설 정도로 많은 병력을 이끌게 되었다.
사단 2개급의 병력을 넘어서는 숫자.
“후…… 분명 문제가 생길 텐데.”
“지금 단장님께 뭐라 하는 순간 대다수의 군부에게 반발을 살 겁니다.”
“그럴까?”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예. 오히려 승진을 시켜 줄 겁니다.”
아리엘의 확신에 찬 말에 웃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본래 백작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곳은 이제 아이언이 집무를 보는 곳으로 바뀌었다.
“승진하면 여기에 눌러앉을까? 내 집무실로 꽤 괜찮은 것 같은데…….”
“안 그러실 거 압니다.”
아리엘의 말에 아이언이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이었다면 고민해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멸망의 위기 속에서 눌러앉아 봐야 도움 될 거 하나 없다는 걸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훈련은 잘 진행되고 있어?”
“예. 아직 미숙하지만, 일부러 죽음의 부대를 찾아다니면서 실전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능숙해지고는 있습니다.”
아리엘의 보고에 아이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그래도 너무 몰아붙이진 마. 이곳이 거점이 되어 버린 지금 병력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해.”
“알겠습니다.”
특수기동단일 때와는 달랐다.
이젠 소렌이라는 거점을 통해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야 할 때이자 이곳에서 중앙의 한 축이 되어야 할 때였기에 안정적으로 병력을 운용해서 손실을 줄여야 했다.
“그래도 용케 군단급에 도달했네.”
대부분의 기사들은 하위 기사이고, 거의 병사들로 꾸려진 무늬만 군단이지만 자신이 백작급 도시에 정착한 후 북부에서 들어오는 지원 속에서 포병 부대와 소수의 비공선을 통해 만들어진 임시 공중 부대까지.
어느 정도 군단급을 흉내 낼 수 있는 상태까진 만들었다.
게다가 최근엔 살아남은 마법사들까지 합류하면서 정말로 군단의 틀은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렇게 잘나가면 꼭 욕심을 부리는 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헛소리하는 자들이 있을 거야. 그래도 웬만하면 참으라고 해.”
“……예.”
“특히 카드로 녀석을 따라다니면서 문제 안 일으키게 해.”
“저 바쁩니다.”
아리엘이 뚱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이언이 한숨을 쉬었다.
“그 녀석 금방 욱하는 성질인 거 잘 알잖아. 문제가 생기면 괜히 일만 늘어나는 것도 잘 알잖아.”
“후…… 알겠습니다.”
아리엘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가뜩이나 바쁜데 동료라는 놈의 뒷바라지까지 하게 생겼으니 짜증 났다.
그래도 나이 좀 먹었으니 한동안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아리엘의 생각은 고작 하루 만에 깨졌다.
“허…… 일개 여단장이 군단을 지휘하는 게 말이 되나?”
“그러게 말입니다. 뤼순 사단장이 계시는데 감히 여단장 따위가…….”
“쯧! 애초에 북동부 지휘관이 중앙군 병력을 지휘하는 것부터 말이 안 되네.”
몇몇 장교들이 모여 술을 마시면서 아이언을 씹어 댔다.
그들 모두 중앙군 출신의 장교들.
특히 모임을 주도하는 몇몇은 뤼순 사단장과 함께 도망갔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중앙군 붕괴 후 기사들만 살려서 숨어 있다가 아이언의 활약과 함께 일대의 죽음의 부대가 사라지자 기어 나와 아이언이 있는 곳으로 모여든 자들이었다.
전원 엘리트 출신에 수도에 라인을 두고 있는 장교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북동부의 지휘를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선 아무리 영웅이라 하더라도 촌구석 출신의 지휘관이 불과했다.
하지만 실력으로 보나 공훈으로 보나 비빌 구석이 없으니 유일하게 앞서는 사단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뤼순을 중심으로 모여서 은근히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쓰레기들이…….”
이 소문을 들은 카드로가 살벌한 안광을 내뿜으면서 단번에 찾아가 요절을 내려 했지만 아리엘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제 일으키지 마.”
“너도 들었잖아.”
카드로가 살벌한 안광으로 자신을 말리는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너 일낼까 봐 아이언이 나보고 붙어 다니라더라.”
“……그래서, 놔두라고?”
아리엘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던 카드로가 짜증 난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마음에 안 들어. 하지만 일단 놔두래.”
“하…….”
카드로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당장이라도 뤼순파 장교들을 박살 내고 싶어 했다.
그런 카드로를 향해 아리엘이 말했다.
“알잖아, 아이언 쪼잔한 거. 걔가 저런 걸 그냥 넘길 사람이야?”
“음…….”
“내버려 둬. 우리 할 일도 많은데 저딴 것에 신경 쓸 시간도 없잖아.”
“……그래.”
아리엘이 카드로를 겨우 진정시켜서 돌아가자 멀리서 둘을 보고 쫄아 있던 장교들은 시시덕거리면서 다시금 아이언을 씹어 댔다.
중앙군 엘리트 장교인 자신들을 쉽사리 건들지 못한다고 판단했는지 더욱 날뛰는 것이다.
아이언의 특명 때문인지, 특수기동단은 중앙군 장교들이 은근히 자신들을 무시하는 꼴을 참아 가면서 수련에 임했다.
괜히 문제를 일으키면 자신과 특별훈련을 한다는 아이언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참고 넘어갔다.
이런 상황이 일주일이 지나가자 중앙군 엘리트 출신 장교들이 조금씩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면서 붕괴되기까지 한 중앙군 때문에 기를 못 펴던 장교들이 안전한 곳에 안주하면서 특유의 오만함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로 그때, 아이언이 정식으로 뤼순 사단장을 불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그러게 말일세.”
뤼순 사단장이 아이언에게 하대하면서 그와 손을 맞잡았다.
그 모습에 곁에 있던 아리엘은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아이언의 눈짓에 참아 냈다.
“앉으시죠.”
“그러지.”
아이언의 권유에 자리에 앉은 뤼순의 앞에 아리엘이 찻잔을 내려놨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뤼순 소장의 휘하 장교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 주십쇼.”
“음?”
아이언의 말에 뤼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방해됩니다.”
단호한 그의 말에 뤼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들은 중앙군의 엘리트 장교 출신이네.”
“알고 있습니다.”
“북동부 출신에 비할 바 못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괜찮은 장교들일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버리겠다고?”
뤼순의 말에 아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의 통합에 방해됩니다.”
아이언의 말에 뤼순이 눈을 찌푸렸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을.
하지만 그걸 방관한 건 욕심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군을 지휘해 죽음의 부대와 싸워 보고자 하는 욕심.
그렇기에 뤼순은 적당한 시점에 아이언을 만날 생각이었다.
“자네가 여태까지 해 온 전투를 잘 알고 있네. 자네에게 이런 비대하기만 한 부대는 어울리지 않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중앙군을 내게 주게. 자넨 특수기동단과 중앙군 중에 정예들을 뽑아 가게. 이곳은 내가 맡겠네.”
뤼순의 제안에 아이언은 침묵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느 정도 먹힌다고 판단했는지 뤼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살아남은 중앙군 대다수는 오합지졸에 불과하지. 그들을 키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 그들까지 끌고 가는 건 자네에게 발목 잡기밖에 안 돼. 안 그런가?”
뤼순의 말에 아이언은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다음은요?”
“자네가 레오폴드 사령관을 도우러 간다고 들었는데, 맞나?”
“그렇다면요?”
“그럼 더더욱 정예만을 이끌 필요가 있지. 대신 이곳 소렌은 내가 지킴세.”
뤼순의 말에 아이언은 다시 차를 마시고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뤼순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개소리 잘 들었습니다.”